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경없는의사회로(김용민, 베드로, 정형외과 의사)
정년을 6년 남겨놓은 상태에서 국립대학 교수직에서 조기 퇴직하였습니다. 국경없는의사회 활동에 전적으로 뛰어들기 위해서입니다. 국립대 교수에서 무직으로(국경없는의사회는 파견 기간만 한시적 채용 계약을 맺기 때문에, 활동 기간 외에는 무직 상태) 변신한 것에 대해 주위에서는 이해할 수 없다는 반응도 많았지요. 몸담은 세월이 22년이었으니 학교 동료들이나 제자들과의 이별도 쉬운 일은 아니었습니다. 그렇지만 “보물을 발견한 사람은 가진 것을 다 팔아 그것을 산다”는 말씀처럼(마태 13,44) 저는 다 내려놓고 이 길을 가기로 결심하였습니다. 이런 결정의 계기는 그로부터 8년 전에 있었습니다.
2010년 1월 카리브해의 가난한 나라 아이티에서 대지진으로 건물들이 붕괴해 사망자 20만 명, 부상자 30만 명 가까이 생겨나는 큰 재난이 발생했습니다. 구호팀을 모집하는 공고를 보고도 남의 일로 여기던 저는 갑자기 마지막 순간에 자원봉사자 지원을 하였습니다. 사실 지원을 하면서도 실현 가능성을 그리 기대하지도 않았었지요. 출발 3일 전에 갑자기 연락을 받고 가게 되었는데, 출발일이 다가오도록 정형외과 의사를 구하지 못했기 때문임을 나중에 알게 되었습니다. 마감 10분 전에 갑자기 떠올라 지원한 것도, 출발 직전 갑자기 저에게 합류 연락이 온 것도, 그저 모든 게 신비롭기만 합니다.
그곳에서 했던 8일간의 진료 마지막 날, 젊은 남자 환자가 저더러 한국에 가지 말고 이곳에 남아달라고 하더군요. 귀국 여행 내내 그의 마지막 말과 진심 어린 표정이 제 머리에서 떠나지 않았습니다. 그때, 앞으로 기회가 된다면 이렇듯 누군가에게 도움이 되는 곳을 찾아가야겠다고 생각했습니다.
그 후 8년 뒤에 제가 가입한 국경없는의사회(MSF)는 1971년 프랑스에서 시작된 국제 인도주의 의료 구호 단체로, 의료진이 가기 힘들거나 꺼려지는 곳, 그렇지만 의료의 손길을 필요로 하는 사람들이 있는 곳에 가장 먼저 찾아 들어가는 활동 단체입니다. 정치, 종교, 경제적으로 독립 및 중립성을 지키며, 누구든 의료가 필요한 사람은 인도적으로 다가가 구호합니다.
국경없는의사회는 착한 사마리아 사람처럼 곤경에 빠진 이웃을 돌보라는 예수님의 가르침을 현실에서 실천하려 하는 단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저는 팔레스타인 가자에 다녀오면서 그들이 처한 상황을 제 힘으로 어쩔 수 없음이 참으로 마음이 아팠습니다. 그렇다면 제가 팔레스타인에서 보낸 시간과 들인 노력은 의미가 없었을까요? 버림받은 이들, 고통받는 이들 곁에서 함께한 것만으로도 예수님의 가르침을 조금은 따를 수 있었던 시간이었다고 생각합니다. 강도를 만난 사람의 이웃이 되어 준 사람은 누구냐는 예수님의 질문에 대한 율법학자의 대답은 “그에게 사랑을(자비를) 베푼 사람입니다”(루카 10,37)였습니다. 길지 않은 기간이었지만, 그들 곁에서 함께 있으며 벗이 되어줄 수 있었다는 것만으로도 참으로 하느님의 은총에 따른 감사한 기회였음을 다시금 깨닫게 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