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독세대의 자화상(自畵像)/분통리의
여름
인근 도시에 살고있는 옛직장 친구의 전화를 받았다. 빈대떡 안주하는 술생각 나는 봄비오는 밤에 또다른 친구와 그걸 마시다 생각이 나더라는 것이다.
그는 올해 101세 되신 "어머니의 건강이 악화되어 마음이 불안하다"고 하였다. 나는 "그만큼 사셨으니 삶에 미련은 없으시지 않겠나? 후회할 일은 남기지 말아라"라고 말했다. 나의 어머니께서도 작년에 101살 나이에 먼곳으로 떠나셨으니 내가 앞선 경험자인 셈이다.
전화를 끊고 나니 문득 지난달에 다녀온 부모님의 산소에 또 가보고 싶다는 충동이 일어났다. 봄놀이 트래킹 삼아 대중교통 여행계획을 세웠다.
다음날 아침 배낭을 메고 시내버스에서 내려 양산행 전철을 갈아탔고, 환승센터에서 다시 공원묘지행 10번 버스를 기다렸다.
전광판(電光板)에 2~3분내에 도착한다더니 시간이 지나도 버스는 나타나지 않았다. 첫여행부터 왜이럴까? 한참을 기다리니 도착 20전 상황으로 안내되었다.
이런경우 버스운행 전광판은 해당버스에 센스가 달려있고, 그것을 위성통신으로 감지하여 현재 위치나 도착시간이 표시되는 것으로 알고 있었다.
그런데 우리가 모르는 뭔가가 있다. 나는 그러한 경험을 여러번 당했다. 버스가 근처까지 분명히 접근했는데, 갑자기 사라져 버리는 것이다. 하늘로 날아가지 않으면 우회해서 돌아가 버릴 수 있는 도로상황도 아닌 데도 말이다.
취약노선에 대한 지자체의 보조금 때문일까? 승객은 없고, 운행하면 적자가 나니 운행한 것처럼 실적을 남기자는 수법...그런데 기다리는 승객은 사기당한 기분이 드는 배신감은 알기나 할까?
30분 가까이 늦게 나타난 버스를 타고 시내 코스를 돌고, 시외 주요 골목을 거쳐간다. 냇가의 자유롭게 활짝핀 유채꽃들이 싱그럽다.
창틈으로 봄바람 스며들고, 산과 들엔 만물이 기지개를 켠다. 겨우내 한동안 말동무 적었던 할머니들은 외지인 들으라는 투로 지나는 바깥 환경을 중계방송 해댄다.
맨뒤 앉은 나의 앞좌석 좌우엔 면내 미장원 아줌마가 신경깨나 쓴 듯한 주황머리 20대 아가씨와 2인분 좌석 덩치의 더벅머리 청년이 각각 자리를 잡았다.
아가씨는 습관인듯 수시로 머리칼을 공중으로 날렸고, 청년은 자리에 앉자마자 엎드려 코를 골았다. 그 소리가 어찌나 큰지 뒷좌석에 앉았는데도, 자동차 소음을 잠재우고 운전기사의 귀에까지 들리는 모양이었다. 차안의 모든 사람들이 키득키득 웃어댔다.
저러다 목적지를 지나치지 않을까 걱정되어 넓은 등짝이라도 한때 때려주고 싶은 장난기가 발동했지만, 내가 왜? 멈칫거리는 사이에 그가 눈을 떴다.
다시 졸다 깨기를 계속했다. 젊은 나이에 열심히 일한 탓으로 피곤함을 느낀다면 칭찬 받아 마땅할 터이다.
승객들은 봄기운 여유로움에 들떴고, 시골행 버스도 춘흥에 겨운 듯 골목을 돌고, 다리를 건너며 사람들의 몸둥이를 흔들어 춤추게 만들었다.
산비탈 공원묘지는 20여년전에 조성된 사설묘지로 인근에서는 규모가 큰편에 속하는 곳이다.
공동묘지도 빈부차를 가른다. '공수래공수거', 죽은이는 돈은 못가져가도 가족은 그손의 크기를 나타내려 애쓴다.
부모님 무덤을 지난달 심었던 작은 꽃한송이가 아직도 살아 있다.
그래도 이곳에 모셔진 분들은 자식들에 의하여 돌보며 관리되고 있어 좋았다.
핵가족으로 분화되고, 노인빈곤이 심화된 사회는 친인척은 물론이고, 친구마져 인연이 끊어져 좁은 골방에서 외로움과 병마 겹쳐 싸우다 절명(絶命)하는 안타까움이 있었다. 심지어는 언제 수명을 다했는지 알수도 없는 절망적 현실...이 얼마나 비참한 그들의 노후인가?
앞으로는 시골이 문제다. 어릴적 시골은 우리들의 마음의 고향이었지만, 산업화의 그늘에 뒷전으로 밀려 고령화되고 인심마져 사나워졌다.
살아생전 부모님께 불효한 것에 대한 속죄라도 하는양 이마에 흐르는 땀을 닦아 가며 갔던 길을 돌아오며 네댓시간 걷고 나니 마음이 다소 후련했다.
고독시대의 자화상이랄까? 홀로사는 시골 할머니의 죽음, 언젠가 읽었던 고재종 시인의 시가 떠올라 옮겨 보았다.
분통리의 여름/고재종
닷새만에 헛간에서 발견된
월평할매의 썩은 주검에서
수백 수천의 파리떼가 우수수,
살촉처럼 날아오르는 처참에 울고
빈대 뛰는 온 방안 뒤지고 뒤져
찾아낸 전화번호 속의 일곱 자녀들
기름때 묻은 머리로 하나 둘 달려와
뒤늦게 뉘우치며 목놓는 아픔에 울고
급기야 상여를 멜 남정네들 모자라
경운기로 울퉁불퉁 북망길 떠난 할매
굴삭기로 파놓은 구렁에 묻히는
그 험한 종말에 또 울었지만
어디 그뿐이랴 이 사양의 마을
그 어디건 헐린 담장, 텅 빈 마당에
개망초 눈물꽃은 흐드러지고
뻐꾹새 피울음은 종일 쏟아지고
이제 불과 예닐곱집 연기나는 곳
퀭한 눈만 남은 또 다른 월평네들의
간단없는 해소기침만 너무 질겨서
사방 산천 진초록도 목숨껏 노엽고
* '무소의 뿔처럼 혼자서 가라'는 붓다의 말씀은 불필요한 인연을 맺지 말라는 의미이고, 좋은 인연에 연연(戀戀)하며 고독한 노년이 되지 말아야겠어요.
첫댓글 김승옥님 무진기행의 버스를 타고가는 세사람의 모습과 피천득 시인의 섬세한 수필을 함께 보는 느낌입니다.
어느 문단에 내놓아도 허울만 멀쩡한 수필가의 수필이 범접할 수없는 최고의 진솔한 글
귀한 글 읽고 저도 뒷산 어머님 산소나 다녀와야겠습니다. 정말 많이 배웁니다.
함께 동행하며
바라본 일상처럼 느껴지는
한편의 소설입니다
멋지네요
한편에 에세이 수필을 보는듯한 일상을그대로
넘 요약있게 잘쓰셨습니다
평생교육원 수필란에 책을쓰셔도 될것같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