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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름 한 점 없이 파란 코발트불루의 하늘에서는 쨍한 햇빛이 쏟아지고 프로방스의 산야는 그 햇빛을 온몸으로 받아들이며 올리브와 포도, 그리고 라벤더를 키워낸다. 만약 생애에 오직 한 곳만을 가볼 수 있다고 한다면 나는 주저 없이 프로방스를 선택하겠다."
사진작가 조용준씨가 한 말이다. 작가는 거기에 덧붙여 다음과 같이 말했다.
"해마다 7월이 되면 프랑스 남부의 모든 길은 유럽 전지역에서 몰려든 차들로 북새통을 이룬다. 그것은 아마도 프로방스가 지닌 두 가지 여름의 독특한 향기 때문이리라. 첫번 째는 바다의 향기다. 낭만적 코발트색으로 빛나는 지중해와 그 위를 떠다니는 요트들, 해변의 예쁜 집들, 해안도로의 하늘거리는 종려나무를 떠올리게 만들어 주는 바로 그 바다내음이다.(중략) 그리고 다른 하나는 내륙의 깊숙한 시골에서 퍼져 나오는 대지의 향기다. 파란 창문과 파스텔 톤의 외벽, 그리고 붉은 기와집들. 군데군데 온갖 꽃들이 만개해 있는 골목길, 작은 마을 중심의 소박한 분수와 샘, 원색으로 화려하게 치장한 예쁜 그릇들과 옷감, 빈티지 풍의 가구들, 작열하는 태양과 올리브 나무와 포도밭, 한적한 시골길 혹은 들판을 가득 덮은 야생화와 허브, 그리고 라벤더.........(중략)"
눈부신 햇쌀이 잘게 부서지고 또 부서져 바늘처럼 생긴 작은 알갱이로 마구마구 쏟아져 내리는 곳....... 2월 말에 펼쳐지는 망통 레몬축제로 시작해 12월 크리스마스 축제까지 일 년내내 온통 축제가 이어지는 낭만과 풍요가 차고 넘치는 곳....... 그곳이 바로 프랑스 남부 지중해 연안 프로방스였다. 우리나라 부산을 연상하면 거기에 딱 들어맞는 프랑스 제 2의 도시이자 국제무역 항구인 마르세유를 시작으로 물과 예술의 도시이자 폴 세잔이 사랑한 엑상 프로방스(Aix-en-Provence)가 있고, 고대 로마 유적들이 고스란히 남아있는 고호의 도시 아를(Arles)과 부패하고 쇠락해진 교황청이 76년간 쫓겨갔던 아비뇽(Avignon)이 있다. 가장 남쪽으로 튀어나온 땅끝 마을엔 고대 이래로 역사적으로 유서 깊은 해군 기지로 건설된 툴롱(Toulon)이 있다. 5월이면 영화 축제가 벌어지는 깐느(Cannes)가 있고, 니스와 칸 사이에 있는 피카소가 좋아했던 앙티브(Antibes)와 요트가 즐비한 휴양도시 생트로페(Saint- Tropez)가 인근에 위치해 있다. 알퐁스 도데의 <별>에 나올법한 알필 산맥의 중턱에 자리잡은 레보드르로방스(Les-Baux-de-Provence)는 바위산 꼭대기에서 내려다보는 멋진 풍광으로 유명하다. 또한 대리석 광산의 폐동굴에서 펼치는 빛의 미술관으로 수많은 관광객을 끌어들이고 있는 명소이다. 또한 샤갈이 사랑한 도시 생폴 드 방스(Saint Poul de Vence)와 향수와 라벤더 꽃의 도시 그라스(Grasse), 최근들어 무척 각광받고있는 바위둥지의 에즈(Eze)와 모나코(Monaco)와 레몬 산지인 망통(Menton)이 있다. 하지만 누가 뭐라해도 프랜치 리비에라(French Riviera)의 대표격이자 코트다쥐르의 랜드마크는 역시 니스(Nice)라고 해야 할 것이다.
그랬다.
평소 '코트다쥐르 여행'이 내 여행 버킷리스트 상단에 늘 올라있었던 탓에 나름 사전 준비를 하느라 사진작가 조용준씨의 글을 포함하여 여러 여행서적들까지 모두 찾아서 읽었고 알차게 여행 준비를 했던 결과로 이번 여행에서 파리 다음으로 서둘러 찾아 내려온 니스(Nice)였던 것이다.
당연히 그랬어야만 했다.
노란 미모사 꽃이 온 도시의 담장에 흐드러지게 흘러내릴만큼 피어 있어야 했고, 그 위로 역시나 노란 레몬이 주렁주렁 매달려 영글어가고 있어야 했다. 버스를 타고 도심을 벗어나기만 하면 사방에 온통 보랏빛 라벤도 꽃이 온 들판을 가득 채우고 그 향기가 코 끝을 가득 채웠어야만 했다. 해변마다 아찔한 비키니 차림의 여성들로 넘쳐나고 노천 카페의 낭만이 코트다쥐르를 뒤덮고 있어야 했다. 밤이면 축제의 흥을 돋구는 폭죽이 터지고 불꽃놀이가 저녁마다 벌어져야만 하는....... 그 중심이 바로 여기 니스여야만 했다.
But......... 아니었다. 미스트랄(mistral) 이라는 놈의 정체와 위력에 대해서 너무 안이하게만 생각한 것이 치명적인 오판이었던 것이다.
조용준 작가의 글을 조목조목 가만히 살펴보면 중간에 '7월' 이라는 말이 분명하게 등장한다. 그랬다. '7월'에는 내가 생각한 낭만과 축제의 코트다쥐르가 분명하게 있다. 축제야 2월에 시작해 12월까지 이어진다지만........ 코트다쥐르가 가지고 있는....... 니스하면 떠오르는 그런........ 어디까지나 '7월'에나 가능하다는 결론을 이제사 눈치 챈 것이다.
어디까지나 지금은 새 해가 막 시작된 1월 중순......... '코트다쥐르의 1월은 무엇이 있을까?' '1월의 니스는 어떤 써프라이즈한 일이 여행자를 반겨줄까?'............... 결론은....... 개뿔!!!!!! Nothing.........
프랑스 남부 해안지방의 도시들은 겨울이 시작되면 긴 휴가에 돌입한다. 그리고 그 핵심은 크리스 마스다. 추운 겨울이면 세상 사람들은 따뜻한 지중해 연안을 그리워하며 찾아 온다고하는데 정작....... 이곳 사람들은 더 추운 곳으로 가족 친지 친구들과 겨울 여행을 떠난다. 크리스마스 축제와 스키장으로 떠나는 긴 겨울휴가 시즌인 것이다. 유명 여행지의 겨울에도 여행객이 많이 찾는 장소가 아니면 대부분 계절 휴업에 들어간다. 변두리의 소도시들은 아예 도시 전체가 폐쇄된다고 여겨도 될 정도이다. 상가와 식당과 관광안내소가 모두 문을 닫을 정도이니 말이다. 대부분의 대중교통 수단도 따뜻한 봄이 올때까지 완전 폐쇄거나 최대한 운행을 줄인다.
겨울에 코트다쥐르의 대부분 도시들이 하나같이 일제히 하는 일은 오로지 한 가지......... 도시 공공부분의 재정비 내지는 개축이다. 기온이 영하로까지 떨어지지 않는, 주로 영상 10도 전후를 오르내리는 기후탓에 땅이나 자재가 얼지 않는다. 하여 이 시기에 가로등을 교체하고 도로를 재포장하거나 우회도로를 내고, 보도 블럭을 교체하고, 가로수를 정비하고, 해변의 공공시설물을 보수하거나 교체하는 등의 공공사업을 비로 이 시기에 집중적으로 벌인다. 봄이 지나 성수기에 접어들어 공사를 벌이면 수많은 여러 장애에 부닥칠 수 있기 때문에 비수기를 적극 활용하는 것이다. 코트다쥐르의 겨울은 사회 공공부문 건축 보수 공사의 시즌이다. 여기저기서 땅을 파헤치고 전선을 교체하느라 중장비들이 연실 오고가며 소음과 진동이 보통이 아니다. 그래서 현지인들 조차 이 시기엔 집을 떠나 여행을 가는 것일지도 모르겠다.
거기에다 유럽에 극한의 이상기후 현상이 들이닥쳐서...... 이탈리아 피렌체와 베네치아에 홍수가 나서 도시의 일부가 물에 잠기는 사태가 벌어지고, 스페인에서는 눈이 내려야 하는 한 겨울에 기온이 38도를 찍고........ 프랑스에는 계절풍인 미스트랄의 횡포가 극심해 포도나무들이 동해를 입는 지경에까지 이르렀는데........ 하필 그런 시기에 우리가 그 한복판에 겨울 패딩 하나 없이 갇혀버린 것이다.
여행 8일 째 만에 처음으로 눈이 부실 정도의 햇쌀을 마주하게 되었으니.........
이번 여행에서 처음으로 '썬 글라스를 꺼내가지고 나올것을' 하는 생각을 떠올렸을 정도였다. 막아도 막아도 소용없을 정도로 얼굴 가득 한없이 쏟아져 내리는 햇쌀은 분명 그동안 60여 년 느꼈던 햇쌀과 무엇인가가 분명 달랐다. 피부에 따사롭게 다가와 부딪치는 햇쌀이 아니라....... 아주 작고 가는 햇쌀 알갱이들이 피부를 파고 들어와 따끔거리는 느낌이라고 하는것이 더 적절한 표현일 것이다. 그런데 참으로 신기하게도 그런 따끔거림이 그리 싫지않게 느껴지는 것이다. 아예 햇볕이 잘 드는 쪽으로 뺨을 그냥 내어주게 되는 것이 참으로 신기했다.
'집에 갈 때 지중해 햇쌀을 좀 사가지고 갈까? 집에가서 인터넷 주문하면 국제우편으로 배송이 될까?'
챠밍 여사가 좀 묘한 시선으로 힐끗 나를 쳐다본다.
'왜? 나도 이제 햇빛만 있으면 멍때리기 하고 싶을것 같은데......... 나도 프랑스화 되어가는 건가?'
'개뿔. 패딩 하나만 가져 온대니까 유럽이 온통 이상기온이니 어쩌니........ 파리만 벗어나면 맨날 이런 날씨라면서? 내일도 이래?'
'내일? 글쎄? 그래도 마르세유가 여기 보다는 조금 더 남쪽이니까...........'
'거기 가서도 날씨가 구질구질하면 나 명품 숖 가서 카드 긁는다?'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을 규탄하는 시위 집회가 벌어지고 있다.
우리도 적극적인 지지와 성원을 보내본다.
이런 작은 집회의 정성과 열의가 모여져서 정의가 바로 서고 먼 미래를 바라보며 온 인류가 손을 맞잡고 더불어 함께 축제를 벌이는 세상이 오기를 간절하게 기도한다. 해외 여행중에도 이런 작은 집회를 외면하지 않고 참여해 보는 이유는....... 우리 근대사 속에서 '헤이그 열사들'을 떠올리기 때문이다. 그들이 멀고 먼 이역만리 헤이그까지 가서 처음 벌였던 집회는 어쩌면 지금 이곳의 집회 보다도 더 보잘것 없는 것일 수도 있었을 것이다. 지금에야 냉전시대 종말 이후의 러시아와 푸틴이라는 독재자와 침략당한 우크라이나 소식들이 그때 그때 여러 매체를 통해 우리에게 어느정도 익숙하게 전해지고 있지만......... 헤이그 열사 시절에...... 먼 동방 끝테미의 조선 이라는 나라를 아는 사람이 누가 있었겠는가? 가해자인 일본인들만 알았을 것이다. 민족 자결주의를 표방한 미국의 대표 사절 중에도 정작 '조선' 내지는 '조선인들의 실정'에 대해서 일부는 일본이 거짓으로 선동하는 정보를 통해 극히 일부만 알고있었을 뿐, 헤이그 라는 영토 안에서 '조선'을 알고있는 사람이 열 손가락을 과연 넘었을까? 그런 유럽인들에게 일본인이 설명하는 조선이 아니라, 민족자결주의 정신에 근거해 자유독립을 얻고자 하는 조선의 처지를 저들에게 호소하고 알려야 한다는........ 만약 나 라면 과연 어떻게 했을까? 내가 당시 헤이그에 있었다면 말이다. 그런 생각때문에 나는 늘 저런 작은 집회를 그냥 지나치니 못하고 바라보고 이야기 들어 보면서 나름 생각을 해보고...... 그런 그들을 위해 기도한다. 온 인류의 안녕과 평화를 전제로 상식과 양심에 가치를 두고 평가를 해본다.
러시아 우크라이나 전쟁은 반듯이 우크라이나가 승리로 끝내야 한다. 끝내는 방법과 시점에 대해 우크라이나의 생각을 최우선으로 해야한다.
푸틴 정권은 반듯이 전쟁범죄자의 처벌을 받아야만 한다.
아울러 러시아 국민 전체가 이번 전쟁의 진실을 모두 알고 깨달은 바탕 위에서 진심어린 사죄와 완전한 배상이 이루어져야 한다.
우리나라를 비롯한 자유 세계는 자유 민주주의 운명 공동체의 연장선상에서 우크라이나의 재건에 물심양면 최대한 적극 도와야 한다.
자유 시장경제를 바탕으로 하는 민주주의가 결코 완벽한 정치체제라고는 생각하지 않지만, 이제까지의 역사속에서 실험을 거듭한 체제 중에서는 나름 그래도 가장 보편타당성에 근접한다고 나는 생각하는 사람이다. 언젠가 보다 더 나은 체제가 생겨나지 말란 법도 없겠지만 말이다. 현 체제를 수정 보완한다는 것이 지극히 어렵고 어쩌면 불가능할 지도 모르겠지만....... 푸틴을 비롯해 다른 일부 독재자나 무정부주의자들에 대해서는 반듯이 어떤 방법으로든 무한의 책임을 꼭 따져 묻고 강력하게 처벌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어떤이는 말하기를 인류는 극복할 수 없는 거대한 자연재해와 생존의 위험속에서 결국 신(神)을 창조했다고 했다. 그 신에 대한 두려움과 자비와 격려로 온갖 난관을 극복해 현재에 이르렀다는 것이다. 그런데 저들........ 신(神) 조차도 두려워 하지 않는 저들, 시대의 망나니(?)들을 어찌하면 좋단 말인가?
힘내라. 우크라이나.
승리하라. 우크라이나.
여행이 늘 즐거울 필요는 없다.
아니지. 좀 더 솔직하게 이야기하자면....... 누구라도 여행이 늘 즐겁고 마냥 행복하게만 꾸려나갈 수는 없을것이라는 전제하에 에둘러서 하는 표현일 것이다. 아울러 여기에는 항상 즐거운 여행을 추구하고 노력해야 하겠다는 의지도 담겨 있다고 하겠다.
집 나가면 고생 할 것은 뻔하다고 하면서도 우리는 늘 새로운 여행을 꿈꾸고 또 거듭거듭 다시 시도하고 있지 않는가 말이다.
나 역시도 여행중의 고난이나 시련이 아무리 크다해도...... 나(우리)의 여행은 계속될 것이고, 그런 시련과 고난이 거듭거듭 다시 찾아 오기를 기다릴 것이다. 왜냐면 좌절과 시련이 닥쳤고 또 그것을 극복해 낸 여행이 더 오래오래 소중한 기억으로 남았고 깨달음을 얻었기 때문이다.
여기 니스여행에서 크게 난관으로 맞이한 것은 그넘의 미스트랄 이라는 계절풍의 심통이 그렇게 심할지를 전혀 에측하지 못한 때문이었다. 연일 혹독한 추위에 시달려야만 했다.
그런 와중에 오늘 오후에 이렇게 반짝....... '가장 니스다운 날씨'에 근접한 상황을 맞이하였다. 이 또한 여행에서 맞이할 수 있는 하나의 작은 행운이라고 해야할까?
그래, 그냥 이 순간을 즐기고 누리자.
이런 화사하고 따뜻한 날씨속에서 니스에서 보고 느끼고 누려보고자 했던 그런 여행의 일상을 되살려 보자. 이제 서둘러 니스 속으로 들어가 보자. 시장과 카페와 현지인들의 삶 속으로.......
'한 줌의 햇쌀만으로도 마냥 넉넉하고 행복한 그들의 모습 속으로.........'
'맛이 어때요?'
'싱싱하고 완벽한 맛이에요. 한 번 드셔 보실래요?'
'아 아뇨. 드시면서 행복해 하시는 모습이 너무나 인상적이어서요. 즐거운 시간 가지세요.'
그렇게 대답하고 돌아섰지만........ '아!!!! 먹고 싶다' 그게 솔직한 속내였다. 하지만...... '에게게..... 달랑 하나 남겨 놓고 먹어보겠느냐고?' 라고 혼자 중얼거리면서 돌아 섰다. 한 접시에 굴 여덟개가 담긴다. 그런데 결코 싸지 않다. 비싸다. 매우.
프랑스의 물가는 우리나라랑 별반 차이가 없게 느껴진다. 다만 해산물은 상당히 비싸다. 그 중에서도 특히 굴과 문어 숙회는 비교가 되지 않을 정도로 가격차가 분명하다. 프랑스 말고도 이탈리아나 스페인을 여행하면서 항상 느끼는 것중에 하나가 굴 요리나 문어 숙회를 보고 있노라면........ '대한민국에 산다는 것은 축복이야. 여기 니스에 있는 해산물 가계 모두를 합쳐도 우리나라 아무 어촌이나 수산시장의 큰 가계 하나만큼 해산물이 풍부하지 못하다는 사실 때문이다. 프랑스 전체의 수산시장을 모두 합쳐도, 우리나라 지역권....... 그러니까 목포 수산시장이나 주문진 수산시장이나 포항 어시장 보다 결코 해산물이 풍족하지 못하다는 것이 나의 견해이자 생각이다. 이건 정말이다. 우리나라는 그야말로 쌓이고 넘쳐난다 라는 표현이 맞을 것이다. 그러다 보니 유럽에서 수산물은 정말 비싸다.
결국 속으로...... '여행 마치고 집에 돌아가면 석화 한 박스에 문어 큰 놈으로 한 마리 사다가 삶아 먹는다' 라며 아쉬움을 달래본다.
광장과 시장이 그야말로 인파로 넘쳐난다.
골목길 어귀나 광장을 에워싸고 있는 카페들 마다 사람들로 가득하다. 여행자로 보이는 사람들도 있지만....... 대부분이 현지인들로 보인다. 그저 지극히 평범한 일상의 연속으로 장을 보거나 커피를 마시거나 지인들과 외식하러 나온 사람들이다.
우리도 손님들로 북적이는 한 카페의 도로 옆에 난 좌석을 차지하고 앉았다. 당연히 프랑스이니까 카페 알랑제에다가 추가로 뜨거운 물을 약간 따로 부탁을 했다. 한참을 앉아 있다보니 커피의 맛보다 이곳에서 내다 보이는 거리의 풍경과 오가는 행인들의 표정과 모습이 훨씬 좋다. 챠밍여사는 나보다 이런 분위기를 더 즐기는 것으로 보인다.(반 프랑스인 다 됐군!) 얼마나 그런 분위기에 흠뻑 빠졌었는지....... 길 건너 공원의 키만 삐죽히 큰 플라타너스 나무의 그림자가 내 어깨에 내려 앉고서야 시간이 많이 지났음을 알아차렸다.
니스에서의 마지막 저녁이 어느새 슬며시 찾아 들었던 것이다.
우리는 굳이 말이 필요가 없었다. 이제 니스에서의 마지막 저녁을 위한 남은 일과를 해야만 했던 것이다. 현지인들의 삶을 들여다 보고 시장 구경을 하면서 쇼핑을 한다. 과일도 사고 길거리표 와인도 사고 숙소로 향하는 길에 1 층 슈퍼마켓에서 저녁 준비물을 산다. 고기도 구워야 하겠고, 버터를 살짝 넣고 홍합도 삶아야 한다. 나름은 우리 방식의 니스 여행을 마무리 하면서 조촐한 우리만의 파티를 열었다.
오늘도 여느 때처럼 이른 새벽에 눈을 떴다.
살며시 테라스 문을 열고 밖으로 나서보니....... 어제 오후 한나절의 따다로운 햇쌀은 아마도 우리가 연이은 흐리고 추운 날씨에 몹시 고생을 한다고 여기신 지극히 높은곳에 앉아계신 분의 배려로 미스트랄이라는 녀석을 어디 알프스 너머로 심부름을 보내주신 덕분이었지 싶다. 분명 어제 아침이나 그제 아침과 닮거나 같은 분위기의 날씨이지, 어제 오후 분위기는 절대로 아니다.
가급적 부스럭거리는 소리를 내지 않으려 애썼지만 실내에 들어오니 챠밍 여사도 이미 눈을 뜨고 자리에서 일어나 앉아 있다. 습관처럼 커피 포트에 물을 얹는다. 우리에게 이른아침 따뜻하고 진한 모닝커피는 어떤 신성한 의식처럼 느껴질 때가 종종 있다. 그게 뭐라고 말이다.
'산책 나갈꺼야? 난 좀 더 게으름 떨며 쉬다가 일찍 짐이나 쌀래.'
'천천히 그렇게 하셔. 난 반대쪽으로 한바퀴 돌아보고 올께. 내 짐이야 노트북이랑 카메라만 챙기면 별반 달리 더 챙길게 없으니까.'
버터를 바른 바게트 빵에다 커피에다 포도로 간단히 아침을 대신하고 카메라를 둘러메고 훤하게 날이 밝기 시작하는 거리로 나선다. 그래도 니스의 아침이니까 하루 인사라 생각하고 일단 해변으로 나가 본다. 조깅을 하는 젊은이들과 산책을 하는 노인들로 확실하게 나뉘는 니스의 해변 풍경이다. 그래서 나는 지금 내 자신이 딱 그들 중간이라고 억지로 우기며 내 스스로를 위로해 준다. 이럴때 나는 새벽 산책을 나온게 아니라 트래킹을 나온것이라고 속으로 끝까지우기고 싶다.(그러면서도 언뜻....... 이제는 한국 땅에서 그 누구도 나에게 질문이나 길을 물을 때 '아저씨'라고 부르지 않고 '할아버지'라고 부르고 있다는 생각에 미치자 갑자기 어떤 전율처럼 몸서리가 쳐지기 시작한다.)
이제 날은 훤하게 밝았는데...... 오늘 니스의 일출을 보기는 틀린것 같다. 수평선 쪽으로 짙은 구름이 가득하기 때문이다.
'영국인 산책로' 라고 불리는 해변을 따라 조금만 서쪽으로 발걸음을 옮긴다. 저 멀리 니스 공항에서 아침 비행기가 이륙하고 있다. 세 블럭을 옮기자 약간은 우리나라 남산의 하이야트 호텔을 닮은 모습의 < AC hotel>이 나타난다. 니스의 해변을 내려다 볼 수 있는 4성급 호텔로 특히 옥상 테라스에서 내려다 보는 전망좋은 명소로 알려져 있다. 하지만 내가 지금 이 호텔을 찾아 온 것은 옥상의 풍경이 아니라 이 호텔의 모서리에 있는 외벽을 보려고 찾아 온 것이다. 공항이나 포닉스 시내버스 정류장을 트램을 타고 다녀오다보면 바로 이 호텔의 외벽을 바라보며 지나가게 되는데....... 나의 시선을 강하게 잡아 끄는 아주 멋진 풍경이 이곳에 있었기 때문에 여행의 마지막 아침에 서둘러 일부러 찾아 온 길이었다.
호텔 건물 옆면의 높은 벽사이의 틈으로 거대한 여신 조각상이 금방이라도 밖으로 뛰쳐나올 것처럼 모습을 드러내고 밖을 살피고 있기 때문이다. 사실 호텔 건물 자체는 그다지 매력적이거나 특별하달것이 아무것도 없었는데 벽 틈새로 비집고 나오려는 여신의 조각상은 상당히 이채롭고 매력적이었다.
'그래. 매력적인 도시가 되려면은 적어도 이런 멋진 풍경이 한 두 개씩은 당연하게 있어주어야 하는게 아니겠어?' 어쩌면 내가 니스에서 본 가장 인상적인 풍경이 아닐까 싶기도 했다. 그만큼 적어도 내게는 멋지고 아름다웠다.
'그나저나 저게 그렇다면 누구지? 여신 이라면...... 아테네? 아프로디테? 아무리 그렇기로 설마 헤라는 아닐것 같고........' 여기저기 둘러보아도 특별히 벽면의 조각상에 대한 설명은 어디에도 없다. 그냥 지나치려고 하니 그것도 내 성미에 안밪는것 같고........ 담장 모서리를 지나가려는데 호텔을 홍보하는 안내판에 이런저런 광고물들이 나붙었는데 그중에...... 온통 불어 투성이라 제대로 읽어볼 수 있는 문장이 단 한 줄도 없었지만...... 분명 저 조각상 사진 아래로 쥬피터(목성) 이라는 문자와 쌍둥이 여신이라는 문자가 보였다. 그래서 발걸음을 옮기면서 이 수수께끼를 풀어보려고 노력을 하던 중에...... 일단 조각상이 분명 여신인 것은 분명하고........ 쥬피터는 제우스 신을 가리키는 것이고........ 쌍둥이라면........ 아하! 저 조각상은 바로 달의 여신이자 사냥의 여신인 아르테미스라는 사실을 깨닫게 되었다. 제우스가 쌍둥이를 낳았는데 서로 성이 다른 남녀 쌍둥이를 낳았던 것이다. 오빠인 남자가 바로 태양의 신 아폴로였으며 여자가 바로 아르테미스 였다.(헐!!! 그렇게 간단한 것을........ 언어가 문제여. 언어가.)
자그만치 높이가 19m나 되는 거대한 아르테미스 여신 조각상은 사카 소노(Sacha Sosno) 가 만든 작품이라는 사실까지는 이해할 수가 있었다.
니스 기차역 너머의 언덕 인근이 궁금해 나선 산책길이었다.
언덕을 향해 골목길을 가로질러 가던 중에 또 직업병에 해당되는 신기한 광경을 목격하고 말았던 것이다.
수 백년 된 허물어져 형체도 알아보기 힘든 도심안쪽의 공터에 재개발이 이루어지고 있었는데, 놀랍게도 허물어진 옛건물의 잔해들을 발굴해서 새로 짓는 초현대식 건물의 정면에 이탈리아 대성당의 파사드(정면 부벽) 처럼 별도의 조형물 내지는 건축물로 되살리는 작업이 진행되고 있었다. 적어도 내게 있어서는 신선하고도 상당히 충격적인 모습이었다. 새로운 석재를 자르고 가다듬어서 정면의 부벽을 만들어 올라가는데, 페허에서 발굴된 살아남아있는 옛 벽면을 있는 그대로 되살리는 모습이 가히 놀라울 따름이었다. 이게 우리나라 석굴암이나 다보탑이라면 또 모를까....... 위치로 보나 예건물의 형태나 생김새를 보나 중세 이후의 오래되고 낡아 허물어진 건물 정도라는것 뿐, 그다지 중요한 어떤 문화재 정도로는 보이지 않는데도 말이다. 이렇게 공사를 하려면....... 아예 새로운 자재로 완전히 새로 가공해서 건물을 짓는것 보다 몇 배는 힘들고, 훨씬 그에 상회하는 시간과 비용이 절대적으로 소요된다. 설치도니 바리케이트와 건축 안내판을 살피니 여기저기 <ECB> 라는 마크가 선명하게 나붙어 있다. <ECB> 하면 가장 쉽게 먼저 떠오르는 것이 유럽 중앙은행(Europran Cantral Bank)가 아니겠는가. 미국의 연방 준비 위원회와 더불어 세게 금리나 자본의 이동과 변동에 대해 가장 큰 영향력을 가지고 있는 거대 자본단체다. 과연 이 재건축과 유럽 중앙은행이 무슨 관계가 있는 것이지? 옛 사진속의 현판을 보니 <Fratelli Branca>라는 상호가 보이는데 이는 이탈리아 밀라노에 근거들 둔 세계적인 꼬냑 회사의 상호이다. 세계 유수의 도시에 판매망을 둔 거대 기업으로 성장했는데, 그렇다면 과거에 여기 니스에도 브라카 양조회사의 지부 판매 회사가 있었다는 이야기가 성립된다. 혹, 아니면 이니셜만 같은 니스나 프랑스의 부동산 재개발 회사일 수도 있겠다. 아무튼 어찌되었건 간에...... 이런 재건축 방식은 나에게 아주 신선한 자극으로 다가왔다.
혹시 내 현장에서 내가 이런 방식으로 작업을 하겠다고 주장하면.......... 금방 여기저기서 짤리고....... 하루아침에 폭삭 망할것이 뻔하다.
고가도로로 설치된 니스 기차역을 지나 언덕을 조금만 오르면 한눈에도 담박 그 건물의 정체를 쉽게 알아차릴 수 있는 니스 주재 러시아 동방정교회(Cathedrale Saint- Nicolas de Nice)가 모습을 드러낸다. 나무를 깎아 목각인형처럼 쌓아올린듯 보이는 예쁜 성당 말이다. 흔히 해외토픽에서 러시아 붉은 광장의 예쁜 정교회 모습을 많이 보아왔기 때문에 전혀 낯설지가 않을 것이다. 러시아 영토 밖에 있는 러시아 정교회 건물로는 가장 중요하게 여겨지는 아주 유서 깊은 건물이다. 서유럽에 건설된 러시아 동방정교회 소속의 최초로 건축된 교회인 것이다. 달리 보자면 여기 니스가 그만큼 유럽 어디에서도 볼 수없는 비교적 종교 갈등에서 자유로운 지역이었다는 말이다. 조지아 트빌리시 올드 시티에 보면 기독교 교회들 사이로 러시아 정교회와 유대교 시고나그까지 한 지역에 공존하는 아주 특별한 모습도 있기는 있다.
이천 년 기독교 역사의 정통성을 기준으로 최초의 성역은 바로 예루살렘 이었다. 하지만 2차 이스라엘 해방 전쟁의 결과로 로마는 예루살렘을 완전 폐허로 성역을 파괴해 버리고 말았다. 삼백 구십년이 지나 에루살렘을 파괴한 침략군의 수도인 로마는 이제 제 2의 기독교 성역으로 발바꿈하게 된다. 교황청이 그곳에 들어서고 세계 기독교으 중심이 되었기 때문이다. 서로마가 멸망하자 교황청은 로마에 그대로 남았지만, 이제 세계 기독교의 중심이자 성역은 콘스탄티노플(이스탄불)로 바뀌고 말았다. 쇠락의 길을 걷던 비잔티움은 십자군 전쟁의 막이 내림과 동시에 멸망하게되었으며, 비잔티움이 가지고 있던 기독교 성역은 어디로 옮겨야 하는지 갈피를 잡지 못하고 있었다. 로마의 교황청은 모든 정통성은 처음부터 꾸준히 로마의 교황청이 가지고 있다고 주장했지만....... 비잔티움의 유스티니우스 황제 시절 로마는 비잔티움 동방정교회의 로마 지부였던것이 감출 수 없는 사실이었던 것이다. 이는 분명 비잔티움 멸망시까지 로마 교황청은 비잔티움 동방정교회에 속했다. 이 와중에 시베리아를 개척하면서 재야의 절대 초강자로 급부상한 러시아의 이반 3세가 처음으로 자신의 신분을 짜르(카이사르. 황제)라 칭하면서 몰락하는 비잔틴이 가지고 있던 열러 성물과 성경과 기독교 정통성을 러시아로 옮겨버리는 사태가 발생했다. 그러면서 온 세상을 향해 기독교의 정통성은 예루살렘-로마-비잔티움-러시아 정교회로 이어져 내려왔다고 공표했다. 이때부터 유럽은 바티칸이 주도하는 기독교와 러시아 정교회로 양분되었고...... 이런 종교적 갈등이 우크라이나와 러시아의 전쟁 이면에도 깊게 관여되고 있는 것이다.
아울러, 여기 니스 소재의 러시아 정교회 성당의 부지를 놓고 프랑스와 러시아 간에 오랜 시간동안 국제 재판이 벌어지고 있다. 러시아는 오래 전에 정교회가 들어섰고, 러시아 혁명을 통하여 정교회의 재산이 러시아 정부에 귀속된만큼 니스의 정교회 부지와 재산이 당연히 러시아의 소유라고 주장하기 때문이다. 속지주의와 종교주의의 재판이라......... 왜 세상은 이리도 복잡한 것일까?
교회는 여전히 루료로 누구에게나 개방되어 있는데....... 소유권 재판을 주장하는 러시아는 국고를 들여 2012년 성당을 대대적으로 수리 했다. 프랑스는 이에 대해 전혀 관여하지 않았다. 참 재미있는 사연이 아니겠는가? 높은 곳에 게신 분께서 이 성당과 건축물을 폭 떠서 그냥 러시아 어디에다가 붙여 놓으시던가........ 그거 별로 러시아 살림에 보탬이 안될테니 차라시 현 시가보다 좀 싸게 해서 프랑스에 팔아버리던지....... 혹, 그렇게 따지자면 오랫동안 프랑스가 관리해 온 인건비와 수리비용을 추가로 요청한다면........ 이것도 계산이 안된다. 신에게 판결해 달라고 해. 인간 법정에서 다투지 말고....... 어차피 끝이 날 수 없는 문제잖아. 바보들 아니여?
예쁘고 아기자기 하다.
로마는 이천 년 전에 이미 콘크리트를 건축에 사용하여 판테온과 콜로세움을 지었지만, 러시아는 모든 환경이 로마와는 전혀 달랐다.
우선 화산재를 구할 수 있는 활화산이 없거나 아니면 도저히 모스코바나 페트상테스부르크깢 가져 올 수가 없었다. 더군다나 일 년의 반 이상이 영하 이삼십도 아래로 떨어져 건축 공사를 이어나갈 수가 없는 아주 혹독한 환경이었다. 그러다보니 당연하게 사방에 넘쳐나는 목재를 잘 활용하는 방법을 택할 수 밖에 없었다. 길고 혹독한 겨울동안 그들은 나무를 자르고 다듬고 말리면서 운송을 했다. 그리고 얼음이 풀리면 짧은 여름동안 죽어라 나무를 자르고 다듬어서 쌓아 올렸다. 그렇게해서 만들어진 대표적 건축물이 바로 우리가 흔히 러시아 정교회 성당에서 볼 수 있는 장남감처럼 생긴 건축물이다. 강도나 크기는 제한 받을 수 있지만 제각각으로 모양을 변형시키고 예쁜게 만들어내는것은 언제나 가능한것이 바로 목재였기 때문이다.
프랑스나 스페인의 교회건축 양식이 대부분 고딕 형태로 지어졌지만, 피렌체를 중심으로 북부 이탈리아에는 돔 양식의 교회가 참 많이 남아 있다. 돔의 형태나 크기에는 차이가 있겠지만....... 이탈리아 돔양식의 교회 사진과 러시아 정교회 사진과 이슬람교의 모스크 돔 사진을 모아 섞어 놓으면........ 분명 구분은 가능하겠지만......... 얼핏......... 지극히 높은 곳에 계신분의 집도 돔 형태가 아닐까 싶어지기까지 한다. 뭔가 그 분과 연관성이 있어서 저렇게 다른 종파들끼리도 돔 돔 하는것이 아닐까? 대신 정교회 성당의 내부는 서구 기독교 성당의 내부에 비해........ 조심스러운 표현으로....... 소박함이나 단순함을 넘어 조악해 보이는 느낌을 떨쳐버릴 수가 없다. 인테리어 자재 조달이 그만큼 어려웠던 때문일까?
아침 산책을 마치고 숙소로 돌아와 아침 샤워를 하고 아점 커피 삼아서 한 잔 더 마시고 나서........ 이사 짐보따리를 싼다.
나는 별도로 챙길것이 별로 없는데다가 챠밍여사가 이미 보따리를 다 싸놨겠다, 아직 마르세유 가는 기차 시간은 한참이나 남았는데 뭐할껴?
니스와 작별 인사도 할 겸...... 손 잡고 동네 한 바퀴를 나섰는데....... 그냥 걷다보니까 어느새 또 메세나 광장 인근이다. 볼 일도 볼 겸, 맥도날드에 들어가 햄버거에 커피를 시켜서 앉았는데........ 테라스 창문 넘어로 자꾸만 눈에 어른거리는 저기 저거........... 그거.
스페인 톨레도에서 보았고, 시칠리아 카타니아에서도 보았고....... 암튼 좀 유명하다는 여행지마다 도심 사이를 헤집고 돌아다니는 저것....... 코끼리 열차가 여기 니스에도 있다. 마세나 광장 모서리 맥도널드 앞에 말이다.
이름하야....... 꼬.끼.리.열.차.
'세리 할무니야. 우리 저거 한 번 타볼까? 시간이 어중간 해서 전망대를 계단으로 걸어서 다녀올려면 땀 좀 흘려야할것 같은데....... 우리 느긋하게 저거 한 번 타볼텨?'
'얼씨구? 우리 병아리(손녀)들이 타자면 모를까 죽을 때까지 저거 탈 일은 없을 거라며? 거 봐. 앞 일은 모르는거여. 절대 겸손해야 혀.'
'내가 시방 저걸 타고 싶어서 그러는거냐? 당신한테 니스 전망대에서 해변 전경은 보여주고 떠나야겠는데, 여러 정황상 걸어서 다녀오기는 당신한테 무리일것 같아서 그러는거지? 난 뛰어서도 다녀 올 수 있거든?'
'하여간 저놈의 뻥은 나이를 안 먹는가봐? 그럼 난 걸어서 계단으로 갈테니 당신 맘대로 해 보셔. 삼십대 아들도 아니면서 쓸데없는 자신감은.....'
'그러니까 그냥 있는 그대로...... 저거 한 번 탈까? 그게 지금 우리한테 좋을것 같애...... 이러면 어디 덧나니?'
'알써. (두 손을 모으고 정중하게) 세리 할머니야. 우리 코끼리 열차 한 번 타보지 않을래?'(이러고 살아 온 세웰이 어언 40년이 까까웠다. 흑 흑)
'콜!!!!!!'
하여...... 팔자에도 없었던 코끼리 열차라는 것을 타고 전망대에 올랐는데........ 높은 곳에서 내려다 보는 니스 해변의 전경은 또 달랐다.
그런데 그런 감상도 아주 잠시........ 이내 또다시 한기가 뼛속까지 파고들어 온다. 딱 어제 아침과 그제 날씨다. 헐!!!!!
풍경이고 정취고....... 서둘러 내려가고 싶다.
숙소로 돌아와 호텔 매니저를 만나서 체크 아웃을 하고, 짐을 가지고 기차역으로 향한다.
그래도 아쉬운 마음에 연실 니스의 이곳저곳을 두리번 거리면서 작별 인사를 한다. 아마도 다시 올 기약은 하지 못할 것 같다. 니스가 좋지 않아서가 아니라, 우리에겐 가고 싶은 곳이 아직도 너무나 많이 남아있기 때문이다.
가다가 교통 사고도 목격하고, 번개처럼 달려와 사고 수습을 하는 프랑스 경찰들 모습도 잠시 지켜보고 다시 돌아서서 발걸음을 재촉해 역에 도착했다. 딱 알맞은 시간에 때를 맞춰 도착한 것이다.
대합실의 피아노 앞에 어제와 다른 어떤 남자가 앉아서 내가 알지 못하는 연주와 불어로 노래를 하는데........ 어제 실력남과 비교해 보니 영 아니올시다 이다. 잠시 의자에 앉아서 기다리다가 개찰구를 통해 기차에 올랐다.
굿바이 니스.
마르세유야 기다려. 이제 우리가 간다.
--- 마르세유 여행기에서 다시 돌아오겠습니다. 감사합니다. 조금만 기다려 주세요. 피안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