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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좋은교회/20190203 주일오전예배/ 정광수목사님 | |
분류 | 주일오전예배 |
제목 | 전도제자의 자존감 회복 |
성경 | 마태복음 6:1-5, 16-18 |
정리 | 참좋은교회 청년부 |
성경말씀(마태복음 6:1-5, 16-18)
1.사람에게 보이려고 그들 앞에서 너희 의를 행하지 않도록 주의하라 그리하지 아니하면 하늘에 계신 너희 아버지께 상을 받지 못하느니라
2.그러므로 구제할 때에 외식하는 자가 사람에게서 영광을 받으려고 회당과 거리에서 하는 것 같이 너희 앞에 나팔을 불지 말라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그들은 자기 상을 이미 받았느니라
3.너는 구제할 때에 오른손이 하는 것을 왼손이 모르게 하여
4.네 구제함을 은밀하게 하라 은밀한 중에 보시는 너의 아버지께서 갚으시리라
5.또 너희는 기도할 때에 외식하는 자와 같이 하지 말라 그들은 사람에게 보이려고 회당과 큰 거리 어귀에 서서 기도하기를 좋아하느니라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그들은 자기 상을 이미 받았느니라
16.금식할 때에 너희는 외식하는 자들과 같이 슬픈 기색을 보이지 말라 그들은 금식하는 것을 사람에게 보이려고 얼굴을 흉하게 하느니라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그들은 자기 상을 이미 받았느니라
17.너는 금식할 때에 머리에 기름을 바르고 얼굴을 씻으라
18.이는 금식하는 자로 사람에게 보이지 않고 오직 은밀한 중에 계신 네 아버지께 보이게 하려 함이라 은밀한 중에 보시는 네 아버지께서 갚으시리라
녹취자료 |
오늘 메시지는 우리 인간의 내면세계를 생각하게 만드는 귀중한 메시지를 나누게 됩니다. 오늘 우리 자신을 한번 점검해보아야 합니다. 오늘 본문을 보면 사람에게 보이려고 구제하거나 기도하거나 금식하는 것을 하지 말라고 명하죠. 잘못된 경건의 모양들입니다. 다른말로 하면 외식하지 말라 우리에게 말씀합니다. 사람들은 거의가 사람에게 보이려고 외식을 합니다. 한국은 특별히 유교문화여서 체면치레를 참 많이 하죠. 그래서 죽을 먹고도 이쑤시개로 이를 정리하며 나오는 모습도 봅니다.
그러면 왜 사람들이 다른 사람들을 외식하고 의식하는 것인가? 그 근본원인은 비교의식에서 오는 열등감 때문입니다. 자기 자신의 부족한 부분 열등한 부분을 숨기기 위해서 우리는 외식하는 겁니다. 자신은 안 그런 것처럼 나타내고 자기는 괜찮은 사람인 것처럼 나타내기 위해서 다른 사람보다 자기가 비교우위에 있는 것처럼 자기 자신을 높이는 것들이 외식에 속하는 것이죠. 여자들이 왜 명품가방을 들고 다닐까요? 사실은 자기를 높이기 위함이거든요. 그걸로 자기가 뭔가 가진 것처럼 생각하게 만드는 자기만족도 포함되어있는 겁니다. 이 비교의식에서 오는 열등감이 한 사람의 인생을 오히려 불행하게 만듭니다. 노력해도 안 될 때는 상처로 남게 되고 이것이 심각한 영적문제로 남아서 그 인생을 파괴시키는 겁니다. 세상의 모든 사람은 한 사람도 빠짐없이 모두 열등감속에 살아갑니다. 서울대 나오면 열등감이 없을까요? 재벌 자식이면 열등감이 없을까요? 다 가지고 있어요. 여자들은 모델이 누구일까요? 김태희. 그러나 김태희도 송혜교도 열등감에 가득 차있어요. 없는 사람이 없어요. 여러분, 성형수술을 하면 열등감이 없어질까요? 여전히 그냥 남아요. 남자들은 외모보다는 직업이나, 직장, 사회 위치로 자신의 콤플렉스, 열등감을 뛰어넘으려고 하죠. 제가 신문을 보다가 스카이 캐슬이라는 것이 떠들썩하더라고요. 그게 왜 나온 것인가? 결국은 비교우위에 설 수 있도록 자녀를 만들어나가는 것이거든요.
비교의식 속에 오는 것은 우리 삶에 모든 것이 다 해당됩니다. 거기에서 남보다 못하다는 생각이 들어가게 되면 모두 콤플렉스가 되는 거죠. 사람들이 자기자신을 과시하고 자기 자랑하고 하는 것인가? 그 밑바닥 속에는 뭐가 들어있는 것인가? 바로 비교의식 속에서 오는 열등감입니다. 어떤 사람들은 자랑하다가 밑천이 드러나면 사돈의 팔촌까지 자랑합니다. 심지어 거짓말까지 하죠. 집에 금송아지가 있다고. 왜 이렇게 할 수 밖에 없는 것인가? 사실 여러분들이 그 허풍떠는 모습을 보면서 무슨 생각을 가져야하는 것인가? ‘아, 저분이 참 허하구나... 저렇게 해서라도 채워야 하는구나...’ 성장과정 속에서 심각한 열등의식에 사로잡힌 자들이 자라게 되면 사회문제를 일으켜요. 너무 가난에 찌들었던 사람들이 돈을 벌면 뭐하죠? 이걸 과시하고 돈에 집착하고. 만약 목회자가 어릴 때 이런 상처를 입은 사람이 목회자가 되면 무리하게 교회도 지어요. 왜? 자기를 나타내야 하니까. 이것으로라도... 고급승용차 일부러 타려고 노력해요. 이게 안 채워지니까.. 히틀러가 유대인을 600만명이나 죽였는데 그 원인자체가 어디서 출발한 것인가? 자랄 때 똑똑한 유대인한테 멸시당했거든... 이게 가슴속에 상처로 남아가지고 유대인들을 죽이는 이런 일들까지 나오는 겁니다.
왜 우리가 외식을 하는 것인가? 사람들에게 인정받고자하는 그 욕구입니다. 인정을 받아야 자존감이 회복되고 행복을 느낄 수 있기 때문입니다. 인간이 가지고 있는 행복의 근원은 자존감이 회복되어야하는 겁니다. 나는 괜찮은 사람에 해당해야만 살맛이 나는 겁니다. 자, 오늘 메시지의 핵심은 왜 인간에게 열등감이 찾아왔고 왜 자존감이 무너지게 된 것인지? 그러면 어떻게 하면 자존감을 회복할 수 있는 것인지가 오늘 메시지의 핵심입니다.
1. 사람에게 보이려고 그들 앞에서 너희 의를 행하지 않도록 주의하라.
사람에게 보이려고 그들 앞에서 너희 의를 행하지 않도록 주의하라. 왜 사람들이 다른 사람에게 보이려고 외식하는 말이나 행동을 할까요? 자존감이 안 채워지는 겁니다. 그 비교의식의 밑바닥 속에는 망가져있는 자존감이 작용하는 겁니다.
하나님이 우리 인간을 창조하셨을 때는 우리 인간에게는 열등의식이 없었어요. 비교의식 없었어요. 자존감으로 충만했습니다. 그런데 문제가 어디서 출발했나요? 하나님이 지으신 피조물 중에서 가장 아름답게 지음을 받은 사단, 루시엘이 하나님과 비기려고, 하나님과 뭐했다고요? 하나님과 비교하다가 뭐가 된 겁니까? 가장 추한 모습으로, 사단으로 이 땅에 떨어진 겁니다. 이놈이 하나님의 형상으로 지음 받은 인간을 공격합니다. 무엇을 가지고 공격할까요? 이 비교의식으로 공격하는 겁니다. 네가 그것을 먹는 날에는 네 눈이 밝아져서 하나님처럼 될 것을 알고서 하나님께서 선악과를 먹지 말라고 한 것이라고 속였어요. 비교의식을 갖도록 만드는 겁니다. 인간은 왜 망한 것인가? 사단이 던진 비교의식에 속은 것입니다. 그 결과로 죄를 범하고 하나님을 떠나는 그 순간에 하나님 안에서 모든 것을 공급 받을 때에 자존감, 자긍심을 누리며 살아가는 신분이었는데 이것이 깨어지고 만 것입니다. 하나님을 떠나게 된 우리에게는 참 행복과 평안이 없는 겁니다. 그리고는 죄를 인하여 이유도 모르는 실패와 재앙이 찾아오게 된 것입니다. 내 신분은 네 애비 마귀! 철저하게 열등감속에 살아갈 수 밖에 없는... 왜요? 저주와 재앙이 계속 찾아와서 되는 일이 없단 말이에요.
인간에게 수없는 인생문제가 찾아옵니다. 사단은 이 문제를 해결할 수 있다고 또 사기를 쳐요. 우리들로 하여금 틀린 해답, 망할 해답, 다른 해답을 주면서 바로 그 비교의식을 극대화시키고, 열등감을 해결할 수 있는 것처럼 작업해갑니다. 그 첫째가 바로 창세기 3장입니다. 네가 열심히하고 노력하면 얼마든지 성공할 수 있어! 네가 돈을 많이 벌면 할 수 있어! 네가 성공하면 되는 거야! 더더욱 비교의식 속에 던져 넣어서 더 큰 열등감이 생기도록 만드는 겁니다. 인류의 멸망의 역사가 바로 여기에서 출발합니다.
창세기 4장에서 가인과 아벨이 하나님앞에 예배드리죠. 아벨의 제사는 받고 가인의 제사는 안 받았어요. 사실 가인의 마음속에는 하나님에게 사랑받고 인정받고 싶은 욕구가 있었는데 하나님은 아벨의 제사만 받으니까 가인의 마음에 분하고 시기와 질투가 가득차서 결국 동생을 돌로 쳐서 죽이게 되었잖아요. 요셉의 형들은 요셉을 왜 팔아먹었죠? 아버지 이삭이 요셉만 사랑하니까... 이 비교의식 속에서 동생을 종신노예로 팔아먹은 거예요. 참 무서운 일이에요. 사울은 왜 다윗을 죽이려고 하죠? 백성의 인기가 다윗에게 돌아가니까요. 다윗은 만만(萬萬)이요, 사울은 천천(千千)이라... 사울은 못견디는 거예요. 왜 요즘 미국이 중국을 길들이려고 하죠? 겁도 없이 중국이 미국과 비기려고 올라오니까 미국은 자존심이 상했어요. 그래서 마구 짓밟는 거예요. 지금 세상에서 일어나는 개인과 사업과 국가의 문제가 어디에서 일어나는가 하면 그 밑바닥 속에는 이 마음이 다 들어있는 거예요.
이 비교의식 속에서 나온 것이 바로 외식입니다. 외식을 해서라도 자신의 자존심을 지켜야 하는 것입니다. 다른 사람이 자신을 ’나는 괜찮은 사람이야‘라고 생각해야 자존감이 생기니까요. 그래서 외식하는 겁니다. 신앙생활도 이 생각 때문에 망치게 됩니다. 교회에서 봉사하고 헌신할 때에도 생색나는 것만 하려고 합니다. 왜냐구요? 사람이 보기 때문에.... 많은 사람들이 사람보라고 신앙생활을 해요. 제가 처음에는 성경적으로 하기 위해서 뒤에 헌금궤를 두었다가 요즘에는 어떻게 하죠? 헌금 주머니를 돌리죠? 그런데 헌금궤를 두었을 때와 헌금 주머니는 돌렸을 때의 차이가 50%가 나요. 안 보니까 안 드린다는 거죠. 참 슬픈 현실입니다. 부끄러운 우리의 자화상입니다. 인간관계에서도 대부분 외식을 합니다. 사실 장사도 외식하는 거죠. 과대포장, 과대광고도 속이는 것입니다.
왜 사람들이 외식을 하는 것인가? 그 근본 원인은 바로 창세기 3장에서 출발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을 떠나서 참 평안과 안식이 없어요. 오늘 일부러 평안의 찬송을 선택을 했어요. 왜요? 하나님을 떠나니까 행복이 없어요. 죄로 인해 까닭모를 인생의 재앙과 실패가 찾아와요. 재앙 속에 빠지는 것입니다. 마귀를 섬기고 살아가야 할 신분으로 전락되어 졌잖아요? 되는 일들이 없어요. 그래서 뭐하는 것인가? 자존감이 다 망가지니까 그 속에서라도 뭔가 살아남기 위해서 우리가 하는 것이잖아요.
2. 너희는 구제할 때도, 기도할 때도, 금식할 때에 외식하지 말라.
너희는 구제할 때나 기도할 때나 금식할 때에 외식하지 말라고 오늘 우리에게 말씀을 합니다. 모든 문제의 시작이 창세기 3장이라고 말씀을 드렸어요. 마귀는 비교의식을 통하여서 우리들에게 더 더욱더 틀린 해답을 찾게 만드는 것입니다. 더욱 상처 입히고 더 더욱더 영적 문제에 빠지게 만들어서 더 더욱더 세상을 어지럽게 만드는 것이 사단의 방법이거든요. 속지 말아야 합니다. 사단이 준 틀린 해답이 돈 있으면 성공하는? 이게요 요즘 세상에 나오는 모든 책들 중에서 80~90% 베스트셀러가 돈 벌고, 성공하고 네가 열심히 하면 된다는 이 내용을 우리에게 하는 것입니다. 그것 하면 네가 비교우위에 설수 있다고 가르치는 것이 세상인 것입니다. 여기에 우리가 다 속아 넘어가고 있는 것입니다. 그런데 이게 마귀가 준 전략 속에 안타깝게도 거의 다 속아 넘어가는 것입니다.
오늘 나오는 3가지 내용 자체는 바로 신앙생활도 사단에 뭐하도록 속이는 것입니까? 외식하도록 속이는 것입니다. 신앙생활도. 참 무서운 것입니다. 마태복음 16장 13-14절 보면 예수님이 제자들에게 질문을 하죠. 세상 사람들이 나를 누구라 하느냐? 더러는 세례요한 더러는 예레미야 더러는 엘리야 더러는 선지자들 중 하나라 하더이다 복음을 틀리게 알고 있는 것입니다. 율법 지키는 것이 구원이라고 생각하고 착하게 선행을 베푸는 것이 구원이라고 생각하고, 신비한 영적 체험을 하는 것이 구원이라고 생각하고, 열심히 종교생활하는 것이 교회생활 하는 것이라 생각하도록 이것이 지금 사단이 속이고 있는 것이거든요. 그 속이는 것을 그대로 교회에 가지고 들어와서 이것을 거짓을 하는 것을 표현하고 있는 것입니다. 인생에 사랑을 베푸는 것 중에 하나가 구제잖아요. 나팔을 불면서 선행을 베푸는 것입니다. 나는 이렇게 선행을 베푸는 사람이야~! 하고요. 뭐 한다고요? 보라고 구제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뭐라고 이야기 하죠? 너의 상을 이미 받았다고 이야기 합니다. 왜요? 사람에게 보이려고 했으니까요. 구제를 어떻게 하라고요? 오른손이 하는 것을 왼손이 모르게 하라고요. 어떻게 왼손이 모릅니까? 다 알지. 누구앞에 하라고 이야기 하는 것입니까? 하나님 앞에서요. 가끔 보면 얼굴없는 천사라는 이야기를 듣습니다. 그렇죠? ‘아 그분은 오른손이 하는 것을 왼손이 모르게 하는 구나’ 아니예요. 그 사람도. 왜 그렇게 하는지 알아요? ‘나는 이렇게 괜찮은 사람이야’라고 자기 자신의 자존감을 세우기 위해서 하는 것이지 하나님 앞에 하는 것이 아니예요. 자기 만족을 위해서 하는 것이란 말이예요. 그것도 틀린 것이예요.
기도할 때에 회당이나 큰 거리 어귀에서 바리새인 서기관들이 손을 높이 들고서 다 들으라고 기도하는 거예요. 사실 기도는 너무나 귀한 것입니다. 그런데 이 기도를 뭐 한다고요? 자기를 경건을 나타내는 표현으로, 나는 이렇게 하나님과 영적교제를 맺는 사람이야. 교회에서 대표로 기도하시는 사람들이 속기 쉬운 것이 하나님보다도 성도들을 의식해서 유창하게 귀에 솔깃한 기도를 하고 싶어 하는 이런 유혹에 우리는 쉽게 빠지게 되죠. 누구 앞에 기도해야 한다고요? 하나님 앞에. 하나님 앞에. 우리는 진실 되게 하나님 앞에 기도하는 순간들을 가져야 합니다.
사람에게 보이려고 금식하지 말라 슬픈 기색을 띠고 얼굴을 흉하게 하고 나는 금식합니다. 하고 나팔 불며 하지 말라고 하죠. 요즌 한나라당이 5시간 반짜리 금식을 한다? 웃기는 이야기 하고 있는 것입니다. 우리는 하나님 앞에 금식한다는 것은 사람이 음식을 안 먹으면 죽는 것입니다. 지금 금식한다는 말은 하나님 앞에 뭐를 드리는 것인가? 내 생명 다하기까지 주님 앞에 내 삶을 드리기 원한다는 것이 금식이거든요. 그런데 이것을 왜 사람에게 보이려하는 것인가예요. 우리는 언제 금식합니까? 하나님의 뜻을 찾기 위하여서, 하나님의 긍휼을 기다리는 정말 하나님 앞에 참된 금식을 한다면 정말 좋은 것들이죠.
오늘 우리 신앙생활가운데 가장 중요한 것들을 말씀합니다. 내가 드리는 예배, 내가 드리는 헌금, 내가 하는 교회의 봉사와 헌신. 만약 우리가 사람에게 보이려 한다면 다 틀린 것입니다. 경건의 모양은 있지만 경건의 능력은 나타나지 않아요. 그 큰 대형 교회를 가보면 차량 봉사하시는 분들이 많아요. 그런데 이분들이 왜 차량 봉사를 하느냐? 그 이유 중에 하나가 뭐냐면 교인들 앞에 얼굴 도장을 찍어놔야 다음에 장립집사되고, 장로 될 때에 아무도 모르면 안 찍어 주니까. 거의 상당 숫자가 차량 봉사를 하는 이유가 이것 때문에 하는 것 이예요. 우리는 생각이 바뀌어져야 합니다. 왜요? 우리가 자칫 잘못 했다가는 신앙생활 자체를 이렇게 해버리게 되면 하나님이 말씀하십니다. 너희의 상을 이미 받았다고 말씀을 합니다. 실컷 예배드리고, 실컷 헌금 드리고, 실컷 봉사하고 그게 빵점이 된다면 우리가 얼마나 손해나는 것들입니까? 신앙생활 어떻게 하라고요? 은밀한 중에 보시는 바로 그분을 바라보라고요.
우리는 그동안 어떻게 신앙생활 한 것이지, 그러면 우리가 왜 이런 신앙생활을 할 수밖에 없었던 것인지, 우리가 자기 자신을 점검해야 하는 것입니다.
3. 은밀한 중에 계신 네 아버지께서 갚으시리라.
은밀한 중에 계시는 네 아버지께서 갚으신다고 말씀을 합니다. 인간의 자존감을 회복하기 위해 인간이 만든 것들이 있습니다. 사회문명들입니다. 인간답게 살 수 있도록 만들어서 최소한의 인간의 자존감을 지킬 수 있도록 만드는 것이 사회제도들입니다. 윤리 도덕 등의 많은 규범을 만들기도 하고 또 약자를 도울 수 있는 사회제도를 만듭니다. 국가에서 기초생활수급자를 만들고 노령연금을 주고 각종 사회보장 제도를 왜 만드는 것인가? 왜? 기본적으로 갖추어야 할 자존감을 지켜주기 위해서 국가가 돈 들여서 지금 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리고 무엇을 요즘 많이 이야기하죠? 칭찬하라고 자꾸 이야기 하죠? 미국은 사랑한다는 말을 하루에 5번 이상 안 하면 이혼 사유가 됩니다. 행복한 가정의 10가지 법칙이니 이런 것들 나오죠? 전부 어떤 내용인 것인가 하면, 상대방에게 뭐 하라는 이야기입니까? 자존감 세워주라고 하는 내용들입니다. 인간 세상에 필요하고 좋은 부분들입니다. 그러나 아무리 사회제도를 갖추고 칭찬해준다고 할지라도 인간이 갖고 있는 근본적인 비교의식 속에 있는 열등감, 자존감은 회복되지 않습니다. 이것이 우리에게 무엇이 된 것인가? 각인, 뿌리, 체질 되어서 완전히 인격화 되어 있는 것입니다. 이것 자체가.
그러면 우리가 열등감에서 벗어나서 진정한 자존감을 회복할 수 있는 길은 없는 것인가? 있습니다. 누가 가능한 것입니까? 바로 그 분이 예수 그리스도 인 것입니다. 우리 인간의 모든 해답이 누구라고요? 그리스도가 해답인 것입니다. 다른 말로 하면 복음만이 바로, 우리의 열등감에서 벗어나게 만들고 자존감을 회복하게 만드는 모든 답들이 어디에 들어있는 것입니까? 복음 속에 들어 있는 것입니다. 예수가 누구입니까? 내 인생의 모든 문제의 진정한 해결자요, 해답이 바로 그 분인 것입니다. 그 분 속에 들어갈 때 뭐가 오는 것입니까? 참 행복이 주어지는 것입니다.
다윗이 뭐라고 고백했나요? 여호와는 나의 목자시니 내게 부족함이 없다고... 정말 그 분이 나와 함께함을 누리게 되는 이 평안들... 그것이 자존감의 회복입니다. 정말 복음 누리게 되면 예수 이름 앞에 내 인생에 닥쳤던 모든 흑암, 저주, 지옥이 다 무너지는 것입니다. 왜 열등의식 속에 빠지는 것인가요? 문제 해결이 안 되니까. 답답하니까. 그래서 빌립보서 4장 13절에서 바울이 고백합니다. 내게 능력주시는 자 안에서 내가 모든 것을 할 수 있다고. 자존감이 회복되는 것입니다. 그리고 4장 19절에서 뭐라고 기록합니까?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그 풍성한 대로 너희 모든 쓸 것을 채우시리라고 약속한 그 분이 정말 내가 믿어진다면... 정말 그 분이 내 인생의 모든 것을 채우신다는 것이 믿어진다면 뭐가 오는 것입니까? 열등의식 갖을 필요 자체가 없어요. 바로 이 상태를 두고 우리가 뭐라고 이야기 하는 것인가? 창조의식이라고 이야기 하는 것입니다. 원래 하나님이 나를 그렇게 지어 주셨어요. 이것을 회복하라고 우리에게 말씀하고 있는 것입니다. 정말 복음이 누려지면 새로운 피조물로써의 새로운 삶이 시작되게 되는 것입니다.
우리가 정말 복음을 바르게 이해하고, 체험하고, 누리지면 다른 사람과 비교할 필요 자체가 없어요. 하나님이 왜 우리를 건져 구원해 주셨나요? 바로 비교의식에서 열등감에서 나를 회복시켜서 하나님 자녀의 축복을 누리도록 만들기 위해서 바로 그 분이 나를 건져 구원해 주신 것입니다. 하나님이 나와 함께하심의 비밀이 정말 누려진다면, "나 어느 곳에 있든지 늘 맘이 편하다." 주 예수 주신 평안함, 언제 온다고요? 그 분이 나와 함께하심을 내가 늘 느끼게 될 때... 그래서 임마누엘이라는 단어보다 더 귀한 단어가 없어요. 그 분이 함께하시면 다 끝나는 것 아닙니까?
요셉은 노예로 팔려가도 여호와께서 요셉과 함께하심의 증거나 나타나게 되는.. 두려울 것이 없는 겁니다. 왜? 그분이 함께 하시는데.. 사실 여호와는 나의 목자시니 내게 부족함이 없다고 고백한 것이, 다윗의 망명생활 중에 지은 시입니다 그것이.. 정말로 복음을 누리게 되면은 내가 하는 모든 범사에 나의 하는 모든 일들 속에 주님이 함께 하시겠다고 약속하고 있는 것입니다. 이것을 회복하라고 우리에게 요구하고 있는 것입니다. 정말 우리가 복음을 누리게 되면은 우리 눈이 열려져서 세상 가운데 비교의식 속에 빠져, 열등의식 속에서 자존감이 망가져서 이것이 영적문제화 되어져서 실패하고 망하는 자들.. 이것이 우리 눈에 보여져요. 아.. 저들이 뭐가 없어서? 복음 하나 없어서 이렇게 실패하고 망하는 것이로구나.. 정말 저들에게 복음 전해야 되겠구나.. 이 마음이 생겨나게 되는 겁니다. 이때 우리의 마음 속에는 그들을 불쌍히 여기는 마음이 우리 마음 속에 생겨나지는 겁니다.
자, 우리가 어떻게 해야 그러면 이 속으로 들어갈 것인가? 바로 기도할 때에 하나님의 성령이 역사하시게 되는 겁니다. 기도하여 하나님의 성령이 역사하게 되면은 천사가 동원되고 흑암세력이 결박당하면서 우리 불신앙이 꺾어지게 되고, 실제적인 하나님이 함께 하시는 증거들이 기도할 때에 나타나지는 겁니다. 그래서 복음과 함께 여러분들에게 강조하는 가장 중요한 것이 바로 무엇인가? 기도입니다. 여러분들이 기도 속으로 들어가면 됩니다. 오늘 말씀이 하나님 앞에 주어졌죠? 하나님, 정말 나는 이 행복 속에 임마누엘을 누리며, 정말 하나님이 나와 함께 하시는 나의 모든 범사에 하나님이 함께 하시는 이 삶속에 내가 정말 들어가고 싶어요. 정말 나에게 이 증거를 허락하여 달라고.. 이 약속의 말씀을 붙들고 뭐하는 겁니까? 진짜 하나님 앞에 기도하세요. 기도할 때에 하나님이 내게 뭐하는 것인가? 성령이 역사하시게 되는 겁니다. 강단의 메시지를 붙들고 여러분들에게 왜 기도하라고 강조하는 것인가? 그 메시지가 내 마음 속에 믿음으로 올 때에 내게 뭐가 오는 겁니까? 불신앙이 떠나가게 되고 믿음이 오게 되는 겁니다. 그 때 증거가 나타나게 되는 겁니다. 이것 하라고 사실 하나님이 나를 불러 주신 것들이거든요.
그래서 우리가 왜 24시 기도하라고 요구하는 것인가? 사실 24시 기도 속으로 들어가게 되면은 열등감이 있을 이유 자체도 없어요. 왜요? 하나님이 함께 하시는 증거들이 내 속에 나타나지니까.. 자존감이 그냥 회복되는 겁니다. 염려하지 말라는 것이 아닙니다. 염려가 안생겨나는 것이 정상적이잖아요. 왜 염려합니까? 왜 불안하죠? 왜 초조하죠? 뭐하기 때문에? 안 누려지니까.. 그래서 오늘 우리가 조금만 이 언약 붙잡고 기도해도요. 누가 역사한다고요? 기도할 때만 성령의 역사가 일어나는 겁니다. 기도하는 만큼 성령이 역사하시는 겁니다. 성령이 역사할 때 흑암이 꺾여지고 하나님의 나라가 임하게 되는 겁니다. 내 모든 삶의 현장 속에 하나님의 통치가 일어나게 되는 것이란 말이에요. 그때 내게 뭐가 오는 겁니까? 하나님이 함께 하시는 이 평안들이 내 속에 오게 되는 것입니다.
그리고 언제 성령의 강한 역사가 일어나게 될까요? 바로 이와 같이 멸망 속에 빠진 자들에게 고통이 있는 자들에게 아, 저들도 예수를 믿게 만들어야 되겠구나.. 이 마음을 품고서 여러분들이 전도 대상자들을 놓고 하나님 앞에 정말 기도하게 될 때에 성령의 역사가 임하게 되는 겁니다. 하나님의 성령이 역사하게 될 때에 뭐가 회복되는 것인가? 바로 창조의 안식들이 회복되기 시작하는 것이란 말이에요. 그래서 오늘 우리가 말씀을 우리 마음 속에 가지면서 지금까지 우리가 왜 외식하고 살아왔던 것인가? 사실 속이 허한 것이거든요, 우리가.. 뭔가 허전해요. 이 안채워지는 것이에요. 예수 믿고도 안 채워지니까.. 되는 일이 없어요. 하나님이 나를 그렇게 부른 것이 아니거든요. 그래서 우리가 언약을 잡고서 조금만 기도 속으로 들어가도 하나님이 이 증거를 주시겠다고.. 하나님의 관심이 어디에 있습니까? 우리의 행복입니다. 내가 행복하기를 원하시는 그 분앞에, 오늘 언약의 말씀을 붙들고 우리가 조금 기도 속으로 들어간다면은 이런, 비교의식 속에서 우리가 살아가는 인생이 아니라, 정말 이제는 승리의 인생이 되도록 우리를 이끄시겠다고 약속하여 주셨습니다. 이 말씀이 오늘 여러분들에게 해답이 되시고, 이 언약 잡으시고 승리하는 여러분들이 되시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기도합니다. 하나님.
왜 우리에게 이와 같이 비교의식과 열등감과 자존감이 다 무너지게 되었나요? 원래 하나님과 함께 있을 때는 우리는 정말 완전한 행복을 누리며 살았는데, 하나님을 떠난 바로 그 순간에 참 행복도 안시고 다 떠나버리고, 죄로 인해 찾아오는 까닭모를 재앙과 실패 속에서 우리는 되는 일이 없는 열등감 속에 빠질 수밖에 없는, 그리고 애비된 마귀를 섬기고 살아갈 수밖에 없는.. 그리고 애비된 마귀를 섬기며 살아갈 수밖에 없었던 우리의 신분이었습니다. 마귀는 또 틀린 해답으로 우리들로 하여금 또다시 네가 열심히 하면 된다고.. 네가 돈을 벌면 된다고.. 네가 성공하면 된다고.. 틀린 해답을 통하여서 더욱 비교의식을 극대화 시켜서 우리들로 하여금 더욱 멸망의 자식 되도록 사단이 지금까지 우리를 속였습니다. 더 이상은 사단에게 속지 않게 하여 주옵시고, 오직 그리스도 그 해답되신 그리스도를 정말 누리는 속으로 들어갈 수 있는 인생이 되져서 이제는 비교의식이 아니라 창조의식을 정말 회복하고, 이 복음을 누리며 나를 통하여 이루기를 원하시는 하나님의 계획을 정말 찾아서 한번뿐인 인생이 가장 행복하게 승리하면서 살아갈 수 있도록 오늘 언약의 말씀을 정말 붙들고 승리할 수 있도록 주님이 저희를 권고하여 주옵소서.
주 예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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