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일법문 동안거 간경 결제' 시작
불교신문.선우논강.화림원 공동 주최
성철스님의 ‘백일법문을 통해 본 오늘의 한국불교’라는 주제로 열린 ‘2003~2004년 동안거 간경결제’ '제1강'이 11월 29일 오후6시 전북 남원 실상사에서 기조강연과 주제발표에 이은 논사들과의 질의응답, 일반 대중들과의 질의응답 등으로 3시간 30분에 걸쳐 성황리에 진행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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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설명: 실상사에서 열리고 있는 '백일법문 동안거 간경결제' 전경. |
조계종 전 총무원장 월주스님을 증명으로 불교신문과 선우논강, 화림원이 공동으로 주관한 이번 간경결제에서는 실상사 주지 도법스님을 비롯해, 해인사, 동화사, 운문사 승가대학 스님 등 사부대중 100여명이 동참했다.
간경결제 첫 날인 이날 제1강에서는 성철스님의 ‘백일법문을 통해 본 오늘의 한국불교’라는 주제로 성철스님의 저서 <백일법문>을 저본으로 원택스님(조계종 중앙종회의원, 해인사 백련암 감원)의 ‘성철스님의 생애와 사상’이라는 기조강연과 논주인 서재영(동국대 강사)씨가 ‘백일법문의 개요’를 발표했다.
이어 논사인 해월스님(동화사 강주), 오성스님(해인사 승가대학 강사), 세등스님(운문사 승가대학 강사)이 열띤 토론을 펼쳤으며 동참한 대중들의 질의응답도 진행됐다.
‘백일법문 간경결제’ 제1강은 오후 6시부터 시작해 3시간 30동안 열기 가득한 가운데 진행됐다.
입제식에서 선우논강 실행선우 대표인 철오스님은 인사말을 통해 “이렇게 사부대중을 이 자리에 보니 반갑다”며 “실상사에서 부처님 공부, 특히 근세 큰 업적을 남긴 큰 스님의 저서를 갖고 큰 마음 내어서 공부해 주길 바란다”고 말했다.
1월말까지 매주 토요일 오후6시 진행이번 백일법문 간경결제는 내년(2004년) 1월말까지 8회에 걸쳐 매주 토요일 오후 6시부터 9시까지 실상사 대중방에서 ‘백일법문에 나타난 중도사상’, ‘백일법문에 나나난 선사상’, 종합토론 등의 순으로 펼쳐진다. 남원=여태동 기자
기조강연/ 원택스님(조계종 중앙종회의원, 해인사 백련암 감원)
주제: 성철스님의 생애와 사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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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설명: 기조강연하는 원택스님. |
나눠 드린 책을 중심으로 간단히 말씀 올리겠다. 지금 결제중인데 실상사에서 1000일 기도 얼마 전 마치고 열심히 정진하시는 시간에 '간경결제'로 큰스님 <백일법문>을 공부한다 해서 제가 나섰다.
상좌가 해야 할 일을 실상사에서 해 주어서 한없이 고맙고, 한편으로는 할 일이 없어 부끄러운 생각이 든다. 실상사 도법스님, 사부대중들께 감사의 마음을 전한다.
스님의 생애는 책으로 떠나시고 난뒤 행장으로 많이 알려졌기 때문에 유인물로 대체하고 이 자리에 와서 1993년 해인사에서 가진 국제 학술회의를 가졌는데 이유는 어록 11권 선림고경총서 37권 마치는 출판기념회를 하는 자리였다. 그래서 돈오돈수 사상을 알리는 자리였는데 스님은 이런 일들 보시고 한달이 지나자마자 열반에 들었다.
올해 다시 서울에서 국제학술회의를 가졌으나 세계학계에서는 아직 우리가 이해하는 선의 수준이 일천해 보였다. 우리가 세계에 선의 내용을 더욱 알려야겠다. 큰스님은 각종 경전에 대해 통달하자고 말씀하시지 않았고 선을 통해 깨달음을 얻기 위해 말씀하신 내용이 <백일법문>이라고 본다.
맨 처음 이 책을 내겠다고 마음먹었으나 실력이 모자라 다른 책 출판하고 난뒤 1992년 책을 만들어 큰스님께 갖다 드렸다. 1967년 백일법문 하신 뒤 30여년이 지나 책을 냈는데 큰스님은 “이놈아 책 내면 안된다든데 니가 왜 냈냐”고 하셨다. 우려되는 내용이 많다고 다른 사형님들께도 들었다.
책을 내면서 1967년 법문 후에 책이 곧바로 나왔다면 큰스님의 가르침 내용을 많이 수정할 수 있어 명저가 됐을 텐데, 상좌들이 능력이 부족해 큰스님 생각을 못 담아 낸 것으로 보인다. 더 자세한 내용은 논주께서 더 잘 해 주시리라 믿는다. 상좌들이 보는 눈과 학자들이나 다른 스님들이 보는 눈이 또 다르다고 본다.
"스님은 '중도법문'을 평생 설하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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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설명: 고불식. |
스님은 중도법문을 평생 설하셨다. 근본불교에서 화엄 유식 삼론 등 전체를 설파하시면서 각각에 중도사상이 어떻게 스며들어 있는지를 끌어내는 이론을 펼쳤다고 본다.
학자들 논문을 보면 성철스님에 대해 어떤 학자들은 “스님은 <도서>한줄 밖에 읽지 않았다고 본다”는데 그렇게 생각하지 않는다. 각 교파에서 말하는 중도의 설파방법을 알리고, 심지어 선어록도 중도에 입각해 법문을 설했지 중도에 벗어난 내용 없다고 하셨다.
여기 백일법문에는 없지만 <신심명> <증도가>에서도 중도사상을 논하고 있다. 우리나라나 일본에서는 불교가 노장사상을 받아들여 중국에서 불교가 성했다고 하나 큰스님은 결코 노장사상과 습합되어 불교가 태어나지 않았다고 반박했다. 중도를 설하지 않는 어떤 것도 불교가 아니라고 큰스님은 말씀하셨다. 행장은 유인물로 대신하겠다.
또 '선사는 왜 그리 책을 많이 읽었느냐'며 비판하는 이야기를 들었다. 그래서 스님은 학승이지 선사가 아니라고 수좌들이 많이 이야기 했다. 스님 모실 때 선방 지대방에 가면 스님을 학자라고 했다.
역대 선사들 가운데 무식한 이 없었다. 교와 율을 뛰어넘어 대도를 이뤘으니 이해를 할 수 없었다. 스님은 선방에서도 상판 하판 구분없이 장군죽비 내리쳤다. 이런 관계속에 구참스님들은 서운한 생각들을 많이 했는데 다비식에서 연기로 사라지는 모습 보면서 당사자 스님들은 “부처님께 밥값 하라는 말씀을 이해 한다”고 하셨다.
스님은 '수좌 오계'를 강조했다. 간식하지 마라, 말하지 말라, 책 보지 말라, 참 많이 자지 말라, 돌아다니지 말라 등 다섯 가지를 강조했는데 법정스님이 큰스님께 “당신은 그러면서 왜 우리보고 책보지 마라”고 묻기도 했는데 제가 큰스님께 물어 보지 못해 아쉬웠다.
"교학이 아니라 '견성오도'의 가르침으로 가야한다고 설파 "나중에 서옹 큰스님에게 거기에 대한 답을 여쭈어 보니 “당시에는 선을 가르쳐 줄 스승이 없어 (성)철스님은 경전 보며 혼자 다 터득해 갔다. 그래서 나중에 도를 이루고 보니 화두 이념에 매진해야 하는 것이 수좌라는 것을 아셨을 것”이라고 하신 말씀을 들었다. 다섯 가지 금지는 수좌오계지 불자오계는 아니었다는 것이다.
수좌에게 오로지 화두일념으로 살으라고 강조하신 것이다. 백련암 시절에도 처음 들어오면 일본어도 가르치고, 여러 경전 가르치고 출가시켜 선방으로 보내셨다. 당신의 상좌에게도 참선하기 위해 기본적인 교리는 알게 하셨다.
아무튼 많은 사부대중이 오셔서 큰스님의 사상을 다시 일깨우는 간경결제가 이루어져 무한한 감사의 말씀을 드린다. 스님이 가르친 말씀의 메시지가 무언지 밝혀주고 토론해서 한국불교가 제대로 될 수 있도록 정진해 주시길 바란다.
백일법문은 교학을 설파하는 게 아니라 부처님의 가르침의 핵인 견성오도의 가르침으로 가야한다는 뜻을 설파하고 있음을 알아 주시길 바란다.
간경결제 제1강 논주/ 서재영(동국대 강사)
주제: 백일법문의 개요와 의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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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설명: 논주 서재영씨. |
<백일법문>을 접근하는 방식은 다양하다. 제가 여기서 느끼는 분위기는 도전적이고 비판적일 수도 있고, <백일법문>을 알자고 하는 접근도 있다. 제 입장은 <백일법문>이 뭔지 알기 위해 규명하는데 의의를 두고자 한다.
백일법문의 핵심은 중도(中道)로 요약된다. 백일법문을 관통하는 축이 바로 중도의 원리다. 이는 다양한 불교적 요소가 존재하는 소위 통 불교적 성격이 짙은 한국불교 상황에선 중요한 통합의 원리가 아닐 수 없다. 원효스님이 화쟁의 원리로써 삼국이 분열 갈등하던 시대의 아픔을 다스렸다면 성철스님은 중도를 통해 다양한 스펙트럼을 가진 한국불교를 질서 지우고 통합하고 있다.
출가자와 재가자, 교학과 참선, 간화선과 외래 수행문화, 자성자도(自性自度)와 타방정토(他方淨土)라는 각기 다른 가치관을 들고 서로를 배척하고 각자 자기 갈 길에 바쁜 지금 그 어느 때 보다 융합과 통합의 원리가 필요한 시기다. 백일법문은 바로 그 같은 원리는 중도라고 강조한다.
"한국불교와 사회가 안고 있는 문제 해소할 답이 논의되리라"서로의 차이를 부각해서 배제하는 것이 아니라 두 극단을 떠나고 양변을 초극했다는 어정쩡한 절충주의마저도 버려서 중도적 신앙전통으로 완성해 나갈 임무가 우리에게 있고, 백일법문은 바로 그 같은 문제에 답안을 제시하고 있다. 그런 점에서 이번 백일법문 논강은 성철스님의 가르침을 되새겨 봄으로써 한국불교와 분열된 사회를 통합할 수 있는 원리를 모색하는 시간이 되리라고 본다.
<백일법문>에서는 단 한번도 중도의 가르침이 종단의 현실이나 사회적 문제를 해소하기 위한 원리라고 표현하지 않는다.
마치 <금강경>이 공(空)이라는 글자를 사용하지 않고 대승의 공사상을 설하고 있는 것처럼 <백일법문>도 현실을 언급하지 않고 현실을 극복한 원리를 제시하고 있다.
<백일법문>을 다시 되새기는 이 자리 역시 본분사에 입각해서 중도를 논하지만 그 이면에는 오늘날 한국불교와 사회가 안고 있는 현재적 문제를 해소할 답이 함께 논의되리라 믿는다.
"섣불리 깨달음을 선언하고 수행을 포기하는 수행자들을 경책한 것" 특히 성철스님은 구경각(究竟覺)을 참다운 깨달음이라 규정하고 돈오돈수적인 입장을 견지했다. 다시 말해 구경각을 강조하고 돈오점수를 비판한 것은 보조스님을 비판하는 것이라기보다 실제로는 섣불리 깨달음을 선언하고 수행을 포기하는 수행자들을 경책하고 바른 수행풍토를 조성하고자 하는 해인총림 초대방장으로서의 면모을 엿볼 수 있는 대목이다.
그런 점에서 스님의 돈오돈수론이 보조스님에 대한 비판으로 이해되고 그것을 변론하는 차원에서 진행된 돈점논쟁은 성철스님이 의도한 논점에서 빗나가고 있다는 느낌을 지울 수 없다.
한국불교를 공부하는 대부분의 학자들은 평생을 공부해도 토끼가 자기의 굴만을 파고 있어 한국불교 미래에 답을 내리지 못하고 있는데 백일법문을 읽어보면 여기에 대한 해답을 얻을 수 있다.
전체토론
논사/ 해월스님(동화사 승가대학 강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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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설명: 동화사 강주 해월스님. |
저는 이 논제를 읽으며 정리하고 픈 것이 성철스님께서 중도법문으로 모든 것을 회통했는데 얼마만큼 접근돼 왔나. 중도론이 우리사회와 불교계에 실천원리로 접근돼 왔나를 알고 싶다.
또 스님 가르침이 출가중심의 불교로 줄기를 내리게 하지 않았나를 논주 선생님으로부터 알고 싶다. 세 번째는 스님이 사용하는 중도라는 개념이 혼돈성을 많이 가지고 있다. 이 혼돈성에 대해 논주의 입장을 듣고 싶다.
또 중도가 실천론이 되어야 함에도 추상적인 개념으로 정리돼 있지 않나 싶어 논주에게 물어보고 싶다. 마지막으로 성철스님의 가르침이 우리사회에 어떻게 적용되고 있는지 그리고 안 되고 있다면 그 이유는 무엇인지 알고 싶다.
논사/오성스님(해인사 승가대학 강사)
성철스님이 백일법문을 말씀했을 때는 왜색불교 정화가 끝날 무렵일 텐데 왜색불교 청산에 있어 한국불교의 정체성을 어떻게 회복할까가 문제였다고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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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설명: 오성스님 |
그런데 1964년 청담스님과 함께 작성한 쪽지가 있는데 여기에 나타난 모습은 세간의 일에 간섭하기 말자이다. 또 부처님과 조사스님을 잘 따르자고 한 것이지 일체의 공직과 집회에 참여하지 말자는 것으로 주장하고 있다. 이러한 것에 빗대보면 청담스님과 성철스님의 삶이 극명하게 대조를 이룬다.
구마고속도로가 개통됐을 때 대통령이 해인사를 방문했을 때도 만남이 이뤄지지 않았다. 스님의 행동은 본분사 입장에서 접근하고 있다. 그렇지만 스님의 사상적 접근은 중국불교에 근거하고 있다. <육조단경>에 근거해 돈오돈수를 이야기 하고, 보조스님을 비판한다.
현재 강원교재를 보면 17~18세기에 만들어지는데 보조스님의 사상이 녹아 있다. 한국불교에서 흘렀던 함허득통이나 서산스님, 근대의 경허스님 등 면면히 흐른 한국 선에 대한 점검이 성철스님의 백일법문에서는 없다. 한국의 선사상에서 정체성을 못 찾은 것이 아쉽다.
이런 사상에서는 간화선이 면면히 흐른다. 어떻게 이해하고 받아들일 것인가에 대한 체계성이 필요한데 최근에 삼관(三觀)이 이야기되고 있다. 그렇지만 백일법문 속에서는 분명하게 드러나고 있지 못해 아쉽다. 그런 것이 한국 수행풍토에 반영 안되어 있다고 본다.
스님의 선사상 주창과 함께 수행지침이 세워지지 않았다. 육조혜능스님은 무상계를 설하셨고, 보조스님은 결사와 함께 <계초심학인문>을 지으셨다. 하지만 당시는 정화가 끝나가는 무렵이었던 만큼 승가의 질서와 수행의 틀을 마련하기위한 승가의 청규가 어느 때보다 요구되었던 시점이라 생각된다.
논사/세등스님(운문사 승가대학 강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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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설명: 운문사 승가대학 강사 세등스님. |
현대 우리의 삶과 수행에서 본 백일법문을 다루어 보고자 한다. 마지막 부분에 백일법문의 현재적 메시지와 결부시켜 보면서 견해를 제시해 보겠다.
발표문의 중간부분 보면 발제자도 백일법문안에서 ‘백일법문의 현재적 메시지’에서 강조되고 있는 불교의 본분종지를 오늘에 되살려야 한다는 점을 강조하고 있다. 즉 불교는 깨달음의 종교로서 ‘자성자도’는 물론 인류를 구원할 종교로서 불교 본래의 모습을 되찾아야 한다고 이야기 하고 있다.
두 번째로 성철스님의 현실 참여 부분에 대해 지적하겠다. 현실적으로 평생 참선 수행으로만 삶을 살아갈 수 있다면 괜찮겠지만 그렇지 않는 많은 대중들이 많은데 그 방법은 없는가. 선과 교는 어떤 중도적 원리로 통합될 수 있으며 간화선 이외의 수행법(염불선 위빠사나)은 어떻게 수용될 수 있겠는가.
불교교단의 2부중 혹은 사부중(출가 2부중과 재가 2부중)은 차별적이고 계급적인 관계를 넘어 동등하고 수평적인 관계로 존재할 수 있는가. 이타행으로서의 대 사회적 활동(교육, 복지)이 수행의 한 방법으로서 수용될 수 있는가. 환경운동, 생명운동, NGO활동 등은 어떤 불교적 이념을 바탕으로 되어야 하는가.
깨달음의 개념이 확실하다면 가능하겠는데 성철스님은 화두선만 강조했는데 어떻게 받아들일 수 있는가. 백일법문 마지막에는 누구나 중도를 깨치면 평등하다고 이야기하는데 실제 현실에는 적용되지 않는데 여기에 대해 이야기 해 보았으면 한다.
사회(법인스님 : 불교신문 주필)
: 성철스님은 출가수행자 중심에 있었기 때문이 아닌가 싶은데 해월스님께도 답해 주었으면 한다.
서재영
: 지적 감사히 생각한다. 해월스님이 제기한 문제 가운데 출가자 중심의 수행으로 삼아 사회활동이 축소되지 않았나 했는데, 사회참여가 약하지 않았나 하는 이야기 일거라고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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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설명: '백일법문의 개요와 의의'를 발표한 제1강 논주 서재영 씨(동국대 강사, 사진 왼쪽)가 논사들의 질문에 답변하고 있다. |
이 부분은 저도 많은 고민을 했는데 성철스님 당시 대사회적인 사회참여는 방장이 아니라 종정으로 계실 때다. 그때는 반독재 민주화를 이야기하는 불교계를 이야기한다. 그때 불교계도 참여는 극소수였다. 승가대, 석림회, 대불련, 대불청 등의 일부세력이었다.
전반적으로 불교계가 사회참여가 미약한데 성철스님의 사회활동이 미약했다는 것은 진지하게 봐야 한다. 사실 현실참여라는 말을 할 때 이 세상에 존재는 자체로 참여인데 여기서 참여, 대승보살의 실천은 이데올로기적인 성향을 갖는다. 그랬을 때 출가자로 사회참여는 어떤 의미인가. 저도 80년대 동국대 다닐 시절 승려로 석림회원이었다. 출가자로 사회에 참여하고 있다고 보면 된다.
진짜 중생구제를 위해 출가자체에 큰 중심을 두었던 것이 아닌가 싶다. 고민해 본 결과 수행자의 삶과 믿음이 빈궁한 게 아닌가 싶다. 중생구제를 위한 본분사의 길을 높이 평가해야 한다. 거리에 나가 최루탄을 마셔야 사회참여가 아니라고 본다.
해월스님 제기하신 문제는 중도가 실천적 명제나 질문인데 다음 주제 발표자가 마성스님이 발표할 논제이니 넘어가겠다.
오성스님 질문 가운데 성철스님이 정화불사의 중심에 있다고 보았는데 제 논지는 성철스님이 정화했다는 것이 아니고 내적 정화를 이야기한 것이다. 한국불교정통성 회복에 대해서는 중국불교를 인용해 한국불교 정체성을 이야기하는 것은 인정한다.
이 논쟁은 학계에서도 논쟁이 되는데 중국불교에서 한국불교 왔다면 불교자체가 부처님에서 온 것이므로 또다른 이야기가 된다. 하지만 한국 선불교의 뿌리가 중국에 있기 때문에 당연한 것이라고 본다.
세등스님 질문 중 불교교단의 이부 중 출가 승가의 계급적 차별성에 대한 이야기인데 이 부분은 중도의 가르침이 해답을 제시하고 있다. 이 문제는 승가가 기득권과 관계가 있다고 본다. 이타행으로서대 사회적인 활동에 대한 물음에 대해서도 성철스님이 화두참선을 하라는 것은 그것만 하라는 게 아니고 수행으로서 화두참선이고 나머지 삶은 다른 활동을 하라는 게 아닌가 싶다.
세등스님
: 스님들의 본분사에 대한 이야기는 이론적이고, 사회참여 길이 열려있다는 것은 참선수행에 대한 부담감을 가지고 있다. 다른데 가 있으면 참선수행을 못한다는 회의감을 가진다는 것이다. 이타행이 자리행과 다르지 않다는 불교적 이념에 바탕이 되야 되는 것 아닌가. 늘 남아있는 것은 저만의 이야기가 아니다. 사회활동은 이타행으로 필요한데 이론을 확립해야 한다고 본다.
사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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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설명: 간경결제 사회자 법인스님. |
: 서재영 선생 답변 중 엇나간 데가 있다. 해월스님 성철스님께서 말씀하신 구경각과 화두참선을 어렵게 하지 않았나에 대한 질문이었고, 세등스님 질문은 화두선만 이야기한 것이다. 저도 같은 질문인데 성철스님은 유독 다른 수행법을 이야기 않고 오직 화두선만 이야기 했는데 이는 모순이 될 수 있다고 보니 여기에 대한 답을 해 달라.
서재영
: 구체적인 방법론에 대한 지침이 없다는 것은 인정한다. 제3의 수행법은 어떻게 이해해야 할까. 성철스님께서는 요즘같이 틱낫한이나 달라이라마 같은 수행자가 인증되는 시점에서는 다르게 생각했을 수도 있다. 하지만 성철스님은 당시에 중국에서부터 넘어온 참선수행법을 최상의 방법으로 삼았던 것으로 본다. 역사적인 상황과 지역적인 부분 감안해야 한다.
사회
: 논사들 재반론 해 달라
해월스님
: 성철스님은 수행자로서 최선의 사회참여를 했다고 본다. 이렇게 풍요로운 사상을 가지고 계셨으면서 선종불교의 배경이 아닌 대승불교 사상적 배경을 깔았다면 더욱 풍요로웠지 않았나 하는 생각이다. 한국불교가 앞으로 나가는데 있어서도 보살사상을 중심으로 가야 한다고 보는데 그러면 선종과 초기불교도 끌어안을 수 있었을 것으로 본다.
서재영
"성철스님은 살아가는 그 길 자체로서 시대를 뛰어 넘는 것이다"
: 스님이 제기한 부분 들으며 제 이야기가 떠올랐다. 한 인물이 살다가는 방식은 다양하다. 시대에 충실하기도 하고 시대를 뛰어 넘을 수도 있다. 당시 성철스님이 학생 잡아가지 말고 군부독재 물러가라고 했을 수도 있었을 것이다. 그러면 성철스님은 그 시대에는 추앙받았을 것이지만 그 시대에 묻혔을 것이다. 그러지만 스님은 당신이 살아가는 그 길로서 사회참여의 모습을 보여 시대를 뛰어 넘는 인물로 부각되고 있다고 본다.
사회
: 대중들에게 질문을 받겠다.
영원스님
: 백일법문이 설해진 때는 스님들을 대상으로 했고 수행자들에게 자성을 되돌아보게 하고자 설한 것이라 본다. 중생 보살핌에 있어 대승적인 보살사상을 더 깔았으면 한다. 시대적 무덤에 빠지지 않냐고 했는데 만해 한용운스님 행적이 지금도 불교계 자존심을 세운 것이고 달라이라마 행동도 시대의 무덤으로 빠지는 일인가.
서재영
: 조주스님으로 알고 있는데 중요한 관직에 잇는 사람이 왔을 때는 안 나왔는데 다음 하급자가 왔을 때는 만났다. 해월스님께서 지적해 준 부분. 박 대통령이 왔을 때 만나주었으면 해인사 불사 도움 됐을 것이다. 그렇지만 성철스님의 원칙이 자신의 본분사를 말해 준다.
한 인물이 모든 일을 다 할 수 없다. 성철스님으로부터 많은 것을 요구하는 것은 무리다.
사회
: 간과해서는 안될 것은 현실에 참여하는 것만을 대승불교로 아는데 이런 혼돈을 해서는 안된다고 본다.
도법스님
"부처님은 전쟁을 막기 위해 세간에 직접 나왔는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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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설명: 실상사 주지 도법스님. |
: 수고들 많이 했다. 이야기가 더 진행되면 좋았을 텐데. 발제에 대한 논평이 없어 아쉽다. 앞으로 극복해야겠다.
발제자에게 제기하고 싶은 것은 우리 승속 모두에게 하고픈 것인데, 성철스님의 불교관을 보면서 근본적으로 문제가 있는가에 대한 접근이 있어야 하지 않나 싶다. 성철스님을 보면서 출세간 이야기를 하는데, 부처님은 전쟁을 막기 위해 세간에 나와 직접 막았는데 이것이 출세간의 일인가. 세간의 일인가.
또 한국불교 백일법문 직접 듣고 노장님 모시고 5년여를 살았다. 스님은 철저히 법맥중심으로 한국불교를 보았다. 그런데 발제자는 회통불교적인 입장에서 보고 있다. 답변해 달라.
서재영
: 성철스님 사유 속에서 놀 수 있지 않나 하시는데 성철스님을 먼저 알자는 의도에서 비판보다 드러내는데 초점을 맞췄다. 또 비판적으로 보지 않은 이유는 성철스님의 백일법문을 들어 한국불교를 비판하고자 했다. 스님의 법문을 빌어 기복 불교 못 벗어나고 타방불교를 비판하고 싶었다.
부처님께서는 코살라국 침입을 끝까지 지키지 못했다. 부처님은 이 부분에서는 실패했다고 본다. 그런 차원에서 비교의 입장에서 보면 새로운 입장이 나올 수 있다. 법맥중심이야기에 대해서는 논사스님에 대한 답이기도 한데 왜 한국불교 중심으로 법맥을 세웠겠나. 법맥중심과 백일법문 내용이 모순된 점은 더 열심히 공부해 보겠다.
각묵스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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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설명: 각묵스님. |
: 성철스님은 출가를 본분사라 했는데 초기불교 입장에서는 세속에 대해 아무것도 아니다라는 넌더리를 쳐야 한다. 이것이 상차고 그래야 상조가 있다. 욕망의 분출로서 세상에 대한 보살행을 이야기할 수 있다. 적어도 보살행을 하려면 도법스님을 닮아야 한다. 성철스님의 출가는 그런 의미로 받아들여야 한다.
사회자
다음주 제2강은 ‘백일법문에 나타난 중도사상’
: 다음주 토요일 오후 6시에는 제2강 ‘백일법문에 나타난 중도사상’ (논주 마성스님)이다. 자료는 실상사홈페이지와 선우논강 카페에 있으니 참조 바란다.
[불교신문 1988호/ 12월9일자]
첫댓글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