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국 사과생산량의 13%(5천 100톤)를 차지하는 ‘영주사과’가 전국최대생산지로 우뚝섰지만 생산에 비해 유통은 그 명성에 걸맞지 않게 매우 취약한 것으로 나타나 대책 마련이 시급하다.
특히 ‘영주사과’는 개방화시대를 대비하는 차원에서 해마다 수십억원의 FTA자금을 지원받고 있지만 대부분 생산 기반시설에만 집중되어 있을 뿐 유통에는 단체와 조직간의 이해타산이 첨예하게 얽혀 있어 그 피해가 고스란히 농민 몫으로 돌려지고 있다.
영주사과의 유통망을 살펴보면 지난해 11월 영주시가 190억이란 막대한 돈을 투자해 야심차게 추진한 영주농산물유통센타(APC)가 있고 영주농협과 풍기농협이 운영하는 공판장이 있으며 일반 상인들이 운영하는 청과상회 등이 있다.
겨울이 오기 직전인 11월 초순에 수확하는 만생종사과(부사)는 맛이 뛰어나고 저장성도 좋아 우리 고장에서 가장 많이 생산되는 품종이지만 대부분의 농가들은 저장시설이 부족하거나 돈이 급해 홍수출하를 할 수 밖에 없는 현실에 직면해 있다.
이 때문에 우리고장에서 제법 큰 규모의 유통시설을 갖추고 있는 영주농산물유통센타(APC)와 풍기농협 등은 현금 매입보다는 농민들로부터 판매를 위탁받는 ‘수탁판매’에 치중하고 있어 대부분의 지역 과수농들이 대규모 공판기능을 갖추고 현금거래를 하는 개인청과상회나 안동 도매시장으로 몰리고 있는 실정이다.
풍기읍 백리에 사는 김모씨(63)는 “APC와 청과상회들은 시세가 낮고 풍기농협은 지나친 선별로 뒷사과가 많이 나오는 흠이 있지만 그래도 믿을 곳은 풍기농협 뿐인데 처리능력부족으로 가져오지 못하게 하니 답답하다”고 말했다.
순흥면 권모씨(56) 등은 안동공판장에 내다 팔았다고 했으며 부석면 소천리의 김모씨(66)는 날씨는 추워지는데 마땅히 팔 곳도 없어 생산된 전량을 평균 3만원(15kg)에 청과상회에 넘겼다고 말했다. 봉현면 홍모씨(39)도 “수확철만 되면 마땅한 판로가 없어 농민들의 고민이 이만저만이 아니다”면서 사과유통의 어려움을 호소했다.
이처럼 대부분의 사과농들이 청과상회나 안동도매시장을 이용하는 것은 우리고장의 유통시설보다 가격이 안정적인데다 현금을 선호하기 때문인 것으로 풀이된다.
이에 대해 영주농산물유통센타(APC)서 만난 권모 담당자는 “APC에 오지 않은 농민들이 불평을 더 크게 하고 있다”며 “한번이라도 APC를 이용해 본 농가는 계속 오고 있지만 전국평균시세보다 영주사과 가격이 비싸게 형성돼 자체 매입 단가를 결정하지 못해 과수농들의 이용이 저조한 편”이라고 밝혔다.
영주농협 부석공판장 권모 담당도 “하루 600상자 정도를 선별 저장하고 있지만 물량부족으로 쉬는 날이 많다”고 말해 농민들의 사과 출하가 저조함을 인정했다.
이에 반해 그나마 사정이 나은 곳은 20여개의 자체 작목반을 통해 농협물류센타로 공동출하를 하고 있는 풍기농협이다. 풍기농협 공판장에서 만난 구필회 풍기 농협조합장은 “생산에서 유통까지 미래 지향적인 방향으로 큰 그림을 그려야 함에도 일부 지도자의 욕심으로 크게 왜곡돼 있다”고 말문을 연 뒤 “영주사과와 부석자두, 순흥복숭아, 단산포도를 모두 묶어 행정은 시설과 기술지원을, 농협은 유통을 맡아야 농민들이 안심하고 생산에만 전념할 수 있다”고 말했다.
구 조합장은 또 “1일 처리능력이 2천 500상자(15kg) 밖에 되지 못하는 풍기농협공판장에 농민들은 1일 1만 5천 상자씩의 사과를 가져오고 있어 어쩔 수 없이 공판장 문을 자주 닫을 수 밖에 없다”며 “영주사과의 앞날을 생각하면 가슴이 답답해진다”고 했다.
순흥면에 사는 한 농민은 익명을 요구하면서 “한 곳에서 연중 필요한 물량을 모두 구입할 수 있는 곳을 외면하는 유통바이어는 없을 것”이라며 “영주사과가 제대로 자리를 잡으려면 막강한 조직과 자금력을 갖고 있는 농협이 운영권을 갖고 홍수 출하된 사과 포도 자두 등 모든 과일을 모아 대형저장시설에 보관해 연중 공급체제를 갖춰야 한다”고 주장했다.
이에 대해 산지 유통담당공무원 황모씨는 “도매시장이 안동에 들어선 것은 지역실정을 전혀 고려하지 않은 정책적 산물”이라며 “선별 기능만 있는 영주에 도매시장이 꼭 필요하지만 안동에 이미 운영되고 있기 때문에 허가가 나지 않고 있어 앞으로 더 많은 물량이 안동으로 몰리게 될 것”이라고 전망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