맨 땅에 헤딩하기
자연과 인간이 함께 어우러져 모든 것들이 순환할 수 있는, 그리하여 생활 양식과 생산 양식이 주변 자연 생태계와 조화될 수 있는, 그리고 궁극적으로는 공동체적 삶을 추구하는 생태마을을 만들어 보고자 10여 가족이 모였다. 1년 넘게 준비해 온 간디 생태마을(안솔기 마을)에 그 동안 꿈꾸어 오던 우리 가족의 보금자리를 짓기 위해 지난해 11월 배낭 하나 달랑 둘러매고 이곳 둔철산 자락으로 혼자 단순 무식하게 내려오면서 맨 땅에 헤딩하기가 시작되었다.
그 동안 아내와의 많은 논의 끝에 통나무집을 짓기로 결정한데는 두 해전 강원도 횡성의 한국통나무학교 교육을 받아 두었던 것이 큰 역할을 했었던 것 같았다. 그리고 집짓기를 구상하면서 나름대로 몇 가지 원칙을 세웠다.
첫째는 외관이나 구조가 단순해야 하고, 둘째는 집이 절대로 사람을 압도해서는 안되며, 셋째로는 주변의 자연 경관에 거슬리지 않아야 한다고 생각했었던 것이다.
그리하여 설계된 집은 방 3개와 부엌겸 거실로 구성되어 전체 면적 17.5평에 화장실은 수세식은 설치하지 않기로 한 마을 자치 규약에 따라 집 마당 한 편에 재래식으로 짓기로 큰 틀을 잡았다.
추위가 시작되긴 했지만 다행히 시골집 골방 하나를 거저 얻어서 초라하게나마 베이스 캠프를 차릴 수가 있었다. 하지만 첫날 아궁이에 불을 피워보니 방바닥 여기저기서 연기가 새어나와 도저히 잠을 잘 수가 없어 아예 불을 피우지 않고 냉방에서 숙식을 해결하기로 했다.
맨 먼저 엔진 톱을 들고 잡목부터 자르면서 생태마을에서의 첫 집짓기가 시작되어 괜찮은 나무는 옮겨 심어가며 정리를 하고는 굴삭기를 이용해서 기초 터닦기를 하였다. 통나무 골조는 한국통나무학교 교육과정의 실습용으로 제공하여 교육생들과 함께 작업하므로써 인건비를 제법 절감할 수가 있었으며 더욱이 여러 통나무집 형태 중에서 시공비가 가장 저렴한 Post & Beam 방식을 택했기 때문에 전체 건축비를 좀 더 줄일 수가 있었다.
통나무학교에서 완성된 골조는 다시 해체하여 산청으로 운반해서 집터에 재조립을 하였다. 이는 전통 한옥처럼 못이나 볼트 등을 전혀 사용치 않기 때문에 가능할 수가 있었다. 이곳에서의 골조 조립과 함께 지붕이며 벽체 공사는 통나무학교 교장 선생님과 강사 분들이 직접 내려와 약 일주일간의 작업 끝에 마무리되었다. 자연과 인간을 사랑하는 통나무학교의 이념이 이곳 생태마을의 생각과 맞아떨어진 까닭에 강추위와 폭설 속에서도 모든 작업이 순조로울 수 있었던 것 같았다.
난방은 기름 나무 겸용 보일러를 설치하였는데 실제로 지난겨울 기름은 거의 사용치 않고 나무로만 사용했는데 전혀 불편함 없이 난방 효과도 뛰어났다. 특히 점화시 소량의 기름이 유입되어 방안에서도 자동으로 켤 수가 있어 나무에 불을 직접 붙여야 하는 번거로움을 덜 수 있었다.
물도 낭비하면서 환경을 훼손하는 복합 오염의 주범인 수세식 화장실 대신에 지은 재래식 화장실은 그야말로 혼자 구상하고 혼자 작업했다. 자재는 집 짓고 남은 통나무와 2×4각목, 그리고 합판을 이용하였으며 대소변이 분리되도록 발판 아래에는 대형 플라스틱 물통을 두 개 놓았다. 화장실 안에는 산에서 긁어모은 부엽토를 준비하여 볼 일 본 후 한줌씩 뿌려 냄새도 제거하고 자연 발효도 잘되도록 하였다. 그리고 볼 일 보면서도 주변의 수려한 자연 경관이 잘 보이도록 벽체 윗부분은 뚫린 상태로 두었다.
이렇게 화장실 공사를 끝으로 한겨울 꽁꽁 언 맨땅에 헤딩하기를 끝냈다. 우리 가족이 이사한 지 넉 달이 되어가는 지금, 가족들 모두 잘 적응하고 있는 듯하다. 특히 산으로 계곡으로 뛰어 다니며 노는 아이들을 보노라면 자유로운 들꽃 같아 보여 마음이 더욱 흐뭇해진다. 그리고 나도 이젠 이 산 속을 벗어나 산다는 건 내 몸이 허락하지 않을 듯 싶다.
끝으로 어렵게 지은 집이라 해도 결코 우리 가족만의 집이라고는 생각하지 않는다. 누구라도 와서 편히 쉴 수 있는 모든 이들의 집이기를 간절히 바래본다. 애초에 모든 것들이 모두의 것이기에….
최세현/행복회야마기시회 소식지에서 발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