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번 삼 개월, 무탈하게 넘어가기를
오랜 만에 암센터를 찾았다. 위 내시경, CT, X-ray, 피 검사를 2시간 만에 마쳤다. 이젠 검사를 받는 데에도 이력이 난 모양이다. 특히 위 내시경 검사는 항상 두려움으로 떨어야 했는데 이젠 구역질 없이도 수월하게 받아낼 수 있다. 위 내시경의 혐오감과 두려움으로 건강검진을 건너뛰는 바람에 예방 내지는 초기에 잡을 수 있었던 암을 3기까지 키우는 어리석음을 범했는데 이제는 거뜬히 받아낼 정도가 되었으니 역시 반복된 훈련의 위력을 실감할 수 있었다. 그러나 다른 검사와는 달리 위 내시경은 그 자리에서 이상 징후를 발견하면 즉시 조직을 떼어내고 통보해 줌으로 그 이상 유무를 그 자리에서 알 수 있기에 내시경이 속으로 들어가는 순간 그 결과에 대한 궁극적 두려움은 여전하다. 다행히 이곳저곳 훑어보고는 ‘다 되었습니다. 수고 하셨습니다’ 라는 멘트와 함께 내시경을 쭈욱 끄집어낸다. 하나님 아버지께 감사하면서 일어나 나와 수면 내시경을 위해 대기하고 있는 이들에게 검사를 마친 자의 홀가분함을 눈인사로 전하면서 CT 영상 검사실로 향했다. 아내가 옆에 있었더라면 손을 내밀며 ‘내시경 값 오 만원 주라’면서 의기양양했을 텐데 오늘은 홀로 왔기에 애교의 기쁨은 속으로 삼켰다.
금번 3개월은 큰 이상 없이 잘 넘겼다. 매번 한 번씩 장이 막혀 방바닥을 뒹굴며 고통 했고 속을 달래느라 또 몇 끼니를 죽만 먹어야 했는데 금번에는 매운 비빔국수 먹고 속이 매워 고통 한 것 외에는 비교적 잘 넘겼다. 매달 항암치료를 받다가 9차 항암을 끝으로 3개월 진단으로 바뀌었을 때 그 해방감의 기쁨은 이루 말할 수 없었다. 그 해방감에 목회자 수련회를 참가했고 아침 식사 후에 바로 족구시합, 그것도 공격수로 방방 뛰었다가 장이 막혀 얼마나 고생했는지 모른다. 그 이후로 식사 한 뒤에 바로 운동하는 것은 금물이라고 만나는 암 환우들에게 잊지 않고 전하는 멘트가 되었다.
또 한 번은 ‘누가 바’ 사건이다. ‘누가 바’ 아이스크림이 모두 3개, 나와 아내가 한 개씩 들고 먹었고 먼저 먹는 사람이 한 개 더 먹을 수 있는 상황, 욕심 반, 장난 반으로 내 것을 허겁지겁 먹고 남은 한 개를 집어 들고 한 입 쏙 넣는 순간, 면도칼로 도려내는 듯 속이 아팠다. 그날 밤, 배를 쥐고 또 방바닥을 뒹굴어야 했다. 함께 장난했던 아내가 미안해 어쩔 줄 모르며 함께 아파했다. 거의 24시간 지나서야 변을 볼 수 있었고 차츰 아픔의 정도가 감하여지기 시작하면서 잠에 빠져 들었다. 나중에 알고 보니 누가 바의 겉껍질에 붙은 초코 성분이 쉽게 녹지 않는다는 것을 알았다. 그것이 뭉쳐서 장을 막은 것이라 판단했다. 지금은 잘 녹여 먹는다. 이 글을 쓰면서도 누가 바 한 입 쏙 넣고 녹여 먹는다.
그리고 그 이후, 부모님의 금혼을 기념하면서 설악산 풍경이 있는 속초로 금혼여행을 모시고 갔다가 ‘대포항 회 센터’에서 모듬회를 먹은 것이 탈이 나서 약 2주간을 고생했다. 원인을 알지 못한 채 암의 재발을 의심하면서 배를 잡고 뒹굴다가 먹었던 회가 생각이 났다. 병원을 찾으니 다행히 재발이 아닌 장염으로 판명되었고 몇 일 약을 복용하고 가라앉았다. 어찌나 속에서 요란한 소리가 나던지 하수도 흐르는 소리도 이렇게 크게 들리진 않는다. 하루에도 화장실을 셀 수 없이 다니는 통에 화장실 다니다가 기진해서 쓰러질 정도였다. 그리고는 다시는 회를 입에 넣지 않는다.
그리고 금번, 매운 비빔국수에 혼이 났다. 다른 때에 비해서는 경미했지만 속이 뒤틀어지고 아려서 고생했고 또 역시 죽으로 속을 달래야만 했다. 다른 매운 것은 비교적 잘 먹는 편이었는데 아마도 이 비빔국수에 고춧가루가 아닌 매운 맛 식품첨가제를 넣었던 것 같다. 그 이후 이젠 자극성 있는 음식은 왠만하면 피해갈 줄 아는 투병의 이력을 자랑할 수 있게 되었다. 이렇게 한 번씩 음식으로 고통 받으면 신기하게도 먹는 양이 조금씩 늘어난다. 처음 반 공기의 밥을 먹던 것이 이젠 거의 한 공기의 밥으로 바뀌었고 잠을 잘 때에 외엔 늘 먹는 것을 입에 달고 산다.
금번의 정밀검사로 이젠 내년을 기약할 수 있게 되었다. 3개월 텀으로 검사를 받으니 내년 1월로 예약을 잡게 될 것이다. 금번 3개월은 정말정말 무탈하게 넘어가기를 겸손히 기대해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