만약 모든 보살이 오직 지극한 고요를 취해서 고요한 힘으로 말미암아 번뇌가 영영 끊기고 구경 성취하여 자리에 일어나지 않고 문득 열반에 들면 이런 보살은 단지 삼마타를 닦았다 이름할 것이다.
사마타는 위에서도 말이 나왔지만 이 방편의 정체를 자세히 분석하면 아래와 같다. 사마타는 우리말로는 적적고요이다. 말하자면 소리에 대해서는 적적인 것이요. 움직임에 대해서는 고요인 것이다. 예를 들면 폭풍을 만난 수림이 소음과 동요를 내나니 동요 없는 소음없고 소음없는 동요 없을 것이다. 그러나 폭풍이 그치면 소음도 동요도 없는 것이니 이 같이 우리 마음과 몸에 소음과 동요도 적적고요케 하자면 업풍만 그치면 되는 것이다. 업풍은 마음의 바람인 것이니 업풍이 그치고 안 그치고는 마음에서 좌우되는 것이다.
이 역 예를들면 복잡한 동작과 소음을 내는 일좌기계가 있으면 이것도 동작이면 소음이오 소음이면 동작이어서 앙자관계를 분리시킬 수 없다. 그러나 전력 발동만을 그치면 되는 것이오 발동중지는 스위치만 제치면 되는 것이다. 말하자면 발동기는 업력이요 스위치는 마음인 것이다. 중생은 마음하나 뒤쳐 놓음에서 업의 발동이 쉬는 것이오 업의 발동이 쉼에서 번뇌망상의 동요와소음은 그치어서 열반인 본체를 들어내는 것이다.
이러한 내용의 방편 이름이 사마타이니 이러한 사마타도 먼저 우리가 바라는 둥근 깨달음이 이떠한 존재인지를 알고 나야만 한다. 알지 못하게 되면 기분과 신심과 욕망의 힘이 생기지 않는 법이다 이것이 생기지 않으면 마음스위치는 제쳐지지 않는다.
큰기계를 움직이는 기업체를 매수하려 함에서는 먼저 수입면에대한 확실성을 파악한 후에야 공장에 나가 움직이는 기계를 끊치어 보기도 하고 다시 움직여 보기도 할 용기와 신심이 생기는 것같이 둥근깨달음성도 먼저 인식하고 나서야 실제면을 향해 힘을 기우리게 되는 법이다.
이러한 까닭에 경에 「만약 모든 보살이 먼저 깨끗한 둥근깨달음을 깨닫고서 이를 실현에 옮기려는 마음이 간절하여(스위치를 잡음같음) 고요한 곳에 편히 앉아 몸과 마음을 오직 적적고요히 하여 지극히하면(스위치를 제침같다) 마음의 동요이요 소음인 번뇌망상이 영히 끊어져 소음과 동요가 없는 곳을성취하여소서 몸과 마음을 일으키지 않고도 」『 본래부터가 열반인 곳에로 문득 들어가질 것이니』하셨다 그리고 「이렇게 닦는 관이 이름이 사마타이라 」고도 하신 것이다. 사마타는 오직 고요하여 공처를 통과함에서 평등과 지혜가 저절로 따라오나니 삼관이 둘 아님을 맛본다. 또 만일 동중에서 사마타를 익히려하면 정중에서 얻어진 공이 몸과 마음의 있고 없음을 모를 때에 동과 정이 없음을 알아서 동하고 정하면 된다.
첫댓글 자세한 보충 설명, 감사 합니다, 마하 반야 바라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