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순'을 맞았다.
교회는 사순시기 40일 동안 예수님의 부활을 준비하며 참회와 희생의 정신으로 살 것을 권고한다. 사순시기의 절제를 독자들에게만 말하지 않고 스스로도 그렇게 살기 위해 여기, 가톨릭신문 기자 세 명이 동참했다.
이승환 기자의 금연, 이지연 기자의 TV끊기, 오혜민 기자의 금육은 삶에서 실천할 수 있는 작은 절제이자 첫 도전이다. 이번 사순이 기자들의 생애 가운데 가장 아름다운 40일이 될 것을 믿어 의심치 않는다.
◆ '금육' 오혜민 기자
나는 육식주의자다.
채식주의자라는 말이 익숙한 사람들에게 ‘육식주의자’는 어쩌면 낯선 단어일지도 모른다. ‘금육’이라 하면, 웰빙 바람에 맞춰 누구나 쉽게 할 수 있는 절제라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내게 ‘금육’은 ‘단식’과 별반 다를 것이 없다.
이번 사순을 맞아 나는 내가 그토록 ‘사랑해온’ 고기를 끊기로 했다. 20여년 간 고기만 먹고 살아온 내게 금육은 진정한 고난이다. 아침에 삼겹살을 구워먹는 연예인 강호동씨를 누구보다 잘 이해하기 때문이다.
다른 음식을 먹지 않는 것은 아니지만 끼니때마다 나는 언제나 고기를 찾았다. 제육볶음은 언제나 다른 채소들을 뺀 고기만, 소시지와 햄에는 사족을 못 썼다. 비빔밥은 내 돈 주고 시켜본 적이 없고, 쌈밥집이나 채소 뷔페 근처에는 얼씬도 하지 않았다.
나이를 먹어가며 고기섭취를 줄여야겠다는 생각은 했지만 쉽게 지켜지지는 않았다. 그런 내게 이번 사순은 절호의 기회가 아닐 수 없다.
‘절제를 통해 예수의 고통을 체험하며 이웃에게 관심을 보이자’는 딱딱한 기사만 백날 쓰면 무엇 하겠는가. 나 자신부터 몸에 배어있는 습관을 절제하고 이웃에게 사랑을 실천해야 한다.
내 몸을 위해 40일간 고기를 끊는 대신 나는 기아에 허덕이는 먼 나라 아이들에게 사랑을 전하기로 한다. 천주교 한마음한몸운동본부를 통하면 아프리카, 아시아, 유럽, 아메리카 등 여러 나라 아이들에게 도움을 줄 수 있다. 이곳은 기자의 출입처이기도 하다.
재의 수요일이다. 사순은 시작됐다. 40일간의 고기 끊기라….
벌써부터 몸에 힘이 없다. 집에서 뿐 아니라 ‘기자’라는 직업 때문에 벌어지는 여러 사람들과의 식사자리, 회식에서도 나는 고기를 먹지 않고 버텨야 한다.
신문사 직원들과 재의 수요일 미사를 봉헌하며 자신 없어지려하는 내 마음을 얼른 다잡았다.
“너희는 단식할 때에 위선자들처럼 침통한 표정을 짓지 마라. 그들은 단식한다는 것을 사람들에게 드러내 보이려고 얼굴을 찌푸린다.”
오늘의 복음 말씀은 내게 그 어느 때보다도 엄중하다. 깜짝 놀란 나는 40일 동안 ‘금육’으로 인해 찌푸린 얼굴을 남들에게 보이지 않기로 다짐한다. 복음 말씀은 또 한 번 나를 다잡았다.
“그리하여 네가 단식한다는 것을 사람들에게 드러내 보이지 말고, 숨어계신 네 아버지께 보여라. 그러면 숨은 일도 보시는 네 아버지께서 너에게 갚아 주실 것이다.”
◆ '금연' 이승환 기자
특별한 재의 수요일 미사다.
이러저러한 핑계로 ‘퉁’ 하기 일쑤였는데 올해는 신문사 직원들과 함께 미사를 봉헌한다. 게다가 한 가지 서약을 하는 시간이기도 하다.
20분전. 커피 한잔 진하게 타 옥상에 올라갔다. 담배에 불을 붙여 깊게 들이마신다. 마지막 담배다. 죽음을 앞둔 비장한 영화 속 주인공도 아닌데 호들갑이냐 생각할지도 모른다. 그래도 못내 아쉽다. 끄트머리까지 다 태우고 나서야 불을 껐다.
휴~~ 이제부터 시작인가. 과연 할 수 있을까?
마음을 다잡는다. 마침 단식에 관한 복음이다. 올바른 단식은 머릿기름을 바르고 얼굴을 씻어 ‘아무도 눈치 채지 못하는’ 것이라고 말씀하시는데 단식보다 쉬운 금연 약속을 이렇게 만방에 공개하자니 부끄럽고 부담스럽다.
그동안 ‘금연’ 수표를 너무 자주 부도내는 바람에 주위에서는 ‘그거 얼마나 가겠냐’ 하는 눈치다. 사실 오래 버텨봐야 열흘이었다.
그래서 더욱 금연에 성공하려 한다.
십자가에 못 박히시기까지 숱한 수난과 박해에도 우리를 위해 자신을 버리셨던, 자신과의 싸움에서 승리하는 모습을 보여주셨던 예수님의 발뒤꿈치만큼이라도 따라해 보려 한다. 사순 시기는 ‘절제를 통해 자신을 버리고 우리 이웃을 생각하는 때’라고 그렇게 많이 기사를 통해 독자들에게 금주와 금연과 자선을 강요하면서도 정작 자신은 그저 그렇게 아무 의미 없이 보냈던 나 자신을 되돌아보는 기회로 지내려 한다.
미사를 드리며 문득 떠 오른 생각. ‘금연은 오직 나를 위한 일이 아닐까.’
그래서 한 가지 약속을 더했다. 하루 한 갑 정도를 피던 내가 금연을 하면 자연스럽게 하루 2,500원을 절약하게 된다. 사순시기 40일간 금연을 하면 10만원을 모으는 셈.
내가 이 서약을 지켜 10만원을 모은다면 얼마 전 다녀 온 방글라데시 가난한 이들을 위해 기부할 계획이다. 보잘 것 없는 금액이지만 하루하루 모을 생각이다.
반나절 금연에 관한 인터넷 사이트를 뒤지다 발견한 한 수칙을 기억하며 한 주를 지낼 계획이다.
회식 자리에서 담배 물리치는 20가지 방법 하나.
‘회식 중에 평온한 마음을 유지하라.’
술자리에서 싸우거나 흥분하거나 슬퍼하거나, 언쟁에 휘말리거나 하는 것은 피하시는 것이 좋겠습니다. 이제까지 그러한 감정을 마무리 해 주는 역할을 담배가 하였을 것입니다. 당장은 이런 감정의 동요는 피하는 것이 좋습니다.
◆ 'TV끊기' 이지연 기자
재의 수요일, 드디어 사순시기가 시작됐다. 동시에 텔레비전을 보지 않기로 한 40일의 대장정이 시작되는 날이기도 했다.
아침에 일어나 평소의 습관처럼 제일 먼저 리모컨을 집어 들었다. ‘오늘 아침이 마지막이다’하며 뉴스와 아침드라마를 볼 수 있을 만큼 보고나서야 집을 나섰다.
나는 텔레비전 마니아다. 그저 마니아라는 설명으로는 부족하다. 지상파 3사는 물론 케이블 주요채널의 프로그램 편성표는 기본으로 외우고 있을 정도다. 회사 일이 바쁠 때에도 하루도 빠짐없이 좋아하던 프로그램을 시청했다. 본 방송을 못 보면 인터넷으로 다운을 받아서라도 보곤 했다.
그러나 사순시기의 시작과 함께 한동안 텔레비전 보는 낙(樂)을 포기하려고 한다. 인간을 위해 자신을 희생하신 예수님의 고난에 비하면 부끄럽기 그지없지만 조금이나마 주님과 닮은 삶을 살아 보고 싶었다.
솔직하게 고백하자면 자신은 없다. 월요일과 화요일에는 ‘꽃보다 남자’가, 수요일과 목요일에는 ‘돌아온 일지매’의 유혹을 견딜 수 있을지 의문이다. ‘W’와 ‘무한도전’, ‘가문의 영광’ 등을 못 본다고 생각하니 한숨이 절로 나왔다.
하지만 악마의 유혹을 견뎌내며 광야에서 사십일이나 보내셨던 예수님에 비하면 아무것도 아니었다. 지금까지 한 번도 시도해 본적은 없지만 이번에 마음 단단히 먹고 도전해보려고 한다. 주님의 수난을 묵상하면 쉽게 ‘40일’이 지나갈 것이라는 생각이다.
막상 결심을 하고 나니 갑자기 여유 시간이 많아진 느낌이다. 그 시간 동안 친구들을 만나거나 학원을 다니는 등 인맥관리 또는 자기계발을 위해 쓸 수도 있지만 특별하게, 또 알차게 보낼 계획이다.
제일 먼저 이런 저런 핑계를 대며 잘 가지 않았던 매일미사에 도전해 볼 생각이다. 많은 독자들이 보게 될 신문 지상에 하루도 빠지지 않을 작정이라고 장담을 하고 싶지만 벌써부터 자신이 없다. 그래도 일주일에 3~4번은 꼭 매일미사에 참석하려고 한다. 더불어 사순특강도 들어볼 생각이다.
지금까지 29번의 사순기간을 맞이하고 보냈지만, 올해처럼 무엇인가를 절제하며 보낸 적은 없었다. 그래서 이번 사순에는 더욱 주님이 드신 십자가의 무게를 아주 조금은 느낄 수 있을 것 같다.
사순절의 첫날, 예수님의 부활을 기다리며 또 그때까지 주님과 한 약속을 잘 지킬 수 있기를 기도한다.
첫댓글 위 3명의 기자처럼 사순시기를 잘 보내는 사람들이 부럽다, 이렇다할 준비 된 것이 없으니, 남은 기간 이라도 좀 생각해 봐야겠다, 절제---절제---ㅈㅈㅈㅈ
여러운 결심 하신 세분 사순시기를 제대로 보내시는것 같네요 주님의 은총이 늘 함께 하시길 기원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