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책위원 칼럼]
택시노동자는 진짜 완전월급제가 싫을까?
공공운수노조 정책국장 수열
“택시기사들도 월급제 반대한다는데 어떻게 그냥 시행합니까?”
지난 달 국회 의원회관에서 만난 모 보좌관이 말했다. 그날의 만남은 전혀 다른 건이었지만 국토위 의원실에 속한 그와의 대화는 자연스레 택시 완전월급제 관련한 갈등으로 흘렀다. 그는 덧붙였다.
“제가 아는 택시기사들과 통화해봐도 다들 월급제 반대한답니다. 공공운수노조 빼고는…”
그의 말처럼 택시사업주들과 일부 택시노조들은 완전월급제 전국 확대에 반대했고, 결국 여야 합의로 그 시행이 2년 유예되고야 말았다.
택시 완전월급제?
흔히 ‘택시 완전월급제’라고 부르는 제도는 전액관리제와 소정근로시간 보장이 결합되어 있다.
택시 기사가 매일 정해진 금액만 회사에 납입(사납금)하고 차액을 가져가는 대신, 운송수익금 전체를 회사에 납입하고 급여를 지급하도록 한 것이 전액관리제다. 전액관리제가 1995년에 법제화되었지만 사납금제는 사라지지 않았다. 운송수익금 전액을 회사에 납입할 의무만 정했을 뿐 구체적인 내용이 없었다. 기사가 납인한 운송수익금이 회사가 정한 기준에 미달하면 기사의 월급에서 떼어가도 불법이 아니었다. 기준만큼 벌지 못한 기사는 자기 돈으로 채워넣어야 했다. 사납금은 ‘기준금’이라는 이름으로 살아남았다.
기사들의 급여는 처참했다. 정해진 공간 안에서 일하는게 아닌 택시의 특성 상 소정근로시간을 토대로 급여가 정해지는데, 회사는 실제와 달리 이를 하루 3~4시간으로 턱없이 낮게 잡았다. 결국 최저임금에 훨씬 못 미치는 기본 급여에, 기준금을 초과한 수익금을 기사가 가져가는 ‘변형된 사납금제’가 자리 잡았다.
제도적 보완은 2019년에야 이뤄졌다. <택시발전법>을 개정(제11조의2)해 택시기사의 소정근로시간을 주 40시간 이상으로 정하도록 강제했다. 택시 회사의 최저임금 잠탈 행위를 막기 위한 것인데 서울은 2021년부터, 나머지 지역은 2024년 8월 20일부터로 그 시행에 차이를 두었다. 이 <택시발전법> 제11조의2를 전국에 확대 시행하는 것을 2년 유예하기로 이번에 여야가 합의한 것이다.
택시기사도 싫어하는 월급제?
앞서 모 보좌관에게서 확인한 ‘택시기사들도 완전월급제를 반대한다’는 논리는 완전월급제 전국 시행이 유예되는 과정에서 강력한 근거로 활용됐다. 이러한 주장은 서울시에서 실시한 ‘전액관리제 시행 실태조사’에 근거한다.
2022년 진행된 이 조사에 응답한 택시기사의 64.7%(4,797명)가 전액관리제에 반대한다고 답했고, 찬성한다는 의견은 21.3%에 불과했다. 정말 다수의 택시기사들이 월급제에 반대하는 걸까?
* 출처: 서울시 ‘전액관리제 시행 실태조사’ 보도자료(’22.10.5.) 중
반대 이유를 보면 의문이 풀린다. 택시기사들이 꼽은 전액관리제 반대 이유는 초과금의 노사 배분(39.8%), 기준금 높음(21.3%), 개인 잡비(식대, 담뱃값 등) 없음(13.6%) 등이다. 대부분 ‘변형된 사납금제’에 대한 반발이다. 이름은 전액관리제이지만 실제는 변형된 사납금제 하에서 일을 하다보니 전액관리제가 싫다고 답했는데, 이것이 택시기사들이 월급제를 싫어한다는 주장으로 탈바꿈한 것이다.
사납금이나, 기준금이라고 하면 나같은 월급쟁이들은 어떤 건지 체감을 잘 못한다. 노조에서 일한 지 얼마 안 됐을 무렵 택시지부 조합원이 설명해준 적이 있다. 매일매일 출근 도장을 찍는 순간, 그날 안에 갚아야 하는 빚이 15만 원, 20만 원씩 생겨나는 것이라고. 돈 벌러 출근하는 건데 출근하는 순간 생겨나는 빚이라니, 상상만으로도 숨이 턱 막힌다. 이런 고욕을 택시기사들이 더 바란다는 조사를 곧이곧대로 받아들일 수 있겠나.
잃어버린 30년, 그리고 다시 2년
“월급제가 도입된 후에는 손님이 돈이 아닌 사람으로 보이더라.”
작년 11월, 택시월급제 시행 사업장 증언대회에서 한 택시노동자의 발언이다. 예전에는 사납금을 채우기 위해 신호 위반에 졸음운전까지 했지만, 월급제 도입 후에는 안전운전을 할 수 있어 승객을 대우할 수 있었다는 설명이다. 이밖에도 고정된 임금을 받아 생활이 안정된다, 적금을 들어 계획적으로 삶을 살 수 있게 됐다, 무리한 노동을 하지 않아도 되기 때문에 운전과 승객에게 집중할 수 있게 되었다는 노동자들의 증언이 이어졌다.
사납금, 기준금이라는 매일 생겨나는 빚에 쫓기는 택시기사와, 생활이 안정되어 손님을 돈이 아닌 사람으로 볼 수 있는 택시기사. 누가 양질의 운송서비스를 제공할지는 뻔하다. 승객 골라태우기, 과속·난폭운전, 장시간 노동을 부르는 원인이 사납금제라는 걸 인정하고, 이를 해결하기 위해 전액관리제가 법제화된 게 1995년인데, 여전히 월급제보다 사납금제라는 주장이 판을 치는 우리 사회는 꼬박 30년을 잃어버린 셈이다.
운수노동자의 적정 수입을 보장해 위험한 운송행위를 줄여 도로를 이용하는 모든 이들의 안전을 보장한다는 ‘화물자동차 안전운임제’의 구상은 비단 화물차에만 해당하는 것이 아닐 게다. 땀 흘려 일하는 노동자가 안정적인 생활을 하며 계획한 삶을 일구어가는 소박한 꿈은 대다수 택시기사들에게는 여전히 허락되지 않는다. 다시 2년이 남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