버리지 못하는 병
정진철
서울에서 회사생활을 하는 50대의 영희씨는 금년 80세인 노모와 둘이서 서민 아파트에서 살고 있다. 형제자매들이 있지만 전부 가정을 꾸리고 살고 있기 때문에 장녀이면서 독신인 자신이 노모를 모시고 사는 것이 편하다고 생각했다. 어머니는 알뜰한 살림꾼이고 부지런한 분이라 의지도 많이 하고 살았다. 그런데 몇 년 전부터 어머니가 동네에서 가끔 의자 같은 조그만 가구를 집어 오는 버릇이 생겼다. 영희씨는 어머니가 다른 사람이 버린 물건을 필요해서 들고 오는가 보다 하고 별로 신경을 쓰지 않았다. 그런데 쓸모도 없는 물건들을 자주 들고 오는 것을 보고 집도 좁은데 남이 버린 물건을 뭐하러 가져오냐고 모두 갖다 버리라고 짜증을 내었다. 그런데 며칠 후 난감한 일이 벌어졌다. 파출소에서 경찰관이 찾아온 것이다. 며칠 전 동네 집 앞에 내놓은 전자밥통을 어머니가 가져가는 것을 이웃 사람이 보았다고 했다. 어머니는 버린 것인 줄 알고 쓸만하다고 생각해서 들고 왔다고 했다. 밥통 주인은 버린 게 아니라 고치는 사람이 가지러 오기로 해서 집 앞에 내놓았다고 했다. 영희씨가 백배 사과하고 밥통 주인도 괜찮다고 하여 수습이 되었다. 그 사건으로 딸이 냉랭해진 탓인지 어머니는 한동안 바깥출입도 않고 집에서만 있었다. 얼마 후 영희씨는 회사 일로 일주일간 부산으로 출장을 갔다가 어머니 마음도 풀어 드릴 겸 좋아하시는 갈치를 사가지고 집으로 돌아왔다. 그런데 현관문을 들어서자 어머니는 안 계신데 집안에서 곰팡이 썩는 퀴퀴한 냄새가 났다. 냄새나는 곳을 찾아 방문을 열어보니 어머니 방이었는데 깜짝 놀랐다. 고장 난 가전제품도 있고 종이박스까지 온통 쓰레기가 방안에 가득했다. 잠시 후 어머니가 돌아왔는데 딸의 눈치를 보면서 아무 말도 안 하고 방으로 들어가더니 방문을 잠그고 나오려고 하지 않았다.
영희씨는 형제자매들과 상의 끝에 신경정신과 전문의를 찾아가서 상담을 했다. 어머니가 저장강박증이 의심된다는 진단을 받게 되었다. 다시 말해서 강박 장애의 일종인 질병이다. 그리고 우리 주변에 이런 증상의 질병을 앓고 있는 예를 많이 알게 되었다. 얼마 전에는 대구 수성구나 의정부시에서도 어느 가정집에서 쓰레기가 산더미처럼 쌓여 악취가 진동한다는 민원을 포크레인 까지 동원하여 처리했다는 뉴스가 보도된 적이 있었다. 이렇게 어떤 물건이든지 자신에게 필요한 것인지, 보관해 두어야 할 것인지, 버려도 될 것인지 가치 평가를 내리지 못하고 일단 저장하고 그렇게 하지 않으면 불편하고 불안한 증상이다. 막상 버리려고 해도 혹시 나중에 쓸 일이 있을지도 모른다는 이런저런 생각 때문에 일단 보관해 놓는다. 그리고 물건들을 버리는 것이 마치 중요한 것을 잃어 버리거나 자신이 버려지는 두려움까지 느끼게 된다고 한다. 혹시 실수로 어떤 것을 버려서 후회하는 두려움을 느끼지 않기 위해서 어떤 후회도 하지않으려고 일체 버리지 못한다고 한다. 이러한 질병은 각박한 현대사회에서 사회적으로 고립감을 느끼고 우울증에 빠지는 사람에게 많이 나타나는 증상이다. 누군가 물건을 치워 버리면 금방 새로운 쓰레기로 채워 놓아야 그나마 마음이 안정된다고 한다. 또한 물건을 치워 버리려는 가족이나 주변 사람들에게 거의 동물적인 적대감을 느끼고 화를 낸다고 한다. 그리고 이와 같은 환자들은 남과의 접촉을 심히 꺼리고 남의 집을 방문하거나 또한 누군가 자기 집을 찾아 오는 것을 극도로 경계하고 싫어한다고 한다. 그런데 특이한 것은 당사자인 본인도 이와 같은 비정상적인 자기의 행동에 대해 수치심도 느끼고 사회에 대한 죄책감 때문에 이를 감추기 위해서 화를 내는 것이라고 한다. 그럼에도 의사의 설명은 저장 강박증도 치료하면 좋아진다고 해서 영희씨도 어머니를 살득하여 다행히 병원 치료를 받고있는 중이다
이와같이 물건을 버리는데 대한 불안감도 있지만 자기에게 꼭 필요하지도 않아도 세일한다고 하면 달려가서 아무거나 정신없이 충동 구매하는 증상도 있다. 그런데 모아두는 모든 현상을 질병으로 왜곡할 일은 아니다. 가치 있는 것은 구별해야 한다고 본다. 우표나 동전 모으기등 가치있는 물건들을 수집하는 것은 질병이 아니다. 그런데 다소 애매한 것은 평생 찍어서 인화하여 앨범에 보관해 놓은 사진들을 쉽게 처분하지 못하는 것은 어떤 분류에 속할까. 나이가 들어가면 앨범 속의 사진들을 후손에게 물려주고 싶은 몇 장 정도만 남겨두고 나머지는 소각하는 사람들도 적지 않다. 어떤 사람은 CD 로 만들어 자식들에게 남겨주는 사람들도 있다. 그런데 아무런 대책도 없이 평생 찍었던 사진을 없애 버리는 것은 가치 유무를 떠나서 추억을 지우는 것 같아서 주저할 수밖에 없는데 이것을 굳이 저장강박증세에 끼어넣고 싶지는 않다.
요즘 시대는 AI 시대다. 노인들도 핸드폰이 없는 사람이 거의 없고 컴퓨터나 노트북도 어느정도는 다룰 줄 알아야 하는 시대다. 그러다 보니 아무래도 서투른 노인세대에서는 유용한 정보라고 생각하면 이곳 저곳 여러군데에 저장해 놓으려고 한다. 혹시 자료가 날라가 버릴까봐 불안해서 그렇다. 같은 내용을 클라우드, 외장 하드. USB 등 세군데 이상 저장해 놓아야 안심한다. 그런데 이러한 버릇은 컴퓨터로 생활하는 젊은 세대도 마찬가지다. 최근 1년간 보지 않은 데이터도 언젠가는 사용할지 모른다는 생각에 지우지 못한다. 사진 또한 추억을 지우는 것 같아서 삭제하지 못한다. 파일의 최종 수정뿐만 아니라 중간 과정에 있던 1차 수정본, 2차 수정본등도 지우지 못하고 보관한다. 자료를 지웠다가 나중에 곤란한 일이 생길까봐 불안해서 삭제하지 못한다. 스마트 폰의 용량이 거의 가득 찼을 때도 데이터 지우라는 메시지가 뜨는데도 지우지 못한다. 데이터를 삭제하면 정서적인 어려움, 스트레스, 불안감을 느끼기 때문이다. 그래서 어떤 젊은이는 용량이 많아도 정리하기가 어려워서 더 큰 용량의 스마트폰을 구매하기도 한다. 이러한 증상도 저장 강박증의 일종이라고 한다. 그런데 어쩌면 문명이 첨단화해 갈수록 사람이 심약해지는 경향이 심해져서 “너 그런 버릇은 질병이다, 나는 아니야 ” 하면서 머지 않아서 저장 강박증의 경계도 구분하기조차 몹시 어려워지는 세상이 도래할 것 같다는 생각이다.
(2024. 7 백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