허준이는 유배가 끝난, 광해군의 윤허(허락)를 받고서, 낙향해서 경상도 산음으로 돌아왔다.
허준이의 어머니는, 아들 허준이도 알아보지 못할 정도로 심한 알츠하이머(Alzheimer)병에 걸렸다. 허준이는 병든 어머니를 보고서 통곡했다. 약제사 임오근이는, “못 고치는 병이 없는 허준, 어머니 병을 못 고치는 허준, 그 심정은 얼마나 아플까!”하고 탄식했다.
마을에서는 돌림병이 통제되었다고 해서 축제가 벌어졌다. 온 동네 사람들은 술을 마시고 북치고, 장구 치고, 노래 부르면서 즐기고 있었다. 하지만, 허준이는 혼자서 병상에서 환자를 간호하고 있었다. 그리고 앉아있는 채 조용하게 죽었다. 죽어있는 허준이의 손에는 환자에게 놓아줄 침이 들려있었다. 드라마 끝.
피고름을 입으로 빨아낸 유의태 의원
유의원은 심의였다. 환자들을 긍휼이 치료해주었다. 영화에서 보면, 어떤 환자는 “창병”으로 등에 종기가 생겨 곪아있었다. 유의원은 곪은 종기를 입으로 빨아서 치료했다. 이것을 옆에서 지켜보고 있었던 허준이도 나중에 환자들의 고름을 입으로 빨아서 치료해주었다. 창병(瘡病)이라고 해서 창병이 도대체 뭔가 하고 국어사전을 찾아보았다. 창병을 매독이라고 했다. 매독은 당착, 양매창, 창병, 창질, 창, 영어로는 시피리스 (Syphilis)라고 부른다. 매독은 성병의 일종으로서 한번 걸렸다 하면, 그 당시는 다 죽고 마는 무서운 병인 것이다. 만약 유의원이 매독으로 곪은 종기의 고름을 입으로 빨았다면 유의원 자신이 매독에 걸리게 되는 것이다. 매독에 걸렸다하면 유의원도 죽을 수밖에 없게 되는 것이다. 지금에 와서는 페니실린(Penicillin)으로 매독을 치료하고 있지만 말이다. 내 생각으로는, 허준이가 살아있는 당시에는 아마 매독이라는 병이 한국에는 아직 없었던 것으로 나는 알고 있다. 그래서 여기 창병(瘡病)은 창(瘡)이라고 해서, 매독이 아니라 그냥 ‘부스럼’을 말하는 창(瘡)인 것 같다. 창은 종기(腫氣)인 것이다. 곪은 종기를 유의원이 입으로 빨아서 고름을 빨아냈었던 것이다.
고름을 입으로 빨아내서 치유했다는 것은 나로서는 상상도 하지 못할 짓인 것이다. <오자병법>을 쓴 오기(吳起)는 기원전 440년, 춘추전국시대의 사람이다. 손자병법의 저작자 손무보다 100년 후의 사람이다. 오기는 76번 싸워서 단 한 번도 패하지 않고 다 승전한 장군이었다. 오기의 아내는 제(齊)나라 사람이었었다. 제나라가 노나라를 침범해오고 있었을 당시 노(魯)나라에서는 오기를 장군으로 모시려고 했다. 헌데 아내가 제(齊)나라 사람이기에 일부 사람들이 반대했다. 오기는 집으로 와서 자기 아내를 칼로 쳐서 죽였다. 그리고 노나라 장군이 되어서 제나라 군대를 물리쳤다. 오기는 출세를 위해서라면 아내도 죽이는 그런 사람이었다. 하지만, 아내를 죽였기에 반대파들이 오기를 처벌하려고 했다. 오기는 위나라로 도망쳤다. 위(魏)나라 왕은 오기를 대접했다. 오기는 장군과 병사 사이의 인화(人和)를 강조했다. 장군이 부하를 사랑해주어야 부하가 장군을 위해서 목숨을 바치게 된다고 했다. 위나라 장수로서 진(晉)나라와 대치하던 중, 한 병사의 등에 심한 종기가 생겼다. 오기는 병사의 곪은 종기를 입으로 빨아 치료해주었다. 이 말을 들은 병사의 어머니는 통곡을 했다. 왜 통곡하느냐고 주위사람들이 물었다. 그 어머니는 그녀 남편이 종기가 났었을 때 오기가 빨아주었었다는 것이었다. 남편은 하도 고마워서 오기를 위해서 목숨을 아끼지 않고 전쟁터에서 적과 싸우다가 죽었다고 했다. 이번에도 자기 아들이 또 오기를 위해서 목숨을 아끼지 않고 싸우게 되면 또 죽게 될 것이라면서 통곡을 했었던 것이었다.
여기서 내가 말을 하고자 하는 점은, 중국에서는 이미 오래 전부터 등에 난 종기의 고름을 입으로 빨아 주었다는 사실이다. 유의태의원이 입으로 종기의 피고름을 빨아서 치료했다는 게 새로운 사실이 아니라는 점이다. 하지만, 매독의 피고름을 입으로 빨면 자기도 매독에 걸린다는 사실을 알고 있어야 한다. 현대의학에서는 피고름을 입으로 빨기는커녕 맨손으로도 짜지 않는다. 현대의사들은 글러브(glove: 장갑)를 손에 끼고 병자의 종기를 짜주고 있는 것이다.
의원들의 고충
의사란 직업이, 의학이 발달한 현대에도 쉬운 직업이 아닌데, 허준 의원이 살아있었을 당시의 의사들의 고충이란 이루 말할 수 없었을 정도로 심했을 것이다. 아프다고 아우성치는 환자의 통증을 가라앉혀주지 못할 때, 환자의 증세가 점점 악화되어 갈 때, 살겠다고 몸부림치는 환자를 살려내지 못할 때 의사들은 심한 고충에 빠지고 마는 것이다. 의사로서 최선을 다했었는데도 환자를 살려내지 못했다고 고소를 당하는 의사가 있다. 이럴 때 의사들의 괴로움이란 엄청나게 큰 것이다.
공빈 마마의 오라버니 김씨는 구안와사에 걸렸을 때, 유도지라는 한의사가 침과 한약으로 치료를 해서 치유되었지만, 얼마 못가서 재발되고 말았다. 유도지는 심한 수모와 창피를 당했다. 허준이가 대신 김씨의 구안와사 치료를 떠맡게 되었다.
구안와사(口眼瓦肆: Bell palsy, 벨마비)란 입이나 눈 근처, 이마의 근육이 옆으로 비틀어진 상태를 말하는 것이다. 허준이가 김 씨를 진맥해본 결과, 김 씨는 초기 위암에 앓고 있었다고 진단을 내렸다. 임금은 허준이에게 며칠이면 김 씨의 병이 나을 수가 있느냐고 물었다. 허준이는 5일이면 김씨의 병이 치유될 수가 있을 것이라고 약조해주었다. 궁궐에서는 희언(戱言: 실없는 말, 농담)은 없다고 했다. 이 말은, 약조한 대로 질병이 나아지지 않을 경우에는 허준이는 손목을 잘리우 게 되는 심한 처벌을 받아야만 했다. 허준이는 김씨에게 한약을 끓여 먹였다. 3-4일 후에 김씨는 피를 토했다. 가족들은 김씨의 병의 증세가 더 악화되어간다고 여겼다. 하지만, 허준이는 한약을 먹고서, 위에 있는 암 세포가 죽어서, 죽은 암세포가 피와 함께 토해져 나온 것이라고 말을 하면서, 병의 증세는 점점 나아지고 있다고 보고했다. 김씨의 구안와사를 치료하기 위해 허준이는 김씨에게 침을 놓았다. 김씨의 입은 비틀어진 채로 그냥 있었다. 드라마에서는, 약속한 대로 5일 만에 완치되지 않았기에, 허준이는 형벌 장으로 끌려가 손목을 작두 날 위에 올려놓았다. 이때의 허준이의 마음은 얼마나 아팠을까! 여러 의녀(醫女: 간호사)들이며 다른 의원들이 허준이를 용서해주라고 어의(御醫)에게 간청했으나 간청은 들어주지 않았다. 손목이 잘리려는 바로 그 순간, 김씨의 병이 완쾌되었다는 전갈이 왔다. 허준이는 용서를 받았고 그리고 그의 손목은 극적으로 잘리지 않게 되었다. 허준이는 김씨의 구안와사와 초기 위암(反胃)을 완치시켰다고 해서 공빈 마마가 허준이에게 집 한 채를 하사(下賜)했다.
얼마 후에, 공빈 마마가 진심병(陣心痛: Myocardial infarction: 심근경색증)에 걸렸다. 유도지가 치료했었지만 실패했다. 다시 허준이가 공빈 마마의 진심병을 침을 놓아서 치유했다. 이번에는 공빈 마마가 허준이에게 호피(虎皮: 호랑이 가죽)를 선사했다. 드라마에서는, 호피 위에서 잠을 자면 기운이 왕성해져서 오줌을 눌 때 오줌발이 담장을 넘어가고, 오줌발이 초가지붕을 넘어가고 그리고 오줌 눌 때 오강이 훌쩍훌쩍 뛰다가 오강이 뒤집어진다고 농담을 했다.
광해군이, 학질에 걸려 앓고 있었을 때다. 허준이는, 아무리 생각해보아도, 학질을 고칠 수 있는 한약은 없었다. 그래서 할 수 없이, 비소(arsenic: 비상)를 사용해야만 했었다. 비소는 사람을 죽이게 하는, 사약(死藥)으로도 사용되고 있는 독약인 것이다. 비소를 사용하겠다고 하니까 왕과 대신들이 깜짝 놀라지 않을 수가 없었다. 어떤 대신들은 비소를 사용해서 광해군을 죽일 참이냐고 따지기도 했다. 광해군을 미워하는 간신들은 허준이더러 비소를 사용해서 광해군을 살인해달라고 압력을 가하기도 했다. 한편, 광해군은 허준이를 신임하고 있었기에, 허준이가 약제해준 비소가 들어있는 탕약을 먹었다. 만약 광해군이 죽어버릴 경우 허준이는 참형(칼로 목이베어 죽임)을 당할 수밖에 없게 되는 것이다. 이때 허준이는 의사로서 엄청나게 괴로워해야만 했었다. 다행히도 광해군의 학질은 나았다.
내가 위의 세 경우를 말한 이유는, 의사들의 고충을 말해보기 위해서 인 것이다. 의사들이 환자를 치료하는 이유는, 환자들의 병을 고치기 위해서 인 것이다. 헌데 병이 고쳐지지 않을 때 의사들은 혼자서 많이 괴로움을 당하게 되는 것이다. 옛날 의사들의 고충이란 이루 말할 수 없었을 정도로 심했을 것이라고 나는 추측하고 있다.
의사들도 재수가 좋아야 한다. 재수 좋은 의사들은 병이 잘 낫는 환자들만 찾아와서 병이 잘 낫는다. 헌데 재수가 없는 의사들은 잘 낫지 않는 환자들만 찾아와서 병이 낫지 않을 뿐만 아니라, 나을 때쯤 되면 다른 의사한테 가버린다. 나을 때쯤 된 환자들이 찾아온 의사들은 재수가 좋아서 쉽게 환자들을 치유해버린다. 드라마에서는, 유도지 의원은 재수 없는 의사이고 그리고 허준이는 재수 좋은 의사인 것이다. 드라마에서, 허준이를 명의로 묘사해놓았다. 명의도 보통 명의가 아니라 모든 병을 다 완치시켜놓는 수퍼(Super) 명의로 묘사해놓았다. 현대의학으로도 치료되지 않는 초기 위암을 한약으로 고쳐놓았다. 의식까지 잃었고 그리고 반신불수가 되어있는 심한 중풍환자인 대감 부인을 완쾌해놓았다. 이런 중풍환자들은 치료를 받아서 병의 증세가 좋아지면, 요새 같으면, 휠체어타고 다녀야 할 중풍환자인데도 허준이는 이런 중풍환자를 완쾌시켜놓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