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예상식에서 벗어난 접붙이기 비유(롬 11:11-24)
또한 가지 얼마가 꺾여졌는데,
돌 감람나무인 네가 그들 중에 접붙임이 되어 참 감람나무 뿌리의 진액을 함께 받는 자 되었은즉 그 가지들을 향하여 자긍하지 말라 (롬 11:17-18)
성서를 잘못 읽는 것은 다만 성서에 비전문가인 일반 독자만이 아니라, 성서학도들도 정도의 차이만 있을 뿐, 같은 종류의 실수를 범할 수 있다는 것을 고백하지 않을 수 없다. 뿐만 아니라, 삶의 여러 분야에서 종사하는 여러 분야의 독자들이 제각기 자기 경험을 살려 성서를 읽을 때에는 성서학 전공자들이 미처 보지 못하는 중요한 요소를 보고 본문을 더욱 깊이 의미 있게 읽기도 한다. 그들 중에는 성서 번역자들이 잘못 생각한 것이라든가, 심지어 는 성서 기자들이 적절하지 못한 비유를 사용한 것까지도 지적하는 혜안을 가지고 있다. 오늘은 그 중에서 하나, 한 독자가 물어 온 질문을 여러 독자들과 함께 들어보고 성서의 어떤 본문이 독자의 이해를 방해하고 있는지 보기로 한다.
로마서 11장 11-24절을 보면, 바울이 이방 사람의 구원에 관하여 말하면서 돌 감람나무 가 참 감람나무에 접붙여 참 감람나무가 된다는 비유를 사용하고 있다. 하나님이 일찍이 선택하셨던 이스라엘은 참 감람나무이고, 선택에서 제외된 이방 사람은 돌 감람나무인데, 돌 감람나무가 참 감람나무에 접이 붙어 참 감람나무가 될 때, 그 접이 붙은 돌 감람나무 가지 가 본래부터 참 감람나무였던 가지들을 보고 우쭐대는 일이 없어야 한다는 것이다. 돌 감람 나무가 참 감람나무가 되었다고 교만한 마음을 품고 두려워하는 마음이 없다면, 그 본래의 참 감람나무 가지를 잘라내시고 돌 감람나무 가지를 접붙이신 하나님께서는, 자신이 접붙이신 그 가지라 하더라도 그 교만한 돌 감람나무 가지를 가차없이 다시 잘라내 버리실 수도 있다고, 바울은 경고한다.
비록 지금은, 참 감람나무 가지였던 이스라엘 사람 가운데 얼마가 이 본래의 제 나무에서 잘리어 있지만, 전혀 다른 나무였던 돌 감람나무 가지도 제 본성에 거슬러 참 감람나무에 접 붙을 수 있었는데, 하물며 그 잘려나간 본래의 가지들이 회개할 때 제 본래의 참 감람나무에 다시 접 붙을 수 있게 된다는 것은, 돌 감람나무의 경우보다 훨신 더 쉬울 것이라고 말한다.
이상에서 보았듯이, 이 본문이 의도하는 바를 이해하기란, 일반 독자들에게 그리 어렵지는 않다. 그런데, 문제는, 접붙이는 것에 관한 일반적 상식을 가지고 있는 독자들은 이 비유의 의도는 이해하면서도, 접붙이는 것에 관한 상식에 배치되는 이런 응용에 관하여 의문을 제기하게 되는 것이다. 접을 붙인다고 할 때에는, 바울이 이해한 것처럼, 참 감람나무에 돌 감람나무 가지를 접붙여 돌 감람나무가 참 감람나무가 되게 하는 것이 아니라고 한다. 정반 대로, 돌 감람나무가 좋은 열매를 맺지는 못해도, 그 나무에 좋은 열매를 맺는 참 감람나무의 가지를 접붙이면 그 좋은 가지에서 좋은 열매가 맺는다고 한다.
우리말에 고욤 일흔이 감 하나만 못하다는 말이 있다. 자질구레한 것이 많아도 큰 것 하나를 못 당한다는 말이다. 그러기에 일찍부터 농부들을 고욤나무에 감나무 가지를 접붙여, 고욤나무에서 감이 열리게 하는 일을 해 왔던 것이다. 감나무에 고욤나무를 접붙여 감을 얻는 것은 아니라고 한다. 감나무에 고욤나무 가지를 접붙이면, 비록 그 가지는 감나무 뿌리에 서 같은 양분을 빨아드려도, 여전히 고욤을 맺지, 감을 맺지는 않는다고 한다. 자질구레한 고욤이 열리는 고욤나무에 좋은 감이 열리는 감나무가지를 접붙여 좋은 감을 얻는 것이다.
이런 원리에서 본다면, 참 감람나무에 돌 감람나무 가지를 접붙인다고 해서 그 가지가 참 감람나무의 열매를 맺는 것은 아니다. 그러니, 이런 비유를 어떻게 이해할 수 있겠는가? 오히려 돌 감람나무에 참 감람나무 가지가 붙어 참 감람나무 열매를 맺는 것이므로, 참 이 스라엘이 이방 사람에게 접이 붙어 이방을 참 이스라엘 되게 했다고 한다면, 모를까.
바울이 말한 것은 원예 기술상 불가능한 비유이다. 농촌 출신인 예수께서 말씀하신 비유에서는 이런 종류의 문제가 없으나, 도시 출신인 바울이, 원예(horticulture)의 한 방법인 접붙이기(grafting)에 관해서는, 구체적인 지식이 없었던 것 같다. 주석들마다, 바울이 의도 한 바를 이해하고 그 의도를 설명하기는 하면서도, 바울의 이 비유가 원예기술상으로는 불 가능한 비유임을 지적한다.
한 권에서만 예를 들어보면 다음과 같다.
"바울이 여기에서 말하고 있는 접붙임에 관한 비유는 이미 오리겐 때부터 문제가 있다고 지적되어 왔다. 서로 다른 두 나무를 접을 붙이는 일반적인 상식과는 정반대의 경우이기 때문이다. 바울은 농촌 출신이 아니고 도시 출신이므로 이런 원예 기술을 비유로 사용하 다가 자신의 지식의 한계를 나타낸 것이라고 본다."
("But the grafting of which Paul speaks here has since the time of Origen been said to be the opposite of what was the normal ancient grafting process. Indeed, it has often been thought that, in using it, Paul betrays his urban background and ignorance of the real horticultural practice." (Joseph A. Fitzmyer, Romans, The Anchor Bible, New York, 1993, p. 6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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