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생불멸하는 나의 眞性은 무엇인가? / 봉암사 태고선원.
해가 중천에 떴는데도 사위가 조용하다.
온 절에 흐르는 건 고요와 침묵 뿐..
살금살금 내딛는 발걸음조차 정적을 깰까 조심스럽다.
경내에선 사람 모습을 찾아볼 수가 없다.
후원에도, 마당에도, 해우소(解憂所.화장실)에도 인기척은 없다.
다들 어디 갔을까.
툇마루 앞에 가지런히 놓인 신발을 보고서야 답을 찾았다.
스님들은 모두 참선 중이다.
경북 문경시 가은읍 원북리 봉암사.
신라 헌강왕 5년(879년) 지증국사가 창건한 이 곳은
구산선문(九山禪門)의 하나인 희양산문(曦陽山門)의 본산이다.
고려초에는 수행대중이 3 천여 명에 이를 정도로
선풍을 드날렸고, 기나긴 세월 속에 성쇠를 거듭하며 선맥을 이어왔다.
1947년 성철 자운 청담 우봉 스님 등이
"부처님 법대로 한 번 살아보자"며 "봉암사 결사"를 결행,
흐트러진 수행풍토를 바로잡았던 곳이기도 하다.
지난 82년 대한불교조계종의 특별수도원으로 지정된
봉암사에는 선승들만 산다.
주지나 후원(공양간)에서 살림을 맡은 스님들도
하루 8시간 이상 참선정진에 동참한다.
올해 하안거(음력 4월보름~7월 보름)에 참여한 대중은 1 백여 명.
희양산 암봉을 병풍 삼아 서 있는 태고선원에는
42명이 하루 10시간씩, 대웅전 아래 성적당에선 24명이 14시간씩,
대웅전 옆 관음전에선 6명이 하루 16시간씩 정진 중이다.
또 이들의 수행을 지원하는 후원에서도 30여명이
하루 8~10시간씩 정진한다.
그야말로 도량 전체가 선원이다.
오전 11시, 죽비소리가 숨 막힐 듯한 정적을 깬다.
서로 등을 돌린 채 면벽하던 스님들은
굳은 발목과 무릎, 어깨를 풀고 자리에서 일어선다.
사시예불과 점심 공양이 끝나고 오후 2시까지는
잠시 참선을 쉬는 방선(放禪)시간.
이 때를 이용해 선원장 정광(淨光.62)의 처소인 동암으로 향했다.
18세에 출가해 참선 이력이 40년을 넘는 정광 스님은
봉암사에서만 30여년을 살았다.
불청객을 맞은 선사는 일순 미간을 찌푸렸으나 곧 방으로 안내한다.
한 평 남짓한 방의 벽에는 "休休室(휴휴실)"이라는 글씨가 붙어있다.
세상의 번다한 일과 생각들을 모두 내려놓고 쉬라는 뜻일까.
봉암사 선원장 "봉암사는 전문적인 참선수행도량인데,
하루 종일 참선만 합니다. 울력도 참선하는 마음으로 하지요.
선(禪)은 자기의 근원을 늘 궁구하는 것입니다.
번다한 생각을 잊고 청정한 마음으로 자기 자신을
회광반조(廻光返照)하면서
나중엔 그 청정한 마음마저도 버려야 합니다.
그러면 자기 본심의 근원에 도달할 수 있어요"
선사는 "세상 모든 것은 있다. 없다(有無), 시비, 장단, 취사 등이
대립해 다툼을 만든다."며
"내 마음을 못 깨닫고 청정한 본원 자리를 모르기 때문"이라고 지적한다.
그 청정한 자리는 이름이나 모양 등에 따른 차별과
상대적인 요소들이 끊어진 곳. 여기에 도달하는 방편이 참선이다.
"수도인(修道人)이 아닌 일반인도
마음 한 번 잘 써서 다른 생활을 해보세요.
아이디어 전쟁의 시대에 사고가 미천하면
남보다 앞설 수도, 남을 이끌 수도 없어요.
사는 모습이 마음 쓰는 데 달렸거든요"
선사는 "불생불멸하는 나의 진성(眞性)은 무엇인가"를 화두로 던진다.
나지도 죽지도 않고, 어디에도 물들지 않고 영원한 나의 참모습은 무엇인가.
언제 어디서 무슨 일을 하든 자기에게 이런 물음을 던지며
궁구하면 무슨 일이든 다 이뤄진다고 설명한다.
"본래의 청정심은 누구나 원래 갖고 있는 것입니다.
"사람 위에 사람 없고 사람 밑에 사람 없다"고 하지 않습니까.
그러나 이 마음이라는 것은 또한 내가 얼마나
어떻게 노력하느냐에 따라 다른 모습으로 나타납니다.
그래서 "사람이면 다 사람이냐, 사람다워야 사람이지"라고 하는 겁니다."
사람답기 위한 방법으로 선사는
신구의(身口意) 삼업(三業)을 잘 닦으라고 한다.
입으로는 거짓말, 나쁜 말, 두 가지 말, 속임말을 하지 말고,
몸으로는 살생과 도둑질, 싸움, 음주를 하지 말며,
마음으로는 탐하고 성내고 어리석은 마음(貪瞋癡.탐진치)을 갖지 말라는 것.
"수행을 오래 해야만 근본이 바뀌는 게 아닙니다.
입지성불(立地成佛)이라, 그 자리에서 바로 깨닫고
생활에서 실천하는 것이 중요하지요.
그러니 단 1주일이라도 직접 수행을 해보세요."
선사와의 한담을 마치고 내려오니 산사는 또다시 고요와 침묵에 잠겼다.
산문을 나서는 길, 거대한 암봉(巖峰)을 인 희양산에서 내려와
가은읍에 이르는 양산천의 물소리만 요란하다.
서화동 기자
출처 : 염화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