종로구 삼청동 국제갤러리는 3개의 전시관 K1, K2, K3(각각 개별 건물)으로 이루어져 있다. 금번엔 2020년 12월 17일부터 2021년 1월 31일까지 전시한 K1관의 장-미셸 오토니엘, 그리고 K2, K2관에서 제니 홀저 전시를 관람했다. 이들은 꾸준히 작품활동을 전개하며 현대의 쟁점을 파고드는 아티스트이다.
K1 정문이다. 프랑스 출신 장-미셸 오토니엘(1964~)의 'New Works' 관람을 시작한다. 따끈따끈한 2020년작 그의 신상(new works)들이다. 그는 2020년 코로나19 봉쇄에 따른 칩거로 'New Works' 작업에 집중하게 되었다고 한다. 본의 아니게 어쩔 수 없이 외부력에 의한 '가둠'으로 탄생된 '신상' 혹은 '신작'이다.
역사적으로 볼 때, 마키아벨리가 피렌체에서 쫓겨나지 않았던들 <군주론> 탄생은 미지수이고, 단테가 유배되지 않았던들 <신곡>이 세상에 나왔겠는가. 정약용은 유배 생활동안 <목민심서>를 비롯한 많은 저술 활동을 펼쳤다. 왜? 시간이 많아서이다. 시간 때우기를 언급하는 것이 아니라, 생각할 시간적 여유를 가져야 더욱 생산적이라는 것을 말하고 싶었다. 바쁘기만 하면 그냥 허둥지둥 시간만 흐른다.
특히 오토니엘은 <루브르의 장미 Rose du Louvre>로 유명한 작가이다. 그 장미들은 본 감상기 후반부에서 다루기로 하고, 우선 코로나19 봉쇄 기간에 작업한 유리벽돌 작품인 'New Works'를 감상해 보자.
'유리로 만든 벽돌'이라고 하면 뭔가 상충하는 느낌이다. '벽돌'은 '단단하게' 우리의 주변을 둘러싸서 보호해 주는 울타리 역할인데, '유리'는 상대적으로 '깨지는' 위태로움을 암시하기 때문이다.
<Precious Stonewall>(2020) blue and emerald green mirrored glass, wood
전시관을 둘러보면 '벽돌이 벽에 붙어 있다'는 사실 자체가 위태롭기도 하지만, '사각형의 견고한 조합으로 안정감'을 부여하기도 한다.
<Precious Stonewall>(2020)
색상의 조합은 심미적 세련됨을 더하는 동시에 '안정감'과 '불안감'이 공존하는 현대 사회의 일면을 보여주는 듯하다.
<Precious Stonewall>(2020) blue and grey mirrored glass, wood
<Precious Stonewall>(2020) blue and emerald green mirrored glass, wood
위의 사진들처럼 다른 색상들의 조합이 낳은지, 아래처럼 파란색 혹은 노란색 유리 벽돌과 같은 동일 계열의 색상 조합이 낳은지는 보는 사람의 관점에 따라 다르다. 나의 경우엔 다른 색상들의 조합이 좋다.
<Precious Stonewall>(2020)
위에서 보여진 작품들이 실제로 아래와 같이 전시되어 있다. 벽에 붙어 있다. 작품 타이틀인 'stonewall'은 '돌담'이라는 뜻이지만, 정치에서는
'의사 진행을 방해하다' 라는 동사로도 쓰인다. 아티스트의 작품이 그의 손을 떠나 전시관에 걸리면 작품 해석은 관객의 몫이다^^
<Stairs to Paradise>(2020) clear blue, dark blue and grey mirrored glass, wood
방 한가운데 '천국으로 가는 계단'이 놓여 있다. 글쎄 저 위에 올라간다고 천국이 있을까 하다만.. 오히려 맨 꼭대기에 올라가면 더 갈데도 없고 인간 최대의 적인 '권태'만이 남는 것이 아닐까 한다. 천국은 계단 아래에도 맨 밑바닥에도 있을 수 있다. 꼭 올라야 하는 것은 아니다^^
<Stairs to Paradise>(2020) clear blue, dark blue and grey mirrored glass, wood
한 쪽에는 유리벽돌의 스케치와 색상 밑그림이 작업 액자들이 걸려 있었다. 일할 때도, 공부할 때도, 운동할 때도, 놀 때도 밸런스가 중요하다. 아래 스케치를 보고 나는 밸런스를 생각했다.
2번째 주제이다. 오토니엘은 <루브르의 장미>로 유명해졌다. 아래 사진의 벽에 걸려 있는 작품은 금박을 입힌 캔버스에 장미를 그린 것이다. 그 앞의 설치 작품 타이틀도 <루브르의 장미>이다.
<Rose of Louvre>(2020) Stainless steel, mirrored glass
그의 작품 <루브르의 장미>는 루벤스의 회화작품 <마리 드 메디치와 앙리 4세의 결혼>에서 영감을 받았다고 한다. 그림 아래쪽 계단 가운데 나뉭구는 '장미꽃'을 보고 말이다. 이렇게 현대예술 작품을 보다가, 바로크 루벤스 그림도 봐야 하고, 메디치와 앙리4세 역사도 들춰봐야 한다는^^ 루벤스 회화에서의 '장미'와 오토니엘의 '루브르의 장미'의 연계성은 관람자의 몫이다.
(c)wikimedia
<Rose of Louvre>(2020) Stainless steel, black-powder coating
아래 3점의 <루브르의 장미 Rose du Louvre>는 루브르에 전시된 작품들이다. 2019년 루브르박물관은 피라미드 건축 30주년을 기념하여 장-미셸 오토니엘 전시를 주관하고 그 작품을 영구 소장하여 유명세를 탔다.
<루브르의 장미 Rose du Louvre> painting on canvas, black ink on white gold leaf
(c) presse.louvre.fr
(c) presse.louvre.fr
위의 루브르박물관 조각상 가운데 박혀 있는 <루브르의 장미> 작품과 아래 국제갤러리 전시의 캔버스 회화 왼쪽 작품과 동일하다.
K1 오토니엘 관람을 마치고, K2로 향했다. 왼쪽 철망이 있는 건물은 K3이고, 오른쪽으로 가야 K2이다.
K2 건물 정면이다. 제니 홀저(1950~)는 개념미술가이다. 1990년 베네치아 비안날레에서 미국관을 대표하고 그 해 황금사자상을 받은 여류작가이다. 개념미술가는 생각이 우선이다. 언어가 우선이다. 아이디어가 우선이다. 겉으로 보이는 정교한 테크닉으로 작품을 구현하지 않는다.
전시관 내부에서 밖의 정원을 촬영한 것이다. 밖의 인형이 홀저이 작품이 아니다^^ 내부의 글씨들이 적혀 있는 캔버스가 그녀의 작품이다
제니 홀저 왈, "나는 언어가 시연되는 방식을 구상하기 좋아한다. 언어를 공간적으로 만드는 것을 좋아한다. 언어를 다양한 방식으로 접근해 다양한 결과를 도출하길 좋아한다." 아래 작품을 감상하라고 있는 의자는 작품이다. 그래서 앉지 말라는 표식까지 있다.
위의 대리석 의자에 쓰여 있는 문구는 "Protect me from what I want." 내가 원하는 것으로부터 나를 보호하라고? 뭔가 경종을 울리는 글로 보인다^^
또 다른 의자에는 "Solitude is enriching" 고독은 삶을 풍요롭게 한다고? 좋은 말이다^^
전시관은 벽면에 서로 다른 글귀들과 그 글귀들을 다양하게 구성해 놓은 캔버스들이 걸려 있고, 글자들을 새겨넣은 대리석 의자들이 주변에 빙 둘러 있다. 물론 앉으면 안 된다.
K2 전시관은 그녀가 지속적으로 제작하는, 일명 검열 회화(Redaction Painting)의 일부이다. 정부 문서들도 포함된다. 아래 사진 정면의 36점 수채화 연작이다. 2016년 미국 대선 당시 러시아 정부가트럼프 후보를 도왔다는 의혹에 대한 FBI 수사 결과를 담은 <힐러리 클린턴에 대한추문>, <궁극의 죄악> 등등의 뮬러 보고서를 바탕으로 제작한 시리즈 작품이다. 글자가 담긴 보고서는 예술가의 손을 거쳐 추상화가 되었다.
아래 '금박' 판넬에서의 언어는 '정자체'로, 그 아래 '은판' 사진을 보면 '필기체'로도 만든다. 언어의 내용을 살펴보는 재미도 있겠지만, 사실상 글자로 만든 심미적 디자인 자체에 눈길이 간다.
K3관으로 들어간다. 이곳도 제니 홀저의 작품들로 구성되어 있는데, 그 형식이 사뭇 다르다.
그녀가 선택한 언어가 LED를 통해서 구현되었다. "대다수의 사람은 자신을 다스리지 못한다." 글귀들이 계속 흘러가는데 마음에 드는 문구를 촬영했다.
<Truisms 경구들>(2020)
이곳에서는 그냥 앉아서 글귀들을 읽으면 된다. 이런 것이 작품인가 할 수도 있다. 그런데 처음하면 작품이다. 그런데 다른 사람이 똑같이 따라하면 그건 아트가 아니다. 뒤샹의 변기가 작품인 것처럼 말이다. 뒤샹이 개념 미술의 선구자격이다.
이런 말도 흐른다. "멍청한 자들은 번식하지 말아야 한다." 작가의 말이 모두 맞는 것은 아니다. 취사선택하여 받아들이면 된다. .나는 이 문구에 반대나 찬성하지 않고, 문구 자체에 챌린지하고 싶다. 나의 질문은 '멍청한 자들'의 기준이 무엇인가? 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