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월 15일 스승의 날,
마침 그날이 사진반 수업 듣는 날이었다.
대학의 평생 교육원 사진반 메이트들과 구리 한강시민 공원으로 출사를 나갔다.
우리들은 미리 십시일반하여 스승의 날을 기념해서 선생님께 드릴 선물을 사 갔다.
비트로의 헬스포 엘엠이라는 소재의 잠바였다. 작년에 주홍색 잠바를 하나 입었는데
뉴질랜드 배낭여행 한 달 동안 입고 다니며 무진장 감탄하던 잠바였다.
품도 넉넉하고 색상도 좋으니 내 친구가 그 주홍 잠바를 아예 자기 차에
싣고 다녀 올 봄 내 내 그 잠바를 입을 기회가 거의 없었다.
그래서 선생님 선물을 사는 기회에 아예 내가 입을 같은 소재의 진초록 잠바 하나를 더 구입했다.
얼추 팀원들이 다 모인 자리에서 준비한 선물을 선생님께 드렸다.
물론 홍보도 잊지 않았다. 배낭여행 한달 동안 입어보니 방수도 되고 가방에 구겨 넣었다가
꺼내 탈탈 털면 금방 펴지는 옷이라고 했다.
특히 선생님께서는 새벽 출사를 많이 나가시니 앞으로는 가장 애용하게 될 필수품이
될 것이라는 말씀도 곁들였다.
선생님께서는 흡족해 하셨다. 색상도 맘에 드신다며 기쁘게 받으셨다.
그 때 한강변에서는 매우 쌀쌀한 바람이 불었다. 나도 비상시를 대비해서 가져 간
진초록 잠바를 꺼내 입자 클래스메이트들이 예쁘다며 더 구해 달라는 요청까지 했다.
좋은 옷을 소개하고 좋은 옷을 입으면 몸에 날개가 솟는 듯하다.
아마 선생님께서도 종일 그런 마음이셨을 것이다.
구리시에서 마음먹고 인공으로 조성한 시민공원은 노란 유채꽃 무덤의 환타스틱한 색상에
홀리지 않을 수 없었다. 더더군다나 군데군데 심어진 소나무와 진홍색의 철쭉꽃이 어우러지고
소국화와 관상용 양귀비까지 꽃 천국이었다. 오묘한 꽃들의 조화 속에 묻혀갔다.
강변 바람에 머리는 휘날리고 그림처럼 펼쳐진 유채꽃 사이를 걸으며 셔터를 눌러댔다.
탄성이 절로 나왔다. 왜 사진을 찍는가? 주제를 생각하라는 선생님의 말씀이
떠오르지도 않았다. 일단은 무조건 찍어보자는 심사였다.
얼추 내 눈과 마음에 노란 유채꽃의 낭만이 채워졌을 때 그때서야 선생님의 주문대로 사진을
찍기 시작했다. 이렇게 구도를 맞춰라, 이건 아니다. 왜 자꾸 사진이 삐뚤어지느냐 구도가 맞아야 한다.
얼굴에 초점을 맞출 때는 노출을 플러스 교정을 해야 한다는 등등
끊임없는 지적을 받으며 세 시간을 돌았다. 태양은 한 여름보다 더 이글거렸고 등에서는
땀이 줄줄 흘렀다. 이렇게 해도 안 되고 저렇게 해도 안 되고 안 되고 안 되고...
앉아서 찍다 구부려서 찍다 비틀어서 찍다 엎드려서 찍다
무거운 렌즈로 바꾼 이후 늘어난 오른쪽 엄지손가락 인대의 통증이 점점 심해졌다.
내 눈으로 보이는 이 아름다움을 앵글 속에 다 담을 수 없다는 한계를 느끼면서 나는 지쳐갔다.
백문이 불여일견이라고 나는 매 번 출사를 나갈 때 마다 선생님께 요청을 한다.
먼저 찍어서 구도를 우리에게 보여 주시면 그대로 모방부터 하겠노라고,
아무것도 모르는 초짜가 그냥 시간만 보내고 있을 수는 없으니 도용하자는 거다.
아니 흉내를 내자는 거다.
나는 성격이 급하다, 급하다고 되는 것은 없지만 너무 막막해서다.
도대체 어떻게 찍어야 잘 찍는 것인지 이제는 머리가 혼란스럽다. 사진을 배우기 전
이미 테니스코리아 동호인 기자로 7년 이상을 사진을 찍어 왔지만 아무도
내가 사진을 못 찍는다고 말해 준 사람도 없었고 매우 탁월한 감각이 있다는 호평만 들어왔던 터라
요즘 나는 매우 심각한 딜레마에 빠져 있는 상태다.
선생님께서 먼저 찍어서 보여준 사진을 보고도 그대로 안 되니 점점 기운을 잃어갔다.
남의 것을 모방하는 것도 웬만큼 기본이 갖춰져야 된다는 사실을 깨닫게 했다.
진이 빠져 도시락으로 싸간 김밥 먹는 시간에 선생님께 질문을 했다.
"우리가 이렇게 사진을 배우면 실력이 늘기는 늘까요?"
선생님께서 하시는 말씀
"왜요? 지금 사진을 얼마나 잘 찍고 계신데 무슨 걱정을 그렇게 빨리 하세요?"
이제 사진 배운지 3개월도 안되었는데 왜 앞서가느냐는 뜻으로 들렸다.
어떤 것이든 시작하면 최소 10년, 일만 시간의 법칙도 모르느냐며 일갈하는 소리로 들렸다.
어설픈 앎은 나를 아토피 환자로 만든다. 온 몸이 가렵다.
잠을 자도 편안치 않다. 그러니 입술이 자꾸 터지고 코피가 난다.
무엇을 많이 해서가 아니라 왜 안 될까 하고 한숨만 쉬고 있어서다.
지난 번 국립박물관으로 출사를 나갔을 때
사진을 잘 찍으려면 날을 새워야 한다는 어떤 아마추어 작가의 말이 떠올랐다.
우리와 같은 다른 그 분은 아마추어 공모전에서 여러 번 입상했는데
그 비결은 밤을 새워 유명 작가의 사진을 많이 보고 연구했다고 한다.
노력 없이 이루어지는 것은 아무것도 없다. 무슨 일이든 시간과 에너지를 쏟아야 된다.
테니스도 마찬가지 아니었던가.
최소 10년은 라켓을 잡고 휘둘러야 어디 가서든 테니스 좀 한다고 하지 않던가!
28년 동안 어떻게 옆도 안돌아 보고 테니스 홀릭이 될 수 있었을까?
그것은 도전과 재미 아니었을까?
죽기 전에 다시 한 번 다른 분야에도 빠져 볼 수 있기를 소망하던 날이었다.
종일 아름다운 풍경 속에 머물러 눈은 행복했지만 집으로 돌아오는 발길은 무척이나 무거웠다.
내 카메라에 담을 수 있는 한계를 알아서다.
"배운다는 것은 자기를 낮추는 것이다. 가르친다는 것은 다만 희망에 대해 이야기하는 것이다.
사랑한다는 것은 서로 마주보는 것이 아니라, 같은 곳을 함께 바라보는 것이다. "신영복
첫댓글 제일 윗 사진은 선생님께서 찍어 주신 사진이다. 그 사진은 쨍~한데 왜 내 사진들은 그렇지 못할까? 같은 날 같은 장소에 머물러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노랑 유채꽃과 상반되는 색을 입었다는 이유로 그날 나는 여러번 모델이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