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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강원스토리
BG UP & DOWN
깊은 숲길 따라, 푸른 바다의 물결 따라
맛있는 이야기가 가득한 강원도,
강원도 지역의 맛과 멋을 알아보는
강원스토리!
BG OUT
우리가 살고 있는 강원도 구석구석에 숨은
맛있고 멋진 이야기들을 들어보는 시간입니다.
이 시간, 한국문화스토리텔링 연구원 이학주 원장님과 함께 하겠습니다.
이학주 원장님 : 010-2802-1288
지금 전화 연결 되어 있는데요.
이학주 원장님! 안녕하세요.
1. 오늘은 삼척 죽서루에 대해서 소개해 주신다고요.
죽서루 하면 관동8경의 하나로 잘 알려진 곳이지만,
실제 얽힌 이야기는 잘 모르고 있는데요.
먼저 위치부터 말씀해 주시지요?
죽서루는 강원도 삼척시 성내동에 있습니다. 요즘 가면 단풍과 어우러진 아름다운 절경을 볼 수 있는 곳인데요. 특히 죽서루가 유명한 것은 주변 풍광 때문입니다. 이 때문에 이곳은 명승 제 28호로 지정되어 있습니다. 그리고 죽서루는 보물 제213호로 지정되어 있습니다.
2. 주변풍광 때문에 죽서루가 아름답다면 어떤 풍광을 말하는 건가요?
죽서루 밑을 휘감아 도는 오십천이라는 물줄기가 가히 절경입니다. 오십천은 물줄기가 오십 번이나 휘돌아 흐른다고 해서 붙여진 이름인데요. 그 이름과 같이 굽이마다 그 이름값을 톡톡히 하고 있습니다. 그 중에 죽서루가 있는 곳은 오십천의 물굽이가 마지막으로 휘도는 곳입니다. 조선조의 유명한 풍속화가 김홍도도 죽서루 그림을 그렸는데요. 죽서로가 있는 곳이 마치 섬처럼 보일 정도로 물길이 휘돌아 환상적인 풍광을 뿜어냅니다.
아무래도 죽서루를 제대로 감상하려면 오십천을 건너가서 죽서루 쪽으로 바라보는 수고를 아끼지 않아야 합니다. 죽서루에 올라서 보지 못하던 진짜 아름다운 경치를 감상할 수 있습니다. ‘죽서루에 올랐을 때 못 보던 진경, 죽서루에 내려서 볼 수 있구나’라는 감탄을 자아낼 수 있으니까요. 특히 오랜 물길의 흐름에 따른 풍화작용으로 절벽이 이뤄지면서 오십천의 푸른 물과 요즘 볼 수 있는 가을 단풍과 죽서루의 누각이 풍기는 멋을 합치면, 지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낙원을 감상할 수 있습니다. “와우~”라는 감탄사가 절로 나옵니다.
이 때문에 1875년(고종12년) 삼척부사로 부임했던 심영경(沈英慶) 부사는 <차죽서루판상운(次竹西樓板上韻)〉이라하여 이렇게 시로써 표현을 했습니다.
關東第一竹西樓 관동에서 제일가는 죽서루
樓下溶溶碧玉流 누각 아래 푸른 물 질펀히 흐른다
百年泉石如相待 오랜 세월 돌과 물이 어우러진 경치
千古文章不盡遊 천고의 문장으로도 다 표현할 수 없도다
3. 얘기를 들으니, 정말 지금 가보지 않아도
그 풍광이 눈에 선하게 다가옵니다.
죽서루란 이름도 꽤나 운치 있게 다가오는 데요?
죽서루(竹西樓)는 대나무 죽 자에 서녘 서자를 쓰고 있는데요. 이 이름은 옛날 죽서루 동쪽 대나무 숲을 이루고 있는 곳에 죽장사(竹藏寺)라는 절이 있었답니다. 그래서 죽장사 옆 서쪽에 있는 누각이라 해서 죽서루라 이름 했답니다.
지은 지는 상당히 오래 되었는데요. 1266년(고려원종 7년) <동안거사집>에 이름이 보이는 것으로 봐서 이미 그 이전에 지어졌다고 볼 수 있습니다. 현재의 누각은 1403년(조선조 태종3년) 삼척부사 김효손이 중건한 것을 수차에 걸쳐 보수하여 지금에 이른 것입니다. 자연석 모양대로 그 위에 기둥을 세우고, 그 위에 널판을 놓아 일단 그 자체가 특이합니다. 누각 왼쪽에는 현재도 대나무 숲이 이루어져 있고요. 송강 정철의 관동팔경 비 등이 있어 시인묵객들이 줄을 이어 이곳을 방문하고 글을 지었음을 실감할 수 있습니다. 관동제일루(關東第一樓)라는 삼척부사 이성조가 1715년(숙종41)에 쓴 현판도 우리의 눈을 사로잡습니다.
일단 안으로 들어서면 자연과 어울린 죽서루의 건축과 우거진 나무 등이 사철 그 특징을 잘 드러내고 있음을 금방 알 수 있지요.
4. 이렇게 아름다운 누각이라면 아무래도 얽힌 이야기도 있을 듯한데요?
죽서루라는 누각의 명칭에 얽힌 또 다른 이야기입니다. 죽서루는 죽장사라는 절 서쪽에 있는 누각이라 해서 죽서루라 했다고 했잖아요. 그런데 또 다른 설이 있습니다. ‘죽죽선녀의 집 서편에 있는 누각’이라 해서 죽서루라 했다는 설입니다. 죽죽선녀는 고려시대 기생이었답니다. 그런데 워낙 아름답고 지혜롭고 청순하며 정조가 곧았습니다. 그래서 많은 관리와 시인묵객들이 이 기생을 마음에 담아 두었지요. 그 때문에 언제나 그녀의 주변에는 많은 사람들이 모여들었습니다. 그러나 모두 그녀를 흠모만 할 뿐 욕심을 채우지는 못했답니다. 그래서 그녀의 이름을 대나무처럼 곧은 선녀라 해서 죽죽선녀(竹竹仙女)라 이름하고, 죽죽선녀가 있는 유희소의 서쪽에 있는 누각이라 해서 죽서루라 불렀답니다.
5. 그렇군요. 그런데 삼척하면 아무래도 우리의 민속신앙이
잘 보전되어 있는 곳이잖아요. 이곳에도 남아 있나요?
이곳에서 특히 눈에 띄는 곳은 용문바위와 암각화입니다. 용문바위는 자연석의 돌이 기괴하게 구멍이 뚫려 사람들이 그곳으로 빠질 수 있게 되었습니다. 꽤나 큰 바위에 사람이 빠질 수 있을 정도의 돌구멍이 있지요. 이 굴에는 두 개의 전설이 깃들어 있습니다. 하나는 신라 제 30대 문무왕이 죽은 후 호국용이 동해바다를 지키게 됩니다. 용이 되어 동해바다를 지키던 문무왕은 어느 날 오십천으로 오게 됩니다. 오십천에 온 문무왕은 오십천 절벽을 조각해서 지금처럼 아름답게 만듭니다. 그런데 동해바다에 있던 문무왕이 오십천으로 뛰어들 때 지금의 용문바위를 뚫고 지나갔는데, 그때 생긴 것이 용문바위의 구멍이라 합니다. 이 용문바위 구멍은 문무왕이 오십천을 아름답게 조각하려 가다가 만든 곳이라 하여 이 구멍을 사람들이 들락거리면 아름다운 모습으로 될 수 있다고 하고, 또 용처럼 장수를 할 수 있다고 하며, 많은 복을 얻을 수 있다고 합니다. 그래서 지금도 많은 사람들이 이 용문을 드나들며 소원을 비는 기도처가 되었답니다.
6. 그런데 전설이 하나가 아니라면서요?
또 다른 전설은 동해안을 중심으로 전승하고 있는 창해역사라는 엄청난 힘의 소유자 이야기입니다. 창해역사는 7살 때 호랑이를 맨손으로 잡을 수 있을 정도로 힘이 아주 세었습니다. 한나라 장량이 힘이 센 창해역사의 이름을 듣고 진나라 시황제를 치고자 데려 갔습니다. 그런데 시황제가 탄 수레 앞의 수레를 치는 바람에 실패를 합니다. 이때 창해역사는 시황제의 군대에게 쫓겨서 삼척 죽서루에 숨어 지냈는데, 그때 창해역사가 이 구멍을 뚫었다는 겁니다. 그래서 이 굴을 역사굴(力士窟)이라 부르기도 합니다. 진시황을 상대할 정도의 힘을 가진 역사가 있던 굴이기도 합니다.
MC 오늘은 삼척시 성내동에 있는 관동팔경의 하나 죽서루에 대해
이야기 나누어보았습니다.
한국문화스토리텔링 연구원 이학주 원장님,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