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년 11월 마지막 금요일은 추수감사절의 다음 날이자, 미국에서 최대 규모의 할인 쇼핑이 이뤄진다는 ‘블랙 프라이데이’다. 쇼핑에 국경이 사라진 지는 오래, 중간 단계를 거치지 않고 직접 쇼핑하는 이른바 직접구매족이 쏠리면서 해외쇼핑 사이트가 마비될 정도다. 이 거대한 흐름을 먼저 읽고 부지런히 발품을 판 이들이 있다. 보따리를 메고 각국을 오간 ‘소호무역상’들이다. 소호(SOHO)란, 작은 사업(Small Office)과 재택 사업(Home office)을 합친 말이다. 이들은 오픈마켓이나 온라인 쇼핑몰, 오프라인 매장을 열어 병행수입, 구매대행 등으로 이윤을 남긴다. 무역은 정보 싸움이기 때문에 웬만해서는 같은 무역상끼리도 정보를 유출하지 않는다. 반면 황동명 대표는 자신의 책 《나는 세계 어디서나 통하는 장사를 한다》 《나는 최고의 일본 무역상이다》 등을 통해 자신의 필살기를 공개했다. 심지어 블로그를 통해서는 실시간으로 거래 내역을 올리기도 한다.
“저도 시작할 때는 정보가 없어서 시행착오가 많았어요. 정보를 나누는 것에 대해 거부감이 없는 건 아무리 말씀드려도 실제로 떠나는 분은 극소수이기 때문이에요(웃음). 한 아이템을 독점하는 것보다 매일 새로운 곳을 개척하고 도전하는 데 흥미를 느끼는 편이기도 하고요.”
배 안에서 인생이 바뀌다
대학교 3학년 때의 일이다. 친구와 함께 4박5일간 일본으로 배낭여행을 떠났다. 재정이 넉넉지 않아 부산에서 출발하는 배를 탔다. 배 안에는 일반 승객뿐 아니라 보따리를 지고 바쁘게 오가는 이들이 있었다. 세계를 오가는 ‘글로벌 보부상’이 있다는 걸 그때 처음 알았다.
“처음에 일본에서 조금씩 물건을 사올 때 저도 밑도 끝도 없이 주변에 매달렸어요. 딱 봐도 잔뼈가 굵어 보이는 할머니, 아저씨들에게 물어봤죠. 짐도 들어드리고요. 제가 나이가 많았다면 경쟁자로 보고 경계했을 텐데, 어린 학생이라 많이 알려주셨어요. 그분들 뒤를 졸졸 쫓아다니면서 배웠죠. 보따리상으로 시작하다 보니 정해진 거래처도 없어서 다 발품을 팔았어요. 수입하는 방법도 공항 세관 공무원들에게 물어물어 배웠고요.”
돌아와서는 학교를 그만뒀다. 아버지의 사업이 위기를 겪으면서 이미 그의 앞으로도 빚이 있었다. 학교를 계속 다녀봐야 학자금 대출만 커질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집안 형편이 어려웠다는 게 오히려 그를 더 담대하게 만들었다.
“잃을 것이 없다고 생각하니까 더 대담하게 도전해볼 수 있었어요. 사업을 해보니까 힘든 시기가 3년 주기로 오더군요. 당시 사업을 시작하고 3년이 지나니까 외환위기가 왔고요. 그 후 3년이 지나니까 일본에 대지진이 일어나서 방사능 유출이 문제가 됐어요. 가장 큰 거래처 문이 막힌 거죠. 그때도 다른 데 한눈팔지 않고 새로운 거래처를 알아봤어요. 중국 쪽 무역을 시작한 계기가 됐죠.”
위기는 그것으로 끝나지 않았다. 그의 회사인 (주)글로벌티엔티의 본사는 부산 북구 구포동에 있다. 작은 무역을 할 때 상품의 가격경쟁력은 운송비에서 결정난다. 세금은 동일하게 매겨지기 때문에 누가 더 저렴하게 수입하느냐에 성패가 달려 있다. 부산은 오사카와 규슈를 오가는 페리선이 자주 있기 때문에 그곳에 회사를 차렸다. 2012년 《사업의 성공을 발견한 사람들》이라는 책을 내고 서울에서 저자 강연회를 진행하던 중 본사에 화재가 났다는 소식을 들었다. 창고에 불이 나면 빈털터리가 되는 셈이었다. 하지만 그는 강연을 끝까지 마쳤다. 당시 강연에서 그는 “나도 모든 것이 다 타서 잿더미가 됐다. 이제 여러분과 나는 같은 조건이다. 우리 두려워하지 말자”고 말했다고 한다. 이후 황동명 대표는 유럽의 명품 매장뿐 아니라 동남아의 재래시장 등을 훑으며 새로운 시장을 개척했다. 한-EU FTA가 발효된 후 관세법은 어떻게 바뀌었는지, 동남아 시장에서 불법 제품을 수입하지 않으려면 어떻게 해야 하는지를 공부하는 시간이기도 했다.
“무역을 하다 보니 이론을 알아야 할 것 같아서 대학원 무역학과에 들어갔어요(그는 현재 한국해양대학교 대학원 석사과정에 있다). 실무를 해보니까 공부가 더 절실하더라고요. 영어나 일본어도 일을 시작하면서 훨씬 더 유창해졌어요. 대학이나 창업지원센터에서 강의할 때 가장 강조하는 점도 ‘먼저 겪어보라’는 거예요. 그러고 나면 어떤 공부가 필요한지 알게 되거든요.”
일본을 보면 2~3년 뒤 한국이 보인다
그럼에도 황 대표가 주목하는 곳은 여전히 일본시장이다. 전에는 일본이 한국을 10년 앞선다고 했는데 지금은 2~3년 차이가 난다. 일본에서 성공한 콘텐츠는 반드시 얼마 후 한국에서 반응이 온다. ‘올리브영’으로 대표되는 드러그스토어는 이미 일본에서 수년 전부터 활성화되어 있었다. ‘꽃무늬 기저귀 가방’으로 알려진 ‘캐스 키드슨’ 제품은 그가 일본에서 큰 인기를 모으는 것을 보고 한국에 수입해 목돈을 안겨준 효자상품이기도 하다.
“지금 서울의 골목마다 생기고 있는 카페나 디저트 문화도 일본에서 2~3년 전에 유행한 것들이에요. 북유럽 디자인 가구나 침구 등도 일본에서 이미 좋은 반응을 얻은 아이템이고요. 이런 추세라면 앞으로는 향초시장이 커지지 않을까 생각해요. 실제로 아로마 디퓨저나 향초를 사용하는 이들이 늘고 있어요. 한국에서 인기 있는 브랜드가 우드윅(wood wick)이나 양키 캔들(Yankee candle)인데 이런 제품은 향초시장 전체를 보면 사실 일부거든요.”
변해가는 추세는 이것만이 아니다. 예전에는 무역이라고 하면 회사나 자본가가 하는 것이라고 생각했지만 지금은 해외직구가 일상화되면서 유통구조가 달라지고 있다. 누구나 소규모 무역을 하고 있는 셈이다. 무역 관련 지식이나 나라별 정책을 아는 것도 필수다.
“처음 하는 분이라면 국내 관세법이나 상표법, 디자인법 등에 대한 기초지식을 알아두면 좋아요. 현실은 모른다고 봐주지 않으니까요. 관심 있는 아이템이 있다면 수입이 가능한지, 검사나 인증절차는 어떤지 꼭 공부해야 해요. 필수적인 정보는 관세청 홈페이지에 잘 나와 있습니다.”
그는 요즘 창업 컨설턴트 강사로 가보면 무역과 창업에 대한 관심이 뜨거워지고 있다는 걸 느낀다. 대부분 사업에서 큰 실패를 겪었거나 회사가 문을 닫았거나 삶의 궁지에 몰린 이들이다. 황 대표는 강의에 가면 “창업은 막다른 골목에서 잡는 지푸라기가 아니라 새로운 도전”이라고 말한다.
“학생이든 창업자든 일단 얼마를 버는지를 가장 궁금해하세요(웃음). 최근에 개인사업자에서 법인으로 올해 넘어왔어요. 이전에 개인사업을 할 때는 연매출이 5억~6억이었어요. 순익은 30%였고요. 회사가 법인으로 바뀌면서 책임감도 더 커졌죠.”
어떤 이들은 소호무역상을 ‘여행도 하고 돈도 버는’ 낭만적인 직업으로 생각하지만 어림없는 소리다. 그럼에도 그는 일단 “떠나보라”고 제안한다. 카메라와 수첩, 계산기만 있다면 누구든 소호무역상이 될 수 있다는 게 그의 주장이다.
“부족한 건 그 이후에 채워도 늦지 않아요. 하지만 자신이 무엇이 부족한지를 알려면 일단 가봐야 해요. 저는 얼마 전부터 영어학원을 다니고 있어요. 비지니스 영어는 저에게 꼭 필요한 과정이기 때문에 절대 안 빠집니다. 대학교 때 학원을 다녔다면 이렇게 열심히 하진 않았을 거예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