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권두에세이
우리詩의 정체성正體性
임채우
오는 6월이면 월간 《우리詩》가 지령誌齡 360호에 달한다. 아울러 매월 실시하는〈우이詩낭송회〉가 360회를 함께 달성한다. 1986년 북한산 골짜기 우이동에서 이곳에 살고 있던 이생진, 임보, 홍해리, 채희문, 신갑선 시인께서〈우이동시인들〉이란 동인을 결성하였고, 이듬해인 1987년 3월에 동인지『牛耳洞』 제1집을 간행한 것이 모체가 되어 《우리 詩》가 줄기차게 한 세대, 30년을 달려온 것이다. 2007년에 사단법인체로 발전한 《우리詩》는 그간 한두 차례 우여곡절도 있었지만, ‘뿌리 깊은 나무 바람에 아니 뮐세’라는 표현처럼 30년 동안 한 호도 거르지 않고 《우리詩》를 발행하였고, 한 달도 빠짐없이〈우이詩낭송회〉를 개최하였으니, 우리 시문학사의 한 페이지를 장식할 만하다.
30년이란 세월은 짧은 시간이 아니다. 우리 문단을 보면 반백 이상을 넘긴 잡지나 단체도 있지만, 대부분 그 뿌리가 일천하여 이합집산離合集 散 혹은 거두절미去頭截尾의 형태가 얼마나 즐비한가. 대체로 나무를 보더라도 뿌리가 튼실하지 못하면 수종 불문하고 생명을 유지하기가 어려운 법이다. 《우리詩》의 일원으로서 대단한 긍지와 자부심을 가질 일이로되, 이 시점에서 《우리詩》가 초심을 잃지는 않았는지, 건강성은 유 지 하고 있는지, 비전이 살아 있는지 다각적인 중간 점검의 시간을 가질 필요성이 있다고 생각한다. 이에 짧은 지면으로나마 《우리詩》의 정체성에 대해 운위하여 봄으로써 《우리詩》의 위상을 재정립코자 한다.
정체성이란 말은 오늘날 개인은 물론이고 한 집단의 본질을 규명하는 말로 흔히 쓰인다. 정체성이란 상당기간 일관되게 유지되는 고유의 실체로서 자기와 집단에 대한 주관적 경험을 함의한다. 정체성은 자기와 집단 내부에서 일관된 동일성을 유지하는 것과 다른 존재와의 관계에서 어떤 본질적인 특성을 지속해서 공유하는 것을 말한다. 즉, ‘나는 누구 인가?’ 또는 ‘우리는 누구인가?’의 물음에 스스로 답하는 과정으로, 한 개인이나 집단의 정체성이 운위되기 위해서는, 타자와의 관계에서 개별 적인 존재이며, 차별성이 있어야 하고, 또한 지속성이 있어야 한다.
이상의 간단한 정체성의 개념에 따라 《우리詩》를 뒤돌아볼 때 거칠게나마 다음 사항을 거론할 수 있겠다.
첫째, 《우리詩》는 이 땅의 건전한 시문학의 전통을 계승하고 있다. 《우리詩》라고 하여 오늘날 한국시가 이어받은 시문학의 전통을 벗어나 우리만의 특수성을 추구하고 있다고는 생각지 않는다. 《우리詩》 또 한 이 땅의 시문학의 일부임에 분명하나, 어떤 시류에 휩쓸리지 아니하 고, 한국 시문학의 전통 위에 굳건히 뿌리내리고 있다는 점이다. 《우리 詩》가 지향하는 바는 《우리詩》의 ‘詩의 선언’에 명시되어 있다.
“시가 세상에 기여할 수 있는 긍정적인 글이기를 지향한다. 시가 아름다움을 잃지 않는 예술이기를 희구한다. 고매한 시 정신을 향수·계발토 록 한다. 서정성을 바탕으로 한 멋과 운치의 시를 소중히 한다. 감동성 회복을 위한 다양한 모색을 게을리 하지 않는다. 이 혼탁한 시대에 맑은 시인으로 살아감을 자랑으로 삼는다.” 이상은 《우리詩》의 ‘詩의 선언’으 로, 매월 발행되는 《우리詩》의 서장을 장식하며, 《우리詩》 시인들의 시 창작 이념으로 받들어지고 있다. 한마디로 건강한 시운동의 생활화다. 이것을 망각하면 더는 《우리詩》 시인이라고 할 수 없다.
둘째, 《우리詩》는 우리만의 문화를 지니고 있다. 《우리詩》는 이 땅의 모든 부당한 권력을 거부한다. 그러므로 문단내의 권력이나 정치성을 적극적으로 반대하며, 어떠한 위계도 인정하지 않는다. 《우리詩》의 주인은 《우리詩》 회원이며, 집행부는 시인들의 모임에 서 민주적 절차에 의해 선출된 봉사자다. 집행부는 주어진 봉사자의 직 분을 수행하며, 회원들은 그들을 존경한다. 《우리詩》의 운영은 회원들 의 자발적인 연회비에 의존하며, 최소 운영비를 확보하기 위하여 출판 사업을 함께할 뿐 그 어떤 영리추구를 목적으로 하지 않는다. 재정은 월간《우리詩》발간과 사무실 운영비와 회원의 복리 증진에 쓴다. 오늘날 대형 출판사나 잡지사가 운영하는 시회와는 상대적으로 열악하지만, 청빈과 검소한 시회 운영은 투명하며 오히려 자부심을 가지고 있다. 오로지 우리가 매진할 일은 시 쓰기와 주인의식과 가장 민주적이고 인격 중심의 공동체를 만드는 것이다.
마지막으로, 《우리詩》의 정신은 지속되어야 한다.
《우리詩》의 역사가 한 세대를 뛰어넘어 이 땅에 우리의 아름다운 모국어가 있는 한 《우리詩》의 이념과 문화는 지속되어야 한다. 《우리詩》 30 년 전통은 어디에 내 놓아도 부끄럽지 않은 당당한 우리의 유산이다. 우리가 자부심을 가지고 마음껏 자신의 개성을 발휘할 때, 《우리詩》는 거목으로 성장할 것이며, 《우리詩》 회원들은 존경받는 시인이 될 것이다. 우리는 알맹이 없이 거창하게 겉으로 번쩍이는 존재가 되고 싶지 않다. 우리는 소박하게 그러나 진실 되게 이 땅의 시인으로 남고자 한다. 선배들에게 물려받은 《우리詩》의 정체성을 소중히 유지하며, 시대에 뒤지지 않는 유연성을 발휘하여, 자연과 이웃과 생명을 살리는 《우리詩》로 가꾸어 나가야 한다.
ㅡ『우리詩』2018년 5월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