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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새로운학교를 꿈꾸며_새학교넷 원문보기 글쓴이: 유선2
-1학년 조00 처음에는 학교에서 학교 폭력 예방 교육을 할 때 무관심하고 재미도 없어서, 집중 하지 않을 때도 있었다. 방학 숙제로 학교 폭력 예방 영상 시청 소감문을 써서 제출하라는 게 있어서 짜증도 났다. 그런데 막상 시청하다 보니 생각이 달라진다. 주인공이 너무 불쌍하고, 아무 이유 없이 당하니 어이가 없고 화가났다. 그리고 한 명이 아닌 여러 명이 괴롭히는 것은 더더욱 참을 수 없다. 이 영상을 보고 나니 학교 폭력에 대해 관심도 생기고 당하는 사람의 심정도 알 것 같다. 영상의 마지막 부분, 친구를 괴롭혔던 아이들 중 한 명이 중학생한테 학교 폭력을 당했다는 사실이 밝혀진다. 그처럼 폭력은 폭력을 불러 오는 것 같다. 나는 학교에서 장난으로 친구를 때리거나 그러면서 놀고 하는데 이제부터라도 친구의 기분을 먼저 생각하고, 행동해야겠다. 학교 폭력을 하면 한 사람한테 다시 돌아온다는 것을 알았다.
무관심은 아프기만 하다. 3학년 강00 지금의 나는 친구들과 어울리기 바쁜 16살 소녀다. 애들 앞에서 무엇이든 불쑥 나서기도 하고 핀잔을 듣거나 기분좋게 웃고 넘기는 그런 아이다. 하지만 그런 나에게도 밝히고 싶지 않은 과거가 있다. 나는 초등학생 때, 누군가를 따돌리는 아이들의 무리에 끼어 특정 아이들만 괴롭히는 그런 아이였다. 아이의 숙제를 빼앗아 숙제를 베끼거나, 떡볶이를 먹고 있으면 빼앗아 먹기도 했고, 언젠가는 튀고 싶다는 생각에 머리를 주황빛으로 염색하고 아이들과 공원에 앉아 빌린 돈으로 콜팝을 먹으며 시시덕거리기도 했다. 그렇게 나는 아무 걱정도 겁도 없는 불량아로 커갔다. 그러다가 일이 터지고 말았다. 내가 싫어하던 아이가 하나 있었는데, 그 아이가 내 머리에 우유를 쏟은 것이 화근이었다. 지금 생각해 보면 실수했다고 생각했을 것이지만, 그때는 정말 생각도 철도 없었던 것 같다. 나는 그 아이를 밀쳤고, 아이는 울고 말았다. 그때 마침 선생님이 들어오셨고, 나는 아이의 부모님과 선생님께 울지 않을 정도로 혼났다. 그 사건 이후로 나는 무엇을 하든지 자신을 참여시키지 못하는 소극적인 성격의 아이가 됐다. 그러자 친했던 친구들도 나에게서 하나둘씩 떠나더니, 이내 하나도 남지 않게 되었고, 결국 나는 소위 말하는 왕따가 되었다. 왕따가 되자, 아이들은 나를 무시하기 시작했다. 그래서 늘 하던 발표나 선거에도 선생님이 시키지 않는 이상 나가지 않았다. 뿐만 아니라 늘 내가 옆에 지나갈 때마다 반 아이들이 보내던 야유와 같은 수군거림과 흘깃대는 시선들이 생겼고, 다른 반 아이들과 급식 먹는 것도 자존심이 상해서 배가 아프다는 핑계로 늘 보건실에 누워 있다가, 한 달 뒤에는 아예 급식을 입에서 떼게 되었다. 그렇게 나는 그 누구에게도 내가 겪는 외로움을 말해보지 못한 채 마음에 난 상처를 삭이고 또 삭였다. 나는 아이들의 무관심한 혹은 경멸의 시선이 너무 무서웠고 또 내가 그 아이처럼 당하게 될까봐 두려웠다. 무엇보다 고통스러웠던 것은 그 누구도 나의 고통에 관심을 가져주지 않았다는 점이었다. 부모님은 내가 일찍 사춘기가 왔다고 생각하실 뿐이었고, 선생님은 내가 일찍 철이 들어 공부 하는 줄로만 아셨다. 그래서 그 누구에게도 상담조차 따스한 시선조차 받아보지 못했다는 점이 내게는 가장 큰 고통이었다. 그래서 남몰래 방에 틀어박혀 울거나 전학 따위를 생각해 본적도 있었다. 그만큼 나는 점점 극단적으로 변하고 있었는지도 모른다. 하지만, 중학생이 되고, 다른 여러 아이들을 만나게 되자 나는 차츰 다시 본디 가지고 있던 성격을 찾게 됐고, 이제는 친구들과 대화를 나누고 같이 놀러 다니는 것이 좋아져 버렸다. 왕따라는 것은 내게 있어서는 한순간 불고 사라진 태풍과도 같았지만, 지금 생각해 보면 만약 그때 내가 그 아이를 괴롭히지만 않았다면, 나또한 이런 일은 당하지 않지 않았을까? 그렇게 생각하면 사람이 한 일은 한 만큼 되돌려 받는 것 같아 반성하게 되었다. 그 아이의 고통은 관심도 가지지 않은 채 괴롭히고 상처만 주었던 내가 부끄럽다고 느꼈다. 나는 이 동영상들을 보면서 잠깐이지만 내 옛 모습을 떠올리게 되었다. 누구나 한번쯤 겪어보았을, 인간이 만든 이 사회가 지닌 다른 슬픈 모습에 고통 받는 또 다른 인간들을 위해 이 사회가 반성하고 인간들이 뉘우쳐 나가야 하지 않을까?
-1학년 박00 이 영상을 2번정도 보았습니다. 근데 처음보았을 때는 아무 감정 변화가 없었는데, 2번째 볼 때 가슴이 울컥했습니다. 왜냐하면 나도 누군가를 때리거나 그런것을 보고도 모른 척을 했기 때문입니다. 처음으로 내가 이제까지 했던짓을 떠올려보고 반성을 하였습니다. 그리고 다짐했습니다. 앞으로는 그런것을 보고도 가만이 있지않고 누군가에게 알려야겠다고요.... 그리고 저는 사람도 많이 때리고, 욕도 많이 쓰고 .... 이제까지 욕하고, 조금씩 때린 것에 대해 친구들에게 정말 미안하다고 생각됐습니다. 그리고 명구는 착한것 같다고 느꼈습니다. 왜냐하면 친구들이 괴롭혀도 가만히 있고 고양이가 까마귀에게 당할때도 용감하게 맞섰기 때문입니다. 저는 그런 당당함과 동물을 사랑하는 그런 착한 마음을 닮고 싶었습니다. 이런 멋진 영상을 보여주셔서 정말 감사했습니다.
-2학년 이00 오늘 방학숙제를 끝내야겠다는 생각으로 생활지도 숙제를 하기로 마음먹고 종이에 쓰여진 주소로가서 '모르는척'이라는 영상을보았다. 배경은 한초등학교였는데 초등학교에서도 왕따가 있다는게 놀라웠다. 그리고 점점 왕따의 연령층이 낮아지고 넓어지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맹구에게 왕따가 시작된 건 처음 비오는날 아이 3명이서 맹구의 우산을 뺏고 그 우산을 던진 때였다. 그 이후로 소위 아이들이 부르는 '왕따'가 된것이다. 그런데 늘 생각하지만 왕따에는 보이지 않는 법칙 같은 게 있는 듯하다. 왕따의 주 대상은 거의 힘없고 착하고 약한 그리고 소심해서 아이들과 어울리지 못하는 그런 아이이고 왕따를 하는 즉 가해자는 정해져 있지 않지만 거의 소위 노는 아이들이다. 물론 노는 아이들이 아닌 평범한 아이들도 왕따의 가해자와 피해자가 될 수 있다. 이렇게 메일을 쓰고 있는 나도 포함되는 이야기이다. 어쨌든 맹구를 괴롭히는 3명의 아이들은 미술시간에 맹구의 그림을 엉망으로 만들어 놓는다. 아이들은 보고만 있는다. 3명의 아이들이 무섭기 때문이다. 맹구는 선생님에게 이야기하지 않는다. 그건 아이들도 마찬가지이다. 그렇게 아이들은 자기도 모르는 사이에 방관자라는 역할을 맡게 되었다. 미술시간 이후로 맹구가 선생님에게 이야기하지 않은걸 알자, 가해자들은 더욱더 맹구를 만만히 여겨 더욱 심한 따돌림을 시작한다. 맹구를 데리고나가 수퍼에서 도둑질을 하는 행동에 맹구를 공범으로 만들고 민수까지도 샤프를 하나 주며 공범으로 만들어 입막음시킨다. 도둑질이라는 범죄에 자신이 공범이되자 민수는 스트레스와 압박을 받는다. 용기를 내어 부모님께 이야기하고 도움을 청하지만, 부모님은 민수의 고민에 대해 진지하게 아이의 두려움을 느끼지 못하고 태연히 이야기한다. 이 영상을 보면서 부모도 잘못이 있다고 생각했다. 아이가 용기 내어 말을한 것인데 태연히 이야기하는 부모의 행동은 아이에게 또다른 스트레스를 주는것과 같지 않을까? 토요일날 맹구는 민수에게 샤프를 받아 슈퍼아저씨에게 사과를 한다. 그리고 월요일날 맹구의 얼굴은 온통 멍투성이인걸 보면 그 아이들이 때린 것같다. 또 아이들은 방관한다. 그 전에 선생님은 아이들에게 우리반은 왕따 같은 거 없죠? 라고 물어보았다. 그 때 한아이가 용기 있게 이야기했었다면 맹구가 조금 덜 힘들어하지 않았을까?? 하는 아쉬움이 조금 든다. 과연 선생님은 정말 몰랐을까?? 귀찮은 일이라고 생각하며 외면한건 아닐까? 맹구는 연극연습을 할 때 머리에 피가 날 정도로 괴롭힘을 당한다. 또 아이들은 방관한다. 이러한 방관하는 태도도 가해자가 되지만 정말 어찌해야할 지 모르는 아이들도 있다. 보복을 당할까봐 자신이 왕따가 될까봐 두려워 하는 그런아이들. 방관을 원하지 않는다면 더 자세히 아이들에게 무엇을해야 할지를 알려주었으면 좋겠다. 혹은 선생님이 먼저 물어본다거나. 내가 1학년때 왕따를 체험해 보는 시간이 있었다. 담임선생님의 지도하에 출석번호대로 5분간만 왕따를 하는 그런 시간이었는데 나도 물론 체험해 보았지만 그리 좋지는 않았다. 아니 그냥 기분이 나빴다. 나는 5분이었지만 실제로 왕따를 당하는 아이들은 5분이 아닌 어쩌면 생활일지도 모른다. 5분도 정말 힘들고 외로웠는데. 나는 가해자도 피해자도 방관자도 원하지 않는다. 그러나 내주위 누군가 왕따를 당한다면 손내밀 수 있는 용기있는 사람이 되고 싶다.
-3학년 박00 다양한 학교폭력예방영상을 통하여 학교폭력의 문제점과 학교폭력 예방법을 배울 수 있었다. ‘모르는 척’을 맨 처음에 봤었는데 20분 짜리 일본 애니에서 우리에게 전달하고자 했던 메시지를 잘 전달 받을 수 있었다. 그리고 거의 마지막 부분에서 왕따 시키는 주동자도 알고 보니 피해자였다는 사실이 반전 포인트였다. 말로, 혹은 글로 학교폭력에 대해 배웠던 것보다 훨씬 더 마음에 와닿았다. ‘따돌림 받는 아이’도 기억에 남는다. 전학 첫날부터 사소한 오해로 친구가 생길 시간이 없었던 한 여자아이의 이야기이다. 너무나도 외로운 학교생활을 지내다가 자신의 생일날 큰 용기내어 친구들을 초대하였지만 아무도 생일잔치에 오지 않았을 때 이 아이는 무슨 생각을 했을까?... 너무나도 슬프고 마음 한 켠이 짠하였다... 하지만 한 번 더 용기를 내어 생일 다음날 자신의 심정을 친구들 앞에서 말하는 모습을 보고 참 용기있다고 느꼈다. 사실 나 같으면 그냥 슬퍼하고 우울해하고 혼자서 끙끙 댈 텐데 이 만화의 주인공의 용기와 친구들과 친해지고 싶은 의지는 정말 칭찬해주어야 할 부분이라고 생각한다. 마지막으로 김제동씨 기사를 보고 느낀 점이 많았다. ‘집에 돌아와 라면을 올려놓고 냉장고 문을 열다가, 저는 문득 깍두기가 얼마나 다정한가를 생각했습니다. 우리와 달라서, 우리보다 약해서, 우리보다 못나서, 우리보다 늦게 도착해서, 우리 편에 완전히 속하기에 모자람이 있다면, 그 아이를 깍두기로 삼아주었으면 좋겠습니다. 동치미를 담고 남은 무 조각을 배추김치 사이에 끼워 넣듯 말입니다. 왕따는 우리 아이들의 풍습이 아닙니다. 나는 우리 아이들의 교실에 왕따 대신 깍두기가 살았으면 좋겠습니다.’ 이 중 특히 마지막 두 문장이 가장 인상 깊었던 대목이었다. 깍두기에 존재에 대해 또 왕따의 존재에 대해 생각해 볼 수 있는 시간이었다.
-2학년 김00 동영상이나 ppt를 보면서 많은것을 알게된 것 같다. 나는 지금 학교를 다니니 왕따에 관련된것도 조금 알고있었지만 정확하게 알고있지않았다. 특히 그냥 보고 가만히 있는 사람들도 나쁘다는것을 알지 못했다. 왜냐하면 주변에서 보았지만 가만히 있는 사람들은 딱히 그 아이에게 피해를 주지않았을 뿐더러 그 아이들은 왕따당하는 학생을 도와주면 가해자인 아이들에게 자신도 왕따를 당한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그렇지만 결국 가만히 보고있는 아이들의 잘못을 알게되고 참 놀라웠다. 그치만 지금 왕따를 보고도 가만히 있는 아이들에게는 용기도 필요하고 도와줄 사람도 필요하다. 왕따를 도와주는 아이가 생겼는데 그 아이마저 왕따가 되고 피해를 받으면 정신적으로든 피해가 많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요즘 가해자에 대한 처벌은 점점 심해져서 괜찮다고 생각하지만 이것 역시 완벽하다고는 할 수 없는 것같다. 왜냐하면 가해자인 이 아이들은 자신과 같은 아이들 또는 언니오빠형누나같은 사람들을 많이 알고있어 피해자는 또 다른 사람들에게 피해를 받을수도 있다고 생각하고 가해자가 퇴학처분을 받게 되어도 밖에서 만날수도 있고 그때에 분명 가해자는 피해자에게 좋은 감정은 아니기 때문에 좋지 않은일이 생길수도 있다고 생각한다. 또 내가 이걸 보고 많이 알게된 것은 역시 여러 방법이라든가 왜 왕따가 되는지, 어떻게 해야하는가에 대한 것은 정말 많이 배운것같다. 나는 일단 주변 아이들의 생각이 먼저 바뀌었으면 좋겠다. 모든 아이들이 피해자를 도와주게 되면 가해자는 어쩔수 없다는 것을 좀 알았으면 좋겠다. 가해자 5명이 스무명 정도의 아이들의 왕따시킬 수 없다는 것을 모르는 것인지 왜 가만히 있는지 모르겠다. 그리고 가해자인 아이들은 자신이 왜 피해자를 괴롭히는 좀 생각을 해봤으면 좋겠다. 그리고 맨날 자기들이 이상하다고 욕하는 싸이코패스가, 실은 지금 피해자를 괴롭히지만 이 피해자의 아픔을 알지 못하는 자신들이라는 것을 알아야 한다고 생각한다. 그리고 이런 동영상 또는 ppt를 좀더 학교에서 많이 보여주고 얘기도 많이해줬으면 한다.
-1학년 이00 왕따들이 생각하는 심리들, 우리에겐 별것아니지만 따돌림을 당하는 사람들이 보면 당연히 공감할 것이라 생각했다. 한편으로는 ‘나도 혹시 왕따가 아닐까’라는 마음으로 보기도 하였다. 또, 우리반의 왕따의 얼굴도 떠올랐다. ‘나는 따돌림을 당하지 않아야겠다.’ 가 아니라 ‘나는 친구를 따돌리지 않아야겠다.’ 라고 생각했으면 하는 바람이 생겼다. 또한 나도 그렇게 생각하려고 노력을 하고 있다. 따돌림이 반에 한명 쯤은 당하고 있다는 확신이 들기도 했고, 그 이유는 나 때문이 아닌가 라고 생각을 해보았다. 우리학교에서는 따돌림을 막기위해 많은 노력을 하지만, 그 노력들은 다 소용없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왜냐하면, 어른들이 즉, 제 3자가 아무리 노력을 해도 우리들이 실행을 하지 않는다면 막을 수 없기 때문이다. 그러니 왕따를 시키는 학생들은 자신이 왜 그런 짓을 했는지 생각하고 고치는 것이 좋고, 따돌림을 당하는 학생들은 자신이 무엇 때문에 따돌림을 당하는지 생각하고 고쳐야 하기 때문에 왕따를 시키는 사람들만이 잘못한 것만은 아니라는 인식이 있어야 한다. 거의 왕따들은 누구는 가만히 있어도 인기를 얻지만, 나는 아무리 발버둥을 쳐도 친구를 사귈 수 없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그들도 노력하여 친구를 사귀었고, 앞으로도 노력을 할 것이다. ‘왕따들은 불쌍하다.’ ‘왕따 시키는 사람은 나쁘다.’ 나는 그렇게 생각하지 않는다. 서로서로 노력해서 따돌림을 막아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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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 http://blog.naver.com/seouledu2012/11015040182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