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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의학, 한국 중국 일본의 차이점
나라마다 문화가 다르고, 생활 습관이 다르듯, 학문에서도 그런 차이점이 나타날 수 있다.
한의학은 한국 중국 일본에서 지금도 하고 있는 전통 분야이고 공통점이 많지만, 나라마다의 차이점도 꽤나 있다.
일본 한의학(캄포)의 가장 큰 특징은 "환자를 기성 처방에 맞춤"이라고 정리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
어떤 환자든지 기성 처방군의 틀 안에서 처방을 정교하게 찾아내는 방식이 매우 보편화되어있다.
초학자의 경우, 일본 한의학을 공부하기 매우 쉬운 이유가 바로 이것이다. 각각의 처방의 활용 범위가 고정되어 있어서 학습자는 환자의 증상을 듣고 마치 퍼즐을 맞추듯 처방을 선정할 수 있다. 처방의 변형(가감)은 매우 제한적이다.
또한 처방의 선정에서부터 치료 결과까지 하나의 완결된 "이야기"를 중시한다. 그레서 케이스 스터디가 매우 발달하였으나, 우리나라의 케이스의 느낌과는 다르게 한가지 케이스에도 완결미가 있고 다양하고 복잡한 사고 방식을 하나에 엮어 넣은 점이 그 특징일 것이다.
한국 한의학의 가장 큰 특징은 "개체성" 즉 개개인의 특징과 평소 상태, 체질 등을 중시한다는 것에 있다. 성리학의 사단칠정이 사람에 따라 다르게 발현되듯, 한국 한의학에서는 보편적 한의학 이론이 개개인에게 어떻게 적용되는데에 그 관심의 촛점이 맞추어져 있다. 일본이 처방 자체의 방증에 촛점을 맞춘다면, 한국 한의학은 환자 자체에 무게를 둔다. 똑같은 처방이라도 사람의 상태와 평소 질병 상태 등에 따라 다르게 쓸 수 있다고 생각한다.
쌍화탕의 경우, 사람에 따라 다양하게 가감하는 것은 물론, 쌍금탕, 쌍패탕 등 다양한 처방과의 합방을 통해 환자의 상태에 맞추어 처방하는 경향성이 강하다.
그렇기 때문에 사람에 따라 다양한 가감법과 체질이론, 경우의 수가 발달했다. 거의 약물의 가짓수 만큼이나 다양하고 현란한 가감법들이 발달했고, 환자의 상태와 체질에 따라 같은 병이라도 즉흥적으로 구사하여 병을 치료하는 경지를 높게 여기는 경향성이 있다.
중국 한의학(중의)의 특징은 "일반화"와 "추상화"에 있다. 매우 다양한 병증과 질환과 증상을 추상적으로 일반화하여 설명하고, 환자의 상태나 처방의 선정도 굉장히 일반화된 이론으로 설명한다. 가령 가장 잘 알려진 계지탕과 같은 처방의 경우, 일본은 환자의 증상에, 한국은 환자의 평소 경향성과 질환에 집중한다면, 중국은 "조화영위"라는 계지탕의 일반화된 처방 원칙이나 이론으로 설명한다. 오령산이라는 명방이 다양한 증상에 쓰이지만, 중국 상한 대가인 유도주 선생 같은 경우는 "수역"이라는 두마디로 오령산을 쓰는 범위를 일반화시켰다. 물론 이 방식의 장점도 있지만, 쓰는 용어가 다양한 상황에서 중복이 되기 쉽고, 추상화되고 일반화된 이론을 쓰기 때문에, 개개의 상황을 잘 모르면 읽기 어려운 점도 있다.
[출처] 한의학, 한국 중국 일본의 차이점|작성자 사람과 사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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韓醫學 (국내 정식 표기, 1986년 이후)
한국 한의학 (韓醫學, Korean Medicine)
일본 한방의학 (漢方医学, Kampo Medicine)
중국 중의학 (中医学, Chinese Medicine)
동아시아에서 전해져 온 전통의학이다. 바탕이 되는 이론은 경락학설과 음양학설[1]이며, 한의학은 이 음양학설을 바탕으로 인체를 소우주(小宇宙)라 여기고, 인체의 생리현상을 마치 자연현상처럼 파악한다. 그리하여 한의학은 음양학설과 밀접한 사이이나 이 둘의 관계는 현대의학과 자연과학과의 관계와는 다르다. 자연과학을 전제조건으로 두고 임상시험을 펼쳤던 현대의학과는 달리, 한의학은 반대로 먼저 치료를 통해 경험을 얻고 나중에 그 원리를 음양오행으로 정리 및 설명하였다. 또한 한의학은 다른 의학들과는 달리 침(針)을 사용한다.
중국의 전통의학은 흔히 중의학(中醫學)이라고 부른다. 중의학의 근간이 된 경락학설은 춘추전국시대 이전에 성립하였는데,[2] 한나라 때에 이르러서는 황제내경과 상한론이 등장하면서 본격적으로 체계를 갖추었다.
이후 외부와의 교류를 거친 중의학은 송나라 때에 역대 의서가 총정리되면서 학문으로서의 모습을 갖추었고, 금나라, 원나라 시대에 등장한 4명의 의가[3]를 거쳐 더욱 발전하였다. 어느 정도냐면 현재 시행하는 상당수의 처방법이 이 시대에서 비롯됐다.
청나라 때는 외국인의 왕래로 새로운 질병이 퍼져나가 전통의학만으로 치료가 힘들자, 서양의학을 전통의학과 접목시키는 중서회통파가 등장하고, 새로운 이론에 근거하여 유행병을 치료하는 온병학이 시도되었다.
아무래도 한의학이 본래 한(漢)의학이라 불리기도 했고, 유럽에서도 동아시아 전통 의학을 TCM[4]으로 보기도 하는 만큼, 압도적으로 유리한 점이 많다. 완전히 해석되어 번역된 것들을 제외하면 다른 동아시아 국가에서는 자료 해석도 상대적으로 더 어렵다. 특히 황제내경처럼 요즘에는 새로 뜨는 이론들에 밀리는 감이 있는 이론이 주요 이론이 되어 다른 문화권으로 주로 전파되어서 다른 동아시아 문화권은 마음대로 자료를 구하기도 힘들다.
중국에서 국공내전이 벌어지던 당시, 마오쩌둥은 돈 없고 힘 없던 환자들이 한방치료로 건강을 되찾는 것을 보고 깊은 감명을 받았다고 한다. 나중에 중국 공산당이 중국 국민당을 제압하고 전 중국을 통일하자 마오쩌둥은 전통의학을 중의학(中醫學)이라 부르며 대대적으로 지원하였다.
그에 힘입어 국제적으로 한의학에서는 중의학이 매우 큰 비중을 차지하고 있다. 서양에서 한의학을 주목하기 시작한 이유도 중국 때문이다. 냉전시대 핑퐁외교 당시에 미국의 고위 인사가 중국에서 충수염(맹장염)으로 수술을 받는데, 침술을 통해 마취를 한 일이 미국 일간지에서 보도되면서 세계적으로 주목을 받았다.
중국에서는 현재 국의대사와 같은 국가 명예직 노중의 제도가 있고, 국의가 되면 그 밑에 도제식 교육을 통해 처방과 치료성과가 후대로 전수되게끔 한다. 상한론의 유도주 등이 국의 대사로 대학에서 강의하거나 그 성과가 곧바로 출판되는 등, 여러모로 공헌을 하고 있다.
현재 RCT와 같은 이중맹검법과 sham침을 활용한 논문들 중, 메타 분석을 이용하여 침의 효과를 밝힌 논문들이 나오기 시작했다. 침은 비용이 싸고 안전하여, 권고할 만한 치료법으로 등재된 경우가 제법 많다. 다만 이중맹검에서 sham침이 피부를 찌르기 때문에 실제 플라세보로 불리기는 어렵다는 서양의 침 연구자들의 의견도 있다.[5]
중국은 서의사와 중의사로 제도를 분류한 이원화 체계이나, 서로의 의료영역 침범에 아무런 제한이 없다. 중의사들만큼은 아니지만 서의사들도 양약의 대체로 중약제제를 상당히 많이 활용하며, 오히려 현재 중국에서는 서의사들이 중약을 중의학식 변증 없이 사용했다가 낭패를 보는 경우가 제법 있다고 한다.
기본적으로 중국도 그렇고 일본도 그렇고 의사들이 한의학에 접근하는 데 아무런 제약이 없기 때문에, 의사들 역시 다양한 이유로 침이나 뜸, 한약을 사용한다. 대개 현대의학적 치료만으로는 어려움을 느끼는 양약의 부작용을 호소하는 환자들, 증후군 성향을 지녀서 양약을 다량 처방해야하는 어려움이 있는 경우, 만성 질환 및 노인 질환, 현대의학적 치료의 가격이 높은 경우 등에 한의학적 치료를 사용한다. [6]
한편 중의학은 현대 의학과의 연계를 통해 다양한 시도가 가능하다는 것도 특징이다. 특히 대륙의 기상으로 다양한 기구를 지금도 만들어내며, 경혈도 계속 찾아내고 있고 새로운 치료법도 계속 시도하고 있고 이러한 치료법 중 괜찮다 싶은 건 한국에도 수입된다. 대표적인 성과는 아무래도 2015년 노벨생리학·의학상을 수상한 중국의 투유유는 식물화학자이자 약학자이자 중의학자이다.[7][8]
중의사는 대략 한국의 한의사와 의사가 7:3 정도로 섞여 있다는 느낌이다.[10] 중의병원 내부에서 진단검사의학이나 영상의학 등의 서포트 파트는, 순수 중의가 아닌 서양의학을 배우고 세부분과과목을 전공한 의사[11]가 서의습중의(西醫習中醫) 과정이라는 2-3년의 추가교육을 받은 이들이 담당하는 경우가 많다. 참고로 중의사는 진맥비를 따로 받는다.
중국 주도하에 여러 연구들이 이루어지고, 한국에서도 SCI급 학술지에 실릴 만큼 제대로 된 연구들이 점차 많아지고 있다. 아직 표준화 문제와 적은 연구비 등으로 인하여 제약사항이 많다. 중국의 경우에는 모택동 시대에 대학이 폐쇄된 이후 현재의 연구 인력들의 양이나 수준이 좋지 못한 상황이다. 그러나 중의대 1곳에 1천억, 전체적으로는 몇 조가 되는 연구비를 중의학 연구에 쏟아붓고 있으니 곧 이른 시일 내에 가시적 성과가 나올 전망이다. 왜냐하면 중국이 중의학을 세계화하기 위해 국가적으로 밀고 있기 때문이다. 물론 일본과 한국의 경우, 엄격한 논문 검증 과정을 거친다.
최근 메타 분석들은 중국뿐 아니라 북미에서도 연구가 되며 계속해서 침에 관한 연구가 나오고 있는 중이며 한의학 외에 많은 전통의학이나 대체의학과의 교류도 넓혀나가고 있다.
삼국시대 이전에는 별다른 기록이 없으나, 삼국시대에 들어서면서 외국과의 교류가 활발해졌으며, 이에 따라 삼국 시대의 의학에 관련된 기록을 많이 찾을 수 있다. 일본의 옛 역사 기록에 백제신집방, 신라법사방 등 신라나 백제의 처방이 기록되거나 의사의 행적이 기록된 것을 찾을 수 있다. 이를 살펴보면 당시 의술은 불교 및 도교의 영향을 받아 주술적 행위와 혼합되어 시행되었으며, 일본에서 의학을 집대성할 때 바다 건너 한국의 처방을 일부 소개할 정도로 한국 의학의 인지도가 있었음을 알 수 있다.
고려 시대에도 의학의 교류는 활발하였으며, 의서, 약재의 수출과 수입이 다양하게 이루어졌음을 확인할 수 있다. 이 시대에 작성된 향약구급방은 현재까지 존재하는 의서 중 가장 오래된 책이다.
조선 시대에 들어서 한국의 한의학은 거대한 발전을 이루어서, 세종 대에는 당시 국내에 존재하던 처방을 모두 모은 향약집성방이 완성되었으며 당시 의학의 백과사전 격인 의방유취 또한 세종조에 만들어졌다. 의방유취는 양이 방대하여 현재 조금씩 연구가 이루어지고 있다. 그러나 가장 위대한 작업은 역시 동의보감이었으며, 이후 한국의 한의학은 이론의 발전보다 대중화를 초점으로 그 방향을 돌리게 되었다.
그러다 19세기 말 사상의학의 등장으로 한국의 한의학은 새로운 전기를 맞이하게 되었다.
구한말 현대의학이 들어오면서, 한의학의 한계점을 인식하고 현대의학을 수용하면서 점진적으로 현대의학으로 이행시킬 기회가 있었다. 대표적인 사례로 경성의학교 교장인 지석영은 한의사였다. 얼마 지나지 않아 일제강점기를 맞이하게 되었으며 한국 한의학의 암흑기가 시작되었다. 일본은 한의학을 시대에 맞지 않는 의학으로 생각하였으며[12] 한의사들은 의생으로 격하되었으며, 현대의학과 한의학의 유효성에 대한 논쟁 또한 격렬하였다.[13]
일제강점기에는 서양의사가 부족해 기존 의료인력을 활용할 필요가 있었으므로 기존에 존재하던 의생을 적극적으로 없애려고 탄압하지는 않았지만 점진적으로 새로운 의생의 배출은 억제함으로써 도태하려는 시도가 있었다.[14] 이로 인하여 의생 규칙이 시행된 지 1년 뒤인 1914년 말 당국에 등록된 의생 수는 5,827명이었는데, 해방 직전인 1943년에는 3,337명으로 30년 사이에 40% 이상 감소했다.
그러나 일제가 한의학을 억압한 것은 일제 병합 후 초기의 현상이고, 후기로 가면 갈수록 한의학에 대한 지원과 학술을 권장했음을 알 수 있다. 특히 한약물에 대한 과학적 연구나, 화학적 연구를 지원했으며, 조선의 한의학에 대해 높이 평가하였다. 따라서 일제가 무조건 한의학을 억압했다는 주장은 사실이 아니며, 일제가 한의학을 연구하여 만든 약도 제법 있다. 따라서 일제강점기의 한의학 정책은 시기별로 달랐다.
해방 이후에 잔존한 의생들이 모여 의생협회를 설립하고 동양학관이라는 한의학 강습소를 설립하였고, 1951년 국민의료법에 의원(醫療, 의사), 치과의사를 1종, 한의사(漢醫師)를 2종의료인으로 구분하였다.1962년 이래 이러한 구분은 사라졌다.
한의사와 의사의 "사"자의 한자표기가 국민의료법 제정 과정에서 처음에 한의사를 漢醫士로 다르게 표기했던 것은 맞는다. 제2독회 과정에서 漢醫士가 漢醫師로 바뀌었다. 법제처 국민의료법. 또 흔히 잘못 알고 있듯 '士' 자가 비하의 의미를 가진 것도 아니다. 우리나라 최초로 의사를 규정한 법률인 대한제국 '의사규칙(醫士規則)'에서 의사를 醫士로 표기하고 있다.
1961년 5.16 쿠데타가 발생하면서 학교정비령에 따라 동양의학관이 폐교위기에 몰렸으나 로비로 기사회생에 성공했다. 그러나 1963년 경영난에 빠져 폐교 위기에 처하고, 동양의과대학은 이후 경희대학교에 흡수 합병되어 경희대학교 한의과대학이 되었다. 이후 경희대는 한의학 분야에서 독보적인 위치를 차지하고 있는데, 한의학과와 한약학과, 한방재료가공학과 등 학과도 다양하다. 근래에는 한의학과 양의학의 융합을 추구해 경희의료원에 양의사와 한의사가 동시에 진료하는 동서(東西) 협진센터도 운영 중에 있다. 다양한 시도를 통해 한의학을 발전시키려 노력 중이다.
일본의 고대 한의학은 7세기부터 9세기 사이 견수사(遣隋使), 견당사(遣唐使)들이 한반도를 경유하여 중국대륙에서 전수받은 것에서 유래되었다. 5세기 초에 한반도에서 의사가 온 기록이 있으나, 일본의 한의학 보급에 실질적으로 관여한 부분은 없다. 또 대륙에서 이루어지는 연구와 그걸 기록한 서적이 원활하게 전달되지 못했기 때문에, 한나라 시대의 상한론을 기초로 하여 독자적인 노선을 타게된다.
본격적으로 일본의 한의학이 발전한 건 16~17세기 이후로, 명나라 유학파인 의사 타시로 산키(田代 三喜)와 제자 마나세 도산(曲直瀬 道三)이 금원의학(金元医学)을 보급하면서 의학과 종교의 분리가 이루어진 뒤부터이다. 이시기의 의학을 '후세파'라고 부른다.
한편 상한론을 중시하던 '고방파' 측에서는 음양오행론같이 실증성이 부족한 추상적인 개념을 들고 온 후세파와 대립하게 되었다. 또 외부 세력, 즉 서양과의 교류가 활발했기 때문에 일찍부터 서양 의학의 영향을 받기 시작했으며 같은 16세기에 초기 서양식 병원이 설립될 정도였다.[15]
18세기의 요시마스 도도(吉益東洞)는 그러한 일본의 한의학 역사에서도 큰 획을 그은 사람으로, 상한론 연구의 대가였으며 이후에 그 아들이 일본의 독자적 이론인 기혈수 이론 등을 수립하였다. 그 외에 18세기에는 이미 해부학, 마취학 등이 발달하고 있었다. 특히 사형수를 해부한[16] 장지는 다소의 오류는 있으나 옛 해부이론의 오류를 지적한 '해부서'로 꼽힌다. 거기에 일본에는 네덜란드 해부학서적을 번역한 해체신서도 있었다.
동시대 인접국가의 경우 청나라 왕청임이 쓴 의림개착이 거의 유일한 해부서이고, 조선은 없었다. 실제로 한의학에서 사용되던 그림 등은 '해부도'가 아니라 장부가 어떻게 작동되는지를 그림으로 설명한 개념도에 가까우며, 실제기능도 이러했다. 하지만 '해부학'이라는 의학의 한 부분을 그저 어리석은 사람들의 삽질로 치부하고 아예 무시하였다.
조선통신사가 방문할 때 일본의 의가 중 하나였던 기타야마쇼우와 조선의 의사였던 남두민의 대화는 양국의 의학발전에 있어서 후대, 특히 한의대생들로 하여금 어이가 없어할 정도로 인식과 개방성의 차이를 보여주는 예시였다. 대화는 다음과 같다. 기타야마 쇼우가 "우리나라 어떤 의원이 죽은 사람의 배를 갈라 장기 등을 자세히 살피니 옛 그림과 다른 부분이 많더라. 이를 교정하고 책도 지었는데 당신은 어떻게 생각합니까?”고 하자 남두민은 “갈라서 아는 것은 어리석은 사람들이 하는 짓이고, 가르지 않고도 아는 것은 성인만이 할 수 있으니 미혹되지 말라”고 꾸짖듯 대답한다.
일본의 전통적인 한의학의 경우 고대부터 상한론을 금과옥조로 떠받든다는 잘못된 사실이 퍼져있다. 사실 17세기 화란 의학이 전래된 이후로, 그 이전까지의 내경의학과는 별도로 상한학파가 생기기 시작하였고, 요시마스 도도와 같은 경우에는 우리나라의 이제마와 같은 독특한 이론을 설파한 존재로 여겨진다. 실제로 상한학파가 융성하였다 하더라도 일본 한의학에서도 3체질론이나 기타 내경계열 의학자들은 계속 있어 왔으니 이는 사실무근이다. 일본 내 시판중인 한약제제의 원전은 만병회춘 등의 명대 의서인 경우가 많다.
근대에 이르러 군사 목적으로서의 의학의 수요가 커지면서 일본에서는 한의사 제도를 폐지하게 된다. 메이지 유신 이후 한의사 제도 자체는 폐지되었기 때문에 의사들이 전문의와 같은 느낌으로 한의학을 공부하며, 이 때문에 의학적 관점에서 한의학을 탐구하는 경우가 많다.
한의학 연구를 포기한 것은 아니어서, 의사가 한의학 연구를 통해 한약 처방을 내릴 수 있게 하고 내부적으로도 1950년 일본동양의학회를 수립하였다. 이후 1976년에는 한방Ex제제[17][18]의 보험 적용을 계기로 일본 한의학은 제도권에 공식 진입하고, 1991년에는 일본동양의학회가 일본의학회에 공식 가입함으로써 완전히 의학으로 다시 인정받게 된다.
현재 일본 제약시장에서 한약제제가 차지하는 비율은 2% 정도이다. 일견 상당히 낮은 수치이나 일본의 한약제제들은 한국의 첩약과는 달리 일반의약품보다도 싼 저가의 약품들이며, 여러 종류가 함께 처방되는 양약과 달리 대개 단일 처방되기 때문에 그 가격이 저렴하다는 것이 장점이다. 실제로 일본 동양의학회에서 연구한 내용 중에서 동일한 질환에 비슷한 효과를 내는 양약과 한약을 비교했을 때 한약의 의료비 절감 효과가 더 우수하다는 것을 입증한 사례가 제법 된다.
현재도 일본에는 한의학을 연구하는 의사들이 많다. 단, 미국도 그렇지만 일본 내에는 침구사 제도가 시행되고 있어서, 침은 침구사들이 주로 사용하고 의사들은 주로 한의학 중 한약을 많이 연구한다. 일본 한약들은 주로 탕제보다 엑스산제를 많이 사용하는데, 산제 특성상 주로 며칠 내에 치료 효과를 보는 것보다는 1-2개월 이상 장기복용시키는 경우가 많다. 일본에서 한약의 안정성에 대해서는 인정을 받는 편이다. 따라서 8주, 12주, 32주 이상의 장기 복용이 선호되고 있으며 부작용도 특별히 보고된 바가 없다. 소시호탕과 같은 일부 약재가 간염 치료에 있어서 면역 글로불린과 병용 투여 시 폐렴 발생 등이 보고된 정도다.
2009년 일본한방생약제제협회의 조사에 따르면 일본의 의사 중 80% 이상이 한약을 처방한다는 결과가 나왔다. 주로 한약처방이 쓰이는 부분은 산부인과, 외과와 부정수소, 갱년기장애 같은 부분이라 한다. 다만 한약을 사용하지 않는다는 소수의 의사(16.5%)는 진단과 사용의 어려움, 증거의 부족 등의 문제를 지적하였다. 진단의 경우도 47.8%가 서양의학식 진단법을 사용하며, 서양 의학 진단을 기본으로 한방도 고려한다는 응답도 36.1%로 나타났다. 자세한 내용은 일본 약사일보 기사 참조.
이를 살펴보면 일본에서는 한약제제를 통해서 보완대체의학으로서는 상당히 성공적으로 한의학이 자리를 잡았다.
재밌는 점이라면 일본 한의학의 4대가로 불리는 유모토 큐신(湯本求眞), 오오츠카 게이세츠(大塚敬節), 야카즈 도메이(矢數道明)는[20] 일본 메이지 유신 이후의 의사 출신으로서 한의학을 부흥시킨 인물들이라는 점. 여기서 출발하여 현재 일본 한의학을 재정비하고 토대를 만든 사람들은 모두 의사들이고, 한약제제 급여 활성화 및 한방 EBM 연구를 진행한 것도 모두 의사들이라는 점이 재미있다.
일본에서는 한약 처방들 중 여러 처방이 일본 내과 메뉴얼집에 근거가 있다고 판정이 되어 실리고 있고, 일본 의대 교과서에도 한약물에 대해 나오기도 한다. 때문에 일본 한의학 자료들은 국내에도 번역이 많이 되어있다. 주로 경희대 조기호 교수가 번역하여 출판이 되었는데, 일본 동양의학회의 공식 자료들과 기타 한방 전문의들의 저서들도 국내에 들여왔다. 또한 이러한 출판물의 다양화 덕으로 현대 중의의 고방파의 발전에도 도움을 주었다. 중의 고방파의 대표적 인물로 황황 교수가 꼽히는데 이분의 저술의 상당 부분이 일본의서를 참고해서 이룩한 결과다.
한국 한의학 연구원의 연구 자료에 의하면, 일본 종합병원의 80%가 넘는 곳에 한방과가 설치되어 있으며, 한방약은 내과의사나 혹은 한방 전문의에 의해 투약되고 있다. 일본 교포 등에 의하면 "한약인지 모르고 처방을 받아서 먹어보니 무슨 가루약 등이 들어있더라"라는 말을 한다. 이만큼 이미 일본에서 한방은 토착화되어 있어, 현지에서 구분하기가 어려운 실정이다.
국내에서는 일본의 한의학이 황한의학이라고 불린다고 퍼져있는데, 이는 근대일본의 한의사 유모토 큐신(湯本 求真)의 서적 「황한의학(皇漢医学)」에 대한 이야기가 와전된 것으로, 한자 표기를 보면 알겠지만 당시 일본 제국을 뜻하던 황국(皇国) 한방의학의 줄임말에 불과하며, 그냥 똑같이 한방의학(漢方医学:かんぽういがく:칸포우이가쿠) 또는 줄여서 한방(漢方:かんぽう:칸포우)[21]라고 부른다.
한의학의 가장 큰 특징은 동양 고유의 철학적 이론인 음양오행이론과, 동양 고유의 신체순환이론인 경락학설을 바탕으로 인체의 생리와 병리를 설명하는 것이다. 이러한 체계는 이미 황제내경에서 일차적으로 완성되었으며 이후에도 큰 틀을 벗어나지 않는다. 한의학은 인체를 하나의 소우주로 여겨 자연과 인체의 대응관계를 중시하였으며, 이와 유사한 맥락으로 인체의 내외의 대응관계를 수립하여 결과적으로 인체를 분석하는 것보다 전체론적으로 관찰하는 방향으로 발전하게 되었다. 한의학의 대표적인 이미지인 맥진(脈診)도 이러한 이론을 근거로 하여 성립할 수 있는 것이다.
한의학의 음양오행론은 경험적으로 쌓여온 인체에 대한 관찰, 치료, 고민 등을 통해 생겨난 한의학에서 제시하는 각종 시스템[22]의 유기적 관계를 설명하기 위한 장치로 활용되었다.
한의학에서 환자를 진단하는 기본적인 방법은 환자를 관찰하는 망진 / 대화하여 정보를 얻는 문진 / 냄새 및 목소리를 듣는 문진 / 직접 환자를 만져보는 절진[23]으로 나뉘어 있고[24] 이 4가지 작업을 통해 취합한 정보를 토대로 변증이라는 체계를 거치게 된다.
이 변증은 주로 오장육부로 대표되는 장부[25]와 그 장부를 연계하는 시스템인 경락[26], 그 장부와 경락의 기능적 요소인 氣(기)와 물질적 요소인 血(혈)이나 津液, 인체에서 몸을 보호하는 表(표)와 내부에 해당하는 裏, 이러한 장부가 제 기능을 다하지 못하거나 물질 요소가 부족해서 발생하는 虛(허)와 병리적인 산물에 해당하는 담음이나 어혈 등등이 발생하여 생기는 實 등 중에서 어디에 문제가 발생하는지 파악하기 위해 사용된다.
이 변증은 경험적 토대로 인해 생겨났으며, 특히 한약의 경우 기본적으로는 직접 먹어본 결과들로 시작한 신농본초경이 그 시작이 되며, 황제내경과 함께 한의학의 양대 고전인 상한론의 경우 철저히 경험에 근거하여 증상을 분석한 후 그에 해당하는 처방을 제시한 것으로 책 자체에 음양오행에 대한 내용은 거의 나오지 않는다.
한국 한의학이 중국, 일본의 한의학과 독자적인 길을 걷게 된 것은 사상의학의 대두 이후부터이다[27]. 사실상 사상의학은 기존의 의학체계와는 상당히 거리가 있으며, 이론과학이나 논리적이기보다는 철저한 음양론적, 유교적 사고에 입각하는 특징을 보인다. 한의학에 속하는 이론이지만 오행론은 적용되지 않는다.[28]
다만 사상의학이 수립된 것은 겨우 1백 년 전이고 현대의 진단율이나 사상의학의 기원을 보았을 때 바로 사실로 받아들이기 어려운 점이 분명히 존재한다. 따라서 한국 한의사들 사이에서도 사상의학의 수용 정도는 각각 달라서, 사상방을 완전히 배제하고 그 이전 처방만을 사용하는 한의사도 있는 한편, 사상을 최우선으로 보는 한의사도 있는 등 한의학에서 가장 논쟁적인 분야라고 할 수 있다.
자세한 것은 한약 문서 참고
침술은 다른 문화에서는 찾아볼 수 없는 침 또한 한의학의 고유 특징으로 특정한 점을 출혈시키는 것이 아니라 단순히 자극함으로써 치료한다는 개념은 한의학에서밖에 찾아볼 수 없다.
김남수의 침-뜸법과 그의 옹호자들은 한의학이 문헌에 수록되지 않은 전통의학을 보존하지 않고 없애버리는 것이 배타적이라고 본다. 그의 학설은 기본적으로 일제강점기에 보급되었던 침-뜸법과 극히 유사하며, 백회 등에 뜸을 뜨는 것은 기존 한의학 이론에서는 금기다. 과연 이러한 것을 단순히 전통의학이라는 측면에서 무조건 받아들일 수 있는 것일까? 뜸사랑 역시 많은 사람들이 익히고 행해왔음에도 치명적인 부작용이 발생하지 않았다는 점을 생각해야 한다. 한의학 옹호 논리 중 중요한 것으로 '문제가 있었으면 지금까지 살아 남아 왔겠는가?'라는 주장이 있다. 이 주장은 구당 측에서도 역시 쓸 수 있는 논리이다. 더 근본적인 문제로, 애초에 한의학 자체가 음양 사상을 기반으로 하는 학문체계에 대해 현대적 의미의 검증을 거치지 않고 전통적으로 행해진 측면을 고려해서 면허를 인정해주고 있다는 것을 생각하면 외부에서 보기에 여타 전통의학과 한의학의 위상 차이를 찾기 힘들다.
다만 이들에 반대하는 의견도 있다. 검증이라는 측면에서, 무차별적으로 전통의학(이라고 주장하는 것)을 받아들이는 것도 문제는 있으니, 한의사들은 결국 안전성을 택할 수밖에 없는 실정. 한의학적인 부작용은 그 자리에서 나타나는 것도 있지만, 장기간에 걸쳐 생기는 문제도 있다. 흔히 체질을 바꾼다 라고 표현하지만, 잘못된 처방을 받은 경우 이 문제가 체질을 안 좋은 방향으로 이끌수도 있다는 얘기다. 백회는 인체의 양기가 모이는 곳이라 하여 이곳에 열을 가하면 장기적으로 지능이 떨어지고 몸에 열이 쌓여 여러 문제를 일으킬 수 있다. 당장 치명적인 문제가 일어나지 않았다고 해서 안전한 것은 아니다. 오래된 한의학 의서들에 허무맹랑한 얘기가 많은 것은 사실이지만, 해서는 안 된다고 되어 있는 건 대부분 분명 이유가 있는 경우가 많았다.
인체를 밀고 당겨 치료하는, 미국의 카이로프랙틱이나 정골의학과 유사한 치료 요법이다. 실제로 미국과 한국의 척추신경추나의학회는 미국의 미시간주립대학 정골의과대학과 자매결연을 맺고 정기적으로 교류하고 있다. 또한 추나요법은 미시건주립대학교(Michigan State University)에서 정골의학을 다루는 오스테오페틱 의사(DO, Doctor of Osteopathic Medicine)의 보수교육으로 인정되어 왔다. 최근에는 더 나아가 미국 전역에서 정골의학의사(DO, Doctor of Osteopathic Medicine)를 대표하는 미국 정골의학협회(AOA, American Osteopathic Association)의 정식 보수교육 과목으로 채택되었다[29]. 자세한 것은 추나항목 참조.
근거중심의학(Evidence based Medicine)이란 본래 Arthur Cochrane이라는 역학자가 1972년에 만든 개념이다. 여기서 일컫는 "근거(Evidence)"는 의사 개인의 임상 경험이 아니라 무작위 대조군 실험이나 이를 종합한 체계적 문헌고찰과 같은 과학적인 근거를 말한다.#
70년대 이후 북미권에 대체의학의 하나로서 침술과 같은 한의학적 치료방법들이 들어오면서 사람들의 관심이 높아지자, 90년대부터 침술 등의 효과를 과학적으로 확인하기 위한 연구들이 이뤄지기 시작했다. 그 밖에 한의학계에서는 중국 주도로 임상시험에 매진하여 각종 저널 등에 연구가 실리거나 최근에는 한국에서 레일라정이 임상시험 4차에 통과하는 등 한의학 학계에서도 근거중심주의가 조금씩 자리잡아 가고 있다.
다만 침술이나 한약이 근거중심연구의 대상이 되어 현대의학에 편입될 수는 있지만, 한의학 그 자체는 경혈, 음양오행, 기 같은 치료 원리들 때문에 현대의학과의 진정한 통합에는 한계가 있다. 이를 해결하려면 한의학의 치료원리 자체가 근거중심연구를 통과해야 하는데, 여기에 한의학계의 가장 큰 딜레마가 있다.
논문상의 근거를 만들기 위해서는 특정 증상이나 현대의학적 진단명[30]에 해당하는 환자들을 그룹으로 묶어 그들에게 동일한 약을 투여하고(또는 그밖의 동일한 치료를 하고) 경과를 지켜봐야 하는데, 현대의학적 진단명이 같다는 이유로 동일한 약재를 투여하는 것부터가 한의학적으로 오류이다. 예를 들어 원발성 불면으로 진단된 환자 10명을 한의학적으로 진료한다면 모든 환자를 개개인의 특성에 따라 새로이 분석해야 하며, 불면증을 유발한 원인[31]에 따라 투여해야할 약재도, 침을 놓아야 할 경혈도 전혀 달라진다.
즉 같은 병명/같은 증상이라도 환자마다 치료법이 달라야 한다는 한의학의 입장과, 무작위 대조군 연구를 주요 근거로 인정하는 근거중심주의의 입장은 정면으로 충돌한다. 그리고 근거중심주의는 무작위 대조군 연구보다는 수준이 낮지만, 환자 대조군 연구나 증례 보고에 대한 메타분석도 유의미한 근거로 인정한다. 따라서 한의학적 원리 때문에 무작위 대조군 연구가 불가능하면, 환자의 상태와 변증 과정 및 그에 따른 치료법과 효과성에 대한 증례 보고들을 메타분석해서, 그러한 한의학적 원리 자체에 대한 근거를 마련해야 된다는 게 근거중심주의의 입장이다.
위와 같은 이유 때문에 한의학의 입장에서는 근거중심연구 방법론이 환자 개개인의 특성을 고려하지 못한다고 비판할 수 있다. 그러나 근거중심주의 입장에선 늘 그래왔듯 한의학적 치료법을 '검증되지 않았다'라는 이유로 비판이 가능하며[32] 이 패러다임이 모든 과학적 학문의 주류를 이루고 있기 때문에, 한의계 내부에서조차 이 패러다임에 따라야 할지, 맞서야 할지에 대한 갑론을박이 끊이질 않는다.
보건복지부에서 발표한 2017년 한방의료이용 및 한약소비 실태조사 결과 발표에 따르면,
2015년에 비해 2016년 한약의 처방, 조제, 판매 건수는 대체로 감소한 것으로 나타났다.
일반인 5000명을 대상으로 조사한 결과, 1번이라도 한방 의료를 경험한 사람은 73.8%이다. 이 수치는 연령대가 높을수록 올라가고 낮을수록 내려가는 것으로 나타났다.
같은 조사에서 향후 한방의료를 이용할 의사가 있는 사람은 84.2%로 나왔다. 역시나 연령대가 낮아질수록 수치는 내려갔다.
한국보건사회연구원의 통계에 따르면 한방의료를 이용하는 연령대별 비율은 40~50대 43.5%, 60대 이상 30.5%, 20~30대 22.8%로 나타났다. 반면에 한방의료를 신뢰하는 비율은 대체로 큰 차이는 없었으나, 몇가지 특이점은 한방의료를 주로 이용하는 계층에서 오히려 신뢰도가 낮게 나타난 것과 특히 60대 이상에서 신뢰하지 않는다는 비율이 유의미하게 높게 나온 점이 있다.링크
고전 서적에 기재되지 않은, 새롭게 발명된 한약의 경우에는 새로이 식약처로부터 승인을 받아야 시판이 가능하므로, 현대의학의 약물과 동일한 3상 연구를 거치게 되어 의학적 근거도 탄탄한 편이다. 최근에는 한국에서 레일라정이 임상시험 4차에 통과했다.
KBS에서 방영된 2016년 특집 다큐멘터리에 의하면, 여러 대학병원에서 암환자 등에게 침을 이용하여 시술하는 통합 통증 치료가 시행되고 있다고 한다. 미국 정부 주도하에 NCCIH[33]을 설립하여 큰 연구비를 들여 한의학과 기타 여러 대체의학들의 요법을 검증하여 현대의학에 통합시키기 위한 연구가 이뤄지고 있다. 2017년 현재까지 침술에 대한 약간의 진통효과가 확인되어 어느 정도 인정받고 있으며, 그외에도 기타 몇가지 생약들의 효과가 주목받아 연구중이다. 침술의 연구성과에 대한 상세한 내용은 항목 참조.
2014년 타임지에서 미국 클리블랜드 병원에 한약을 처방하는 곳이 생겨났다는 기사가 실린 바도 있다.# 다만 정확히 말하면 일반 병원에서 처방하는 것은 아니고, 통합치료의 일환으로 병원 내에 따로 생약치료센터(Chinese Herbal Therapy Center)가 열려서 원하는 환자들이 병원치료와 병행할 수 있게 한 것이다.# 한약이 단독으로 처방된다거나 하는게 아니니 오해하지 말자. 침 연구는 하버드 대학 의대가 세계 2위인 경희대 한의대를 제치고 1위에 차지할 만큼 침 연구에도 관심을 보이고 있다. 다만 이는 투자되는 연구비의 차이가 크다는 점은 감안해야 한다. 또한 최근 미드 블랙리스트등에서는, 주인공 레딩턴이 중간에 얼굴에 침을 맞는 장면이 나오는 등 애호가가 많이 생기고 있다. 물론 기존에 존재하던 여러 대체의학들의 일부로 보고 있는 것이긴 하다. 아직까지는 증상이 심하지 않을 때 현대의학을 보조하면서 병행되는 정도이다.
만성 질환 및 고령화 질환의 대두 등으로 한의학의 치료법이 검증과는 별개로 많은 주목을 받고 있는 것은 사실이며, 이에 대한 기고가 네이쳐에 실릴 정도로 한의학에 대한 관심은 분명히 있는 상황이다. 하지만 이건 한의학 자체에 대한 관심보단, 수술이 아닌 오랜 관리로 건강을 유지하고 싶은 미국인들이 대체의학에 관심을 가지면서 그 일부인 한의학에도 관심을 가지게 되는 것이다. 미국은 세계에서 제일 대체의학이 발달된 나라이기도하다. 인도계 미국인 의사들이 미국에서 상당한 영향력이 있는 건, 현대의학계에서 큰 비중을 차지하는 것도 있지만, 인도 전통 의학들도 상당히 자세하게 소개되어 있기 때문이다.
미국 식약청인 FDA[34]는 구조를 알기 힘든 복합 천연물 제제라도 이전부터 사용해왔던 기록 및 증거가 있다면 1상시험을 면제해주고 2상부터 검증받도록 했다. 그러나 아직 생약이 아닌 한약 중에서는 승인된 사례가 없다. 20세기 후반부터 중국 주도로 꽤 많은 시도가 있지만 아직은 전망이 불투명한 상황. 개중에는 3상 시험 중인 사례도 있어서 언론을 통해 금방 승인될 것처럼 설레발 치는 경우도 있지만, 그 상황에서 통과하는 것 자체가 열 중 하나 정도인지라 아직 쉽게 말할 상황은 아니다.
우리나라는 중국과 마찬가지로 의료계가 이원화되어 양 한방이 동시에 존재한다. 단 차이가 있다면 서로 교류가 원활하지 않고, 의학은 과학에 의해 뒷받침되다 보니 별 논란거리가 없기 때문에 주로 의사협회 측에서 한의학을 비판하는 경우가 많다. 북미를 비롯한 서구에서는 한의학이 거의 쓰이지 않으며 대체의학의 일종으로만 취급되기 때문에 갈등은 보기 힘들다.
과거에 비해 의사의 입지가 줄어들고[35], 소득이 낮아진 상황인데[36] 한의학계에서 한의사의 진단의료기기 전면 허용을 요구하니 더 심해지는 것으로 보인다. 전의총 등의 단체와 시민단체(?)인 과학중심의학연구원 등에 서는 용역비 등을 주고 한의학을 비방한 일도 있다. 물론 이와 상관없이 단순히 의사나 과학자가 개인적으로 비판하는 경우도 많다.
한의학을 두고 여러 가지 문제제기가 있으나, 내용과 소속에 따라 이에 대한 반응이 다르다. 보통 한의학계에서는 폄훼로 받아들이는 게 많고, 의학계에서는 비평으로 여기는 편이 많다. 예를 들어 의학계에서는 자신들도 전문가이므로 한의학을 평가할 수 있다고 생각하지만, 반대로 이들이 한의학에 대한 이해가 부족하고, 교류와 소통 없이 일방적으로 자신들의 의견과 입장만을 고수하려 든다고 반발하는 한의학도가 많다. 여러 문제제기가 있는데, 그중에서는 한의학계에서도 인정하여 스스로 고치는 것도 있고, 반대로 한의학계가 타당하게 반박하는 것도 있다. 자세한 내용은 다음과 같다.
양/한방이원화 제도로 인해 위급한 질병을 가진 환자들이 큰 혼란과 피해를 입고 있다. 가령 한의학에서 치료할 수 없는 질병의 응급환자가 한방병원을 찾는다면 제대로 된 치료를 받기 어렵다. 최근에는 많이 개선되었으나 과거에는 뇌졸중 환자들이 먼저 한의원을 찾아 갔다가 우황청심원을 처방받는 등 응급치료를 제대로 받지 못하고 후유증이 악화되는 경우가 많았다. 최근 많은 한의사들은 수술이 필요한 외과파트나 심장마비 같은 응급질환, 영상의학 등은 현대의학이 더 우월하다고 인정하고 의학병원으로 위탁치료를 보내는 일도 많고 한방병원 내에 검사목적으로 아예 두는 경우도 많지만, 반대로 몇몇은 한의학계 경우는 심지어 말기암도 한방이 더 효과적이라고 주장한다. 문제는 정부가 이에 대해 간섭하지 않는지라 환자인 국민들이 병이 났을 때 양/한방 중 어떤 곳을 찾을지도 잘 모르는 상황이다. 다른 선진국에서도 유례를 찾을 수 없는 굉장히 무책임한 일이다.[37] 국민들의 혼란과 피해를 막기 위해 양방과 한방을 일원화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계속 나오고 있다.
면허제도 때문에 한의학을 쉽게 접근하기 어렵다. 예를 들어 미국 의사는 침술을 자유롭게 연구할 수 있지만 한국 의사는 법적으로 그럴 수 없다. 즉 면허제도가 없는 다른 나라와 달리 한국에서는 한의학을 오로지 한의사만 다룰 수 있다. 게다가 면허를 가진 이후 자유롭게 의료활동을 할 수 있으니 굳이 과학적 검증을 거치지 않으려 들 수 있다. 또한 구당 김남수 사건에서 볼 수 있듯이 면허가 없는 다른 전통 치료사들을 오히려 현대 의학계보다도 더 적극적으로 박해하는 것은 덤. WHO 등에서 보완대체의학을 장려하는 이유는 치료비용이 현대의학보다 저렴하고, 치료방법을 알기도 쉬워서 의료 환경이 낙후된 개발도상국에서 매우 유용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한의학은 치료비부터 제도유지비까지 현대의학에 비해 결코 저렴하지 않고, 다른 민간전통의술을 핍박하며, 면허를 방패삼아 검증을 피하려 든다며 비판받고 있다.
한의사의 정체성 문제가 대두되고 있다. 현재 한의과 대학의 커리큘럼은 한의학과 현대의학 비중이 거의 3:7이다.관련링크한의학에 각과 전문의 수련 제도가 도입되는 등 점차 현대의학과 비슷한 모양으로 변하고 있다. 현대의학을 배운 한의사들은 한방식 진료보다는 현대의학식 진료인 '양진'에 더 익숙하여 환자들에게 기나 혈보다는 점점 양방용어를 써가며 설명한다. 대중들은 이미 청진기를 들고 흰 가운을 입은 한의사들에 대해 거부감이 없다. 한의학에 입각하여 만들어진 한방의료기기는 외면당하는 반면에 #X-ray와 초음파진단기기 등 현대의료기기를 어떻게든 사용하고자 한의사들은 의사들과 끊임없이 싸우고 있다. #2 한의학에 현대의학을 많이 도입한다면 한의사 개개인의 능력은 높아질지 몰라도, 반대로 이렇게 한의학이 현대의학을 닮아간다면, 굳이 한방과 양방을 구분해야될 필요가 있을지 의문이 제기된다.
치료 원리를 설명할 때 기나 열, 혈이나 맥 같은 전통의학의 개념과 현대의학의 개념들을 섞어 사용하기 때문에, 의사나 환자 개인의 경험 이상의 치료효과에 대한 검증 문제가 언제나 따라올 수 밖에 없다.
한의학에서는 "의자의야"라는 문장이 있다. 이 문장은 시대에 따라 의미가 바뀌었는데, 원래 의사와 환자사이의 자세나 성실성, 주의력을 일컫다가, 손사막 등이 병의 소재를 알아내는 능력으로 이야기 했고[38] 송나라 때부터는 임기응변을 일컬었다.[39] 즉 시대나 사람에 따라서 뜻이 제각각이었던 문장인데, 종종 이 문장과 해석을 두고 과학적 검증보다 개인적 경험을 더 중히 여기느냐는 의혹이 나오고 있다.
현대 전염병에 대한 연구가 제대로 이루어지지 않는다. 중국의 한의학이 SARS라든가 신종 인플루엔자에 대한 연구를 하는 것과 자주 비교되고는 한다.[40] 현재 전염병에 대한 치료능력이 완전히 검증되지 않았기에 정부차원에서 한방병원을 전염병처리 기관으로 지정하는 경우가 거의 없다.
과학철학 측면에서 한의학을 본다면 우선 생물과 생명 현상을 적절한 수준에서 실증적으로 분석하고 설명하는 생명과학과는 다르게, 한의학은 생기론적인 입장을 많이 담고 있다. 또한 과학 기술의 발달이 부족했던 시기에 생명 현상을 설명하기 위해 에테르와 같이 정, 기, 신 등의 형이상학적인 개념을 도입했다. 문제는 이러한 철학은 새로운 예측이나 연구 방향성을 제시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라카토스의 연구프로그램으로 한의학 철학을 본다면 한의학은 참신한 현상의 예측이나 기술적 발전 등이 없는 퇴행적인 상태이다.[41] 또한 토머스 쿤의 과학혁명의 구조에 따르면 한의학은 과학의 위기 단계이다. 세포학, 분자생물학, 유전학, 생화학, 발생학 등의 학문과 기술의 발전으로 한의학적 패러다임으로 설명할 수 없는 생명현상이 너무 많아졌다. 때문에 한의사들도 음양오행이나 정기신 등의 한의학적 패러다임에 따른 탐구 보다는, 양방한치와 같이 현대과학의 이론과 패러다임을 이용하여 연구를 하고 있다. 하버드대 등 외국 대학과 연구기관에서 한의학을 연구하는 것도 한의학적 처치나 탕약의 임상적인 효과를 검증하고 이를 현대 생명과학으로 설명하는 연구이다. 한의학적 철학으로 기작이나 임상효과를 설명하거나 연구 방향을 제언하지 않는다.
면허제도로 한의학을 보호 및 독점하여 밥그릇을 챙긴다는 말은 굉장히 위험한 주장이다. 한의사는 적어도 한의학을 전문적으로 교육받았지만, 소위 말하는 전통의술가들은 제대로된 교육도 받지 못했으면서 오히려 치료비는 한방병원보다 더 비싸게 받았다. 그중 구당 김남수는 사기꾼으로 스스로는 자격증이나 면허도 없으면서 타인에게 돈을 받고 침사면허를 팔았고, 자기가 말한 경력 대부분이 거짓말이었다. 게다가 자신이 한의사들보다 실력이 좋다고 하였으나, 한의사가 직접 실력을 겨뤄보자고 하자 대결을 회피하기도 했다. 즉, 한국에서는 면허제도가 전통의술가들의 활약을 제한하는 것보단 이런 유사의학 사기꾼을 거르고 국민건강과 안전을 보호하는 역할이 더 크다.
의사들이 침을 연구용으로 못 쓰는 이유는 당연히, 의사는 침을 배우지 않기 때문이다. 한의사들의 경우 그나마 학부시절부터 예과에서 졸업 때에 이르기까지 현대의학을 교육받지만, 의사들은 침에 대해 배우는 것이 단 하나도 없다. 중국, 일본의 의사들이 한의학을 교육받는 것과는 대조적이다. 그러나 이에 대한 내용은, 현재 의사들의 경우 보편적으로 침에 관심이 없다는 것을 제대로 고려하지 않은 것이다. 혹은 침을 놓는다고 생각하는 경우는 Electrical Muscular Stimulation 혹은 Transcutaneous Electrical Nerve Stimulation 의 모습이 의심된다. 이러한 것은 주로 미국에서 complementary medicine을 비롯하여 한국으로 전해진 것이다. 이미 한국 한의학계는 그에 대해 비판하는 것이 아니라 한국 학의학연을 두고, 또한 전국 각지 한의대에서 분명히 연구중이며, 이는 상당한 투자를 필요로 하면서 지속적으로 이루어지고 성과를 내고 있다.
"의자는 의야"는 어디까지나 전해내려오는 문장일 뿐 그것이 절대적인 행동지침이 아닐 뿐더러 실제 한의학계는 적극적으로 과학적 검증과 임상시험을 위해 노력하고 있으며 실제 성공적인 연구성과도 여러 개 있다.[42]
양진한치 즉, 현대의학적으로 진단하고 한의학적으로 치료하는 행위가 한의학계에서 널리 쓰이다가 2010년을 기점으로 법적으로 한의사와 의사가 보험 청구 시 질병의 이름인 상병명(질환명)을 똑같이 쓰게 되었다. 그래서 이제는 한의사들도 일반 병명을 사용하는데, 한의학계에서는 이를 위해 특정질환에 대한 진단법, 필요 검사 등을 포함한 한방병명체계를 마련해두었다. 국제적으로는 국제질병통계를 낼 때 병명과 환자 비율을 보고해야 하기에 동양의학계에서도 양진한치가 대세다. 그런데 이를 두고서도 여러 논란이 있다.
어디까지나 제도적으로나 환자들이 알아 듣기 쉬우라고[43] 주로 질병명을 분류할 때 양진을 사용할 뿐. 치료기준은 어디까지나 한진인지라 질병분류 외에는 큰 의미가 없다는 주장이 있다. 가령 한의대에서는 보통 양방병증으로 찾아온 환자를 다시 한의학적으로 진단하고 치료하기 위해 양방병증에 대해서 공부한다. 구체적으로 한의대 교과서에서는 두통을 다룬다면 편두통, 긴장성두통, 군발성두통 및 각종 두통의 현대의학적 내용을 제시하고, 이 두통에 대해서 한방 진단법을 제시한 다음 이에 대한 한방 치료법을 제시한다.
양진을 위한 실력을 한의사가 갖추고 있느냐는 논란이 있다. 가령 의사들이 의대 6년과 추가적인 전문의 수련 과정을 통해 현대의학지식을 습득하는데[44] 비해 한의사의 현대의학 습득시간[45]은 비교적 짧은 편이다. 게다가 한방 고유의 진단이 효용성을 잃었으니 양진에 목을 맨다든가, 한방의 질병 분류와 의학의 질병 분류가 모두 호환되지는 않는데 한의사 면허를 가지고 있다는 이유만으로 양진을 허용해도 되냐는 비판까지 나온다.
반대로 양진한치에 대한 부정적인 의견이 배타적이란 주장도 있다. 한의사들도 한의과대학에서 현대의학교육을 받으며, 실제로 양진한치 때에 한의사들이 사용하는 양진용어는 그래봐야 대학교 학부 교육만으로도 익힐 수 있는 쉬운 것들이 대부분이다. 애초에 한의사가 더 전문성을 요구하는 세부적인 양진을 하지도 않는데, 양진에 필요한 실력을 지나치게 높게 두고 배척한다는 것이다. 이에 대한 역시 반론으로서 현재 (양)의학에서는 비슷한 증상 혹은 일부 공통적인 양상을 보이는 증상을 두고도 세세하게 나뉘는 질병들에 대해 감별진단하는 훈련을 의과대학 본과 과정부터 지속적으로 받게 한다. 이는 본과 과정이 끝날 무렵 국가시험을 치르고 졸업한다고 해서 끝이 아닌 그 이후로도 지속적으로 이루어지고 보완되어서 한 명의 훈련된 (양)의사가 탄생하게 되는데, 한의학은 이에 대해 전혀 고심하거나 제대로 이해하지 못하는 모습이다. 개략적 혹은 주로 알려진(most common) 질병들만 안다고 해서 해결되는 문제가 아닌, 지속적으로 추론하는 과정을 배우지 않았는데 한의학에서 함부로 (양)의학을 이용하려는 모습으로밖에 이해될 수 없을 것이다. 그러나 한의사들도 현대의학의 비중이 10중의 7에 가까은 한의대학에서 전문적인 교육을 받으며 전문의의 존재가 있는 것은 한의사들 역시 마찬가지다. 그런 논리라면 전문의 자격증이 없는 일반의들은 의료행위를 제한해야 한다는 논리도 가능하다. 또한 질병코드에 대한 규제는 보건복지부가 행한 것이며, 한의계는 이에 대해 분명히 반발한 적도 있다.
검사, 진단은 치료행위의 일부이며, 체계의 일부인데, 이를 편의적으로 분리해서 다른 체계에 편입시키는 것이 무리라는 시각도 있다. 예를 들어 고혈압이나 당뇨는 초기에는 특별한 증상이 없다. 현대의학과 생리학에서의 연구 결과 고혈압이나 당뇨와 같은 생리학적인 상태가 지속되면 나중에 본격적인 질병으로 연결되기 때문에 현대에 와서 이를 편의상 질병으로 정의한 것이다. 즉 과거에는 질병 상태라고 보지 않았던 것을 예방의료적 목적으로 질병으로 확립한 것이다. 지금 한방에서는 당뇨를 대개 소갈이라고 번역하지만 실제 소갈증은 그저 당뇨병의 수많은 말기 합병증 중의 하나 일뿐이다. 다른 증상이 없이 그저 의학적으로 혈당수치 200mg/dl 나 수축기 혈압 130mmHg 가 넘는 상태를 한의학적으로 어떤 이상이 있다고 할 근거가 자체 기준으로는 전혀 없는 것인데 한의사들은 그저 현대의학에서 어떤 보건경제학적 요인에 따라 지속적으로 바뀌는 진단 기준을 수동적으로 그대로 답습하고 있고 한의학적으로 질병이 아닌 상태를 한약으로 치료할 수 있다고 주장하는 상당히 이상한 상황이 되어버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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