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84년 여름
한여름의 뜨거운 햇볕을 받은 등나무 잎은 무성하게 자라 벤치 주위를 뒤덮어 짙은 그늘을 만들었고 그 줄기는 코트장 중간을 가르는 펜스까지 뻗어 나갔다. 정문을 지나 코트장으로 들어가는 작은 오솔길은 나뭇잎이 하늘을 가려 햇볕이 들어오지 않았고 그 사이로 잡목과 잡초가 무성하게 자라 숲을 이루고 있었다. 어쩌다가 학생코트에서 잘못친 테니스 공이 이 숲으로 넘어가면 라켓으로 공을 찾으러 이리저리 헤집고 다녀도 찾기가 어려웠다. 파란색 천막으로 만들어진 탈의실에는 뜨거운 햇빛을 받아 찜통 속에 들어온듯 옷을 갈아 입을 때는 숨이 막힐 듯 했고 주인을 알 수 없는 버려진 옷가지와 신발에서는 쉰 냄새가 났다.
테니스를 하다 갑자기 한바탕 소나기가 쏟아지면 등나무 밑으로 가거나 탈의실로 뛰어가서 비를 피했다. 그리고 탈의실 문을 열어 놓고 소나기를 보고 있노라면 떨어지는 빗방울에 라인을 그려놓은 횟가루가 튀어 순간적으로 연기가 일어난 듯 했다가 이내 사그라 들었다. 같이 비를 피하는 동기 S의 옆 얼굴을 힐끔 쳐다보면 흠뻑 젖은 머리에서 흘러 내리는 것이 빗물인지 아니면 땀방울인지 분간하기 어려웠다. 그렇게 한참을 말없이 떨어지는 비를 바라 보고 있노라면 정문앞 기차가 지나가는 건널목에서는 ”땡~ 땡 ~“ 거리는 신호음이 울리고 곧이어 기적소리를 울리며 기차가 지나갔다.
비가 오고나면 마치 약속이나 한듯이 모두나와 브러시로 Clay 코트면을 고르게 한후 세명이 겨우 끌어야 움직이는 콘크리트로 만든 로울러를 밀거나 끌며 코트면을 다지면서 구슬땀을 흘렸다. 그리고 난후 나무로 만들어진 라인 그리는 길다란 형틀을 놓고 구멍을 뚫은 테니스 깡통에 백회가루를 담아 라인을 그렸다. 그렇게 코트장 정리가 끝날 때 즈음이면 어김없이 숲길속에서 7기 N선배가 검정 비닐봉지를 들고 등장했다. 검정 비닐봉지에는 음료수가 몇병과 일명 “쮸쮸바”가 들어 있었다. N선배는 그 검정 비닐봉지를 벤치에 던져 놓고는 이리저리 다니며 코트장 바닥을 발로 툭툭 차며 코트장 정리한 것을 보고 지적을 했다. 코트장 정리는 M·T, 또는 수련회에서 야간 선배들의 교육내용 중 항상 빠지지 않고 등장한 단골 메뉴였다.
1984년 하계전지수련회를 다녀온 후 테니스 교육은 종료가 되었다. 테니스 교육은 종료가 되었으나 이제 막 테니스의 매력에 흠뻑빠진 동기들은 방학이 끝날 때 까지 매일 테니스장에서 살다 시피 했다. 반팔 티셔츠와 반바지를 입은 탓에 햇볕에 탄 곳과 타지 않는 신체부위의 선이 선명했고 서로의 얼굴을 보며 “아잡토” 라고 놀렸다. (아잡토 : 아프리카에서 잡아오 토인) 그리고 거의 매일 운동이 끝나면 술을 마시고 비틀거리며 하숙집까지 걸어가기도 하고 어떤날은 늦도록 술을 마시고 탈의실에 와서 자는데 아침에 일어나면 온몸에 모기 물린 자국이 선연했다.
1984년 여름방학이 끝날때까지 나와 8기 동기들은 한마디로 테니스에 미쳐서 살았다.
여름방학이 끝나고 2학기 시작과 함께 정기총회에서 새로운 임원단이 출범했다. 나는 8기 동기 P, S, K와 함께 교육부 차장에 임명 되었고 여자 동기 J도 OO부 차장에 임명되었다. 정기총회때는 써-클 계간지 <까치 2호>가 창간호에 이어 내용과 형식에서 한단계 발전된 알찬 구성으로 선보여 회원들의 호평을 받았다.
그리고 8기 동기들이 추가로 입회가 합류하게 되자 써-클은 활기가 넘쳤다. 매일 오후에는 새로 입회가 된 신입회원들 교육이 진행되었고 교육이 끝나면 곧 다가올 써클인이 향연에서 공연할 허-슬 연습에 코트장은 북적거렸다.
활기가 넘친 코트장 분위기와 회원들의 에네지가 모여 써-클대항 체육대회에서 3위를 했다. 그리고 전남대 Grip 교류전(아래 84 전대Grip 교류전 글 참고) 그리고 학교축제인 ‘대동제’ 기간에는 도서관 앞 잔디밭에서 주막을 열었다. 교수·학생테니스대회, 써-클인의 향연에서 허슬공연, 졸업한 1기 선배분들과 함께하는 ob/yb 대회, 하반기 LTC, 불우이웃을 돕기위한 티켓 판매와 일일찻집 운영 등 많은 행사들이 숨 쉴 틈도 없이 진행되었다.
그렇게 시간은 쏜살 같이 흘러 늦가을로 향하면서 캠퍼스의 플라타나스 나무잎이 떨어지며 바람에 이리저리 흩날릴때 즈음이면 코트장 등나무 잎도 제 수명을 다하고 옷을 벗듯 잎을 떨구기 시작했다. 가을 맑은 공기 때문인지 테니스 치는 소리가 공대 2호관 건물에 부딪쳐 메아리가 되어 다시 들려오고 캠퍼스 어딘가에서 풍물패동아리에서 쳐대는 북, 장구소리가 코트장까지 아득하게 들려왔다. 그리고 캠퍼스 야외스피커를 통해 겨울 노래가 나올때 즈음이면 얼마지나지 않아 첫눈이 내려 코트장과 학교를 뒤덮었다..(중략)
가끔씩
옛기억을 더듬어 가노라면
그때의 늦가을에서 겨울로 접어드는 학교의 풍경이 파노라마 처럼 그려진다.
2025.11.20
#쿠스타
#custa
#조선대학교학생테니스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