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숙소로 돌아와 난 곧바로 안주로 산 포도한상자를 비닐봉지등에 나누어 씻어 맥주파티를 준비했다.
이른바,
시베리아구간(우랄산맥동쪽에서부터극동의 사할린과 캄차카 반도까지를
말함)에서의 마지막날 밤이었고,
누구보다 힘든시간을 보내고 계실 울국장님의 마음또한 조금이나마 위로해드리고 싶었다.
두시간여 지속된 맥주파티는
말미에 합류한 호기심천국,김매자샘의 발리댄스강습으로 졸지에 댄스장으로
확산..화룡점정의 마침표를 찍었다
다음날 아침.
알람예정시간보다 일찍 눈이 떠졌다
왠지 밖에서 웅성대는 소리가 들리는듯해 나도 모르게 잠에서 깨었는데, 아뿔사,~~!!!
커텐을 걷어제친 나는 깜짝놀랐다
밤사이 내린눈에 창밖은 설국..
전나무숲속은 동화속 또다른 세상으로
개벽이 따로 있을까~~ㅎ
몇년전 2월이었던가.
일본답사길에 만난 센다이에서의
아침에 이은 두번째 맞닥드림..
난 애써 진정해야했고,서둘러 세면과 화장을 마치고 밖으로 나갔다.
몇몇의 일행들이 벌써 전나무와 자작나무로 가득찬 숲속의
눈밭에서 꿈같은 아침을 열고 있었다.
이르크츠크에서 만난 따스한 봄이
하루밤새 겨울로 환생할줄이야~ㅎ
이리도 순결한 목숨으로..
흰눈 아니,폭설이라 부르는게 옳겠지..
폭설하나로 완성된
이르쿠츠크의 겨울~
그것은 아무리생각해도 감당불감당의
행운, 기적이었다.
약 삼십여분을 헤매이다 들어오니
가이드로부터 많이 늦어질지도
모른다는 소식이 들어왔단다.
난 내색은 안했지만,
솔직히 아예 이곳에서 한나절쯤
갇히는 행운을 빌면서 식당으로
향했다.
오늘같은 날은
무엇인들 특미였겠지만, 마지막남은 컵라면의 맛 또한 기가 찼다
돌아와서 얼마되지않았는데, 늦을지도
모른다는 가이드가 일찍 당도,
우리는 예정대로 첵크아웃,
이 기찬풍경의 숙소와 이별을 해야만했다.
조금씩 질퍽거리는 시내를 지나 당도한 곳은 발콘스키공작의 저택
전제정치에 대항한 청년장교들의 혁명이 12월에 일어났기때문에
이들을 데카브리스트라 부른다.
이집주인이었던 공작도
데카브리스트중 한사람으로
상트에서 이곳 시베리아까지 유배를와
이곳에서 살았다는데 18살이나 어린 신부 마리야부인은 귀족출신으로 첫아들을 낳을때까지도 남편이 혁명군인줄도 몰랐으나, 이혼을 거부하고, 종신유배형을 받은 남편을 찾아 시베리아까지 가서 유배생활을 한 순애보의 주인공이다.하지만,
귀족의 핏줄을 지닌 자의
어쩔수없는 결과였을까~
집안은 혁명가의 아내답지않은, 호화로운 가구들과 집기들로 가득했고,
청나라풍의 도자기들도 눈에 띄었다
건너편 또다른 데카브리스트의
저택은 이와는 반대로 변변한 집기하나 없다는데, 난 차라리 그곳이 더
신념대로 살다간 아름다운 일생인것만
같은 생각에 마음이 기울었다
공작의집을 나와
수도원과 서너곳의 성당 그리고
영원의 불꽃을 모두 섭렵했는데
어느것하나 쌓인눈속에서 아름답지않은건 없었다.
갑작스레 들어닥친 추위에
언몸을 녹인후,
푸짐한 중국음식으로 점심식사까지 마치고 이젠 본격적인 이르크츠크 중심가 산책순서,
이번 여행중 최강 추위속 도보의 강행군이었지만 시베리아의 파리라 불리는 이유를 조금은 알것같은,
유럽풍의 건물들이 고만고만한 높이를 지닌체, 자리하고 있었다.
우린 103번가 카페거리에 위치한
노천 카페에서의 따스한 커피한잔의 여유를 마지막으로 저녁식사장소인
북한식당, 평양집으로 향했는데
메뉴는 돼지삼겹살 구이와 김치찌개.
구이는 훌륭했지만 찌개는 너무달아
거부감이 들었다.
식사를 마친 다음순서는 호텔 첵크인.
하지만, 잠자리에 들기엔 너무이른 시각, 일행 대부분이 호텔바로 곁에있는 대형마트로 이동..
장보기에 나섰다.
쇼핑카트 하나씩 끌고 다니며
홍차며. 꿀. 보드카. 쵸콜릿등을 싹쓸이.. 한국 아줌마들의
위력을 유감없이 발휘한 밤,
이젠 모스코바로의 이동을 위한
공항행만이 남아있는 밤이었지만
호텔창밖으로 내려다보이는
야경이 어찌나 매혹적이든지~
시베리아에서 이토록 아름다운 보석을 만날줄이야~
아쉽기만한 마지막 밤
난 기꺼이 뜬눈으로 이 아름다운도시와
이별을 택하기로했다.
가이드와 약속한 미팅시간은
새벽5시, 하지만, 이건 큰일날 일이었다.
이상을 감지한 김선섭님의 첵크가 없었던들..부라부랴 3시로 정정, 이교수님과 나국장님, 일일이 방마다 돌아다니셔야 했으니~ㅎ
영하 18도의 수은주
저마다 도시락하나씩 챙겨들고 공항으로 향한 시각은 새벽 3시,
5시 30분에 티켓팅 마감..
만약 5시에 나왔더라면..
상상조차 하기싫은 대형사태가 벌어질뻔한 절대절명의 위기였던 셈,
그러나 이번엔 영문까지 똑같은
동명 2인, 김정희1과 3가 문제였다. 티켓을받는데 걸린 시간은 족히
1시간여, 가까스로 모스크바행
트랩에 올라야했다.
6시간의 비행끝에 다다른 모스크바
이르크츠크에서 한국으로 오는 시간보다 1시간이 더 걸리는 거리였다
지금까지의 여정과는 사뭇 다른,
대도시로의 이동
변방에서 중심으로의 도움닫기.
착지후 우리가 맨처음향한곳은
크램린궁,때마침 민족화합을 기념한 공휴일인데다
푸친대통령이 거리로 나와 시민들과
만난다나~러시아경제를 끌어올린
푸친은 자국민들에게 꽤나 인기가
있는 모양이었다
거대한 붉은 성벽아래로 펼쳐진
가을, 시리도록 아름다운 설경으로
호사를 누린 우리일행에게
이번엔 모스크바가 붉은 가을빛으로 점잖은 인사를 보내오고 있는게 아닌가..절묘한 바턴탓치..
러시아의 사계중 한여름을 제외한
풍경들의 하모니였다.
정교하게 쌓아올린 붉은성벽과
보석이 박혀진 첨탑들~
20세기 한때 세계 최강대국중
하나였던 그때 철의장막의 위용은 어디서도 보이질않았고,
다만, 자본주의의 거대한 손과
재빠른 악수를 건넨체, 부드러운
인사를보내올 뿐이었다
성벽앞은 원래 해자기능의
강물이 흐르고 있었다는데,
프랑스를 제압한 알렉산더가 기념으로 이곳의 물길을 모스크바강으로 우회시키고 메워 정원을 조성했단다.
10시 개관까지 삼십여분을 기다려서야
삼위일체망루를 지나 크램린 안으로
입성, 무기고와 대통령 관저를
지나자 사방이 성당으로 둘러쌓인
광장에 닿았다. 마치, 물감으로 색칠하듯 순금으로 입혀진 돔장식의 성전들, 얼마나 많은 노예와 농노들의
피를 담보로 지어진것일까~
이곳에서 종교는 권력의 시녀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닌체, 막강권력에 기생했으리라..
돌아나오는길에 본, 비극의 종
이반대제의 종은 지상위로 내어걸리지도 못한체, 기구한 운명으로
지상에서 애처로운 목숨을 이어가고
있었다
크렘린궁 답사를 마치고 향한곳은
한식이 준비되있는 식당
메뉴는 김치찌개, 벌써 세번째의
반복이었지만 새벽부터 이동하느라
변변한 식사를 못한 우리는 꿀맛으로
싹싹 비운후, 다음행선지 푸시킨박물관으로 향했다
그런데.
문제는 투어시작하자마자 불쑥 꺼낸
써커스카드를 정리하는 일...
인생은 타이밍이라했거늘 안그래도 피곤에 지친 상태인데 만나자마자
70유로 짜리 구경을 하자하니
역효과의 황당함, 결과는 단 두명의 신청으로 일찌감치 불가판정,
나중에 알고보니 러시아서커스는 세계적 수준이라 모스크바에서는 반드시 보는게 정답이란다.
푸시킨박물관앞은 티켓을 구매키위한 긴 행렬들이~우리네처럼 어린이를 동반한 가족보다는 대부분이 중장년의 성인들로 문화대국으로서의 저들의
두터운 저변이 확인되는 대목이었다
외투를 일일이 맡기고서야 입장할수있었는데
재밌는건 푸시킨박물관에 푸시킨은
없었다는 사실, 기원전 바빌론유적들과
트로이 출토 유적들, 익숙한
이집트미이라들과 그리스 로마 시대의 신상들, 또한 루벤스와 렘브란트를 비롯한 화가들의 작품들이 전시된방등을 둘러보았는데
가이드말로는 모두 약탈한 유물이 아닌, 구입했거나 발굴에 참여해서 가져온 유물이란다. 발굴에 참여했으면 그것으로 그만이지~
이것 또한 넓은 의미의 약탈임을
어찌 부인하랴~뭏든,
전시된 유물의 규모나 내용 모두
문화강대국다운 모습이었는데
푸시킨이 러시아인들에게 얼마나
인기가 많으면 국가가 나서서 사기를 칠까~? 재밌는 사실이었다
(푸시킨이란 천재 이전에는 러시아문학에서 모국어로 작품이 쓰여지질 않았다고 한다)
다음 행선지는 유명한 차이코프스키의 발레곡 "백조의 호수"가 쓰여진 장소, 그 호수로의
이동이었는데.. 청둥오리들만 노니는
조촐한 호수는 도무지 믿기지가 않았다
다음 버스가 선곳은 모스크바대학.
스탈린 시대에 지었다는 이 대학은 폭정을 일삼은 스탈린의 정신세계를 의심케하는,수직일변도의 구조가
낯설기만했는데, 그래도 이곳출신의 노벨상수상자들 동상이 즐비했다
공휴일이라 붐비는
참새의 언덕 관광을 서둘러 마치고 우리일행은 육계장과 비빔밥 설렁탕등으로 이른 저녁식사를 했는데 러시아에서 먹는 한식은 도시불문,
메뉴불문 전부 수준급으로 맛이 좋았다
드디어 호텔 첵크인
선섭씨 부인,김용희 님의 해피버스데이였지만, 새벽 부터의 강행군에 극도로 피곤, 생일파티를 극구사양, 나도 그에 흔쾌히 동의한체 야경구경은 엄두도 못내고 일찍 베드인~
새벽 네시경 눈을뜨니 정명섭교수님으로부터 톡이 들어와 있었다
내친김에 가족을 비롯, 여기저기
톡톡~!!두드려대니 이윽고
여섯시 반, 어느덧 아침식사시작 시간이었다
벌써 여러쌍의 룸메들이 와있는 식당은 이번 여정중 최고의 메뉴로 럭셔리한
모닝뷔페를 즐기기에 충분했다
모스크바에서의 둘째날, 첫행선지는
붉은광장. 모스크바 관광의 일번지다
동화속 요술의 집같은 둥근 양파모양의 돔양식을지닌,바실리성당(몽고
와의 승리를 기념키위해 지어짐)과
굼백화점, 역사박물관으로 둘러싸인
광장한켠에는 레닌의 영묘와 처형장소로 쓰였던 황제의 연설장소가
있었는데, 레닌묘를 참배하기위해 늘어선 긴 행렬속엔 젊은이들도
여럿 눈에뜨이는게, 혁명가 레닌은
여전히 러시안들에게 지지않는 별로
살아있음을 느낄수있었다.
무수하게 세워진체 건재한 그의 동상도 그 사실을 입증하긴 매한가지~
자유시간을 이용, 나는 바실리 맞은편의 작은 성당을 찾았는데
때마침 미사가 진행중인듯 성가가
흘러나왔고, 윤창준샘의 녹음하는 모습도 일품의 한컷이었다
동네슈퍼만큼이나 많은 성당들..
러시안들에게 종교는 깊숙한 저들의
일상인듯했다.
붉은광장 다음으로 향한곳은
아드바트거리,이른바 우리네 대학로같은 문화예술의 거리로
한켠에 푸시킨이 3년간 거주했다는그의 생가가 굳게 닫힌체
자리하고 있었고, 거리맨끝에는 이주한인 3세 가수 빅토르최의 추모벽이 어지러운 낙서들로 장식되있었는데, 음산한 골목한켠에 버려진듯한 분위기가 울분인지 회한인지모를 낱말들이 떠다니는듯 했다
우리일행들은 한시간여의 자유시간을 이용, 본격적인 쇼핑타임에 돌입‥대표보석 호박과 밍크모자 등을 사들고 돌아왔는데 나는 아무리봐도
사고싶은게 짚히질않아 돈굳고, 짐안들고..빈손으로 버스에 올랐다
다음 이동장소는 톨스토이 생가..모스크바답사중 가장 관심이 가는곳중 하나였다.
두팀으로 나뉘어 입장해야했는데
그가 사십대에 살았다는 이집은 16개의 방이 미로처럼 연결되어있었고
1층에는 다이닝룸과 그의 침실, 자녀들의 방들이 있었고.2층에는 응접실같은 용도의 거실과 집필실이 자리하고 있었다. 13명의 자녀를 둔
한가정의 가장은 자기침실보다 큰방을 음악원교수였던 장남과 화가였던 큰딸에게 할애하고 있었고,
자녀들의 일거수 일투족은 그대로
노출, 숨소리까지 들릴듯한 구조였는데
철저한 리얼리스트로서 매일아침 운동을 거르지않음은 물론. 구두도 직접 만들어 신고, 음악도 작곡했다고 하니 꽤나 부지런했던 모양~
위대한 문호, 톨스토이의
가감없는 실체가 집안 곳곳 여기저기서 감지되는, 흥미로운 경험이었다.
2층거실에 놓인 피아노
저 유명한 피아니스트겸 작곡가 "라프마니노프"가 이곳에와서 연주를 했다고하니 새삼 흥미를 끄는 대목~. 또한, 그의 80세 생일을 기념방문한 어린이들에게 전했다는 환영인사말이 녹음테잎을 통해 흘러나왔는데, 내용을 물어보니
부모말씀 잘듣고 공부열심히 하라는 뜻이란다.
동서 고금에 부모맘은 매한가지, 위대한 문호라고 다를리
만무..
작품이 아닌,생활인으로서의 톨스토이를 맘껏 탐닉할수 있었던 기쁨들은 정원에서 그가 직접 식수한 나무들을 바라보면서 더한층
선명히 빛나고 있었다
생가를 나와 점심으로 된장찌개를
먹었는데 해물이 섞인 찌개는
이번에도 실망을 주지않는, 괜찮은 맛이었다
녹용과 차가버섯을 파는 식당을 나와
드디어 상트페테르부르그로의 이동을
위해 공항행..
1시간 반여만에 도착한 마지막 여정지
페테르부르그,,
제정러시아의 수도이자,문화의 중심지로 기념비적인도시로서,
오늘날의 이 도시를 처음건설한 표트르대제를 칭하는 지명인데,
바닷가 뻘밭에 도시를 건설하자니 얼마나 많은 목숨들이 희생되었을까~
무수한 주검위에 주검을 더한후에야
암스테르담을 모델로한 이 도시는 모습
을 드러냈고,
거룩한 그들의 희생위에 건설된
도시라 하여,
쌍트(쎄인트)페테르부르그라고 명했단다.
표트르대제는 서자출신으로 이복누이였던, 소피아의 미움을사는 바람에 일찌감치 추방, 외인촌에서 성장, 서구문물을 접하면서 성장했다고한다. 소년병들을 조직, 전쟁놀이를 일삼던 그는 군대로 전환
누이 소피아를 몰아내고 왕위에 등극
영토를 확장시키고 ,
정치적 암투가 횡행하는 로마노프왕조의 모스크바를 떠나 이곳에서 새로운 도시를 꿈꾸었으리라
도시전체 건물하나하나가 모두 박물관이라해도 과언이 아닌.이
도시에 도착, 고속도로를 빠져나오는데
곡선모양의 다리가 예술작품, 그자체 다리하나에도 예술혼을 담은게 역력했다.
늦은저녁을 위해 도착한 중식당한켠에는 크리스마스트리가
벌써 점화, 반짝이고 있었는데,
중식의 9가지 메뉴들은 맛이 별로
이번 여정중 최하위로 기록해도 무방한 맛이었다
식사후 호텔로 가는내내 펼쳐진
네바강가에 위치한 이 도시의 야경은
시선을 띨수없을 정도로 매혹적인 자태로 우릴 유혹했고, 서너곳에서 하차, 연신
샷터를 눌러댔다. 저멀리 뾰족하게
빛나는 탑이 하도 아름다워 물었더니..
다음날 몽땅 설명해준단다.
밤늦게 도착한
호텔에는 이미 버글버글한 인파들로
이 도시가 지닌, 위상을 실감케하고도
남는 풍경이었다.
담날아침,
조식후 찾은 첫번째 목적지는 "피의구원의 사원으로 알려진, 그리스도부활성당"
10시부터 입장할수 있다는데, 250루블을 별도로 지급하고 들어가야했다
1881년 테러리스트에의해 치명상을 입은 알렉산드르2세의 저격장소에
세워졌다해서 지어진 이름인데
섬뜻한 이름과는 달리 성당은 온통
아름다운 황금빛모자이크장식들로 넘쳐났고
아들인 3세가 공모를 통해 건축가를 선정해서 아버지께 바쳐진 성전이란다
형용키어려운 아름다움앞에 난
그저 보고 또 쳐다볼뿐, 대체 무한한것은 어찌 창조주 신 한분뿐이랴~실로 놀라운 인간의 능력이 거기 있었음을..
다음으로 들른곳은, 저 유명한 카잔의 성모상 진품이 있는 카잔성당으로 예배장소로 이용되는 곳이었다
이콘에 입맞추기위해 많은 인파들이 줄을선 곁으로 우리일행은 친견만한체 돌아나와야 했는데, 카잔은 몽고지배시
점령당한 난공불략의 지역 타타르에 있던 섬 지명에서 유래된것으로
탈환당시 이 성화가 발견되었다는데 상트사람들은 이 성화가 이곳에 있는한 적군에 한번도 항복하지않았다고 한다
또한 이 성당 입구엔 소설
"전쟁과 평화"에 등장하는 두장군
쿠트조프와 돌리장군의 동상이 세워져
있었다.
카잔성당을 빠져나온 우리에게
마침내 ,30분간의 자유시간이 주어졌는데 화장실을이용하기위해 들른 대형서점에서 난 도록 두권을사는것으로 종지부찍고 버스로 귀환. 다음행선지는 이삭성당이었다
로마카톨릭적 요소가 많이 믹스된듯한
이곳은 외관부터가 많은 성상들로 웅장했는데.,난
피의구원의 성당에서 받은 감동에 덧칠을 입히기 싫어 주변공원산책으로
대신했다. 금요일이어서일까~대여섯 쌍의 커플들이 웨딩사진 찍느라 추운줄도 모르고 짧은 웨딩드레스에
연신 웃어대는 광경들이 줄줄이 보였다
점심식사를 위해들른 대공의 저택
이 도시는 이런 주택들이 즐비했는데
정갈하게 나온 생선스테이크와 곁들인 감자요리가 우아한 분위기만큼이나
훌륭했고, 게다가 폭설의 구덩이에 빠져 고생한 형미샘이 도와준 도반들을 위해 와인까지 쏜덕에
우아함은 완벽갖춤의 그것,
이젠 대망의 에르미타쥬(겨울궁전)가 우릴 기다리고 있었다.
이어폰하나씩을 지급받고 입장한 대단한 여걸,
예카테리나 2세(캐서린)의 궁전은
박물관이면서 한 인간의 끝모를 사치와 욕망들로 점철된 마법의 성이기도 했다.
그의 어머니는
일부러 딸을 시원찮은 사위감(이반뇌제)에게로 보냈고,
진실한 사랑대신 권력을 택한 그녀는
막강한 힘으로 맘껏 남자들을
사들이는 창부와도 다름없는, 생활을 일삼았으나 말년에는 손자에게 황금으로 된 방을 지어주고.
프랑스의 계몽철학자 볼테르에 심취, 그의 임종 얼마전 모습을 조각한 조각상을 구입, 매일 봤다고 한다
3,000여개의 방으로 구성된 이 궁전중 기억에 남는것은 일명,역사의방으로 1917년 10월 혁명당시 새벽 2시9분에 레닌의 혁명군이 침입, 마지막황제 니콜라이2세를 체포,벽면에 걸린 시계는 2시 9분에서 정확히멈춰진,그방이었다
세계3대 박물관중 하나인 에르미타쥬는 만족도 면에서는 1등이라는데, 난, 아직 루브르도 대영박물관도 못본터라 함구할밖에.~
참 이상한 일은 혁명의 물결이 네바강을 휩쓸었을 그때, 성난민중들은
이 사치로 들끓는 공간에 손가락하나 대지 않는 절제를 표했을까~,
저들의 문화적 식견이 놀라울뿐이었다
몇분의 일쯤이나 보았을까~
아쉽게나마 포식을 하고 나왔는데,
김치찌개와 제육볶음으로 이번엔 위장이 포식할차례‥ㅎ
두메뉴다 일품의 맛이었지만
단배추겉절이가 어찌나 반갑고 맛나든지~자꾸 손이 갔다.
서둘러 저녁을 마치고 이번엔
한국에서부터 예약을 해둔 발레공연을 보러갈 차례~발레한편을 보지않고
어찌 러시아를 봤다고 말하리요~ㅎ
저마다 나름의 복장을 갖추느라
신경은 또 얼마나 썼노~~?ㅎ
교통체증에 간신히 정시입장성공,
두시간 반동안 3 막으로 진행된
차이코프스키의 "잠자는 숲속의 공주"였는데, 곁에 앉은 이교수님과 나국장님은 음악이 마치 자장가처럼
감미로왔는지 얼마되지않아 바로 슬리핑상태로 돌입, 공주가 자서 따라잤다나~ㅋ
나중에 알고보니
거의 모든 울식구들이 밀려오는 식곤증에 공주와 함께 아예 주무신 모양‥차라리 웃음이 났는데 내용이 정확히 파악되지않는 발레보다
더 재밌는것은 저들의 인터미션 , 휴식시간의 풍경이었다
조각 케잌등과 와인을 즐기는 모습이 대체 간식을 즐기러 온건지 공연을 보러 온건지 구분이 안될정도였다
한바탕 코메디같은 발레 해프닝을 끝내고 이번에는 야경을 보러 유람선을 타러 갈 차례,..
한 회원의 적시안타의 변...
"철인3종 경기하는것도 아니고," 대단하단다~ㅎ
얼마나 웃어댔던지~생각할수록 절묘한게 상트.에서의 마지막 시간들이 아쉽기만한 우리들의 마지막 몸부림인지도 모른다~~ㅎ
짙은어둠이 깔린 네바강위로
우리일행이 전세를 낸 유람선은
이 도시를 잊지말라는 몸짓인양 , 구석구석으로 유유히 우리들을 안내했고,
가이드가 제공하는 샴페인 한잔에 아쉬운 이국에서의 마지막밤을 목청껏 노래했다..
드디어 출국날
일정표상의 스케줄은 이미 전날섭렵,일종의 보너스투어란다.
첫하차지는 에카테리나여제 동상이 있는 공원으로 , 이미 굴복한자와 아직 정복당하지않은 자, 글고
엉거주춤한 자들의 조각상들이 혼재되있는게 재밌었다
길건너 대로
이른바,넵스키 대로이다
건물하나마다 건축학 교과서와도 같은
거리가 상점하나도 예사롭지가 않았다
네모반듯하게 마치 도열해있는 건물들은 표트르1세가 암스테르담에서 영감을 얻어 조성했다는데
도로를 가로질러 흐르는 운하도 곳곳에서 목격되었다
한바탕 자유시간의 물결이 휩쓸고난후
우린 푸시킨이 단테스와의 결투가 있던 그날 아침식사를 했던 카페(지금도 이 카페에서는 푸시킨이 먹은 요리를 팔지 않는단다)와 라스코르니코프카 전당포노인을 살해한 자신의죄를 고백하고, 입맞추던 센나야광장을 지나
당도한곳은 레닌의 혁명본부로 사용되었다는 예카테리나 여제가
세운,귀족여학교와 건너편의 성당.
잽싼 노점상인 한사람이 5유로에
공예품들을 싸게판다며 들고 나타났는데.,얼떨결에 나도 덜렁
두가지를 사들었다.
귀족학교 앞으로 세워진
엥겔스와 막스동상, 그리고 그 둘을 전부 아우르고 있는 레닌의 동상까지~
극도로 부패한 전제 정치가 균등배분의 이상향을 담은 철학을 낳고
또 그 철학이 모태가 되어 혁명을 일으켰지만,인간의 근원적인 욕구앞에 푸른 이념들은 하나둘씩 스러져가고,
이렇게 동상으로만 남아 아직도
호령하고 있는가~
건너편 중앙선부근에는
한겨울인데도
붉은 장미가 피어있는게 눈에 들어왔다
13일간의 여정
짪고 또 긴 시간들은 재빠르게 제자리로 복귀할것을 명령하며
막을 내렸다..
언제나처럼 고마운 분들이 많다
장도에 동행해주신 36분의 도반들
여행내내 인원점검의 중책을 맡아 수고해주신 5개조 조장님들,
최종 인원점검의 중책은 물론.,
두번씩이나 뛰어난 관찰력으로 여행자체를 지켜주신,일등공신 김선섭님
예기치않은 사고에 선뜻 동행의 용기내주시고,끝까지 주치의로서의 수고 아끼지않으신 김매자님
사진만은 내게 맡겨라~
온몸으로 명장면 담아내시느라
아픈어깨 감싸쥐고 다니신 필사님
휠체어위의 부상자 선뜻 들어서 운반해주신 기사도정신의 남성분들
멋진음악과 스피카 준비해오셔서 기차여행의 기쁨 배가시켜주신 이종덕님
하모니카에다 악보까지 챙겨오셔서
미니 콘써트 열어주신, 윤창준님
수시로 실탄 팍팍 쏘시며.,
큰웃음주신 구국본님
마지막으로
저의 든든한 지원군 두분
야전사령관 나국장님과
총사령관 이교수님
수고많으셨습니다. 고맙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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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댓글 여행기 읽느라시간가는줄 모르고 읽어내려걌습니다.
눈앞에서 본듯한 글솜씨에 끝까지 읽었네요
자고나니 하얀눈 눈위 발자국이 아~~~여행의묘미
잘 되뇌이며 감상하고 갑니다~~~
한 편의 드라마같이.
손에 잡히고
눈에 선합니다.
수고하셨습니다.
올 겨울은 러시아 답사기 덕분에
몸도 마음도 따뜻하게 보낼 것 같습니다.
읽을수록 맛깔스럽고 훈훈한 답사기~~
감사합니다... _()_
김혜경 원장님 글 솜씨는 최고 ~짱짱입니다요?
잠시 나마 페를 끼친점 사과드립니다?
참으로 행복했습니다?
역시 시원시원하게 써내려간 원장님의 여행기입니다.
그곳에 간듯 머문듯 . 설국의 자작나무사이를 서성이는 일월인들의 행복에 찬 얼굴도 느껴지는군요. ~~~^^
맛깔스런 원장님의 기행문을 읽으니 13일의 일정이 한 편의 파노라마처럼 펼쳐지면서 러시아로 당장 떠나고 싶어지네요. 아름다운 추억을 간직한 님들이 한없이 부러워요. 언젠가 떠날 꿈을 꾸게 해 주셔서 고맙습니다. 일문아님 모두 행복하시고 건강하시옵소서! ^^
영혼의 부활을 한 네플류도프같이 원장님 일상으로의 부활은 하셨는지요?^^ㅋ
시베리아행 열차는 멈추었지만
원장님 기행글에서 시베리아 황막한 벽지 어딘가에 아직도 카츄사의 애련이..
생생한 현장감과 섬세한 묘사가 마치 함께 여행을 하고 온듯합니다
일월문화원 카페에 김혜경 원장님이 쓰신 여행 일기는 동참은 못했지만 마치 함께 동행 한 기분을 느끼게 해주네요.
레닌그라드에 2번, 상트페쩨르부르크에 6번, 모스크바에 8번, 시베리아 이르쿠츠크를 1번 다녀왔는데, 옛 추억을 되새겨 주어서 감사합니다.
갈 때마다 출입국 절차에 혼이 나서 다시는 안가겠다는 소련과 러시아를 8번씩이나 간 이유를 알 것 같지요?
갈 때마다 새로운 사람들, 새로운 사실들을 발견하고 즐기는 재미가 여행이 아닌가 합니다. 감사합니다.
오랫만에 카페에 들어와 봅니다
여행에 동참하지는 못하였지만
몇년 전 갔다온 장면들이 하나씩 스크린되어 오네요.
전 봄에 갔다온 지라 설국은 볼 수 없었지만
바닷가를 거니는 금발의 미녀들이 오랫동안 생각속에 남아 있었지요.
새록새록 돋아나는 기억들 ...
원장님의 기행기는 항상 깔끔하게 정리가 되어
제가슴에 각인이 되어 오랫동안 후유증으로 남아
있습니다. 잘 읽어 보았습니다.
회장님 반갑습니다 오랜만이예요
올 가을, 절반은 비 속에 보내고..
오늘도 종일 가을 비가 내리다말다..
러시아는 봄에 다녀오셨나봅니다
다녀오신 곳, 원장님의 기행문으로
아롱아롱 되돌아보십니다
여행이란 그래서 좋은거네요
언제든지 끄집어내면
아름다운 추억꺼리가 되니말입니다
건강은 괜찮으신지요? 뵙고싶어요 ^^*
미숙님 항상 소식이 궁금합니다.
보름달 둥근 원속에 하나하나 그려보는 얼굴중의 한사람이지요.
조금은 여유로운 마음이 되어라고
모든 사물들이 제게 지시를 내리나 봅니다.
염려속에 차츰 나아지고 있습니다.
오늘 오랫만에 봉사갔더니 이제 안오나보다 하면서
우리들의 명단을 캐비넛속에 넣었더군요
바람과 함께 사라지고 싶은 마음은 절대 아닌데...?
겨울 조금은 스산한것 같아도 사각이는 댓잎의 노래가
있습니다.
저물어가는 석양
구름이 있어 더욱 아름다운 태화강 대숲길
다시 한번 그 멤버들 데리고 오세요.
행여 !
귀기울이고 있겠습니다.
님의 발자국 소리들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