운조(云祖)와 원조(元祖)
김광한
그때 생각을 하면 지금도 그분에게 미안함을 금할 수가 없어요. 80년도인가봐요. 전두환 정권이 들어서고 여러 잡지사를 문닫게 했는데 유독 책관계를 소개해주는 신문만 하나 살아났어요.그냥 모(某) 신문이라고 하죠.그 신문이 주간(週刊)이었는데 주간지가 참 바빠요.요즘처럼 전산화(電算化)가 된것도 아니고 사진식자로 만들어 필름을 떠서 그걸 인화해 마분지(대지)에 붙여서 다시 옵셋으로 찍는 과정이 복잡해요.
거기서 편집국장을 몇달했는데 그때의 일이에요. 다불로이드 판에 표지는 그림으로 장식을 하고 그 옆에 표제가 들어가는데 무문(無紋) 토기는 "송(宋)나라가 원조(元祖)" 즉 무늬가 없는 토기는 송나라가 효시라는 말인데 으뜸 원(元)자를 교정을 잘못보아서 운(云)이 되었어요. 표지 타이틀에 주먹만한 활자로 元이 아닌 云이 들어갔으니 신문의 체면도 그러려니와 책임 소재를 따지면 골치 아프게 생겼어요. 元자나 云자나 그게 비슷해요.모든 책임이 교정부 기자가 아니라 편집국장인 제가 지고 잘못하다가는 쫓겨나 처자식들 밥 굶기게 생겼어요. 그때 사장이 유럽 여행을 갔고 전주(錢主)(돈주인)인 안모 상무가 있었는데 이분이 한문에 대한 지식이 그리 많지가 않았어요.
그래도 원조(元祖)와 운조(云祖)가 다르다는 것을 알았는지 돋보기 안경을 쓰고 고개를 연신 기웃거리는 거에요. 안상무는 사장의 처남인데 원래는 금은방을 했던 사람이에요. 그런데 신문사가 어렵게 되자 사장이 매제를 꼬여서 투자케 만든 것이지요.
신문이 발행 되고 그 이튿날 안상무가 저를 불러요 제법 심각하고 근엄한 얼굴을 하고.신문 표지를 내보이면서
"김국장, 이거 오자(誤字) 난건 아닌가요?"
제가 그분의 얼굴을 보니 어떤 확신이 서 있는 것같지 않아요. 그래서 제가 강력하게 말했지요.
"원래 한자는 상형문자(象形文字)인데 시대가 바뀌면 글자도 바뀌는 것이 상례에요. 송나라 시대때는 원조가 아닌 운조로 표현했어요."
하면서 그분의 얼굴을 똑바로 쳐다보자 슬그머니 꼬리를 내려요.자신의 말이 진기민가 한것이지요
"원조가 아니라 운조가 맞습니다! 뭘알고나 말씀하시지 않고..."
하면서 제 자리로 왔지요. 잘못했으면 교정을 본 기자가 모가지가 날아갈뻔했지요.저역시 위험했고요.
그런후 30여년이 지나서 우연히 안상무를 종로 3가 파고다 공원 뒷편에서 만났어요. 행색이 말이 아니었어요.저를 알아보길래 근처 국밥집으로 모시고 가서 그때의 일을 사과했어요.그랬더니 그런 일이 있었냐면서 한참동안 웃고 헤어졌지요.
첫댓글 일송정님은 작가이시니 생각을 글로 무한대로 표현하시고 만들어 내실수 있는거 같습니다.
평범한 저희들이야 그런 추억과 기억들이 있어도 머리속에서만 멤돌뿐 글로 표현이 힘들지요.
재미난 이야기들 많이 올려 주셔서 감사합니다.
재미있는 이야기 보따리..
이런이야기 재미 있습니다...ㅎㅎ
오늘도 일송정님 감사합니다.
이제 안녕히 주무세요! 꾸벅
낼 다시 카페에서 뵙겠습니다.
사람은 신이아닌이상 실수도 할 수 있는 것입니다.
그당시 언론사가 전무하다싶이 한 상태에서
만약에 회사를 그만두게 된다면 재취업도 어려웠을 것이고 가솔들의 생계를 어떻게 보장할 수 있겠습니까?
그것이 실수였노라고 해명한들 언론사로서도 아마 받아드리기가 쉽지 않았을 겁니다.
현명한 판단을 잘 하신 것입니다.
ㅋㅋㅋ
재미있는 얘기군요!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