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단 시설은 참 좋았습니다. 금강호를 이용했습니다. 금강호에서는 매식이 부페식이었거든요. 어둑어둑할 무렵의 동해바다를 보며 가족들과 오붓한 저녁식사를 하니 참 기분이 좋았습니다. 무엇보다도 이제 장전항으로 향하는, 북한으로 향하는, 그야말로 아픔의 현장으로 내가 향하고 있구나 하는 사실에 가슴이 설레였습니다.
배는 좀 출렁이긴 했지만 침대 위에 누우니 파도를 타고 가는 느낌이 썩 괜찮았습니다.
다음날 아침, 보트로 갈아탄 후 장전항에 내렸습니다.
"반갑습니다~ 반갑습니다.."
귀에 익은 노랫가락이 우릴 반겨주더군요. 그리고 북한 군인들이 삼엄한 경계.. 우릴 힐끔힐끔 바라보고 있었습니다.
금강산, 무엇보다도 북녘 땅이나 보니 기대를 많이 갖고 갔는데 정말.. 남북간의 경직된 관계를 몸소 체험할 수 있어 행운이기도 했고 한편으로는 씁쓸했답니다. 금강산 관광버스가 다니는 전용도로를 타고 달리는 버스, 그 도로변에는 3,400미터 간격으로 눈을 부릅뜬 북측 군인들이 서 있었습니다. 그리고 창밖으로는 북한 마을, 온정리 마을이 보였는데 너무나 안타깝게도 철조망이 쳐져 있었습니다. 달리는 동안에는 절대 사진을 찍을 수 없습니다. 그래서 군인들이 사진을 찍나 안 찍나 보려고 눈을 부릅뜨고 지나가는 버스에 초점을 맞추고 서 있었던 거죠.
대단했습니다~ 정말 그야말로 7,80년대 초의 생활상을 그대로 옮겨놓은 것 같더군요. 하나같이 머리수건을 쓰고 다니는 아낙네들, 달구지, 소, 염소... 굉장히 생소한 풍경들이었고 아이들도 역시 7,80년대를 보는 듯한 복장을 하고 있었습니다. 온정리는 남한에서 관광 온 사람들이 잘 보는 곳이라 그래도 제대로 정비를 해 놓았을 텐데도 그정도였으니 참 얼마나 어마어마한 아이들이 저보다 못 살까 하는 생각에 가슴이 많이 아팠습니다.
금강산은 만물상 코스와 구룡연(폭포) 코스가 있었는데, 모두 쉽지 않았습니다. 아직도 눈이 많이 쌓여 있고, 아이젠으로 얼음을 콕콕 찍어 가며(발로) 겨우 올라갔기 때문에 참 힘들기도 했습니다. 중간중간에는. 정말 대단했습니다. 김일성 숭배의 산물을 볼수 있었죠. 섬뜩하더군요. 기억에 남는 글귀들은 대충 이런거죠.
"심장을 바치자 어머니 조국에!"
"목숨으로 사수하자"
정말 섬뜩하지 않습니까?
산을 올라가다가 가끔 바위에 빨간색으로, 김일성 수령님을 칭송하는 글귀가 적혀 있을때, 그것을 손으로 가리키거나 테두리 돌에 잠시 쉬려고 앉기라도 해도 안됩니다. 북한 안내원들의 무서운 눈초리.. 정말 잊을 수 없습니다.
그야말로 벙어리 관광이었습니다. 남북간의 교류가 확대되었다고는 하지만 사실상 그건 제대로 된 금강산 관광이 아니었겠죠. 섬뜩했습니다. 독기어린(?) 눈빛.. 행동 하나 말 하나도 조심해야 했습니다. 세관을 통과할 때도 얼마나 엄격했는지 모릅니다. 사진과 실물을 대조할때도 그 눈빛의 무서움이란.. 겪어 보셔야 아시겠죠.
돌 하나, 흙 한줌 집어 와도 세관에서 걸려 벌금을 물어야 할 정도라면 이 끔찍한 현실을 짐작하실런지요.
금기사항은 상당히 많습니다.
북한안내원을 사진으로 찍어갈 수도 없구요,
코를풀거나 해서도 안됩니다.
손가락질(비석에 대고) 절대 안됩니다.
쓰레기도 절대 버리면 안됩니다.
산에서 인터뷰를 할수 없습니다.(이것땜에 큰일날뻔함)
(궁금한 분은 저에게 직접 물어보셔도 좋습니다)
디지털 카메라는 소지 불가능입니다.
일반 방송 촬영용 카메라도 안됩니다.
워크맨도 가져갈 수 없습니다.
성조기나 태극기가 그려진 옷을 입고 갈수 없습니다.
대한민국 만세! 라고 외쳤다간 큰일납니다.
이 외에도 정말 무지막지하게 많은 금기사항.. 한민족끼리 이렇게 경계해야 할 사항이 많다는 것은 슬픔이겠지요.
북한안내원과는 이런 이야기쯤을 했습니다.
"추우시죠?"
"고저 괜찮습니다."
"고생하시네요."
"어서 올라가시라요."
웃음 정도는 머금고 있었지만 그다지 따뜻해 보이지 않는 웃음이었기 때문에 오히려 우리를 씁쓸하게 했습니다.
그리고 또 한가지 기억에 남는 것은 평양 모란봉 교예단 공연이었습니다. 예전의 서커스 같은 것입니다. 공중에서 몇바퀴 휘휘 돌고, 거의 묘기를 부리는.. 대단한 실력들이었습니다. 할머니들도, 아주머니들도 모두 박수를 치시면서 반가워하시고 좋아들 하셨습니다.
마지막의 아나운서 말이 인상적이었습니다.(북측의)
"다음에. 다시.. 만납세다!."
마이크를 타고 쟁쟁 울려 퍼지는 그분의 목소리와 함께 저는 할머니들의 눈가에 맺히는 눈물을 보아야 했습니다.
무엇때문에 이렇게 갈라져 있는지, 우리는 왜 금강산으로 이렇게 삼엄한 경비 속에 벙어리 관광을 와야 했던 걸까요.
모두가 씁쓸해해야 했습니다.
장전항이 멀어져 가는 바다를 바라보며 얼마나 마음 한구석이 서글퍼지던지요. 그리고 그동안 내가 이런 중요한 과업에 얼마나 무관심해 왔었는지에 대한 충분한 반성을 했습니다. 계성인 여러분들도 저와 같았다면 이제 조금씩은 바꾸어 나가야 할때가 아닌가 싶네요. 어느 가수 노래처럼요.
우리들의 사고가 개인적 차원에 머물다 보니 통일 문제마저 개인주의적으로 사고하게 되는것 같습니다. 어쩌면 통일이라는 건.. 그야말로 당위성을 띄는 작업입니다. 떨어진 살덩어리를 붙이는 작업이니까요. 그만큼 당연한 일이 어디 있겠습니까.. 잘못해서 살점 조금만 떨어져도 우리는 아픔을 호소하고 상처가 아물 동안 고통에 시달리는데, 이렇게 살덩어리가 떨어진 아픔의 현실이 지속된다면 얼마나 더 많은 사람들이 아픔을 호소하고, 괴로워해야 합니까. 누구의 일도 아니고,이제 바톤을 넘겨받은것은 우리들이라고 생각합니다. 모두가 관심을 가지고, 각자의 햇볕정책을 실현해 나가야 하겠지요. 우린 남이 아닙니다. 형제이죠. 10년안에는 이산가족이 사라진다는 말을 그곳에서 만난 어느 중학생에게 들었습니다. 그 말을 듣고 나니 참 기분이 이상해지더군요. 그 안에 통일을 이루어야 할텐데.. 말입니다.
시간이 되면 저의 홈페이지에 사진을 올리겠습니다. 사진 업데이트가 완성되면 여러분들에게 저의 홈페이지 주소를 알려드리겠습니다.
그리고 좀더 자세한 것을 알고 싶은 분은 메일을 주셔도 좋구요, 3월 5일 EBS-TV 아침 6시에 방영되는 통일의 길 이라는 프로그램을 꼭 보십시오. 다큐멘터리인데, 이번에 우연한 기회에 제가 촬영을 하게 되었습니다.
"소리의 금강산 여행기"라는 제목으로 방영될 예정이니 많은 시청을 바랍니다. 통일에 대한 무언가를 얻고 싶으신 분이라면 말입니다.
적어도 제 글을 읽으신 분이라면 이제부터라도 통일에 대해 조금더 생각해 주셨으면 좋겠습니다.
이제는 우리가 주역이니까요..
하고싶은 말은 많은데 무슨말부터 할지 모를만큼 느낀 것 본것이 많아서 이렇게 엉터리 글이 되어 버렸습니다.
나중에 기행문이 완성되면 자료실 등에 올리겠습니다.
긴 글 지루한 글 끝까지 읽어 주셔서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