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도사고시 24.6.29.(토)
전능하신 하나님! 모든 영광과 기쁨을 당신께 드립니다.
아무런 능력도 없는 나에게 이렇게 중요한 일을 맡겨 주시고
신학졸업과 강도사고시에 좋은 결실과 성 공을 하도록
도와 주시니 감사를 드립니다.
오늘의 이 감사와 결실이 오래도록 변하지 않으며 교만한
생각이나 나태한 마음이 들지 않게 하여 주시옵소서.
이러한 소중한 경험과 값 진 열매가 더 놀랍고 주님의 참된
주님의 일에 쓰임 받도록 인도하여 주시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이멘.
2024.6.29.
강도사고시를 마치고 감사의 기도중에서
눈물이 새벽을 적시던 날
이른 새벽 어둠 속에서 어깨만 들썩일 뿐
고요히 아무것도 들리지 않는다.
싸였던 감정의 봇 짐이 터져 베갯머리가 남자 눈물로 흥건하다.
깨달음을 갈망하며 가끔 속을 털어내듯 울음의 의식을 치르며
소식없는 동광이를 그리워하며 새벽을 맞는다.
반백년을 넘고도 12년을 더 살아온 나는 삶에서 자녀들을 찾고 있다.
빗물이 밤새 쏫아지던 7월 어느 날 새벽이다.
삶에지친 마음이 녹초가 되어 잠들기도 전
잠시 창문으로 떨어지는 빗소리에 잠을 깼다. 이리저리 뒤척이다
생각의 그 시절에 빠져들기 시작하자 온갖 지난 사연이 나를 휘감는다. 돌이켜보면 늘 무언가를 쫓다가 주저앉고 다시 숨고르기를
반복하며 과정을 지나왔다.
인생사 뜻대로 되지 않는 게 삶이라 했던가.
십대는 세상넓은줄 몰랐다.
이십대는 채우지도 않고 계단을 오르려던 막무가내 심정이었다.
삼십대가 되면서 준비없는 어른이라는 기분도 잠시, 처지를 원망하며 일자리를 찾기 위해 동분서주했던 시간이 떠오른다.
사십대는 부모님을 모시며 가정을 지키는 우여곡절 끝에
안정적 직장 일자리를 만들었다.
오십대 다시 고개를 들어 바른길을 칮는다.
육십대는 신학을 마치고 초라한 현실에 내가 서있었다.
현실과 이상의 틈 사이에서 나를 외치며 고단한 삶에서
얼마나 힘들게 자신을 바라봤던가.
어느새 육십대 초반을 빠르게 지나며
칠십대를 바라보고 가고있다.
동광이를 보고픈 마음이 제자리를 맴도는 기분을 떨칠 수가 없다.
나이든 채 지난 시절 속에 머문 느낌으로 후회하고 자책하기도 한다. 이런 나의 고민을 다소 해소시켜 준 것 중 하나가 신학을 연구하며
글쓰기이다.
성경을 마주한 후, 삶은 끊임없이 자신과의 대화를 이어가도록 훈련시켰다. 나의 이야기가 내 마음을 어루만지며 깊은 이해로 어우러질 때 마음의 근력도 점차 단단해졌다.
그후로 기회가 닿을 때마다 찬양이나 ,
통일선교회 활동과 함께 일상을 다독이며 나를 깨우치려 한다.
만약 힘든 나에게 지금 무엇을 원하느냐고 묻는다면 바로 대답할 수 있는가. 여러 가지가 떠올라 머뭇거린다면 그것은 아직 숨구멍이 남아있다는 뜻일 게다. 끊임없이 불평과 불만이 계속 이어진다면 아래로 곤두박질 칠 일 밖에 남아있지 않다.
바닥을 치고 싶지 않다면 넋두리는 거둬야 한다.
단 하나의 소원이 나를 감싸며 눈물을 쏟아내게 할 때 이제 다시
일어날 기운을 찾게 될 것이다.
나에겐 다양한 삶이다.
살면서 어려운 상황과 맞닥뜨릴 때마다 주저앉을 수는 없다.
스스로 가치를 느끼는 일을 찾아 마음을 담고 생각을 다듬어야 한다.
하나님의 은혜로 삶을 덤으로 살고 있는 기분을 느낄 때가 있다.
부모님은 세상을 떠나셨다. 신앙적으로는 나보다 배움이 적고 삶의 폭도 넓지 않았지만 부모님들은 나름의 방식으로 인생을 마무리하며 후손을 남기셨다.
내가 이만큼 살다보니 더 많이 배웠다고 더 높은 지위를 가졌다고
선교사, 강도사가 되었다고 삶이 남다르지 않다는 것을 깨우친다.
일상이 깨어있어야 한다.
스스로 답을 얻으면 나의 에너지는 나보다 남을 위하고 우리를 위해서 움직이게 한다.
그 기운이 반복되다 보면 어느새 생각지도 못한 놀라우신 하나님의
크신 은혜와 힘이 내 주위를 감싸며 긍정 울타리 안에 머물게 된다.
새벽 빗소리는 더 거칠게 바닥을 치고 있다.
새벽이지만 창밖은 깜깜하다.
어둠 속에서 간간이 회개의 눈물이 뜨겁게 흐른다.
내가 삶에서 얻고자 하는 건 무엇인가.
산다는 게 그저 지치고 힘들다는 생각으로 오열하기도 하지만,
이렇게 감정을 쏟아내고 나면 다시 새롭게 기지개를 펼 마음으로
오늘도 창문을 열고 동광이를 부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