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관악기의 이야기를 이제 빠짐없이 다루게 되었다. 화려하고 섬세한 플루트와 따스한 듯 단단한 오보에, 구수하고 인자한 바순에 이어 이번 달에는 ‘오케스트라의 팔색조’라 불리는 클라리넷을 소개한다. 다채로운 음색으로 많은 이들이 사랑하는 악기이다.
임상우 | 부수석 | 이창희 | 단원 | 정은원 | 단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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넓은 음역을 오르락내리락하며 애호가의 귀를 즐겁게 하는 클라리넷. 다른 목관악기들에 비해 비교적 ‘젊은’ 악기이지만 많은 작곡가들의 상상력을 자극하기에 부족함이 없다. 그래서일까, 모차르트도 변화무쌍한 이 악기를 무척이나 사랑했다고 한다. 서울시향 임상우 부수석, 이창희, 정은원 단원이 풀어내는 클라리넷의 속이야기를 들어보았다.
사람들에게 클라리넷에 대한 느낌을 물어보면 ‘밝고 유쾌하다’와 ‘어둡고 침울하다’, ‘뺀질뺀질한 멋쟁이같다’와 ‘침울한 시인 같다’는 답이 동시에 나옵니다. 이유가 뭘까요?
임상우 클라리넷은 다른 악기보다 표현력이 월등하죠. 그래서 때마다 보이는 느낌이 다른 것 아닐까요? 아니면 반대로 연주자들이 팔색조의 매력을 가지고 있는 거일 수도 있겠네요.
정은원 다채로운 표현력이 역시 한 몫하는 거겠죠. 목관악기 중에서는 가장 ‘개구지고’ 익살스러운 표현을 잘 하는 악기가 아닐까 싶어요.
지금 쓰고 계신 악기를 소개해주세요.
임상우 제 악기는 ‘뷔페 크랑폰(Buffet crampon)’이라는, 1825년 창업한 프랑스 회사의 악기로 그중에서 ‘토스카’라는 모델과 ‘빈티지’라는 두 가지 모델을 쓰고 있습니다. 한국인으로는 최초로 저를 그 회사 아티스트로 선정해 준, 세계최고의 클라리넷 업체이기도 해요.
정은원 제 악기도 Bb, A, E 조 모두 뷔페에요. 몇 번 바꿔보려고 했지만 지금의 내 악기보다 좋은 소리를 내는 악기는 찾기 힘든 것 같아요.
이창희 저는 A와 Bb조는 뷔페를 쓰고 C조 악기로 러블랑이 있어요.
어떤 재질로 만드나요.
임상우 보편적으로 흑단이라는 나무로 만들어요. 나무 중심부의 검고 단단한 부분으로 만듭니다. 요즘에는 여러 가지 다른 재료들로 만들기도 하구요. 요즘에는 나무가 갈라지는 취약점을 보완하기 위해서 미세하게 분쇄한 흑단을 고압으로 압축해 만드는 클라리넷도 생겼어요.
이창희 장미목, 자단, 코코블로로도 만들고 있구요.
정은원 대부분 나무로 만들지만 비전공자를 위한 플라스틱 클라리넷도 있어요.
클라리넷 악기 회사 중에서 뷔페는 ‘뷔-’, 셀머는 ‘쎄-’하는 소리가 난다는 농담을 들었습니다. 맞는 얘기인가요.
임상우 (웃음) 처음 듣는 이야기네요. 하지만 어떤 느낌인지는 알겠어요. 뷔페는 소리가 평범하고 무난한 편인 반면 셀머는 개성이 참 강하거든요. 뷔페는 그래서 음색을 다양하게 만들 수 있지만, 셀머는 매력있는 그만의 한 가지 색에 집중할 수 있죠.
정은원 셀머로 대학입시를 보고 야마하로 대학생활을 보냈으며 유학을 가서야 뷔페를 쓰기 시작했어요. 어둡고 점잖으며 목가적인 셀머에 대한 향수가 사실 아직도 있어요. 하지만 미세한 기술적 부족함 때문에 오케스트라에는 역시 뷔페를 선호하게 되는거 같아요.
이창희 소리의 차이는 또, 독일식(웰러)과 프랑스식(보엠)으로 나뉘어요. 독일식도 독일의 맑은 소리와 오스트리아의 굵고 따스한 소리로 분류 되구요.
클라리넷 구조
단원들의 악기를 시작한 계기를 물었다. 그 내력은 다양했다. 예상외로 어려서부터 시작한 경우는 드물었으며, ‘곁길’로 시작했거나 심지어 고등학생이 되어서야 시작하기도 했다.
클라리넷을 어떻게 시작하셨나요.
임상우 중학교 1학년 겨울방학 즈음이었나, 당시 다니던 교회의 성가대에서 클라리넷을 하는 형이 연주하는 걸 보고 부모님께 하고 싶다고 졸라서 시작했어요. 초등학교 때부터 리코더와 단소를 자유자재로 다뤘고, 관악기에 관심이 많이 있었거든요.
이창희 원래 플루트를 했는데 서울예고 입학시험 바로 한 달 전에 악기를 바꿨어요. 플루트의 지원자가 워낙 많고 수준이 높아서 전공을 바꿨죠(웃음).
정은원 일반여고를 다녔어요. 미모의 음악 선생님이 한분 계셨는데 생전 처음 보는 악기를 꺼내셔서 연주하는 데 바로 반했지요. 클라리넷과의 첫 만남이었어요. 그대로 부모님을 설득해서 시작하게 되었어요.
다른 악기들과 달리 악기를 두 대씩 준비해야 한다고 하던데요. (B플랫과 A) 반음 차이나는 악기가 두 개 있으면 여러 가지 조의 작품을 연주하는 데 더 편하기는 다른 목관악기도 마찬가지일텐데, 클라리넷만 특히 이렇게 하는 이유가 있나요.
임상우 클라리넷은 역사가 그렇게 깊지 않은 악기기 때문에 지금도 계속 개량 중이에요. 보편적인 악기가 Bb조의 악기죠. 하지만 이 악기만으로는 조에 따라 표현하는데 기술적으로 한계가 있기 때문에 오케스트라에서는 A조 클라리넷을 같이 쓰고 있어요. C조 악기도 있는데 음정이 불안정해서 자주 사용하지는 않습니다.
이창희 현재도 G, F, Eb, D, C, Bb, A조 악기는 아직 사용되고 있어요.
클라리넷의 형제악기이자 크고 소리가 낮은 ‘베이스 클라리넷’에 대해서도 간단히 설명해주세요.
이창희 Bb 악기보다 한 옥타브 낮게 나고 특히 낮은 소리의 음폭이 넓어서 풍부한 소리가 나요.
임상우 베이스클라리넷은 크기와 음정이 두 배로 낮고 큽니다. 마우스피스와 리드도 역시 그렇구요. 보통음역에서는 클라리넷의 음색을 가지고 있죠.
정은원 겉모습만 보면 클라리넷보다 둔해보일지는 몰라도 조심스럽게 연주하지 않으면, 이른바 ‘삑사리’가 나기 쉬워요. 손가락도 많이 벌려야 하고 호흡도 더 많이 필요하기 때문에 베이스클라리넷을 연주해야 하는 날에는 식사도 더 든든히 하는 편이에요. 외국에서는 클라리넷과 베이스클라리넷을 각각 따로 뽑을 정도로 중요도가 커요. 유명 솔리스트도 많고 레퍼토리도 다양하구요.
오보에나 바순과 달리 클라리넷 연주자들은 리드 깎기에 시간을 덜 들여도 된다고 들었습니다. 파는 걸 골라서 끼워도 된다고 하던데, 그래도 자신의 리드를 깎기도 하나요.
임상우 클라리넷은 마우스피스에 한 장의 리드를 사용하는데요. 요즘은 회사별로 무수히 많은 종류와 퀄리티의 리드가 시중에 나와 있어 대부분의 연주자들은 그것을 사용합니다. 물론, 판매되는 리드들도 연주자가 다시 다듬고 숙성시켜서 연주 가능한 리드를 만들어야 합니다. 그 과정 또한 무시할 수 없이 연주자에겐 예민한 부분이구요. 작은 리드 한 장에 의해 표현의 한계가 정해지니까요.
이창희 파는 리드를 많이 사용하는 게 사실이죠. 하지만 저는 파는 리드가 마음에 들지 않아 직접 통케인(리드의 원료가 되는 갈대)을 사서 만들어 사용하고 있어요.
정은원 예전에는 직접 깎아서 사용했는데 지금은 그냥 파는 것을 사용하고 있어요. 파는 것이라도 나에게 맞게끔 조금은 깎고 다듬어야 내가 원하는 리드가 나오게 되죠.
오보에나 바순은 리드를 끈으로 꽁꽁 묶는데, 클라리넷은 여러 재질과 모양을 가진 ‘조리개’로 조이죠. 그 조리개에 따라서도 소리가 미묘하게 달라진다고 들었는데요.
임상우 조리개(리가추어)는 리드를 마우스피스와 연결시켜 조이는 부분입니다. 리드와 마우스피스와의 울림을 결정하는 중요한 매개체이죠. 종류도 아주 다양해서 연주자마다 선호하는 스타일이나 음색에 따라 다른 것을 사용해요.
정은원 끈, 가죽, 금, 은 등 재질도 다양해요. 그 각각의 소리도 다른 것 같구요.
이창희 조리개도 그렇지만, 마우스피스의 차이도 커요. 조리개의 차이는 사실 미미한 편이지만, 본인에게는 크게 다른 걸로 느껴지죠.
클라리넷은 색소폰과도 비슷한 점이 많다고 들었는데, 어떤 점이 비슷한가요. 클라리넷 연주자들은 색소폰을 쉽게 불 수 있나요.
이창희 리드가 양쪽 모두 한 장으로 된 ‘홑리드’이고 마우스피스에 닿게 장착하니 소리내기가 비슷해요.
임상우 두 악기는 마우스피스의 크기, 모양, 치수만 다를 뿐이지요. 그렇기 때문에 모든 클라리넷 연주자가 색소폰을 연주할 수 있다고 봐야죠. 물론 바로 수준급의 연주는 무리겠지만.
정은원 몇 해 전에 연주한 현대곡이었는데, 연주 중에 클라리넷 연주자가 색소폰도 연주하게끔 작곡된 곡이 있었어요. 처음에는 당황했는데 색소폰의 기본 운지법 책을 사서 독학한 후에 연주를 무사히 마쳤죠.
2013 서울시향 공연 중 클라리넷 연주 장면
다양한 느낌을 전해주는 악기 클라리넷이지만 그 한계도 있을법하다. 그에 대한 대비 방법을 물었다.
클라리넷이라는 악기가 가진 원천적인 한계 또는 어려움은 뭘까요.
이창희 현대 연주기법이 워낙 발달해서 한계가 어디까지인지도 잘 모르겠어요(웃음).
임상우 최고의 소리를 내기 위해서 세부적으로 준비해야 할게 참 많아요. 내부를 매번 다듬고 튜닝작업도 따로 해야하고 정기적인 수리는 물론이구요. 마우스피스 모델과 리드 상태에 따라서도 다른 소리가 나기 때문에 항상 최상의 악기 컨디션을 유지해야 해요.
그럼에도 저항할 수 없는 클라리넷의 매력은?
정은원 앞에 얘기가 나왔지만 역시 다양함이죠. 정 많고 편안하게 다가오기도 하고 익살스럽고 장난기 가득한 소리를 내기도 하고 많은 색깔을 가지고 있는 악기에요.
임상우 ‘클라리넷은 오케스트라의 팔색조다’라고 말씀드리고 싶네요. 서정적인 부분에서는 그 어느 악기보다 달콤하게 노래하고 튀어야 할 때는 능청스럽게 앞으로 나설 줄도 알구요. 어두운 부분에서는 구슬프게 울 줄도 알아요. 기괴한 분위기에서는 다이나믹한 분위기를 연출해내는 것도 능숙하죠. 다양한 색깔을 주도적으로 이끌어 갈 수 있는 것이 클라리넷의 가장 큰 매력 아닐까요.
어떤 부분을 연주할 때 가장 즐거운가요?
정은원 퍼스트와 세컨드가 화성으로 연주할 때 두 클라리넷이 공명되서 퍼지는 울림은 굉장히 아름다워요.
임상우 아름답게 솔로를 연주할 때가 가장 기분이 좋아요. 클라리넷 솔로를 위해 오케스트라가 받쳐주고 그 하모니 위에 노래하는 순간이야말로 연주자가 누릴 수 있는 최고의 순간이라고 생각합니다. 라흐마니노프 교향곡 2번 3악장의 도입부가 그런 경우이죠. 2월 14일 공연인 ‘로맨틱 라흐마니노프’에서 보여드릴 수 있겠네요(웃음).
마지막 질문입니다. 가장 좋아하는 클라리넷 연주곡은 어떤 곡인가요.
이창희 브람스의 곡을 좋아합니다. 소나타, 3중주, 5중주요.
정은원 저도 브람스의 클라리넷 곡들은 전부 좋아해요. 특히 3중주나 5중주는 연주 중에도 눈물을 흘릴뻔한 적도 있어요. 언제 들어도 마음 속 깊이 와 닿는 곡이에요.
임상우 사실 특별하게 좋아하는 클라리넷 곡은 없습니다. 곡마다 매력들이 다 다르니까요. 정통 클래식보다는 재즈나 빅밴드 음악쪽에 더 취향이 있는 편이죠. 베니 굿맨, 리차드 스톨츠만 같은 클래식과 재즈를 동시에 섭렵한 연주자를 좋아해요.
발행 2014년 2월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