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비암을 벗어나 아름다운 숲길을 30 여 분 걸어 가면 성전암이 나온다고 한다.
파계사 산내 암자인 성전암은 영조때 지어진 건물로 현응 대사가 거처하였던 곳이다.
'聖人이 머무는 암자' 라 하여 '성전암'으로 명명 되었다는 데 여기서 성인이란 현응 대사를 말한다.
이후 성철스님이 철창을 쳐놓고 외부인 출입을 통제하며 수도했던 곳으로 유명하다.
몇 년 전까지는 철옹스님이 사시던 곳이고 ,지금은 파계사에서 선방으로 사용하고 있다.
우리가 성전암에 들어서자 마자 여러 보살들이 수박을 내어 놓으시더니,
쑥떡에다 바나나까지 주셔서 30 여분이나 가파른 산길을 땀을 팥죽같이 흘리며 기진맥진 올라 온
우리들은 시원한 수박도 맘껏 먹고, 떡으로 포식을 하고 그늘에 한참을 쉬어 원기회복을 하였다...
성전암 종무소의 아름다운 전서체로 된 주련 은 대안거사 안광석의 글씨라고 하며
그 내용은 율곡 이 이의 산중 이라는 시라고 한다
山中
---이 이---
채약홀미로(菜藥忽迷路) 약초 캐다가 문득 길을 잃었는 데
천봉추엽리(千峰秋葉裏) 봉우리마다 단풍으로 물들었네
산승급수귀(山僧汲水歸) 산속의 스님 물을 길어 돌아가니
임말차연기(林末茶烟起) 숲끝에서 차 달이는 연기가 피어나네
현응선림은 2007년 불에 탔다가 2010년 새로 지었다고 한다.
현판 글씨는 회산 박기돈의 글씨이며 주련글씨는 소헌 김만호가 썼습니다.
출입금지라 멀리서 망원렌즈로 당겨 찍어도
주련을 확실하게 찍지는 못 하여서 퍼 왔습니다.^^
千峯盤窟色如藍(천봉반굴색여람) 천 봉우리 깊은 골짜기 쪽빛 같이 푸르른데
誰謂文殊是對談(수위문수시대담) 그 누가 말하리 문수보살을 만나 이야기 했다고
堪笑淸凉多少衆(감소청량다소중) 우습구나! 청량산 대중이 얼마냐고 하니.
前三三與後三三(전삼삼여후삼삼)
전 삼삼 후 삼삼이라 하네.
威踏毘盧頂상(위답비로정상) 비로자나 부처님의 정수리를 위엄있게 밟고
行拜童子足下(행배동자족하)
남순동자의 발아래에서 절을 올리네.
왼쪽 계단위 관음전으로 올라갔다.
관음전 현판과 주련은 해서체로 모두 소헌 김만호 선생이 썼다.
성전암 관음전 주련
霜風括地掃故荄(상풍괄지소고해) 서리바람 땅에 가득불어 마른풀뿌리 휩쓸지만
誰覺東君令已廻(수각동군영이회) 봄바람 벌써 온 걸 그 누가 알리오.
唯有嶺梅先漏洩(유유영매선누설) 고갯마루 매화만이 그 소식 먼저 알리려고
一枝獨向雪中開 (일지독향설중개) 눈 속에 가지하나 홀로 피었다.
아름다운 문살 문양
다시 내려와 현응선림 뒷쪽으로 돌아가니 적묵실이 보인다.
적묵실은 한 때 성철스님이 거처하시던 5평도 채 안 되는 작은 방이다.
적묵실의 현판은 경오년(1990년)에 소헌 김만호가 해서체로 썼다.
적묵실의 주련도 소헌 김만호의 글씨다.
丈夫自有衝天氣(장부자유충천기) 장부는 스스로 하늘을 찌르는 기운이 있거니
不向如來行處行(불향여래행처행) 부처가 가는 길은 가지 않는도다.
무슨 뜻인 지 몰라 찾아보니
'수행자가 참 된 해탈을 성취하면 그 때부터는 부처도 필요없고,조사도 필요없는 大自由이다.
내 길,내가 갈 길이 분명히 다 있는 데 무었한다고 부처니 조사니 하며 딴 사람이 가는 길을 따라 가느냐'
는 글이란다.
성철 스님은 1955년 동안거 부터 1963년 동안거까지 성전암에 머물렀는 데
부산의 한 고물상에서 사 온 철조망으로 성전암 주위를 완전히 둘러쳤다.
" 철조망으로 둘러쳤으니 이제는 완전히 갇힌겁니다"
" 아니지, 자물쇠가 안쪽에 있으니 갇힌것은 반대 쪽이네"
시자와 스님의 대화이다.
철조망을 친 뜻은 들어오려는 사람을 막는 동시에 나가는 일도 하지 않기로 한 의미 있는 작업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