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안에 놀러가다
-주로 마이산 주변에서 뭉게구름과 노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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멀리서 바라다 보이는 마이산의 두 괴이한 봉우리는 정겹기도 하고 한편으론 신비스럽다.
정상으로 가는 길에 놓인 목재 계단은 오르는 길을 수월하게 만들어준다. 누가 계단 한 칸마다 숫자를 명기해놓았다. 오르는 사람에겐 얼마만큼 남았고, 내려가는 사람에게는 얼마만 내려가면 된다는 희망과 안심을 주기 위해서다.
어린 손자를 포함한 3대 가족 넷이 정상을 향해 계단을 오르고 있다. 어린 손자는 일일이 계단을 세며 올라간다.
-칠십 여섯, 칠십 일곱...
-그렇게 숫자를 세며 올라갈 것 뭐 있어!
중간쯤 미리 올라 기다리며 내려다보다 재미있어 한 마디 했더니 아이 엄마를 비롯해 모두 웃는다. 아이도 겸연쩍어 하며 비시시 웃는다. 칭찬을 해주고 싶다.
-야아! 아주 영리하고 야무지게 생겼네. 지금 몇 학년이니?
-일곱 살입니다.... 고맙습니다.
말하는 투가 어른스러워 그만 놀라고 만다.
진안군에서 오랜 옛적부터 해내려온 전통행사의 하나로 해마다 마이산 산신제를 지낸다는, 산 밑의 첫 절인 은수사에는 스님의 염불소리가 낭랑하게 경내에 울려퍼지고 있다. 제물을 들고 법당으로 살며시 들어가는 스님은 알고 보니 비구니다. 아내가 살짝 일러준다.
삼삼오오 등산팀이 꾸준히 마이산으로 몰려온다. 정상까지 별로 높지 않건만 오르는 계단에서 벌써 주저앉는 사람들이 보인다. 아내는 평소 운동을 꾸준히 하는 편이긴 하지만 마이산 목재 계단을 남편 주차장에서 사찰이 있는 동편 주차장까지 왕복을 했음에도 끄떡도 않아 내심 흐뭇하다.
아름답고도 장난기 넘치는 마이산 봉우리를 배경으로 모두들 열심히 각양각색의 포즈를 취하고 사진도 찍는다. 찍으면서 웃는 소리가 은수사 사찰 내에 감미롭게 떠다닌다. 해서 모두들 전염되어 비슷한 행위들을 반복하게 되는 것이다.
2-세계가위박물관
가위라는 소재 하나로 우리나라에만 있는 세계에서 유일한 박물관이란다. 가위와 관련한 예술품은 유럽이 가히 압도적이다. 실용적인 측면에서 보면 수술용, 이발용, 가사용에서부터 무기, 과일 재배용, 공예용 등등 다양하고, 유럽과 중동이 모양새와 종류가 다양하면서 다르고, 일반인과 왕족, 그리고 부유한 귀족층에서 사용했던 가위들이 장식과 실용적인 측면에서 제각각 달랐다.
무엇보다 인상적이었던 것은 실용적인 가위보다 장식적이고 예술적이며 신분을 드러내는 과시용 가위가 전시관 전체의 절반 이상을 점하고 있어 볼거리가 풍성했다는 점이다.
박물관이라는 명칭에 별 기대를 않고 시간이나 건질 겸 발길을 옮겼는데 기대 이상으로 재미있고 즐거운 호사를 누렸다.
3-명인명품관
현대 생활에서 부채는 더 이상 필요하지 않다. 그리고 실용적이지도 않다. 현대 과학으로 더위에 에어컨이 부응함에 따라 어릴 적부터 친숙했던 부채는 일상생활이라는 무대에서 그만 사라질 판이다. 그저 현대인들의 집안에 사치품이나 장식품 정도로만 들여지고 태반은 진안의 ‘명인명품관’같은 박물관으로 사라져야 될 형국이다. 전시관 내부에 진열된 아름답고 진기한 모양의 많은 부채들은 그래서 내내 안타까움만 더했다.
도자기, 식기, 한지들도 마찬가지로 진열되어 있었는데 그 명맥이라도 계속 이어질는지...
4-진안역사박물관
이곳은 지금 기획 전시관을 운영 중이다. 그것도 한시적으로 하는 탓에 사진을 통한 진안의 전통과 문화를 한 눈에 보려면 지금 가야 한다.
5-저수지에서
바람개비가 형형색색 돌고 있다. 저수지에는 여름을 향해 하늘로 분수가 치솟고 있고 그리고 커다란 파라솔이 받쳐주는 벤치가 저수지를 향해 있는데, 앉으니 마이산의 커다란 두 봉우리가 눈앞에 펼쳐져 있고 둘러싼 산등성이 위로는 솜사탕 같은 뭉게구름이 영화관의 스크린처럼 커다랗고 입체적으로 펼쳐져 있다.
순간, 시간이 멈춘 것은 아닐지....
자! 이만하면 아내와 벤치에 앉아 마이산 정면의 스크린을 향해 시원한 분수대에서 날라오는 수증기를 피부로 느끼며 한 시간 정도 멍 때려도 좋지 않을까.
*방문코스 : 집(천안) - 마이산 은수사 – 세계가위박물관 – 명인명품관 – 진안역사박물관 – 진안저수지 – 집(천안)
(2023. 0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