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인생 부도 없어
유 병 덕
2015harrison@naver.com
지인의 전화다. 조그만 건설 회사를 하는 이다. 추석을 앞두고 어음을 막지 못해 부도를 맞게 되었다며 큰 걱정이다. 밀린 임금을 주어야 한다며 돈을 잠시만 빌려달라는 부탁이다. 가진 돈이 없으니 편하다. 알다시피 백수라 돈이 없어 미안하다고 했다. 전화를 끊고 곰곰이 생각하다가 부도라는 말이 문득, 나를 과거로 데려갔다.
외할머니는 칠순나이에도 구멍가게를 하였다. 외할머니는 동화 속의 백설 공주처럼 사람을 보지 못해 지독한 정신적 허기에 빠진듯했다. 어쩌다 손님을 보면 정월 초하루 반가운 손을 만나 듯 반겼다. 치아가 모두 빠져 입과 볼이 움푹 들어간 얼굴로 살포시 웃을 때면 꽃처럼 예뻤다. 그런 외할머니구멍가게에 어느 날부터인지 사람이 북적거렸다. 서로 약속이나 한 듯 좌판을 깔고 앉아 온종일 술을 마신다. 그들은 술이 떨어지면 가게로 들어와 자기 집처럼 가져간다. 동네 조무래기도 구멍가게 골목에서 매일 술래잡기, 구슬치기에 여념이 없다. 그들도 뛰어놀다가 배가 출출하면 가계에 들어와서 주전부리 거리를 집어 간다.
외갓집에 유난히 독이 많았다. 처음에는 항아리 장사하는 줄 알았다. 외갓집 식구라고 해야 외삼촌과 어머니뿐인데 누가 먹을까 궁금했다. 알고 보니 이웃 아낙들이 와서 가져간다. 양푼을 들고 와 장을 떠가고 자루를 가져 와 쌀을 퍼간다. 어머니는 허구한 날 외갓집 독을 닦고 물건을 채우기 바빴다. 호기심에 마당 한가운데에 있는 독 뚜껑을 열어보니 된장, 간장, 고추장, 깻잎장아찌 등과, 부엌 옆 광에는 쌀이나 잡곡, 김치와 젓갈류가 담겨 있다. 그 모든 것을 사람들은 외상으로 가져간다. 내가 보기엔 참 이상한 일이다. 그런데 외할머니는 가져가는 이들을 바라보며 해탈한 부처처럼 빙그레 웃는다.
“음, 음 ~ ”
외할머니는 그들의 마음을 아는 것 같았다. 가끔 외할머니와 어머니가 다투는 모습을 보았다. 월말이면 그동안 가져온 물건 값 때문이다. 어머니는 배움이 없으나 셈이 빨랐다. 학교 근처에 가보지 않았는데 주판알 튀기는 게 예사롭지 않았다. 내 눈엔 마치 어머니가 구멍가게 경리 사원처럼 보였다. 외할머니는 어머니가 외상장부를 만들어 관리하는 것을 보면 핀잔이다. 먹는 거 걱정하는 세상이 슬픈 거라고 따지지 말라고 했다.
나는 외할머니에게 어디 숨겨진 재산이 있나 했다. 시간이 지나며 아무리 생각해보아도 가진 거라고는 달랑 구멍가게 하나였다. 외삼촌은 해외 유학을 다녀왔으나 변변한 직장이 없이 건달처럼 정치판을 기웃거렸다. 대신 배움이 적은 어머니가 외갓집 살림꾼 노릇을 했다. 어머니가 결혼한 것은 남편을 잘 만나 팔자를 고쳐보려고 했단다. 그런 어머니의 삶은‘장님이 눈 뜨나 마나’, ‘검둥이가 세수하나 마나’처럼 그날이 그날이었다. 아버지가 전방 특수부대에 근무하기 때문에 만나기 힘들었다. 어쩌다 집안에 건빵 부스러기가 보이면 아버지가 다녀갔다는 사실을 짐작할 뿐이다. 일정한 수입이 없으니 어머니가 외갓집에 기대어 끼니를 이어갈 수밖에 없었다.
어느 날 외갓집에 빚쟁이들이 몰려왔다. 외상으로 가져온 물건 값을 약속한 날짜에 치르지 못해서이다. 동네 사람들에게 외상을 주고서 받지 못한 것이 사단이었다. 외할머니 이름으로 써준 문서를 빚쟁이들이 들고 와서 으름장을 놓는다. 외할머니는 태평하게 외삼촌 방에 들어가 영웅·위인전을 꺼내오더니 내게 읽어보라고 선물로 주었다. 아마 외삼촌에 대한 답답한 마음을 내게 전하는 듯했다. 어릴 때 공부하라고 외삼촌에게 사준 책인데 한쪽 읽지 않아 깨끗했다. 나는 그 책을 읽으면서 영웅이 되고 싶지 않았다. 왜냐하면 영웅은 권력을 지키느라 다른 사람을 죽이거나 피해를 주어서이다. 영웅보다는 위인이 훌륭해 보였다. 위인은 남을 위해 도움을 주기 때문이다.
외갓집구멍가게가 우여곡절을 겪다가 부도났다. 집달관이 와서 집안 곳곳에 딱지를 붙이며 난리다. 외할머니는 눈만 껌뻑껌뻑하더니 한마디 한다.
“내 인생 부도 없어.”
외할머니는‘산 입에 거미줄 치는 일 없다.’며 걱정하지 말란다. 낙천적인 성품이 한결같다. 하나 졸지에 외갓집 식구들이 길거리로 나 앉게 되었다. 이가 없으면 잇몸으로 살 듯 서초동 작은 비닐하우스로 밀려났다. 외할머니의 ‘내 인생 부도 없어.’라는 말이 아리송하여 당시 이해하지 못했다. 바닷가 어부가 고기가 안 잡히면 은근히 태풍을 기다린다. 바닷물이 뒤집혀서 해양생태계를 바뀌면 고기가 많이 잡히기 때문이다. 외상으로 가져가던 이들이 소문을 듣고 놀랍게 십시일반으로 돈을 모아 어머니에게 가져왔다. 그러한 환란 속에 외할머니는 돌아가시고 아현동 구멍가게가 사라졌다.
내 마음속엔 외갓집구멍가게가 생생하다. 구멍가게 앞에서 만났던 이들은 지금, 어디쯤 가고 있을까. 아마 합죽이 할머니의 미소를 떠올리며 저녁노을을 바라보고 있을지 모른다. 외할머니는 돈에 관심이 없었다. 그저 허기진 이들의 배를 채우는 모습을 보며 즐거워했다. 비록 돈이 없어 부도가 났지만 착한 부도다. 내가 읽었던 위인전 속에 나온 위인은 외할머니가 아닌가 싶다.
착한 부도가 든든한 보험이 될 줄 몰랐다. 어머니가 돌아가신 날 바로 외삼촌이 달려왔다. 외삼촌은 돌아가신 어머니가 고마운 분이라며 내 손을 꼭 잡는다. 어머니가 나 모르게 빚잔치한 후일담을 밤새 들려주었다. 빚쟁이들한테 어머니가 시달린다는 이야기가 동네에 퍼지자 외상으로 가져갔던 이 중에 돈을 많이 번이가 큰돈을 가져왔다고 한다. 그 돈으로 어머니가 서초에 싸게 마련한 집터가 금싸라기 땅이 되었다며 자랑이다. 구멍가게가 부도가 나고 외할머니가 돌아가셔서 무거운 슬픔에 잠겼던 외삼촌이 강남 부자가 되었다니.
앞날은 누구나 모른다. 어느 구름에 비 들었는지 알 수 없다. 비를 맞지 않으려면 힘들더라도 우산을 챙겨 다니면 막을 수 있다. 사업도 매한가지 같다. 어느 사업이든 성공을 장담할 수 없다. 사업을 하다 보면 부도는 친구처럼 따라다닌다. 하나 어렵더라도 고생한 이들을 챙기다 낸 착한 부도는 걱정할 일이 아닌 것 같다. 설사 부도가 났더라도 재기하는 것은 시간문제다. 오히려 위인으로 존경받을지 모른다.
추석날 아침이다. 어려운 이들을 보듬으며 즐거워했던 외할머니가 오늘따라 그립다. 나도 모르게 손가락으로 외삼촌 전화번호를 누르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