사탄은 하나님과 대등한 관계에서 악을 행하는 존재는 아니다. 오히려 구약성경은 사탄이 하나님에게 예속되어있던 존재라고 말한다. 심지어 사탄은 하나님 아들들과 함께 앞에 서서 하나님과 대화하는 상대로 묘사되기도 한다(욥 1:6). 그렇다면 사탄은 처음에 그렇게 극단적인 악의 존재로 등장한 것만은 아니라고 볼 수 있다. 이런 현상은 성경에 하나님의 계시가 나타나는 과정에서 사탄의 실체가 점진적으로 드러난 것으로 이해될 수 있다. 실례로 다윗의 인구조사와 관련해서 기록된 본문이 두 군데 나오는데, 사무엘하 24장 1절에서는 다윗을 부추긴 존재가 하나님이지만, 역대상 21장 1절에서는 사탄이 부추겼다고 되어있다. 구약성경의 이런 부조화는 계시의 점진성이라는 측면에서 이해될 필요가 있다. 그러니까 어떤 시기에는 사탄도 하나님의 뜻을 수행하는 역할을 했던 것으로 이해된 적이 있다는 것이다.
하지만 사탄에 대한 이해는 시간이 지나면서 점점 더 분명하게 드러났다. 사탄의 이해가 구약과 신약에서 확연하게 달라지는 것도 그 때문이다. 구약에서는 하나님의 유일무이성과 주권이 강조되었기 때문에 사탄도 하나님에게 예속된 존재로 그려지기도 했지만, 신약에서는 하나님을 대적하고 하나님의 보좌에서 추방된 존재로 묘사된다(눅 10:18; 계 12:7-9). 신약에서 사탄은 이 땅에서 공중의 권세를 장악하고 믿는 자를 공격하는(행 5:3; 살전 2:18; 엡 6:11-12; 고전 7:5; 계 2:10; 12:10) 존재다. 그리고 그의 최후 운명은 이미 결정되어 있다. 그는 영원한 불못에 던져질 것이다(계 20:10).
[회중주체적 조직신학], 27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