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은혜가 네게 족하다
9 그러나 주님께서는 내게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내 은혜가 네게 족하다. 내 능력은 약한 데서 완전하게 된다." 그러므로 그리스도의 능력이 내게 머무르게 하기 위하여 나는 더욱더 기쁜 마음으로 내 약점들을 자랑하려고 합니다.
10 그러므로 나는 그리스도를 위하여 병약함과 모욕과 궁핍과 박해와 곤란을 겪는 것을 기뻐합니다. 내가 약할 그 때에, 오히려 내가 강하기 때문입니다.
(고후12:9-10, 새번역)
예수 믿으면 복받습니까?
어떤 복을 받습니까?
예수 믿으면 모든 것이 다 잘되는 것으로 생각을 합니다.
학생은 공부를 잘하고
직장인은 승진하고
사업가는 사업이 잘되고
병든 사람은 병고침을 받고
약한 자는 강해지고
가난한 자가 부유해지고
그런데 이러한 모든 것은 예수 믿지 않아도 가능한 일입니다.
그리고 이러한 것을 추구하는 사람들을 가리켜 종교인이라 하는 것입니다.
그런데 왜 굳이 예수를 믿습니까?
예수를 믿을 수 밖에 없는 이유를 말한다면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은혜가 부어지고 하나님 아버지의 사랑하심이 부어지고 성령님의 감화감동이 부어져서 하나님의 택한 자녀가 되었기 때문일 것입니다.
그런데 하나님이 이스라엘 백성을 광야 40년동안 걷게하신 이유를 보면 그들을 낯추시고 말씀을 지키는지 아니지키는지 보시기 위함이라고 말씀합니다.
이것은 오직 유일하신 하나님 한 분만을 믿고 섬길 것을 의도하신 것이지요.
광야는 사실상 사람이 살아가기 힘든 곳입니다.
지금 광야같은 세상에서 살아가기가 만만하지 않습니다.
따라서 광야는 하나님만 믿고 소망하며 사랑하고 살아가야 하는 곳입니다.
그러나 이스라엘 백성은 자신들을 위한 우상숭배와 먹을 것이 없다 마실 물이 없다 하나님을 시험하고 예수를 믿어도 별볼 일 없고 여전히 힘드네 하며 불만불평과 원망하다가 죽어 갔습니다.
예수님께서 광야에서 40일 금식 후 마귀에게 시험을 받으셨습니다.
돌을 떡으로 만들라는 것과, 성전에서 뛰어 내리라는 것과, 세상의 모든 영광을 줄테니까 나에게 경배하라는 것이었습니다.
마귀가 제시한 이 세 가지 시험은 지금 세상의 사람들이 추구하며 살아가는 것들입니다.
결국 마귀는 예수님이 자신이 다스리는 세상의 방식대로 살아가도록 시험을 했던 것입니다.
먹을 것을 위해서 살아가고, 자신의 능력과 힘을 보여주고, 세상의 영광을 얻기 위해서는 무엇에든지 고개를 숙일 수 있는 사고방식의 삶으로 이끌어 가고자 했던 것입니다.
한마디로 자기 사고방식대로 살아가도록 유혹하는 것입니다.
그런데 우리는 예수님이 물리치신 것들을 추구하며 살아간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신자들의 삶속에서 오직 하나님과 말씀만을 믿고 따르기를 원하셔서 십자가의 길을 걷게하시는 것입니다.
돌아보니 하나님은 저를 광야의 길을 걷게 하셨습니다.
남들에 비하면 큰 고난이 아닐 수 있지만 영혼을 위한 광야의 길을 걷게 하시고 계십니다.
그 이유는 우리가 장차 거할 처소가 주님 품이기 때문입니다.
광야를 지나야 가나안땅에 들어가는 것입니다.
십자가를 지나야 부활의 영광이 있는 것입니다.
목회와 교회적으로
ㅡ부교역자 시절 교회 시험으로 인한 분열 사건을 경험 : 이 길을 가야하나?
주님은 죄인들을 위해서 십자가 지셨다면 그럼에도 이길을 가는 것이 맞는 것이지요
ㅡ 개척이후 가장 연약한 자들 돌봄 사역 ㅡ 노숙자들, 다문화가정, 이단빠진 자들, 알콜 중독자들, 교도소(전과자), 사기꾼, 지적장애인, 한부모가정 등 ㅡ 세상에서 소외당하는 자들을 낮은 자리에서 섬기게 하심 ㅡ그러나 그들을 정죄하거나 판단하며 불만불평했던 것이 사실입니다.
ㅡ그럼에도 교회 개척 일년 새벽기도 ㅡ "이 집은 살아계신 하나님의 교회요 진리의 기둥과 터이니라" 하나님 음성을 들려 주셨습니다.
ㅡ하나님은 저의 가치관과 기존의 목회 패러다임을 깨뜨리시고 고쳐 나가기 시작했습니다.
이 과정 속에서 많은 시간속에서 밤마다 끙끙 앓는 시간들이 계속되었습니다.
지금까지 내가 알고 있던 모든 것들과 새롭게 하나님이 깨닫게 하시는 과정에서 일어나는 이해충돌이 있었던 것입니다.
좀더 말하자면 율법주의, 기복신앙, 인본주의, 세속과 물질주의적인 것들을 깨뜨리고 하나님과 하나님 중심의 삶으로 전환해 가기 시작하셨습니다.
기도를 하면 무슨 기도를 시작하든 결국에는 하나님 한 분만 구하도록 이끌어 가시는 것입니다.
ㅡ몇년 후 기도 중 ㅡ "하나님 마음에 합한 다이룸 교회"로 이름 정정
행13:22 - 내마음에 합한 자라 내 뜻을 다이루리라. 요19:30 - 다이루었다
내 뜻을 내려놓고 하나님 마음에 합한(뜻) 자가 되기를 원하시며 믿음으로 동행하도록 이끌어 가시길 원하셨습니다.
지금도 하나님 외에는 바랄 것이 없도록 인도해가고 계십니다.
환난이나 박해나 어려움이나 먹을 것이 없거나 벌거벗음이나 위험이나 위협적인 세상 그 어떠한 것들도 하나님의 사랑에서 끊을 수 없게 이끌어 가시고 넉넉히 이기도록 이끌어 가도록 일하고 계십니다.
개인적으로
개척 2-3년차 강직성 척추염 발생 ㅡ 몸의 연약함으로 내 힘으로 하는 것이 아니다는 것을 깨닫게 하셨습니다.
작년에는 급성 심근경색으로 심정지 위기 ㅡ 내 자아의 죽음, 나는 죽고 예수로 살도록 이끌어 가십니다.
오직 생명되신 예수님만 추구하도록 이끌어 가십니다.
생존이냐 생명이냐는 갈림길에 관해 말씀을 깨닫게 하십니다.
가정적으로
두 자녀의 결혼을 통한 약함을 깨닫게 하시고 말씀으로 이끌어 가셨습니다.
1. 첫째 아들 결혼 - "모든 허물을 사랑으로 덮으라"라는 말씀
2. 둘째 딸 결혼 - 그럼에도 "네가 나를 사랑하느냐" 사랑의 확증 듣고 싶으신 주님의 말씀
3. 그래도 이건 아니지 않나요 질문을 하자 - "내 은혜가 네게 족하다"라고 두 번이나 말씀
ㅡ주님이 주신 감동의 말씀
십자가 나의 수치를 보라. 네가 당하는 모든 것은 내 은혜가 네게 족하다.
예수님은 죽은 영혼을 살리시고 생명을 주시기 위해 그 엄청난 십자가의 고난을 당하셨습니다.
그런데 나는 이 육신의 일들 때문에 아프다고 힘들다고 고통스럽다고 불만불평을 했던 것입니다.
저는 주님의 마음이 어떠한지를 알게 되니 내가 당하는 그 모든 것들은 아무것도 아니라는것을 깨달으니 그저 눈물을 흐리며 모든 것이 감사가 되었습니다.
생각하건대 현재의 고난은 장차 우리에게 나타날 영광과 비교할 수 없도다 (롬8:18)
이제 저의 치부와 약함이 수치가 아니라 하나님께 감사가 되었다는 것입니다.
이처럼 여러분 앞에 저가 저의 치부와 수치와 약함을 말할 수 있는 것은 하나님의 은혜와 사랑이 어떠한지를 알게되었기 때문에 가능한 것입니다.
고난은 복입니다.
나의 약함이 곧 복입니다.
고난을 통해 하나님을 알게 되었고 하나님과 동행하는 삶을 살 수 있게 되었습니다.
믿음이란
나의 소원을 이루기 위하여 주신 선물이 아니라 주님이 없으면(아니면) 안된다는 것을 알게 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어떠한 고난 중에도
하나님이 선물로 주신 믿음이 우리를 하나님께로 이끌어 가게 합니다.
혹여 여러분의 믿음이 주님께로 이끌지 아니하고 나의 소원을 이루는 것으로 인도한다면 속고 있는 것입니다.
아브라함이 이삭을 하나님께 드릴 수 있었던 것은 하나님이 주신 믿음이 이삭을 하나님께 드릴 수 있도록 이끌어 가도록 인도했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하나님은 우리 신자를 늘 십자가로 이끄신다는 것입니다.
그 십자가 앞에서 자신의 연약함을 보게 하시므로 주님만을 믿고 따르도록 인도하시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우리에게 믿음을 주신 것은 약한 나로 강하게 하고자 함이 아니라 하나님만이 우리의 강함이 되심을 알고 믿으라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우리에게 믿음을 주신 것은 예수님이 시험받으시며 버리셨던 육신의 정욕과 탐심을 물리치고 영혼의 주인되신 주님만을 믿으라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우리에게 믿음을 주신 것은 나는 죽고 예수로만 살게 하고자 함입니다.
바울사도는 나는 날마다 죽노라 고백합니다.
따라서 그리스드인은 평안과 기쁨과 감사할 일 밖에 없는 것입니다.
즉 장차 갈 천국이 아니라 지금 누리는 천국의 삶을 살아가므로 감사하는 것입니다.
우리의 약함을 통해 오직 주님만을 믿고 높임을 받으시고 자랑되기를 원합니다.
합3:17 비록 무화과나무가 무성하지 못하며 포도나무에 열매가 없으며 감람나무에 소출이 없으며 밭에 먹을 것이 없으며 우리에 양이 없으며 외양간에 소가 없을지라도
합3:18 나는 여호와로 말미암아 즐거워하며 나의 구원의 하나님으로 말미암아 기뻐하리로다
세상의 것들이 나를 즐겁게하고 기뻐하게 하는 것이 아니라 오직 주님으로 즐거워하고 기뻐하며 사시기를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