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제정치학은 전쟁의 원인을 설명할 때 '안보 딜레마(Security Dilemma)'라는 용어를 즐겨 사용한다. 상대의 방어적 조치를 공격적 의도로 오해하여 군비 경쟁이 일어난다는 이 이론은, 얼핏 보면 가해자 없는 비극처럼 들린다. 그러나 현실 세계에서 안보 딜레마는 결코 대칭적이지 않다. 그것은 압도적 힘을 가진 강대국과 그 뒤에 숨은 거대 자본이 약소국의 자원을 탈취하고 무기 시장을 확장하기 위해 설계한 정교한 서사에 불과하다.
안보 딜레마가 성립하려면 양측의 힘이 비슷해야 한다. 하지만 러우전이나 미-이란 갈등에서 보이듯, 실제 힘의 저울은 한쪽으로 심하게 기울어져 있다. 강대국은 약소국의 생존 본능을 '도발'로 규정하고, 이를 빌미로 군사적 압박을 가한다. 이때 발생하는 긴장은 공포의 악순환이 아니라, 강대국이 자국의 군사 산업 복합체에 일감을 몰아주고 전략적 요충지를 점령하기 위한 '의도된 위기'다.
안보 딜레마로 인해 전쟁이 터졌을 때, 진정으로 배를 불리는 쪽은 누구인가? 전장은 약소국의 국토이지만, 수익은 강대국의 방산 기업과 에너지 자본가들에게 돌아간다. 전쟁은 약소국을 폐허로 만들지만, 강대국에게는 신무기 테스트장, 에너지 시장 재편의 기회, 그리고 전후 재건 사업이라는 천문학적인 이권을 제공한다. 결국 안보 딜레마라는 말은 "부강한 나라가 더 부강해지기 위해 저지르는 약탈"을 학술적으로 세탁한 용어일 뿐이다.
강대국의 정치인과 군인들은 이 안보 딜레마를 해소하려 하기보다 '적절히 유지'하려 애쓴다. 위협이 사라지면 무기 판매가 줄고, 군의 예산이 삭감되며, 자본가들의 후원이 끊기기 때문이다. 이들은 미디어를 통해 끊임없이 적대감을 생산하고 안보 위기를 강조하며 대중의 눈을 가린다. 대중이 안보 딜레마라는 학술적 용어에 현혹되어 있을 때, 그들의 주머니에서는 세금이 빠져나가 전쟁 자본가들의 금고로 흘러 들어간다.
안보 딜레마라는 허구의 틀에 갇혀 있는 한 우리는 결코 평화에 도달할 수 없다. 평화는 상호 간의 공포를 조절하는 것이 아니라, 강대국과 자본이 전쟁을 통해 얻는 이득을 법적으로 원천 차단하는 것에서 시작된다.
전쟁으로 이익을 보는 자가 단 한 명이라도 존재하는 한 안보 딜레마는 계속해서 '제조'될 것이다. 따라서 우리는 "누가 무서운가"라고 묻는 대신, "이 긴장으로 누가 돈을 벌고 있는가"라고 물어야 한다. 안보 딜레마라는 세련된 연막을 걷어내고 그 뒤에 숨은 '부강한 나라의 물질적 탐욕'을 직시할 때, 비로소 전쟁의 사슬을 끊어낼 단초가 보일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