딤후 4:1-22
▣ 바울의 마지막 말-디모데후서 4장-
본 장은 바울의 영감받은 펜에서 나오는 마지막 멧세지이다. 이 말씀을 받아 쓴 후 얼마 안 되어 그는 그리스도를 위하여 순교를 당하였다. 바울이 본 장에서 디모데에게 주님을 향한, 그리고 사랑하는 바울을 향한 충성을 강렬하게 개인적으로 호소하는 것은 놀랄 일이 아니다. 본 장에는 네 개의 교훈 또는 권면이 들어 있다.
1. 말씀을 전파하라!(4:1-4)
그는 앞 장에서 디모데가 개인 생활을 통해 말씀 안에 계속 머물러 있기를 권면하는 것으로 끝을 맺었는데, 이제는 다른 이들에게 말씀을 전하라고 권면한다. 우리가 나누기 위해서는 먼저 받아야 한다. 바울에게 있어서, 그리고 교회의 사역에 있어서 말씀을 전한다는 것은 너무도 중차대한 일이어서 디모데에게 말씀을 계속 전파하라는 한 가지 의무(“군사적인 명령“)를 부과한다.
바울은 디모데에게 의무를 부과함에 있어 그리스도께서 증인이 되어 주실 것을 요청하였으며, 그리스도께서 돌아오셔서 그의 사역을 검사하실 것임을 상기시킨다.
“말씀을 전파하라“는 것은 말씀을 옳게 분변하여 이해하게 만들며, 사람들의 생활에 적용하게 만든다는 뜻이다. 말씀을 전하여 그 말씀이 일하도록 하는 것이 아니라 말씀에 대하여, 또는 말씀으로부터 전하는 설교자들이 너무도 많다. 위대한 성경 강해자인 캠벨 몰간(G. Campbell Morgan)은 이런 말을 하였다. “우리의 첫 사업은 지식을 부여하는 것이며, 다음으로 우리의 목적은 우리가 가르치는 사람들이 순종하도록 인도하는 것이어야 한다.“ 그는 이런 말도 하였다. “전파란 이론의 선포가 아니며, 의심에 대한 토론도 아니다! 설교란 말씀의 선포이며, 이미 계시되어진 진리의 선포이다.“
“항상 힘쓰라“는 말은 “준비를 하고 있으라 끈기 있으라“는 뜻이며, 이와같은 자세는 편안할 때나 불편할 때나 목회자의 자세가 되어야 한다(2절 / 3:16-17 과 비교). 그러면 설교자의 의무들이 말씀을 주신 목적들과 유사하다는 것을 발견할 것이다. 말씀의 사역자는 자신의 말로 증명하고, 책망하고(경고하고), 권면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영감된 말씀으로 한다.우리 그리스도인들은 왜 하나님의 말씀을 선포해야 하는가? 왜냐하면 사람들이 말씀을 원하지 않을 때가 올 것이기 때문이며, 그 때가 우리에게 해당된다 ! 교회에 다니는 사람들은 건강한(건전한) 교리를 원하지 않는 대신 그들의 귀를 간지르는 그리스도인들 연기자들이 베푸는 종교적인 향연을 원한다.
우리는 오늘날 교회에서 정서적인 영화들, 화려한 행렬, 발장단을 맞추는 음악, 갖가지 색깔의 불빛 등 “귀족성“을 사랑한다. 성경을 펴는 사람은 거절을 당하고 얄팍한 종교적인 향연을 벌이는 사람은 명성을 얻는다. 4설은 사람들이 진리를 떠나 인간이 만든 우화들을 믿을 때에 근질근질하던 귀가 귀머거리로 될 것을 시사한다."
딤후 4:5-8
2. 네 직무를 다하라(4:5-8)
바울의 논점은 명확하다. 그는 이제 막 무대를 떠나려 하고 있으므로 누군가 그의 자리를 대신해야만 하였다. 우리 교회의 젊은이들은 미래의 교회인 것을 상기시켜 줄 필요가 있다. “관제와 같이 내가 부어질 준비가 되었고 닻을 거두고 돛을 달 때, 장막을 거두어 이동해야 할 때가 가까웠다.“
바울은 영원에 직면하여 아무런 후회가 없었다. 그는 좋은 군사로, 충실한 경기자로, 복음의 보화를 맡은 충성된 청지기였다.
바울은 주님으로부터 면류관을 받을 것을 내다본다 ! 바울로 하여금 30년이 넘도록 고난과 고생의 이 길을 가도록 지속시켜 온 것은 무엇일까? 그는 그리스도께서 나타나심을 사모하였다 ! 이것이 그의 삶의 동기였다. “그리스도의 사랑이 나를 강권하시도다 !“ 주의 나타나심을 사모하는 모든 성도들은 지금 주님을 섬김에 있어 바울처럼 충성스러울 것이다.
영혼을 잃은 채 지옥으로 간 후에는 인생의 가장 큰 비극이 영원한 가장자리에 찾아들게 될 것이며, 우리가 하나님의 뜻에서 빗나갔다는 것과 열매 없는 일시적인 일들에 우리의 삶을 낭비했음을 발견할 것이다."
딤후 4:9-18
3. 빨리 로마로 오라 !(4:9-18)
왜 오라는 것일까? 데마가 그를 버렸으며(골 4:14 /몬 24절) 그레스게와 디도는 사역하러 떠났다. 두기고는 에베소서를 가지고 에베소로 파송되었고 의사인 누가만이 그와 함께 있었다. 바울은 주께서 본향으로 데려가시기를 인내로 기다리며 믿음의 아들과 그리스도인의 동료 의식을 나누기를 갈망하고 있었다. 21절에서 겨울이 오기 전에 오라고 강권하고 있는데, 이는 배편이 끊어지기 때문이며 너무 오래 기다린다면 바울이 죽게 될 것 같기 때문이었다.우리가 의사인 누가를 처음 만난 것은 사도행전 16장 10절에서인데 그는 “우리가 힘쓰니...“라고 말하고 있다. 누가가 바울의 일행에 가담한 것은 이 지점에서였다. 그는 이방인으로서 누가복음과 사도행전의 저자임이 분명하다. 누가는 골로새서 4장 14절과 빌레몬서 24절에서 데마와 함께 언급되고 있는데, 그 대조점이 분명하다. 누가가 그리스도와 바울에게 충성스러웠던 반면 데마는 불충성하였다.
마가 요한은 사도행전 15장 37절 이하에서 바울에게 거절을 당하였으나 이제 영접되었다. 마가는 바나바와의 사역에서 자신을 입증하였으며, 바울은 기꺼이 잊기를 원하였는데 이러한 자세는 위대한 사람의 표지이기도 하다. 4장 11절에서 “유익하다“는 단어는 2장 21절에서 “쓰심에 합당하다“는 것과 똑같은 단어이다. 마가는 주인이 사용하시기에 “합당함“을 스스로 증명했던 것이다.
바울은 그가 드로아에 남겨둔 외투를 요청하였다. 겨울이 오고 있으며 로마감옥에서 그것이 필요하였다. “책“이란 아마도 그가 쓴 것일 가능성이 있으며, 가죽 종이에 쓴 것이란 구약 성경의 사본이었을 것이다. 아마도 체포되어 급히 로마로 압송되는 바람에 뒤에 남겨 둔 것인 듯하다. 재판을 기다리는 동안에 바울은 그의 시간을 말씀을 연구하는 데 보냈을 것이다. 따라야 할 좋은 본보기이다!
바울은 그의 말에 저항하였던(3:8) 알렉산더를 디모데에게 경계시킨다(딤전 1:20/행 19:33). 바울의 첫번째 변호(대답)에서는 아무도 그의 편에 서지 않았으나 주님은 여전히 그와 함께 계셨다. 따라서 문제될 것이 없었다 !이 일은 언제나 어려운 시기에 처하여서 그에게 격려가 되었다(행 18:7-11/행 23:11/행 27:19-25)."
딤후 4:19-22
4. 내 친구들에게 문안하라!(4:19-22)
죽음이 확실해졌으나 바울은 여전히 다른 사람들에 대하여 생각하였다 ! 그리스도께서 십자가에 달랐을 때와 참으로 비슷하다 ! 바울은 디도서 1장 8절에 주어진 “선한 사람들을 사랑하며“라는 목회자의 필수 조건을 성취하였다. 우리는 전에 브리스길라(브리스가)와 아굴라를 만나본 일이 있다(행 18:2/행 18:18 참조).
에라스도는 사도행전 19장 22절에 나오는 인물이며, 드로비모는 사도행전 20장 4절과 21장 29절에서 언급된다. 바울이 드로비모를 고치지 않았다는 사실은 특별한 이적의 은사들이 무대에서 사라졌음을 시사한다. 이 경우는 모든 성도들이 치유를 받는 것은 아니라는 것을 증거하며, 또한 치유의 은사가 없다고 하여 반드시 영성이 결여된 것은 아니라는 사실을 입증한 셈이다.
“은혜가 너희에게 함께 있을지어다“라고 바울은 말하며 신약성경을 쓰는 그의역할을 종결짓는다. “은혜“가 그의 사역에서 핵심 단어였듯이 또한 우리의 생활에서도 핵심 단어가 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