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 머리말
공병우 자판은 1948년에 공병우가 발명한 공병우식 한글 수동 타자기에서 비롯했다. 그 뒤로 공병우 타자기가 수동/전동/전신 타자기와 셈틀을 비롯한 여러 기기에 맞추어 쓰이면서 자판 배열과 기능을 개선해 감에 따라 조금씩 다른 공병우 자판 배열이 여럿 나왔다. 처음에 공병우 타자기는 사무용으로 주로 쓰였지만, 작가나 언론인의 타자기 수요도 생기면서 문인들에게 맞춘 문장용 타자기으로도 나왔다. 셈틀(컴퓨터)이 흔히 쓰이는 요즈음은 옛한글을 넣거나 장애인도 쓸 수 있게 하는 배열이 나와 있고, 개인들의 취향에 맞추어 고친 공병우 자판도 나오고 있다.주1
공병우 자판의 변형이 자꾸 나오는 것은 자판을 쓰는 이들의 바람이 가지가지이고 공병우 자판의 틀이 다양한 수요에 맞출 수 있을 만큼 유연하기 때문일 것이다. 하지만 너무 많아 보이는 배열 종류는 사람들이 공병우 자판에 다가가기 어렵게 하는 원인도 된다. 이미 공병우 자판을 쓰고 있는 사람도 쓰고 있는 배열이 만들어진 목적을 잘 알지 못하여 스스로에게 맞지 않는 배열을 쓰기도 한다. 그래서 이 글에서는 많은 공병우 자판 배열들을 쓰이는 목적에 따라 사무용/문장용/옛한글/아랫글로 나누어서 견주어 살피려 한다. 여러 공병우 자판 배열들의 설계 목적과 특성을 잘 알고 골라 쓴다면, 공병우 자판이 여러 배열이 함께 쓰이면서 나타나는 부작용을 줄일 수 있을 것이다.
1. 사무용 자판
1950대 초부터 널리 쓰이기 시작한 공병우 타자기는 그림 1-1처럼 처음에는 드물게 쓰이는 겹받침(ㄽ, ㄾ, ㄿ 따위)뿐만 아니라 첫소리에 된소리(ㄲ, ㄸ, ㅃ, ㅆ, ㅉ)까지 따로 들어갔다. 이는 뒤에서 살필 문장용 자판에 가까운 특징이어서 초창기 공병우 타자기는 주로 사무용으로 쓰였지만 문장용 자판과의 구분이 애매하다. 이처럼 한글 낱자가 많이 들어가면 한글 타자법이 단순해지고 글씨를 고르게 찍기 좋지만, 사무 문서에 쓰이는 기호들을 많이 넣을 수 없다.
한글 타자기가 가장 많이 쓰인 곳은 행정 기관의 사무실이었다. 공병우 타자기 자판은 수요에 맞추어 한글 낱소리 수를 줄이고 사무 문서를 만들 때에 필요한 기호($, ✕, =, :, g, k, l, m 따위)들이 더 들어가는 쪽으로 바뀌어 갔다. 1950년대부터 1990년대까지 나온 공병우식 타자기는 거의가 사무용이었다.
사무용 자판은 셈틀에서 3-90 자판으로 이어졌다. 앞서 나왔던 공병우 자판들은 영문 쿼티 자판과 기호 배열이 매우 달랐고, 영문 자판에 들어간 기호들이 모두 들어가지 않았다. 3-89 자판에 이어 IBM 호환 셈틀의 두번째 일반 보급용 배열로 나온 3-90 자판은 영문 자판에 들어가는 기호들을 모두 담았고, 기호 배열을 영문 자판과 꽤 비슷하게 맞추었다. 그래서 도스 환경에서 영문과 기호가 섞인 명령어를 자주 쳐야 했던 사람들은 3-90 자판을 편리하게 쓸 수 있었다. 요즈음도 엑셀 같은 표 계산 풀그림이나 인터넷 환경에서 한글/영문 상태를 오가며 여러 기호들을 쳐야 할 때가 잦으므로 3-90 자판이 업무용으로 편리하다. 3-90 자판에서 영문 자판과 자리가 다른 기호는 6개(! / ; < > ')이다.
3-2012 자판은 문장용 자판인 3-91 자판의 겹받침/숫자 배열 특징들을 많이 따르면서 사무용 자판인 3-90 자판의 아쉬운 점을 개선하려 한 수정안이다. 3-90 자판에서 홀로 맨 윗줄의 윗글 자리에 올라가 있던 받침 ㅈ을 아랫줄로 내려서 받침 ㅈ과 ㄵ을 치기 좋게 하였다. 3-2012 자판에서 영문 자판과 자리가 다른 기호는 5개(' " : ; /)이다. 문장용 자판에 더 들어가는 기호들(·, ※ 따위)이 기본 배열에 들어가지 못하는 보완책으로 특수기호 확장 배열을 따로 두었다.
이밖에도 뒤에서 아랫글 자판으로 살펴볼 신세벌식 자판도 사무용 자판에 넣을 수 있다. 영문 자판과 자리가 다른 기호는 신세벌식 원안과 박경남 수정 신세벌식이 3개(/ ; ')이고 신세벌 2012 자판이 4개(/ ; ' ")여서 신세벌식 자판이 공병우 계열 자판 가운데 영문 자판과 기호 배열이 가장 비슷하다.주2
3-90 자판, 3-2012 자판, 신세벌식 자판처럼 영문 자판과 기호 배열이 비슷한 사무용 자판은 문장용 자판보다 겹받침이 적게 들어가 있어서 세벌식 자판을 처음 익히는 이가 빠르게 적응할 수 있다.
2. 문장용 자판
한글 타자기는 사무원뿐만 아니라 수필, 소설, 기사를 쓰는 작가와 언론인도 쓰는 기기였다. 그러나 사무용으로 나온 공병우 타자기에는 문인들이 자주 쓰는 기호들이 빠져 있었으므로, 문인들에게 썩 만족스럽지 못했다.
그래서 1970년대에 소설가 정을병은 공병우에게 문인들에게 더 알맞은 자판 배열을 제안하였고, 이를 바탕으로 공병우 문장용 타자기(문인용 타자기)가 나왔다. 문장용 타자기 자판에는 「 」 〈 〉 같은 인용 부호와 가운뎃점(·) 같은 기호들을 더 넣었고, 사무용 자판에서 빠진 겹받침 ㄵ을 넣어서 겹받침을 좀 더 매끄럽게 칠 수 있게 하였다,
문장용 타자기 자판의 취지는 셈틀에서 3-91 자판(공병우 최종 자판)으로 이어졌다. 공병우는 그래픽 기반 운영체제를 쓴 매킨토시 환경에서 연구한 세벌식 자판 배열을 '공병우 최종 자판'이라는 이름으로 1991년에 한글문화원을 통하여 발표하였다.주3 요즘한글에서 쓰이는 모든 겹받침과 열고 닫는 큰따옴표(“, ”)와 가운뎃점(·)과 참고표(※)가 들어갔지만, 업무 문서를 만들 때에 쓰이는 @, #, $, [, ] 따위가 빠져 있다. 이로 미루어 보면, 3-91 자판은 사무용 자판이 아니라 문장용 자판이다.
3-2011 자판은 기호를 더 넣고 기호 배열을 다듬은 3-91 자판의 수정안이다. 드물게 쓰이는 겹받침 3개(ㄽ, ㄾ, ㄿ)와 열고 닫는 큰따옴표를 빼고, 3-91 자판에서 빠진 기호 7개(@, #, $, ^, &, [, ])를 넣었다. 기본 배열에 들어가지 못한 4거({, }, |, `)는 특수기호 확장안에 들어갔다.
3-2011 직결식 자판은 3-91 자판처럼 요즘한글에 쓰이는 모든 겹받침을 넣은 3-2011 자판의 응용안이다. 직결식 처리를 할 수 있는 전자식 타자기 설계를 의식하면서 3-91 자판을 쓰는 이들의 취향을 따르고자 한 배열이다.
문장용 자판은 사무용 자판보다 겹받침이 많이 들어가고 기호 배열이 영문 자판과 많이 다르다. 그래서 한글/영문을 오가며 여러 가지 업무를 보아야 하는 사람이 처음부터 문장용 자판을 쓰려고 하면 어려움을 겪곤 한다. 겹받침이나 참고표 같은 기호들이 많이 들어갈수록 기본 배열에 영문 자판에 있는 기호들이 더 적게 들어가게 되는 문제도 있다.주4 문장용 자판은 영문 자판을 자주 함께 써야 하는 사무 환경에서 누구나 두루 쓰기에 알맞지 않고, 사무용 자판에 이미 적응한 사람이 취향에 맞을 때에 바꾸어 쓸 자판으로 알맞다.
3. 옛한글 자판
옛한글에는 ㆍ, ㅿ, ㆁ, ㆆ, ᄼ, ᄾ, ᅎ, ᅐ, ᅔ, ᅕ처럼 요즘한글에서 쓰이지 않는 낱자들이 쓰인다. 또 ㅺ, ㅸ, ㅵ, ᆜ, ᆉ 같은 겹닿소리도 옛한글에서 쓰인다. 두벌식 옛한글 자판은 매우 다양한 겹닿소리 때문에 치는 이가 알아서 한글 조합을 끊어 주어야 하는 번거로움이 있지만, 첫소리와 끝소리(받침)을 다른 글쇠로 넣는 세벌식 옛한글 자판은 한글 조합을 끊는 일에 신경 쓰지 않고 매끄럽게 옛한글을 쳐 나갈 수 있다.
하지만 모자라는 글쇠 자리 문제는 세벌식 옛한글 자판을 만들 때에 큰 걸림돌이 된다. 세벌식 자판은 받침을 따로 넣으므로 새로운 닿소리를 넣을 때매다 두벌식보다 글쇠 자리가 갑절로 필요하다. 요즘한글에 맞추어진 공병우 세벌식 자판들은 이미 아랫글/윗글 글쇠 자리가 가득 차 있어서 옛한글에 쓰이는 낱자들을 모두 넣을 여유가 없다.
그래서 공병우 자판을 바탕으로 하는 옛한글 자판들은 3-93 옛한글 자판처럼 이미 들어간 숫자/기호를 빼거나 3-2012 옛한글 자판처럼 오른쪽에 있는 홀소리 글쇠를 한글 확장 글쇠로 쓰는 한글 확장 배열을 만들어 옛한글 낱자들을 넣을 글쇠 자리를 마련하고 있다.
3-93 옛한글 자판은 3-90 자판을 바탕으로 한 옛한글 자판이다. 숫자와 몇몇 기호들을 빠지고, 옛한글 낱자 14개와 방점 2개가 들어갔다. 아래아한글을 비롯한 글틀과 옛한글 자판 입력을 지원하는 한글 입력기들이 지원하여 널리 알려진 세벌식 옛한글 자판이다. 숫자와 몇몇 기호가 빠진 탓에 일상 업무에는 쓸 수 없다.
3-2012 옛한글 자판은 3-2012 자판을 바탕으로 만든 옛한글 자판이다.주5 오른쪽에 있는 ㅢ/ㅖ 자리 글쇠를 한글 확장 글쇠로 쓰는 한글 확장 배열을 만들어 더욱 많은 한글 낱소리들을 담게 하였다. ㅢ/ㅖ를 넣을 때에 유의하면 3-2012 자판과 기본 배열이 거의 비슷하고, 기본 배열의 숫자와 기호가 그대로 있어서 사무용으로도 쓸 수 있다. 3-93 옛한글 자판에 들어가지 못한 ᄼ, ᄾ, ᅎ, ᅐ, ᅔ, ᅕ까지 확장 배열에 들어갔다.
미래형 한글문자판 포럼에서는 한국어가 아닌 말을 한글로 나타내려는 확장 한글 연구와 함께 한글 확장 자판 연구도 이루어지고 있다. 하지만 아직은 많은 한글 낱자를 담으면서 당장 쓸 만한 확장 한글 자판안은 나오지 못한 듯하다. 공병우 자판을 바탕으로 한 3-2012 옛한글 자판은 옛한글 자판은 업무용으로도 쓸 수 있고 확장 배열에 더 많은 낱소리를 넣을 여유가 있다. 날개셋을 뺀 다른 한글 입력기로는 구현하기가 까다롭지만, 여러 목적으로 쓰기 좋은 확장 한글 자판의 예비안이 될 수 있을 것이다.
4. 아랫글 자판
흔히 쓰이는 셈틀 자판에 문자를 넣는 일반 글쇠는 47개가 있다. 한글이나 영문 상태에서 일반 글쇠로 넣어야 할 문자 수는 47개를 훌쩍 넘으므로, 글쇠 아래에 찍힌 문자는 바로 일반 글쇠를 쳐서 넣지만 글쇠 위쪽에 찍힌 문자는 윗글쇠(시프트, shift)를 함께 눌러 넣는 방법으로 넣는다.
두 손과 모든 손가락을 자유롭게 쓸 수 있는 사람에게는 이런 나쁘지 않지만, 두 손을 함께 쓸 수 없거나 손가락이 불편한 사람은 윗글쇠를 함께 눌러 넣는 일이 어려울 수 있다. 특히 한 손가락만 쓸 수 있다면 윗글쇠와 일반 글쇠를 함께 누를 수 없으므로, 흔히 쓰이는 문자 입력 환경에서는 윗글 자리에 들어간 많은 문자들이 그림의 떡이 된다. 손이 불편한 장애인과 윗글쇠를 쓰는 입력 방식을 번거롭게 느끼는 사람을 배려하려면 적어도 한글만이라도 윗글쇠를 쓰지 않고 넣을 수 있는 자판 배열이나 입력 방식이 필요하다.
순아래 자판은 1990년에 안종혁이 3-90 자판을 바탕으로 만든 아랫글 자판이다. 순아래 자판에는 3-90 자판에서 윗글쇠를 함께 눌러 넣는 받침 ㄷ, ㅈ, ㅊ, ㅋ, ㅌ, ㅍ과 홀소리 ㅒ가 오른쪽 글쇠의 아랫글 자리에 들어가서 윗글쇠를 누르지 않고 한글을 칠 수 있다.
3-2012 한 손가락 자판은 3-2012 자판과 기본 배열이 같은 아랫글 자판이다. 순아래 자판은 윗글 자리에 들어간 숫자와 기호들은 윗글쇠를 함께 눌러 넣어야 하지만, 3-2012 한 손가락 자판은 왼쪽 ㅗ 자리 글쇠와 오른쪽 ㅢ 자리 글쇠를 이어 치는 윗글쇠로 쓰게 하여 숫자와 기호까지 모두 한 글쇠씩 이어 쳐서 넣을 수 있게 하였다. 영문 상태에서 큰 로마자와 작은 로마자를 가려 넣을 때에 쓰는 Caps Lock 기능을 윗글/아랫글 상태를 바꾸는 데에 써서 숫자나 기호를 편리하게 넣을 수 있다. 날개셋처럼 유연한 한글 입력기에서 이러한 입력 방식을 구현할 수 있다.
1995년에 신광조가 처음 제안한 신세벌식 자판은 세벌식 입력의 특성을 살려 한글이 차지하는 글쇠 수를 크게 줄인 세벌식 배열이다. 그 뒤에 박경남이 박경남 신세벌식 자판과 박경남 수정 신세벌식 자판(2003)을 수정안으로 제안하였고, 다시 글쓴이(팥알)가 신세벌 2012 자판을 제안하였다. 한글을 넣는 차례에 따라 한 글쇠가 두 가지 구실을 하게 하여 한글이 들어가는 글쇠 수를 줄였다. 윗글쇠를 전혀 쓰지 않고 한글을 넣을 수 있고, 영문 자판의 숫자열에는 한글 낱자가 전혀 들어가지 않아서 영문 자판과 기호 배열을 매우 비슷하게 맞출 수 있다. 신세벌식 자판은 낱소리를 넣는 차례를 반드시 지켜야 하므로 모아치기를 하거나 옛한글 자판으로 쓸 수 없지만, 윗글쇠를 전혀 쓰지 않고 적은 글쇠로 한글을 넣을 수 있어서 사무용 자판이나 스마트폰처럼 들고 다니는 기기의 화상 자판으로도 매력이 높다. 다만 신세벌식 자판은 지원하는 한글 입력기가 아직 많지 않은 것이 약점이다.주6
5. 맺음말
초창기의 공병우 타자기 자판은 한글 겹받침을 많이 들어간 문장용 자판과 닮은 특징이 함께 보였지만, 그 뒤의 공병우 자판은 사무실의 수요에 맞추어 한글 낱자 수를 줄이고 업무 문서에 쓰이는 기호들을 더 넣은 사무용 배열로 바뀌어 갔다. 셈틀에서는 3-90 자판이나 3-2012 자판처럼 영문 자판과 기호 배열을 비슷하게 맞춘 배열이 사무용 자판으로 이어지고 있다.
1970년대에는 늘어나는 작가와 언론인의 타자기 수요에 맞추어 문인들을 겨냥한 공병우 문장용 타자기도 나왔다. 문장용 자판은 겹받침이 많이 들어가고 문인들이 자주 쓰는 문장 부호들이 들어가 있어서 한글을 매끄럽게 치기 좋다. 문장용 타자기 자판의 특징은 셈틀에서 3-91 자판(공병우 최종 자판)으로 이어졌다.
셈틀에서 공병우 자판을 쓰는 사람이 크게 늘어난 1990년대부터는 개인이 필요에 따라 공병우 자판을 제안하는 일이 잦아졌다. 안종혁의 순아래 자판이나 신광조의 신세벌식 자판은 윗글쇠를 쓰기 어려운 이들을 헤아린 아랫글 자판이다. 3-93 옛한글 자판처럼 다양한 겹닿소리가 쓰이는 옛글을 거침없이 칠 수 있는 세벌식 옛한글 자판도 구현되었다.
공병우 자판의 배열 종류는 갈수록 늘고 있지만, 1995년에 한글문화원이 문을 닫은 뒤에는 공병우 자판 또는 세벌식 자판을 꾸준히 알리는 창구가 사라지면서 배열 이름이 사람들에게 비치는 인상을 크게 죄우하고 있다. 모호하거나 오해할 만한 배열 이름은 사람들에게 그릇된 선입견을 심는 원인이 된다. 이를테면 한글문화원에서 발표한 '3-90 자판'이나 글쓴이(팥알)가 제안한 '3-2011 자판'과 '3-2012 자판'은 이름만 들어서는 어떤 목적으로 만들어졌는지 알기 어렵다. 숫자 이름으로 세벌식 자판이라는 사실과 자판 배열이 만들어진 해를 나타낼 뿐이다. 3-91 자판은 많은 한글 입력기에 '세벌식 최종 자판'이라는 이름으로 들어가 있어서 가장 나은 세벌식 배열이라는 인상을 남기고 있다.
3-91 자판의 흔히 불리는 이름인 '세벌식 최종 자판'에 붙은 '최종'은 사무용 자판이 필요한 사람까지 문장용 자판을 쓰게 하는 원인이 되고 있다. 처음부터 문장용 자판을 쓰려고 하면 사무용 자판을 익힐 때보다 적응하는 시간과 노력이 들므로, 어려움을 느끼고 배열 익히기를 그만둘 확률이 높다. 어렵게 숙달하더라도 실무 작업에서 기호 배열 때문에 불편함을 겪곤 한다.주7 3-90 자판이 널리 보급되었던 1990년대와 달리 2000년대에 들어 공병우 자판은 침체기에 빠졌다. 글쓴이는 그 원인이 초보자가 3-91 자판에 먼저 관심을 두게 이끄는 입력기 환경에 있다고 본다. '최종'이 배열 이름에 붙지 않았다면 공병우 자판을 쓰는 이들 사이에서 3-91 자판을 권하는 분위기가 쉽사리 생기지 않았을 것이다.
쓰는 이가 맞는 배열을 잘 고를 수 있을 때에는 공병우 자판을 쓰는 묘미를 느낄 수 있겠지만, 3-91 자판의 예처럼 배열 취지나 완성도를 오해할 때에는 스스로에게 맞지 않는 배열을 쓰게 되는 일도 생긴다. 안타깝게도 활발했던 옛 한글문화원의 활동이 끊어진 뒤에 이 문제가 도드라지고 있다. 공병우 자판이 앞으로도 새로운 시도를 거듭하며 좋은 쪽으로 발전해 가기를 바란다면, 사람들이 공병우 자판들의 배열 이름에서 겪는 혼란을 줄이는 방안을 마련할 필요가 있다.
자판 배열을 처음 접한 이가 배열을 검토하여 스스로에게 맞는 배열을 고르기는 어렵다. 그러므로 공병우 세벌식 자판이 편리하게 쓰이려면, 관심 있는 이 누구나 흔히 접할 수 있는 매체를 통하여 공병우 자판에 대한 자세한 해설 자료를 얻을 수 있는 길이 열려 있어야 한다. 이제는 공병우 자판에 얽힌 문제를 푸는 일을 특정 단체에만 기댈 수 없으므로, 공병우 자판을 쓰는 한 사람 한사람이 뜻을 모아 조금씩 문제를 풀어 갈 때이다. 새로 제안하는 배열은 오해를 일으키지 않으면서 쓰임새를 잘 알릴 수 있는 이름을 붙이면 바람직할 것이고, 이미 쓰이고 있는 배열도 오해를 일으키는 이름으로 불리고 있다면 쓰임새에 맞는 이름으로 바꾸어 부르는 방법을 생각해 볼 필요가 있다.
참고한 자료
- 정을병, 「문인용 타자기」, 《새가정》 1975년 5월호(통권 237호)
- 김경석, 〈컴퓨터 속 한글 이야기〉, 영진출판사, 1995
- KBS1 TV쇼 진품명품 678회 (2008.10.5 방송)
- 장우영, 공병우 문장용 타자기 사진, doopedia Photo Community(http://www.doopedia.co.kr/photobox/comm/community.do?_method=view&GAL_IDX=10101100061628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