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로 이용웅 칼럼] 이용웅교수의 [동북아 역사와 문화]와 極東러시아- 2.
靑魯 李龍雄/ 석좌교수
경남대학교 극동문제연구소/
선데이뉴스신문/상임고문/
한반도문화예술연구소 대표/
<[청로 이용웅 칼럼] 이용웅교수의 [동북아 역사와 문화]와 極東러시아- 1.>에서 계속. 정은상 박사의 “동북아시대의 러시아 극동과 중심도시 블라디보스토크” <계속>⇒
⇒[오늘은 러시아 극동 연해주의 주도인 블라디보스토크와 인근지역의 현황에 대해서 좀 더 자세히 언급해 보고자 합니다. 연해주의 주도인 블라디보스토크는 과거 재정러시아 시절 극동의 얼지 않는 부동항을 개척하기 위해 추진한 동진남하(東進南下)정책의 결과물입니다. 연해주를 청나라가 아편전쟁에서 패해서 1860년 러시아와 베이징조약(북경조약)을 체결하여 연해주의 땅을 러시아로 넘겨주게 됩니다. 그 이전인 1858년 아무르강 연안의 아이훈에서 러시아제국과 청나라는 불평등조약인 아이훈조약을 맺기도 했습니다.
‘블라디보스토크’라는 지명은 러시아어로 된 합성어입니다. 사전적으로는 블라디(지배하다, 정복하다)+보스토크(동방, 동쪽)이라는 뜻을 가지고 있습니다. 1860년 제정러시아 시절에 도시가 탄생하였기 때문에 올해로 161년이 되었습니다. 코로나19가 발병하기 이전까지만하더라도 매년 20만명 이상의 한국관광객들이 이 도시를 찾은 관광의 명소이기도 합니다. 그 이유는 다양하겠지만 지리적으로 역사적으로 한국과 인연이 많은 지역이기 때문일 것입니다. 저렴한 가격으로 한 두 시간의 거리에 위치한 유럽의 도시입니다.
블라디보스토크시의 메인스트리트인 ‘스베틀란스카야’거리 좌․우측의 즐비한 건물들은 프랑스 파리의 건물들과도 유사한 고틱이나 바로크양식의 건물들입니다. 또한 시 관광정책에 따라서 도심을 재정비하고 모스크바시를 벤치마킹(benchmarking)하여 조성한 ‘아르바트’거리는 많은 볼거리를 제공하기도 합니다. 도심과 바다가 잘 어우러져 있고, 과거 동서진영의 갈등과 이데올로기의 긴장감도 한국관광객들에게는 호기심을 자극하는 추억의 관광이 되기에 충분합니다. 즉, 2차 세계대전에 참전한 잠수함인 잠수함박물관, 태평양함대사령부, 전망대에 포진한 대포, 꺼지지 않는 불꽃 등은 분명 한국과는 다른 이국적인 유럽의 풍경들입니다.
여기에는 과거 한인들의 디아스포라(Diaspora)가 숨 쉬고 있는 곳이기도 합니다. 도심 중심가에서 가까운 곳에 자리 잡은 ‘신한촌’이 그곳입니다. 과거 일제 강점기 동안 독립운동의 전진기지 역할과 한인 교육의 메카역할을 톡톡히 내낸 곳입니다. 현재 신한촌에는 위령탑이건립이 돼 있습니다. 한국인들의 애국심과 역사적인 향수를 자극하는 전당이기도 합니다. 행정단위로 ‘서울거리’가 심지어 블라디보스토크 시내에 있다면 믿어지시겠습니까? 블라디보스토크시를 관광하는 우리나라 관광객은 저마다 가슴에 애국자라는 훈장을 하나씩 달고 다닌다는 생각을 할 수도 있습니다. 이처럼 이 도시는 우리나라 국민들에게 과거와 현재를 연결해 주는 징검다리 역할도 당당히 수행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이 도시에는 아직까지 한인 5세대, 6세대들이 전통시장에서 김치와 콩나물, 고사리나물 등을 팔고 있는 역사적인 전통계승의 현장이 있습니다.
블라디보스토크는 1992년 개방도시가 되었습니다. 과거 군사항의 역할을 위한 특수한 목적의 도시였습니다. 개방도시 이후 우리나라는 총영사관을 비롯한 대한무역투자진흥공사(KOTRA), 한국문화원 등이 일찍부터 자리하고 있습니다. 러시아 극동에서는 제일의 교육기관인 극동연방대학(FEFU)이 위치한 곳이기도 합니다. 이 대학은 우리에게 전 세계에서 한국학연구와 교육이 가장 먼저 시작된 대학으로 유명합니다. 한․러수교 이전인 1989년에 경남대학교 박재규총장은 민간외교협력 차원에서 이 대학의 전신인 극동국립대학교(FESU)와 1989년 자매교류협정을 맺었던 역사적인 행사도 있었습니다.
우리나라 국회의원들의 외교도 2000년대에 접어들어 이 도시를 방문함으로서 본격화되기 시작합니다. 지리적으로 남,북한, 중국, 일본, 몽고, 러시아와의 협력이 용이한 곳이기 때문입니다. 극동지역을 중심으로 러시아에 대한 이해와 상호교류 방안을 모색하기 시작합니다. 국회 정치의 현장을 연해주의 주도인 블라디보스토크로 이동해서 다양한 국제 심포지엄을 개최하였습니다. 시베리아횡단철도(TSR), 일명 철의 실크로드 탐방프로그램 등은 양국을 보다 더 친밀하게 해 준 밀착 외교이기도 합니다. 국제심포지엄은 21세기 동북아시대를 구상하고 평화번영과 남북동반시대를 조속히 앞당기는데 일익을 담당할 것으로 기대하였습니다. 「평화와 번영의 동북아시대」의 구상을 실천하고 남북 동반 평화번영을 위해 남・북・러 핵심 공통 관심사인 동북아 물류외교, 에너지외교, 과학기술외교, 문화외교 등을 앞당기기 위하여 블라디보스토크에서 국제심포지엄을 여러 차례 개최하였습니다.
학자들의 연구 활동도 활발히 진행되었습니다. 「21세기 동북아 시대 평화번영을 위한 남북동반정책」을 위해서 ‘동북아 정세와 한반도의 전략적 가치’, ‘시베리아의 자원개발과 남북한 상호 전략 이해’, ‘동북아 시대 남북동반정책과 협력 방안’ 등의 현안에 대해서 양국의 학자들이 모여서 수차례 국제학술행사를 블라디보스토크에서 개최한 바가 있습니다.
러시아에서도 극동의 중요성을 잘 인식하고 있으며, 개발에 적극적입니다. 그래서 푸틴 대통령이 주도하는 동방경제포럼(Eastern Economic Forum)이 개최되기 시작했습니다. 푸틴 3기 정부의 주요정책으로 2012년부터 추진한 동북아시아 경제 포럼계획입니다. 2015년 9월부터 블라디보스토크의 극동연방대학교에서 코로나19 이전까지 매년 1회씩 개최되고 있었습니다. 러시아가 연방정부 차원에서 지원하는 포럼이 단 3개인데, 그 중에 하나가 2015년 블라디미르 푸틴 대통령이 신동방정책을 추진하기 위해 대통령령으로 창설한 ‘동방경제포럼’입니다. 문재인 대통령은 제3차 동방경제포럼 참석차 러시아 블라디보스토크시를 방문한적이 있습니다.
현 정부의 신북방정책 선언은 우리나라가 해양과 대륙을 연결하는 교량국가로 변모를 하고자하는 숙원사업입니다. 북방 국가의 대표 격인 러시아와의 교류를 통해 경제적 신성장동력을 확보하기 위한 정책이기도 합니다. 한인 경제촌 형성, 한인공단건설사업, 극동한인경제 메가 클러스터 형성 등은 실질협력의 성과를 위한 조치들입니다.
우리나라 대통령 직속 북방경제협력위원회를 두고 정책을 추진하고 있습니다. 최근 한․러 혁신 플랫폼 기술 포럼에서 한국과 러시아가 부품 및 장비, 독창적 기술개발을 위해 양국 실무 팀들이 공동투자 펀드 조성 작업을 진행하고, 양측에서 10억불을 모아서 한․러 펀드 간 공동 투자 계약을 체결해 양국 기업이 추진하는 프로젝트에 펀드를 사용한다는 계획을 추진 중입니다.
멀게만 느껴지던 러시아 극동 블라디보스토크, 이젠 ‘엎어지면 코 닿을 곳’이라는 속담처럼 바로 우리 코앞에 가까이 다가온 이웃이 되었습니다. 앞으로 우리는 양국의 협력 중심에 바로 극동의 심장도시인 블라디보스토크시를 발판으로 북방정책의 성공적인 결과를 기대해 봅니다.] <끝>
[사진]
1. 블라디보스토크 금각만을 가로지르는 도심의 다리.
2. 정부의 신북방정책도.
3. 러시아 블라디보스토크 극동국립연방대학교 전경
4. 정은상 교수-경남대학교 자유전공학부. 러시아 어문학 박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