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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高로 빅맥지수 3개월 새 7.44% 올라<조선일보 2010년 11월 8일 B3면>
영국의 경제주간지 이코노미스트가 10월 13일 환율 기준으로 빅맥지수(The Big Mac Index)를 집계한 결과에 따르면, 한국의 빅맥 지수는 3.03달러로 3개월 전인 지난 7월 조사 때 2.82달러였던 것에 비해 7.44% 올랐다. 빅맥 지수의 기준이 되는 미국의 빅맥 가격은 3.71달러였는데, 같은 빅맥을 사는 데 한국에서는 3.03달러가 들기 때문에 한국 원화는 달러보다 18% 정도 저평가돼 있다고 분석할 수 있다.
다시 풀어 읽는 경제기사
올 하반기 세계 경제의 가장 큰 이슈 중 하나는 이른바 '환율전쟁'이었습니다. 글로벌 금융위기 이후 경기 회복 둔화에 직면한 선진국과 신흥개도국 등 세계 각국이 자국 통화의 가치를 약세로 유지해 무역에서 이득을 보려 하는 치열한 경쟁이 벌어졌던 것이죠. 통상 한 나라의 통화 가치가 낮아지면 수출 상품의 가격이 싸지기 때문에 수출이 늘어나고 경제가 활성화되는 효과가 있습니다. 하지만 '환율전쟁'이 장기화 되면 보호무역주의의 확산으로 인해 세계 경제 전체가 손해를 보는 결과를 가져올 수밖에 없습니다.
이에 따라 지난 10월 IMF(국제통화기금) 연차총회와 경주 G20(주요 20개국) 재무장관·중앙은행 총재 회의, 그리고 지난 11월 서울 G20 정상회의에서 환율문제는 가장 중요한 이슈로 다뤄졌습니다. 당시 미국 등 선진국들이 중국에 대해 "위안화 가치가 저평가돼 있다"고 비판했으며, 일부 국가는 우리나라 원화에 대해서도 "G20 국가 중 두 번째로 저평가돼 있다"고 주장하기도 했습니다.
그렇다면 실제 환율이 저평가되어 있는지, 또는 고평가되어 있는지는 어떤 잣대로 판단할 수 있을까요. 오늘은 환율의 적정 수준을 평가하는 간편한 방법으로 널리 사용되고 있는 '빅맥지수(The Big Mac Index)'와 이의 배경이 되는 전통적 환율이론인 '구매력평가설'에 대해 자세히 알아보겠습니다.
환율의 적정수준은 어떻게 판단하나
환율의 적정수준을 설명하기 위한 경제학 이론은 여러 가지가 있습니다. 그중에서 가장 오랜 역사를 가진 이론은 1800년대 초반 영국의 경제학자인 리카도(Ricardo)의 이론에 근거한 '구매력평가설'입니다.
구매력평가설에 따르면 적정환율은 '하나의 통화로 환산한 세계 각국의 물가수준이 같아지게 하는 환율'입니다. 즉 장기적으로 각국의 환율 수준은 상품이나 서비스에 대한 구매력에 따라 결정된다는 것입니다.
구매력평가설은 국가 간 교역이 항상 자유롭게 이뤄진다는 자유무역의 개념에 바탕을 두고 있습니다. 동일한 물건의 가격이 나라마다 다를 경우, 상인들이 가격이 싼 국가에서 물건을 사서 비싼 나라에 팔아 이득을 볼 수 있습니다. 이처럼 국가 간에 상시적인 교역 행위, 즉 상품재정거래가 일어나고 있기 때문에 근본적으로 국가 간 물건값 차이가 커질 수 없습니다. 쉬운 예로, 우리나라에서 배추·참깨 등 농산물의 작황이 나빠 가격이 급등하면 중국 등지에서 수입하기 때문에 가격이 다시 하락하곤 합니다.
국가 간에 교역이 자유롭게 이루어지기 때문에 세상 하나의 물건에 하나의 가격만 존재한다는 구매력평가설은 일견 설득력이 있어 보입니다. 하지만 노벨경제학상 수상자인 새무앨슨(Samuelson) 교수는 1964년 발표한 논문에서 "구매력평가설이 항상 성립하는 것은 아니다"라고 주장했습니다. 사람들이 구매하는 품목 중에는 국가 간에 교역하기 어려운 것들이 많습니다. 경제학에서 자주 근거로 드는 이발 서비스를 예로 들어 봅시다. 한국의 이발 비용이 미국보다 싸다고 해도 우리나라 이발사가 바로 미국에 가서 영업하는 것은 참깨를 수입하는 것에 비하면 훨씬 어려운 일입니다. 따라서 한국의 이발 서비스 가격이 미국과 반드시 같거나 비슷해야만 하는 것은 아닙니다. 결론적으로 적정 환율이란 모든 상품에 대해 각국 물가 수준을 동일하게 만들어주는 것이라기보다는, 교역이 활발하게 이루어지는 품목들의 가격을 비슷하게 만들어 주는 환율이라고 보는 것이 타당할 것입니다.
빅맥지수란?
빅맥지수는 전 세계 맥도날드 매장에서 팔리는 빅맥 가격을 달러로 환산한 각국 빅맥 가격입니다. 빅맥은 맥도날드가 진출한 세계 117개국 중에서 인도와 중동 등 몇 나라를 제외한 모든 국가에서 유사한 재료와 조리법으로 판매되고 있기 때문에 국가 간 가격비교가 용이합니다. 이런 점에서 각국의 환율을 평가할 수 있는 편리한 방법으로 활용되고 있습니다. 빅맥지수는 1986년부터 영국의 이코노미스트지가 작성해 발표하고 있는데, 최근에는 스타벅스에서 판매되는 카페라테(Tall Latte Index)나 가구업체인 이케아의 책꽂이(Billy Index) 가격을 이용한 유사 지표들도 속속 등장하고 있습니다.
한 나라의 빅맥지수가 미국보다 높으면 그 나라 통화가 달러보다 고평가되어 있다고 말하며, 반대로 미국보다 낮으면 그 나라 통화가 저평가되어 있다고 합니다.
빅맥지수 산출 과정을 따라가 볼까요. 빅맥은 각 나라에서 그 나라 통화 단위로 판매되고 있습니다. 이 때문에 각국의 빅맥 가격을 비교하기 위해서는 현 시점의 시장환율을 적용해 이를 미국 달러화로 환산해야 합니다. 지난 10월 13일 현재 우리나라에서 판매되는 빅맥 가격은 3400원이었습니다. 이는 당시 달러화 대비 원화 환율인 달러당 1120.7원으로 나누면 3.03달러가 됩니다. 같은 날 미국의 빅맥 가격은 우리나라보다 높은 3.71달러였습니다.
빅맥지수는 한 나라가 다른 나라의 환율이 저평가되어 있다고 비판하는 근거로 활용되기도 합니다. 위의 예에서 빅맥지수를 근거로 "한국 원화가 달러보다 저평가돼 있다"고 말할 수 있습니다. 우리나라 빅맥 가격인 3400원을 달러로 환전해 미국에서 3.71달러를 지불하고 같은 빅맥을 살 수 있으려면 환율이 달러당 916원이 되어야 합니다. 하지만 실제 시장환율은 달러당 1120.7원입니다. 즉 실제 시장에서 거래되는 환율이 적정환율보다 더 높기 때문에 원화가 낮게 평가되고 있다는 주장입니다. 이같이 빅맥지수로 계산하면 우리나라 원화는 18.3% 저평가되어 있으며, 중국 위안화는 40% 가까이 저평가되어 있는 것으로 나타납니다.
빅맥지수의 유용성과 한계
각국의 빅맥 가격이 같으려면 국가 간 교역이 활발해 상품재정거래가 원활히 이루어져야 합니다. 그런데 문제는 맥도날드 매장에서 햄버거뿐 아니라 국가 간 교역이 어려운 서비스도 함께 팔고 있다는 점입니다. 소비자가 비싼 고급 커피전문점을 찾는 이유는 커피뿐 아니라 편안한 의자와 고급스러운 분위기를 즐기기 위해서입니다. 마찬가지로 맥도날드 고객도 빅맥버거뿐 아니라 매장에서 제공되는 서비스를 사용하는 비용을 함께 지불하고 있다고 할 수 있습니다. 일반적으로 인건비가 비싼 선진국은 서비스 가격이 높습니다. 따라서 우리나라의 빅맥 가격이 미국보다 낮은 것이 오히려 정상이라고 볼 수도 있습니다. 빅맥 가격을 일치시킬 정도로 달러화 대비 원화 환율을 낮추면(원화 가치를 절상하면) 어떻게 될까요. 정작 교역이 활발해 가격 차이가 크지 않은 품목의 가격은 우리나라가 미국보다 오히려 높아질 수 있습니다. 이는 결과적으로 한국의 수출 산업에서 불리하게 작용할 것입니다. 이런 맥락에서 중국 위안화의 가치도 빅맥지수를 이용한 계산법에 따라 40%까지 저평가되어 있다고 주장하는 것은 무리가 있다고 볼 수 있습니다.
[쉽게 배우는 경제 tip] 상품재정거래(goods market arbitrage)
동일한 상품의 가격이 국가 간에 차이가 나는 경우, 가격이 낮은 국가에서 해당 상품을 구입해 가격이 높은 국가에 판매함으로써 이익을 얻는 것을 말합니다.
즉 국가 간 상품의 가격 차이를 근거로 교역을 통해 경제적 이득을 취하는 행위라고 볼 수 있습니다. 상품재정거래는 구매력평가설이 성립하기 위한 필요조건이라고도 할 수 있습니다.
최근 한국 정부가 "신규 수입업자의 진입이 용이하도록 병행수입의 범위를 확대하겠다"고 밝힌 바 있는데, 이는 상품재정거래를 활성화해서 수입품의 국내 가격을 안정시키려는 시도로 볼 수 있습니다.
조선일보 2010.12.1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