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호다완(井戶茶碗)
도천 천한봉(문경요)

정호다완(井戶茶碗) 사진자료-(http://nainju.com.ne.kr/artbox/dawan.jpg)
■ 井戶茶碗이란?
일본 문화중에 최고봉이란 茶道. 그들의 차문화에서 최고의 예우를 받는 한국의 문화재가 있다. 그 유명한 정호다완. 원래는 조선시대 서민들의 밥그릇으로 사용되던 생활도구 였다는 정호다완 어떻게 우리의 막사발이 일본에 유입되어 국보로까지 지정된 것일까.
일본에서는 흔히 조선시대의 다완을 고려다완이라고 한다. 고려청자로 대표되는 수준높은 우리의 도자기 문화를 총칭하는데서 연유한다.
여기에는 일본인들의 조선다완에 대한 매력과 경의의 뜻이 담겨져있다.
정호다완은 조선 초기부터 중기에 제작되었다고 추정하는데 그 용도는 서민들이 밥그릇이나 국그릇으로 사용하던 막사발이다. 조선에는 고려때부터 사용되던 다완이 있었는데 이 다완과 막사발의 생김새가 비슷하여 임진왜란당시 왜병들이 막사발을 다완으로 알고 닥치는대로 약탈해 갔고 이것을 일본식 다완으로 사용하게 된것이라 전해진다.
일본인들은 정호다완에서 무작위, 무기교의 아름다움을 발견하게되고 여기에 특별한 의미를 부여하여 숭상하게 되었다.
이렇게 하여 자연미의 상징인 정호다완은 당물다완(唐物茶碗 ;일본에서는 고려다완을 당물다완의 범주에 포함한다.) 최고의 걸작품으로 평가되고 있으며 일본의 중요문화재로 등록된 정호다완만도 20여개에 이른다.
중국, 조선, 일본의 다완을 비교하면 조선의 다완은 자태가 크고 강하며 또 재미있어 이것에 비할만한 것을 달리 발견할 수 없다. 일반적으로 조선, 특히 고려말부터 조선시대 초기의 다완은 규모가 웅대하고 수법이 견고하며 흙의 사용, 유약의 상태등 모든 면에서 우수한 것이 많다. 그중 이도라는 것은 특히 위대하다. 그렇기 때문에 만약 사람들이 최고급 다완을 찾는다면 그것은 이도다완이라 단언할 수 있다. -오쿠다 세이이치(奧田誠一), 〈茶碗談義〉,創藝社
■'정호'라는 명칭의 유래
1설
단순히 속이 깊은 그릇의 모양에서 우물(일본어로 이도)을 연상하여 유래한 형태설
2설
조선시대 경상남도의 지명 韋登(일본어 발음으로 이도)에서 유래한다는 지명설
3설
임진왜란에 출병하여 정호다완을 모아 일본으로 가져간 이도 와가사노가미(井戶若狹守)의 이름에서 유래했다는 소지자설
4설
우물속에서 다량의 다완이 발굴되어 이도라고 하였다는 설
■무사와 정호다완
정호다완이 당시 일본 차문화에서 호평을 받았던 원인은 대체로 다음과 같다.
1. 차문화를 정책적으로 이용
오다노부나가와 토요토미히데요시는 차문화 정책을 펴면서 당나라다구와 고려다완을 전리품과 포상품으로 삼았다.
예컨데 어떤 다이묘(大名)가 히데요시에게 포상품으로 명품 다완을 받았다고 하자. 그 다이묘가 타국으로부터 공격을 받아 위험한 순간에 다완을 히데요시와의 동맹국임을 표시하는 증표로 삼아 상대를 위협 할 수가 있었던 것이다. 이렇게 하여 모든 다이묘들은 당시의 위정자와 친교하기 위해 차문화에 전념 하게 되었다. 이러한 풍토에서 급부상한 것이 정호다완이다.
무사들은 질박하면서도 당당한 풍취가 풍기는 정호다완에 광적으로 집착하게 된다. 정호다완이 무사들의 취향에 부합되는 단적인 예로 정호다완의 특징인 매화피(梅花皮 ;일본어로는 '가이라기'라고 함)를 들 수 있다. 매화피는 유약이 응결되어 나타난 독특한 형태로 원래 가이라기라는 명칭은 칼의 손잡이와 칼집의 장식 소재로 사용되는 철갑상어 가죽(梅花皮)과 비슷한데서 유래한다.
따라서 정호다완을 손에 쥐었을 때 닿는 매화피의 감촉이 무사들에게 커다란 매력으로 다가온 것이다.
2. 와비차(わび茶의 유행)
와비는 원래 수심, 걱정, 한가로운 정취를 뜻한는 단어로 일본다도의 근본이념이다.
센노 리큐(千利休)에 의해 집대성된 와비차는 내면화·정신적 세계를 중요시 하여 화려한 것을 허용하지 않으며 물질적·향락적으로 흐르는 것을 막고 부족함과 진중함, 청순함을 존중한다. 이에 따라 다도의 작법과 태도에도 일대변혁이 일어나게 된다. 쇼안(草庵)이라고 하는 다실은 광대한 다도의 정신세계를 압축·결정시켜서 다다미 4조반의 다실의 크기를 3조, 2조 반으로 줄이고 마침내는 1조반으로까지 응축하여 와비다도의 정신적 심화를 도모했다. 자연적인 발로를 중시하는 와비차의 정신은 茶具에도 변화를 가져왔다.
화려함과 사치스러움으로 대표되는 당나라 천목다완에서 무기교, 무작위의 자연미를 풍기는 고려다완의 시대를 맞게 된 것이다. 일본의 초기 다인들은 정호다완의 불완전한 미에서 차의 마음에 걸맞는 최고의 와비정신을 찾아 내어 이것을 소중하게여겼다.
3. 정호다완을 비롯한 고려다완의 부각은 농차(濃茶)의 유행과 함께 가속화 되었다.
농차는 한자의 차로 여러명의 손님이 돌려 마시는데 이러한 음다법에는 형태 나 크기에 있어 천목(天目)보다 고려다완이 제격이었다.
무사들은 茶會를 자주 열어 연대감을 다지는 기회로 삼았다. 이로써 농차의 맛도 현격히 발달하게 되었고 독살의 우려도 없어졌다. 다이코(太閤 : 히데요시)가 한모금 마신 차를 초대된 무사들이 차례로 마심으로써 안심하는 한편 한잔의 차는 무사들의 결속을 다지게 하는 동맹감도 불어넣었다.
■ 정호다완의 매력
정호다완의 매력은 무작위, 무기교의 질박한 멋에서 풍기는 당당함이다.
앞서 언급한대로 정호다완은 가난한 서민들이 사용하던 막사발이었기에 지극히 평범하고 흔했다. 이름 그대로 막 사용할 물건이었기에 특별한 기교나 꾸밈없이 대범하게 만들어진 이 사발에는 있는 그대로의 자연스러움이 여과없이 반영되고 있다.
평범함속에 묻어나는 고귀한 아름다움, 다인들이 발견한 정호다완의 美的 세계이다.
그럼 구체적으로 정호다완의 조형상의 매력을 분석해보자.
1) 정호다완의 형태는 대범하고 굽〔高台〕을 중심으로 위쪽으로 갈수록 사발모양으로 완만하게 넓어 지는 것이 특징이다. 다완의 표면은 일본인들이 비파색(枇杷色) 이라고 표현하는데, 이것은 황색을 띤 바탕에 붉은 기운이 돌고 여기 또 푸른 기운이 가미된 복잡한 색조합이다.
이 색조합에 유약의 균열이 있어 깊은 맛을 자아낸다.
2) 다음으로 주목해야 할 것은 다완의 몸체에서 보이는 자연스러운 손자국. 물레 질로 인해 생기는 손자국은 숙련되고 노련한 솜씨가 만들어낸 예술의 극치 이다. 또한 잔의 허리부터 굽 사이에 보이는 휘둘림에는 다른 다완에서는 볼 수 없는 예리함이 느껴진다.
3) 한편 굽에서도 대나무를 연상시키는 마디〔竹節〕가 있어 이것을 중요한 감상 포인트로 하고 있다.
4) 그리고 간과할 수 없는 것이 굽 안쪽 중앙에 돌출한 부분이다. 이 부분을 두건(頭巾)이라 하는데 소용돌이 모양등 다완마다 모두 개성이 있어 흥미롭다.
5) 또한 중요한 감상대상으로 앞서 언급한 매화피(梅花皮)가 있다.
유약이 응결되어 나타난 형태로, 오늘날에는 숙련된 도공들에 의해 비교적 용이하게 재현되고 있으나 정호다완의 자연미에는 미치지 못한다.
6) 하편 잔 안쪽에서 보이는 눈〔目〕은 다완을 포개서 구울 때에 유약이 溶着 하는 것을 방지하기 위해 놓은 것이다. 이것도 다완의 중요 감상부분이 되고 있다. 단 대정호(大井戶)에는 눈이 있은 경우가 적어서 맨 위에서 구워졋거나 하나씩 구웠다는 것을 짐작할 수 있게 한다.
■ 정호다완의 종류
정호다완은 크게 대정호(大井戶;일본어 발음으로 오이도), 고정호(古井戶;일본어 발음으로 고이도), 청정호(靑井戶;일본어 발음으로 아오이도)3종류로 나뉘는데 각각 특징이 있다.
1) 형태가 큰데서 이름붙여진 대정호는 명품이 많기 때문에 명물수(名物手)라고 도 한다.
정호다완 특류의 비파색을 띄며 몸체에는 강한 손자국이 있다. 굽에는 마디를, 굽안쪽으로는 두건을 볼 수 있다. 잔이 깊고 다양한 형태의 매화피를 감상할 수 있다.
2) 古井戶는 大井戶와 대비되어 작은 다완을 이르는 것으로 본래 소정호(小井戶; 일본어 발음으로 고이도)였는데 美稱으로 고정호(古井戶)라고 했다고 전한다. 문자대로 대체로 크기가 작은 다완으로 대정호나 청정호보다 굽이 낮고 대부분 손자국과 마디도 보이지 않는등 뚜렸한 특징은 없으나 유색(釉色) 의 변화가 풍부한 매력이 있다.
3) 靑井戶는 다완의 표면에 푸른기가 감돈다. 조형적인 특징으로 몸체에 손자국 이 강하게 나타나 있으며 굽도 어느정도 높이가 있고 마디가 보이는 것이 많다.
4) 이 밖에도 정호다완의 범주에 포함 되는 것으로, 다완의 표면과 유색이 다른 정호협(井戶脇), 섬세한 균열이 특징적인 소관입(小貫入)등이 있다.
★ 名茶碗의 감상
●통정통(筒井筒) (Fig.月刊 茶道 2000. 5월호 p.17)
쯔쯔이 쥰케이(筒井順慶)가 소지한 정호다완이라하여 통정통(筒井筒)이라는 이름이 유래한다. 희자위문 정호와 쌍벽을 이루는 작품으로 현재중요문화재로 지정되어 있다. 大井戶로 형태가 크고 위풍이 있으며 잔의 굽이 높다. 특히 적갈색을 띄는 색조가 특징적으로, 하얗게 보이는 매화피 부분과 절묘한 조화를 이룬다.
이 다완은 역사적으로도 유래가 깊다. 다이와군산(大和群山)의 성주였던 쯔쯔이 쥰케이가 야마자끼(山崎)의 합전(合戰)에 참가하지않은데 대한 사과로 이 다완을 히데요시에게 헌상하였다. 히데요시는 매우 기뻐하며 이 다완을 애장하던중 다회에 초대된 손님중 하나가 잔을 떨어뜨려 5조각으로 깨어지고 말았다. 이때 호소가와(細川幽齊)가 즉흥으로 '이세모노가타리(伊世物語)'의 교카(狂歌)를 불러 화를 모면했다고 한다. 이후 센노 리큐에게 수리를 명했는데 리큐는 자신의 다회에 이 다완을 마음대로 사용하여 히데요시를 불쾌하게 했고, 히데요시는 이 다완에 독을 넣어 이에야스에게 주도록 리큐에게 명하였다는 이야기도 전한다.
●희좌위문 정호(喜左衛門井戶;기자에몽 이도)(Fig.月刊 茶道 2000. 5월호 p.19∼20)
정호다완 중에 최고의 걸작으로 꼽히는 작품으로 현재 국보로 지정되어 있다.
大井戶로, 전체적인 조형미가 우수하며 비파색의 표현, 자연스런 물레자국, 당당한 굽, 그리고 이 주변에 매화피가 나무랄데 없이 훌륭한 작품이다.
희좌위문 정호란 이름은 최초의 소장자였던 오사카의 상인(町人)다케다 기자에몬(竹田喜左衛門)에서 유래하였다고 전해진다. 현재는 다이도쿠샤(大德寺) 고호안(孤蓬庵)에서 소장하고 있다.
이 다완에는 인연설이 전해지는데 이 다완을 소지하고 있으면 피부병(부서름이나 종기가 나는 병)에 걸려 죽게 된다는 전설이다. 실제로 이 다완을 소장하고 있던 후미(不味)公이 피부병을 앓게 되자 부인이 다완을 포기하라고 권고했지만 듣지않았다. 후에 그아들인 게츠단(月潭)까지 피부병에 걸리게 되자 결국 교토의 고호안에 기증하였다고 전해진다.
●시전정호(柴田井戶;시바다 이도) (Fig.月刊 茶道 2000. 5월호 p.20)
靑井戶의 대표적인 다완으로 중요문화재로 지정되어 있다. 4단의 강한 손자국이 특징적이며 몸체는 비파색을 기본 색조로 하여 유약의 흰빛이 교차하고 여기에 부분적으로 붉은 기운과 푸른 기운이 감돌아 유현한 멋 가운데 화려함을 더한다. 또한 굽주변의 매화피와 굽안의 두건(兜巾)도 중요한 감상포인트가 되고 있다. 이 작품은 시바다 가츠이에(柴田勝家) 오다노부나가(織田信長)에게 하사 받은 다완으로 정호다완의 유행에 견인차 역할을 한 것으로 유명하다. 이 작품으로 시바다 가츠이에는 유명하게 되었고 하사한 오다노부나가의 존재도 재인식되었다. 또한 무었보다도 정호다완이 정치적인 목적으로 이용된 도구로써 중시되었다는 실증품이기도 하다. 이후 후지다(燈前)家에서 소장할 당시 다완을 세정하였다고 전해져 오늘날 靑井戶로서는 이색적으로 밝은 빛을 띄고 있다.
●육지장(六地藏) (Fig.月刊 茶道 2000. 5월호 p.20)
고보리(小堀遠州)가 애장하던 다완으로 로쿠지조우(六地藏)에서 발견하여 이름지어졌으며 古井戶의 대표적인 다완으로 유명하다.
大井戶에 비해 크기가 작으나 몸체의 색조합과 손자국, 그리고 유약의 응결이 自然景을 연출하는 우수한 작품이다.
- 이상 月刊 茶道 2000. 5월호(창간호)에서 발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