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주교 서울 순례길 1코스 말씀의 길(2)
가톨릭대학교 성신교정
젊은이들 특유의 생기와 활기가 넘쳐흐르는
서울 종로구 혜화동 대학로 뒤편, 야트막한 산등성이 위에
한국 천주교회를 이끌어 나갈 젊은 신학도들의 못자리가 있다.
소란하고 화려한 카페와 레스토랑, 온갖 화려한 네온등을 뒤로하고
조금 가파른 길을 올라가면 성소(聖召)의 향기가 풍겨 나온다.
가톨릭대학교.
지금은 서초동의 성의 교정(의학대학),
그리고 부천의 성심 교정과 함께
명실상부한 종합대학의 면모를 갖추고 있는
가톨릭대학교 성신 교정(신학대학) 성당에는
우리나라 최초의 방인 사제인
성 김대건 안드레아 신부의 유해가 모셔져 있다.
1857년에 가경자, 1925년에 복자,
1984년 한국 천주교 전래 200주년을 맞아 방한한
교황 성 요한 바오로 2세에 의해
다른 한국 순교자 102명과 함께
시성의 영광을 얻은 김대건 신부의 유해는
오늘도 그를 본받아 이 땅의 참된 목자가 되려는
신학도들의 모든 삶에 함께하고 있다.
가톨릭대학교 신학대학의 효시는
어쩌면 한국인 성직자 양성을 위한 노력이 처음 시도된
1830년대까지 거슬러 올라갈 수 있다.
당시 선교사들은 정하상을 비롯한 소년들에게
국내에서 신학 교육을 하는 한편
김대건, 최양업, 최방제 등을 마카오로 유학 보냈다.
그중 김대건과 최양업이 사제품을 받고 귀국해 활동하다가
한 명은 ‘피의 순교’를 다른 한 명은 ‘땀의 순교’를 했다.
그 후 1855년 충청도 제천 배론에 성 요셉 신학당이 세워져
신학 교육을 시작했으나 1866년 병인박해로 폐쇄됐다.
신앙의 자유가 확보됨에 따라 1882년에는 21명의 신학생을 선발해
페낭 신학교로 유학을 보낸 바 있고,
드디어 1885년 강원도 여주군 강천면 범골(부엉골)에서
현 가톨릭대학교 신학대학의 직접적인 전신이라 할 수 있는
예수 성심 신학교가 문을 엶으로써
최초로 국내 신학교의 설립을 보게 되었다.
그러나 2년 뒤인 1887년에 신학교는 서울 용산으로 이전했다.
그 후 1914년 대구 성 유스티노 신학교,
1927년 덕원 신학교 등이 연이어 설립되지만
1942년 용산 예수 성심 신학교는 일제에 의해 강제로 문을 닫게 되었다.
하지만 1945년 경성 천주 공교 신학교로 개칭, 다시 설립되고
그 후 성신대학이라는 명칭을 거쳐 지금에 이르렀다.
한편 가톨릭대학교 의학대학은
1954년 문교부로부터 증설 인가를 받아 서울 명동 성당 구내에서 개교,
1959년 가톨릭대학 의학부라는 이름을 거쳐 오늘의 모습으로 발전했다.
현재 여의도와 강남에 있는 종합 부속병원을 포함해
각지의 부속병원과 함께 종합 캠퍼스를 갖춘 가톨릭대학교 의학대학은
뛰어난 의학 연구와 임상 실적으로
한국 최고의 의학대학으로 발돋움하고 있다.
또 성심 여자 대학교가 1995년 정식으로
가톨릭대학교라는 이름 아래 신학 · 의학대학과 통합됨으로써
가톨릭대학교는 국내 다른 어느 대학보다도
양적 · 질적으로 우수한 교육 기관으로 성장하고 있다.
2005년에는 가톨릭대학교 개교 150주년을 기념하는 다양한 행사를 갖고
신학대학 본부 건물 앞에 성 김대건 신부 부조상을 제작 설치하였다.
2015년 5월 25일에는 개교 160주년을 기념해 미사와 국제 심포지엄을 갖고,
성 김대건 신부와 최양업 신부의 순교와 선교 정신을 본받고자 성당 안에
160주년 기념 이콘 성화를 설치하고 축복식을 거행하였다.
혜화동의 신학대학은 양 떼를 위해 기꺼이 목숨을 바친
성 김대건 신부의 용맹한 신앙과 복음을 전하고,
양 떼를 돌보기 위해 혼신의 노력을 다한
하느님의 종 최양업 토마스 신부의 정신을 오늘에 되살리려는
많은 신학도들의 못자리로서 새로운 도약을 꿈꾸고 있다.
[출처 : 주평국, 하늘에서 땅 끝까지 - 향내나는 그분들의 발자국을 따라서,
가톨릭출판사, 1996, 내용 일부 수정 및 추가(최종수정 2020년 2월 19일)]
용산 예수성심신학교(1887~1942)
경성천주공교신학교 (1945-1947)
천주공교신학교(天主公敎神學校)는
1942년 일제에 의해 예수성심 신학교가 폐교된뒤
1945년 광복이 되자 천주공교신학교로 개칭하여 다시 개교한 신학교이다.
개칭과 동시에 대구 성유스띠노신 학교도 통합시켰고,
1947년 성신대학으로 다시 개칭함과 아울러
문고 제 31호에 의해 승격 설립되었다.(초대학장에 장금신부)
성신대학(1947~1959)
석정보름우물
서울 북촌 종로구 계동 25번지에 ‘석정(石井) 보름 우물’이 있다.
우물이 돌로 되어 있어서 동네 이름을 석정골로 불렸으며,
이 우물물이 15일 동안은 맑고, 15일 동안은 흐려져서
‘보름우물’이라 불렀다한다.
석정은 조선시대 소문난 명천(名泉)이었다.
조선왕조실록에도 등장한다.
물이 차고 맛이 좋아 궁에서도 길어갔던 이 우물은
원래는 마시면 아들을 낳는다는 속설이 있었던 물인데
지금은 폐정이 된 채 한길가에 방치돼 있다.
보름 우물은 초창기 천주교 역사와도 관련이 깊다.
1794년 중국에서 입국한 우리나라 최초의 외국인 사제
주문모 야고보(1752∼1801) 신부가 1801년 새남터에서 순교하기 전까지
계동 최인길 마티아(1765∼1795) 집에 숨어 지내면서 조선 땅 첫 미사를 봉헌하였고,
이 우물물로 세례를 준 것으로 전해지고 있다.
또한 1845년 한국인 최초의 사제인 김대건(안드레아) 신부도
북촌 지역에서의 짧은 사목기간동안 이 물을
성수로 사용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고 안내문에는 기록되어 있으나
김대건 신부가 숨어서 활동하던 석정동은
중구 을지로1가, 소공동, 태평로 2가에 걸쳐 있던 마을로서,
돌 틈에서 물이 솟는 우물이 있어 돌우물골이라 하고, 이를 한자명으로 표기한 데서
북촌의 석정골과 혼동된 것이 아닌가 생각된다.
첫댓글 영상과 그림 글 올리느라 수고 많으셨습니다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