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 힘을 얻으려면
이사야 40:27~31
요절:“오직 여호와를 앙망하는 자는 새 힘을 얻으리니 독수리가 날개치고 올라감 같을 것이요 달음박질하여도 곤비하지 아니하겠고 걸어가도 피곤하지 아니하리로다”(이사야 40:31)
오늘 본문 말씀에서 보면 하나님 백성들이 참혹하고 긴 고난을 맞이하여 힘을 잃어버린 상태에 있음을 보여줍니다. 그들은 깊은 낙심의 늪에 빠져서 회복할 의지도 없었습니다. 하나님은 그런 그들에게 새 힘을 갖도록 용기를 주시고자 이사야 선지자를 통하여 오늘 말씀을 베푸셨습니다.
우리가 삶을 살아가면서 경험한 것은 우리에게 새 힘이 필요할 때가 있다는 것입니다. 산이라도 뽑을 것 같은 충천한 기력을 자랑하다가도 어느 순간 무슨 계기로 기운이 쑥 빠져버릴 때가 있습니다. 손가락 하나도 움직이기 힘든 무기력한 순간이 찾아올 때가 있습니다. 그래서 새로운 힘이 필요함을 절실히 느낄 때가 있습니다. 젊은 사람도 그러하고 어린아이조차도 힘이 떨어질 때가 있습니다. 이는 오늘 본문 말씀 이사야 40:30 말씀에서 이른 바
“소년이라도 피곤하며 곤비하며 장정이라도 넘어지며 쓰러지되”
라는 말씀과 같습니다. 이것은 하나님 백성이라도 마찬가지요 어느 민족이나 국가나 교회나 가정이나 개인도 마찬가지입니다. 모두가 무한정 힘을 가진 자로 사는 것이 아니요 도중에 힘이 쇠진할 때가 있는 것입니다. 그러기에 모든 사람은 다 새 힘이 필요합니다.
용기와 담력이 출중한 선지자 엘리야도 힘이 완전히 떨어져서 사막에 외롭게 서 있는 로뎀 나무 그늘 아래 누워서 하나님께서 자기 생명을 거두어 달라고 투정하였습니다. 다윗도 집요하고 무섭고 장기간의 사울 왕의 추격과 그를 대적하는 원수들의 압박 때문에 너무나 지쳐서 지쳐 쓰러질 때가 많았습니다.
시편 22:15 말씀에 그는 이렇게 탄식합니다.
“내 힘이 말라 질그릇 조각 같고 내 혀가 입천장에 부었나이다 주께서 또 나를 죽음의 진토 속에 두셨나이다”
그렇습니다. 그 누구라도 새 힘을 받아야 합니다. 우리도 새 힘이 필요합니다. 영적인 새 힘, 정신적인 새 힘, 육체적인 새 힘이 필요합니다.
그러면 새 힘을 누가 주는가요? 오늘 본문 말씀에서 하나님께서 새 힘을 주신다고 말씀해주고 있습니다. 이는 하나님께서만이 지치지 않는 영원한 힘의 근원이기 때문입니다. 이사야 40장 28절,29절에서 이르기를
“너는 알지 못하였느냐 듣지 못하였느냐 영원하신 하나님 여호와, 땅끝까지 창조하신 이는 피곤하지 않으시며 곤비하지 않으시며 명철이 한이 없으시며 피곤한 자에게 능력을 주시며 무능한 자에게 힘을 더하시나니”
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그렇습니다. 하나님만이 진정한 힘의 근원입니다. 하나님은 지치는 법이 없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은 힘이 모자란 적이 없습니다. 하나님은 끝없이 힘을 베풀어도 그 힘이 떨어지지 않습니다. 우리는 힘을 쓰다 보면 결국 힘이 바닥이 납니다. 호랑이와 사자들도 그 무서운 힘을 쓰다 보면 결국 힘이 다 떨어져서 더 이상 뛰지 못합니다. 그래서 서로 싸우다가도 그 싸우던 자리에서 자리에 벌렁 누워서 한참을 쉬다가 다시 싸우곤 합니다. 그래서 모든 살아 있는 피조물들은 힘이 떨어질 때가 있습니다.
예를 들면, 오늘날 미국은 국방 예산만 천 조 원를 넘는 엄청난 강대국이지만, 요즘은 힘이 달리는 형세입니다. 저 우크라이나와 러시아 전쟁에 관여하고 중동의 팔레스타인과 이스라엘의 전쟁에 관여하며 후티반군의 미사일 공격도 막아내야 하고 이란의 저항도 막아내야 하고 중국의 대만 침공도 막아내야 하고 북한의 핵개발도 막아야 하는 등 많은 비용들이 요구되고 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미국의 대통령 바이든은 우크라이나 대통령에게 확전을 피하도록 권고하고 이스라엘 네타야후 대통령에게도 확전을 피하도록 경고하기도 합니다. 아무리 강력한 군사대국 미국일지라도 동시에 전 세계에서 서너 개의 전쟁을 수행하기가 버겁기 때문입니다.
모든 세상의 힘은 한계가 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모든 힘의 근원입니다. 그러므로 그는 세상의 모든 존재에게 힘을 줘도 줘도 절대로 힘이 떨어지는 법이 없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가 힘이 떨어져서 새 힘이 필요할 때에 다른 데로 가면 힘을 얻지 못하지만 하나님께 나아가면 새 힘이 주어집니다. 31절에서 이르기를
“오직 여호와를 앙망하는 자는 새 힘을 얻으리니 독수리가 날개치고 올라감 같을 것이요 달음박질하여도 곤비하지 아니하겠고 걸어가도 피곤하지 아니하리로다”
라고 하였습니다. 그러므로 새 힘을 얻으려면 하나님을 바라봅시다.
하나님을 바라보는 것은 하나님을 예배하는 것입니다. 우리 마음의 시선을 하나님께 향하고 그를 경배하는 것입니다. 그리할 때 하나님 자신이 힘의 근원이기 때문에 어느 틈엔가 힘이 우리 안에 스며들어오고 지친 마음이 치유되고 상처가 아물게 되는 것입니다.
하나님을 앙망하고 바라보는 행위로는 예배를 드리는 것이요 하나님 말씀을 묵상하는 행위입니다. 하나님 말씀을 읽고 묵상하는 것은 곧 하나님을 바라보는 것입니다. 하나님을 찬양하는 것도 하나님을 앙망하는 것입니다. 때로 하나님 자신을 마음의 시선으로 응시하는 것도 하나님을 앙망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많은 말을 하지 않아도, 우리 속 사정을 일일이 다 말하지 않아도, 그냥 하나님을 향하여 우리 마음을 돌이키고 하나님의 거룩한 이름을 경외하는 마음과 사랑하는 마음으로 부르기만 하여도 하나님을 앙망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을 앙망하십시오. 그리할 때에 반드시 힘의 근원이신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새 힘을 부어주실 것입니다. 그리할 때에 우리는 어느틈엔가 다시 지친 마음이 치유받고 회복되고 용기를 얻게 될 것입니다. 우리의 지친 몸도 회복되고 치유받고 낫게 될 것입니다.
또 한 가지 새 힘을 얻는 중요한 자세를 생각하자면 그것은 바로 부정적인 말을 금하고 마음을 조용히 가져야 한다는 것입니다. 이사야 30장 15절 이하의 말씀에 이르기를
“너희가 돌이켜 조용히 있어야 구원을 얻을 것이요 잠잠하고 신뢰하여야 힘을 얻을 것이거늘 너희가 원하지 아니하고 이르기를 아니라 우리가 말 타고 도망하리라 하였으므로 너희가 도망할 것이요 또 이르기를 우리가 빠른 짐승을 타리라 하였으므로 너희를 쫓는 자들이 빠르리니 한 사람이 꾸짖은즉 천 사람이 도망하겠고 다섯이 꾸짖은즉 너희가 다 도망하고 너희 남은 자는 겨우 산 꼭대기의 깃대 같겠고 산마루 위의 기치 같으리라 하셨느니라”(이사야 30:15~17)
고 하였습니다. 여기서 보면 나라의 위기를 만난 유다 백성들이 하나님을 바라보고 조용히 기다리면서 입을 다물고 하나님이 도와주실 것을 믿고 기다려야 하는데, 도리어 마음이 마치 폭풍이 휘몰아칠 때에 산의 나무들이 흔들리듯이 마음이 요동치면서 온갖 부정적인 말을 쏟아내는 것입니다.
예를 들어 우리나라에 남북간 긴장 상황이 높아지니까, 어떤 사람들은 금방이라도 나라가 망할 것 같이 불안해 합니다. 그러면서 말하기를, “나라가 정말 망할 것 같다. 꼼짝없이 다 죽을 것 같다. 그러니 어서 외국 여권들을 준비해야 하겠다, 어서 전쟁 터지기 전에 일본으로, 미국으로, 태국으로 이민가야 하겠다.”라고 소란스럽게 말하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그런데 이렇게 부정적이고 두려움에 사로잡혀 함부로 발설하는 사람에게는 그가 말한 대로 망하고 만다는 것입니다. 그 말한 대로 하나님께서 망하는 일이 일어나도록 한다는 것입니다.
그러나 잠잠하게 마음을 지키고 하나님을 조용히 의지하고 그 도우심을 믿고 기다리는 사람은 마음의 불안감을 잠잠하도록 잠재워 주시고, 점점 힘을 얻게 되고 구원을 얻게 된다고 하나님은 약속하십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위기 때에 새 힘을 얻는 것은 놀라워서 벌벌 떨지 말고 부정적인 말들을 심지 않는 것입니다. 하나님 앞에서 잠잠하고 고요한 중에 하나님을 여전히 신뢰하는 것입니다. 그리할 때에 반드시 우리 심령 속에 하나님께서 주시는 새 힘이 부어질 것이요 입술의 긍정적인 믿음의 고백대로 하나님께서 도와주실 것입니다.
인간은 누구나 다 새 힘이 필요합니다. 영원한 힘은 우리 자신 안에 없습니다. 오직 영원한 힘의 근원은 하나님 한 분뿐입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을 늘 앙망합시다. 그리할 때에 독수리가 날개치며 올라감 같은 새 힘을 얻게 될 것입니다. 그리하여 달음박질하여도 곤비치 아니하고 걸어가도 피곤하지 않는 힘찬 삶을 한평생 살아가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