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준성 칼럼]삶의 무게는 얼마나 될까?
얼마 전 후배를 포함한 지인들과 차를 마실 기회가 있었다. 잠시 세상사는 이야기가 오고 가고 자연스레 자식 얘기 등 가정사로 이어졌다. 직장 못 구한 아들 이야기, 맡겨 논 외손자를 보는 애로사항, 자식 시집 장가보낼 걱정, 그들과 겪는 갈등과 고민 등등. 거기에 노후문제까지. 농반진반 속어로 ‘머리에 지진 나는 얘기’들을 푸념 섞어 하고 있는데 후배가 한때 유행했다며 이런 유머를 던져 모두 공감의 실소(失笑)를 자아냈던 기억이 있다.
“잘난 아들은 국가의 아들, 돈 잘 버는 아들은 사돈의 아들, 빚진 아들은 내 아들” “사춘기가 되면 남남이 되고 군대에 가면 손님, 장가가면 사돈” “아들 낳을 땐 1촌, 대학에 가면 4촌, 군대 다녀오면 8촌, 장가가면 사돈의 8촌, 애 낳으면 동포, 이민가면 해외동포”
“요즘 미친 여자란? 며느리를 딸로 착각하는 여자, 사위를 아들로 착각하는 여자, 며느리 남편을 아직도 아들로 착각하는 여자” 최근 부모 자식 간 시니컬한 관계를 우스갯소리로 패러디해 놓은 것이지만 씁쓸한 여운을 남기기에 충분했다.
그날 만난 후배와 지인들은 아직 자식에게 받는 어버이날 대접이 어색함을 느낀다는 나이다. 그러나 자신의 의지와 관계없이 어느새 유머가 우리의 얘기라고 공감하는 세대로 변했다. 사회에선 낀세대(1948~1954년생·만 59~65세)와 베이비부머로 분류돼 관심조차 받지 못하며 서글픔을 가슴에 묻고 살아가는 그런 나이가 된 것이다.
현재 우리나라에 346만여명의 낀세대와 720여만명의 베이비부머(1955~1963년생·만 50~58세)가 있다고 한다. 전체인구의 22%가량이다. 이들은 가장으로서 부모를 부양할 책임을 가지며, 자식을 양육해야할 의무를 가져야하는 이 시대의 아버지 어머니들이다. 하지만 사회구성원으로서 정열적으로 몸바쳐 일하던 직장에서 물러나 이 같은 의무와 책임을 이어가기란 그리 녹록치 않다. 세대의 특성상 누구의 도움 없이 노후를 스스로 준비해야 하는 첫 세대여서 더욱 그렇다.
서울대 노화·고령사회연구소와 한국갤럽이 조사해 지난 2일 발표한 ‘한국 예비노인 패널 연구보고서’를 보며 그들의 어깨에 얼마나 무거운 인생의 짐이 얹혀져있는가 다시 한번 실감케 된다. 베이비부머만 보자. 2년 전 조사에 이어 두 번째인 이번 조사에서는 당시 받은 3천275명을 추적 조사하는 방식으로 진행됐다. 그 결과, 삶의 질은 더욱 악화됐다. 소득은 줄었지만 자녀 교육비와 노부모 부양 부담은 오히려 늘어났다. 특히 그들의 성인 자녀 취업률은 35%에 불과하고, 4명 중 1명은 손자 양육에 시달리고 있다. 자녀 양육·교육비도 1차 때보다 27%, 보건의료비 지출은 12% 증가했다. 때문에 여가비와 부채상환비 지출은 각각 14%, 3%가량 감소한 것으로 나타났다. 부모의 건강 악화나 사망, 자녀의 취업과 출산 등이 많았다는 증거다.
이로 인해 은퇴 준비는 엄두도 못 낸다고 한다. 그런가 하면 성인 자녀가 있는 베이비부머의 약 80%가 그들과 동거하고 있고, 평균 20대 중반인 성인 자녀의 취업 비율은 35%에 불과해 베이비부머 세대의 부양 부담이 더욱 큰 것으로 집계됐다. 손자녀가 있는 베이비부머는 4명 중 1명꼴로 손자녀 양육에 참여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특히 이들 중 8.2%는 1주일 평균 43시간을 손자녀 양육에 들이고 있었다. 베이비부머의 70.8%는 부모세대가 생존해있는 것으로 조사됐다. 노부모세대가 생존해 있는 이들의 68%가 노부모에 경제적 지원을 제공하고 있다.
예비노인이라는 낀세대도 상황은 마찬가지다. 오히려 노년기에 근접했음에도 불구하고, 노부모와 독립 전의 자녀에 대한 부양부담이 더 큰 것으로 나타났다. 5명 중 2명은 노부모 세대가 생존해 있고, 3명 중 2명은 손자녀가 있다. 90%가 자녀 고등교육 학비를, 58%가 결혼준비비용, 36%가 신혼집 마련비용을 ‘거의 전부’ 혹은 ‘상당부분’ 제공한 것으로 조사됐다. 은퇴준비는 98%가 미흡하다고 한다. 사정이 이러하니 그들에게 경제적 가족관계적 고민과 불안이 없다면 오히려 이상할 정도다. 오죽하면 결혼 생활 역시 만족스럽지 못했고 결혼 불만 비율은 51%, 이혼 고려 비율도 30%가 웃돈 것으로 조사됐겠는가. 달아주는 카네이션을 보며 삶의 무게를 다시 한번 생각해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