차마 보내지 못하는 사람들
―신동엽의 시 「산에 언덕에」를 중심으로
이은봉
시를 쓰는 사람이라면 누구나 마음속 깊이 모범이 되는 선배 시인들을 갖고 있기 마련이다. 내게는 신동엽도 그런 시인 중의 하나이다. 모범이 되는 선배 시인으로 받아들이는 데는 지리적으로 가까운 곳의 시인인 면도 있다. 지리적으로 가까우면 정서적으로 가깝기 때문이다. 신동엽 시인이 내게 모범이 되는 선배 시인으로 존재하는 것은 그러한 연유도 없자 않다는 것이다.
신동엽(1930-1969) 시인은 충남 부여 출신이고, 나는 충남 공주(현, 세종시) 출신이다. 내가 태어나고 자란 공주에서 그가 태어나고 자란 부여까지는 100여리쯤 된다. 따라서 이 두 지역은 지리적으로 같은 언어공동체, 같은 혼인공동체라고 하지 않을 수 없다. 말투며 어조까지 별 차이가 없는 곳에서 낳고 자란 것이 그와 나이다.
공주나 부여는 금강유역으로 공히 백제문화권에 속한다. 따라서 백제나 백제문화와 관련해서는 신동엽 시인과 마찬가지로 나도 이런저런 연민을 갖고 있다. 백제문화권에서 태어난 근대시인으로는 그밖에 한용운, 정지용, 오장환, 김관식, 박용래 등을 더 들 수 있다. 이들 시인이 태어나고 자란 곳 역시 내가 태어나고 자란 곳에서 100여리쯤 떨어진 곳이다. 그래서일까. 나는 이들 시인에 대해서도 일정한 정서적 친연성을 느낀다.
신동엽 시인의 경우는 더욱 그렇다. 무엇보다 나는 그의 장엄한 역사의식, 웅장한 대지의 정신에 공감을 한다. 그의 시의 정서에는 무엇보다 숭고한 기세가 들어 있다. 김흥규의 지적처럼 우리 민족의 역사와 운명에 대한 뜨거운 사랑을 맑은 감성으로, 섬세한 은유로, 고운 언어로, 독특한 미의식으로 드러내온 시인이 신동엽이다. 뿐만 아니라 그는 역사의 격변 과정에 우리 민족의 전통적 삶의 양식이 어떻게 해체되고 붕괴되어가를 매우 잘 추적하고 있는 시인이다.
이러한 특징을 지니고 있는 그의 시 중에 내가 특히 더 좋아하는 시는 「산에 언덕에」이다. 이 시는 당대 현실을 적극적으로 살다가 이승을 떠난 사람에 대한 시인 신동엽 나름의 사랑과 그리움, 위로와 선양이 들어 있다. 그러니까 이 시는 일종의 ‘인물형상의 시’라고 할 수 있다.
이 시의 서정적 인물은 모두 세 사람이다. 첫 번째 인물은 화자로서의 인물, 곧 시인 자신이고, 두 번째 인물은 대상으로서의 인물, 곧 “그리운 그의 얼굴”이다. 세 번째 인물은 “쓸쓸한 마음으로 들길 더듬는 행인”이라고 할 수 있는데, 그 역시 실제로는 대상으로서의 인물이다. 물론 그는 화자의 분신으로 “다시 찾을 수 없”는 “그의 얼굴”을 그리워하고 있는 인물이다.
이처럼 이 시에는 세 사람의 인물이 등장한다. 물론 이 세 사람의 인물 중에도 중심인물은 있기 마련이다. 그러면 누가 정작의 중심인물인가. 이 시의 중심인물은 아무래도 “그리운 그의 얼굴”, “화사한 그의 꽃”으로 호명되는 인물이라고 해야 마땅하다. 그러면 “산에 언덕에 피어”나기를 바라는 “그리운 그의 얼굴”, “화사한 그의 꽃”으로 호명되는 인물은 구체적으로 누구인가. “다시 들을 수 없”는 “그리운 그의 노래”의 주인공, “맑은 그 숨결”의 주인공 말이다.
이 시의 화자인 시인 신동엽은 일단 “그리운 그의 노래”를 “다시 들을 수 없어도” 맑은 숨결의 그가 “들에 숲속에 살아”가기를 바란다. “그리운 그의 모습 다시 찾을 수 없어도/울고 간 그의 영혼/들에 언덕에 피어”나기를 간구한다. 이때의 그는 마땅히 산과 들과 언덕과 숲에서 죽은 사람이다. 그는 언제 어떻게 산과 들과 언덕과 숲에서 죽었을까.
일단은 먼저 이 시가 4·19 혁명 직후의 자유로운 분위기 속에서 창작되었다는 것을 알 필요가 있다. 그러한 점에서 이 시에서의 죽은 사람은 4·19 혁명의 희생자일 수도 있다. 4·19 혁명의 과정에 의롭게 죽은 사람은 화자인 시인과 함께 “쓸쓸한 마음으로 들길 더듬는 행인(行人)”에게 당연히 잊히지 않는 존재이다. 그러나 4·19 혁명의 과정에 의롭게 죽은 사람은 산과 들과 언덕과 숲에서 죽기보다는 서울과 마산의 거리에서 죽은 것이 사실이다.
따라서 이 시에서 죽은 사람은 4·19 혁명의 과정에 의롭게 죽은 사람을 포함해 소용돌이치는 역사의 과정에 억울하게 죽은 사람 일체를 가리킨다고 해야 옳다. 이 시의 중심인물인 “그리운 그”가 실제로는 남북분단의 6·25전쟁 중에, 일제강점기의 독립운동 중에, 나아가 조선말의 동학혁명 중에 죽은 사람들 일체를 뜻한다는 것이다. 6·25전쟁 중에, 독립운동 중에, 동학혁명 중에 죽은 사람이 아직도 대부분 산과 들과 언덕과 숲에 묻혀 있다는 것은 불문가지이다.
이로 미루어 보면 이 시는 근세사 100여 년 동안 억울하게 죽은 수많은 사람의 해원상생을 간구하는 시라고 할 수 있다. 화자인 시인이 “쓸쓸한 마음으로 들길 더듬는 행인(行人)”을 불러 “눈길 비었거든 바람 담을지네”, “바람 비었거든 인정 담을지네”라고 하며 기원하고 있는 것도 해원상생을 권유하는 구절임이 분명하다.
소용돌이치는 역사의 과정에 억울하게 죽은 사람은 그밖에도 수없이 많다. 광주항쟁의 기간 동안은 말할 것도 없고 이 나라가 민주화되는 과정에 얼마나 많은 의문사가 일어났던가. 사람들은 최근에 일어난 천안함 사건과 세월호 사건 등에서도 수많은 의문사를 목격하고 있다. 그러니 어찌 해원상생의 마음으로 “그리운 그의 모습”을, “울고 간 그의 영혼”을 위로하지 않을 수 있는가.
신동엽의 이 시 「산에 언덕에」를 다시 읽으며 이 나라에서 일어났던 수많은 역사의 비극을 조용히 반추해본다.(『예향』 2015년 6월호(제236호))
그리운 그의 얼굴 다시 찾을 수 없어도
화사한 그의 꽃
산에 언덕에 피어날지어이.
그리운 그의 노래 다시 들을 수 없어도
맑은 그 숨결
들에 숲속에 살아갈지어이.
쓸쓸한 마음으로 들길 더듬는 행인(行人)아.
눈길 비었거든 바람 담을지네.
바람 비었거든 인정 담을지네.
그리운 그의 모습 다시 찾을 수 없어도
울고 간 그의 영혼
들에 언덕에 피어날지어이.
― 「산에 언덕에」, 『아사녀(阿謝女』, 문학사, 196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