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발 ‘명량’ 태풍이 태평양을 건너와 위세를 떨치고 있다. 화제의 이 이순신 영화가 광복절 날 개봉된 시애틀에선 한동안 영화관에 갔다가 표가 매진돼 헛걸음 친 한인들이 수두룩했다. 전에는 없었던 현상이다. 시애틀과 페더럴웨이 영화관에 관객이 몰리자 타코마와 오리건주의 포틀랜드에서도 상영키로 했단다. 역시 전대미문의 ‘명랑’한 소식이다.
명량의 미국 홈런흥행에 깜짝 놀란 헐리웃이 돈이 되겠다며 ‘미국 판 명량’을 만들지 모른다. 엉뚱한 생각이라고 하겠지만 생뚱맞지는 않다. 히트한 외국영화를 헐리웃이 리메이크해서 더 크게 히트시킨 영화가 부지기수다. 독일영화 ‘트랩 음악가족’을 개작한 ‘사운드 오브 뮤직’이 그렇고, 일본영화 ‘7인의 사무라이’를 리메이크한 ‘황야의 7인’이 그렇다.
그런데, 헐리웃 판 명량의 이순신 역은 보나마나 최민식이 아니다. 러셀 크로우나 아놀드 슈와제네거 같은 백인 액션스타가 맡는다. 헐리웃 영화사들은 동양인 역을 동양인배우에 맡기지 않고 백인배우를 동양인으로 분장해 쓴다. ‘쿵푸’ 영화 시리즈에서조차 폼이 엉성한 백인 데이빗 캐라딘을 캐스팅했다. 물론 이소룡이나 성 룡 같은 예외도 있긴 있다.
거의 30년전 ‘리모 윌리엄스 모험의 시작’이라는 액션영화를 봤다. 사망자로 위장돼 비밀임무에 투입된 뉴욕의 민완형사가 ‘신안주’라는 한국 전통무술의 고수인 지은도사에게 일대일 특수훈련을 받는다. 물위를 뛰어가고, 날아오는 총탄을 피하고, 언덕에서 굴러 떨어진 차 안에서 상처 하나 없이 멀쩡한 지은 역을 백인 조엘 그레이가 맡아 뿔대가 났었다.
백인배우가 동양인 주역을 맡은 대표적 영화로 ‘나비부인’(1915)과 ‘대지’(1937)가 꼽힌다. 나비부인의 ‘초초 산’역은 매리 픽포드가 맡았고, 대지의 남녀 주인공역은 직전 해 오스카 시상식에서 남녀 주연상을 받은 폴 무니와 루이스 레이너가 맡았다. 근래 중국인 탐정 ‘찰리 찬’ 영화와 중국인 악당 ‘푸 만추’ 영화 시리즈도 백인배우들이 주역을 맡았다.
카우보이 존 웨인은 역사활극 ‘정복자’에서 몽골인 진기스칸 역을 맡았고, ‘대부’의 수퍼스타 말론 브란도는 ‘8월 보름의 찻집’에서 오키나와 미군기지촌의 일본인 마당쇠로 나와 웃겼다. 미키 루니도 ‘티파니에서 아침을’에서 얼뜨기 중국인 셰프로 출연했다. 앤소니 퀸, 셜리 맥클레인, 캐서린 헵번, 알렉 기네스 등 톱스타들도 동양인 주‧조연 역을 맡았었다.
백인배우들은 동양인처럼 보이려고 ‘옐로페이스’라는 화장품을 얼굴에 바르고, 동양인배우들은 더 동양인답게 보이려고 눈꼬리를 치켜 올려 분장한다. 헐리웃 최초의 동양계 배우였던 고 필립 안(안창호 선생의 아들)이 그런 분장의 효시였다. 옐로페이스를 바르고 눈꼬리도 치켜 올린 조엘 그레이(지은 도사)는 그해 글로브상 분장부문 후보로 지명됐었다.
지난주 옐로페이스가 새삼 논란을 빚었다. 시애틀 레퍼토리 극장에서 공연된 뮤지컬 ‘미카도’(The Mikado)에서 일본인 역을 맡은 출연배우 40명이 모두 백인이었기 때문이다. 영국의 길버트-설리번 콤비가 꼭 130년전 작사 작곡한 미카도는 일본의 가상 섬 티티푸에서 미카도 왕과 난키푸 왕자 및 그의 연인 얌얌 등이 벌이는 엎치락뒤치락 코믹물이다.
시애틀 길버트-설리번 극단의 이번 미카도 공연은 통산 10번째다. 올해 옐로페이스가 새삼 논란된 것은 시애틀타임스의 중국계 논설위원 샤론 피안 챈이 물고 늘어졌기 때문이다. 그녀의 비판 칼럼이 전국적인 반향을 불러일으켰다. 극장 앞에는 일본시민연맹(JACL) 시위대가 진을 쳤다. 시정부 당국과 관련 예술단체들이 참여하는 공개 토론회도 열렸다.
챈의 지적대로 아시아계 주민이 시애틀 전체인구 중 두 번째(14%)로 많은 상황에서 40명분의 동양인 역을 모두 백인이 맡는 건 시대착오다. 이번 옐로페이스 논란을 보면서 한인사회가 후세들을 주류사회 정치계뿐 아니라 연예계와 언론계에도 적극 진출시켜야할 필요성을 절감했다. 그렇지 않고는 ‘최민식 주연의 헐리웃 판 명량’은 결코 기대할 수 없다.
8-23-2014
첫댓글 미국인 배우가 연기를 하더라도 이순신장군의 위업을 헐리웃에서 영화화하면 좋겠습니다. 미국의 주요언론에서 활약하는 김학인 학장님의 두째 아드님같은 분도 옐로 페이스를 빛내주어 자랑스럽습니다.
어떤 의도를 가지고 동양인을 배제시킨 것은 아니었으리라 생각됩니다.
뮤지컬이나 오페라가 대중과 가깝고, 접하는 사람과 그 분야에 진출한 동양인이 많다면
아마 자연스럽게 그 역활중의 하나를 맡아서 했지 않았을까 .. 하는 긍정적 시선도 있을 수 있고,
이런 비판 컬럼으로 인해 , 모든 분야에 좀 더 적극적인 주류 사회로의 진출이 이루어지기를 바라는 마음입니다.
시애틀앤이 안방으로 배달되는 칼럼을 읽고 답글은 여기와서 올립니다. 명량의 옐로페이스 잘 읽었습니다.
'명량' 이 벨뷰에도 상영했으면 좋겠습니다. 수고하셨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