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인 학살」 관동대지진...1905년 경고 무시해서 피해 확대 (1) / 9/22(금) / 중앙일보 일본어판 100년 전인 1923년 9월 1일에 발생한 관동대지진. 매그니튜드(M)7.9의 이 강진으로 당시 도쿄 일대에서 10만명이 넘는 인명피해가 발생했고 이 중 90%는 화재로 목숨을 잃었다. 지진 피해는 조선인 학살로도 이어졌지만 당시 심각한 화재 피해는 강풍 때문이었다는 연구 결과가 제시됐다. 특히 1905년 지진과 화재 피해에 대해 경고가 있었음에도 이를 무시하는 바람에 피해가 확대됐다는 것이다. 최근 미국지진학회는 관동대지진 100주년을 맞아 특집호 회보를 발간했다. 2011년 동일본 대지진과 관동대지진을 비교한 논문, 관동대지진 때 화재 피해를 자세히 다룬 논문 등이 포함됐다. ◇ 2011년 동일본 대지진보다 흔들림이 더 심했다관동대지진은 1만 5000여명이 숨지고 2000여명이 실종됐던 2011년 동일본 대지진보다 훨씬 큰 피해가 났다. 도쿄대와 교토대 연구팀은 관동대지진 당시 지진을 시뮬레이션했는데, 지진 규모 자체는 동일본대지진이 9.0으로 훨씬 컸지만 도쿄지역에만 국한하면 관동대지진 때 도쿄가 훨씬 심하게 흔들렸다고 지적했다. 사가미 만에 위치한 진원이 도쿄에 가까웠기 때문이다. 특히 세 지점을 골라 비교하면, 관동대지진이 10등급으로 구분하는 일본 기상청 지진강도 규모 기준으로는 0.8~1가량 더 컸고 지진응답 스펙트럼에서는 최대 5배까지 컸다. 응답 스펙트럼은 지진이 발생했을 때 구조물이 어느 정도로 반응하는지 나타내는 수치로 구조물에 대한 지진의 잠재적 영향을 평가할 때 필수적인 정보다. 도쿄 지역의 경우 과거 바다와 습지를 매립한 지역을 중심으로 액상화 현상까지 나타나 2011년보다 1923년 지진 피해가 더 커질 수밖에 없었다. 액상화는 물을 머금은 모래처럼 토양 속 입자가 지진의 충격으로 갑자기 액체처럼 걸쭉해지고, 이에 따라 지반이 가라앉아 건물이 경사 혹은 붕괴되는 현상이다. ◇ 지진과 강풍, 물 부족이 화재 키웠다 캘리포니아대학 버클리교와 교토대 연구팀은 지진 이후 화재 확산에 대한 논문을 발표했다. 연구팀은 "관동지진이 발생한 시간이 오전 11시 58분으로 점심 준비를 위해 숯불·화로 등 불을 가장 많이 사용하는 시간으로 이 불이 목조건물이 삐걱거리는 도쿄 시내 일원 화재로 이어졌다"고 지적했다.최초의 1시간 동안 도내에서는 약 100건의 화재가 발생했다. 도쿄 소방국의 펌프 자동차는 31대밖에 없었다. 지진 발생 당시부터 다음날 오전 3시까지 초속 약 10m 안팎의 강한 바람이 계속 불었고 가연성 목조주택이 밀집한 탓에 화재의 72%는 초기에 진화하지 못하고 인근 건물로 번졌다.더불어 진동과 액상화로 상수도관이 파열돼 수돗물 공급이 끊겨 소화를 위한 물도 부족했다. 불이 번지자 사람들은 공원 등 공간이 트인 곳으로 대피했지만 공원 면적이 도시 면적의 2.2%밖에 되지 않을 정도로 장소가 부족했다. 면적 0.66km의 도쿄 우에노 공원에서만 약 50만 명이 대피했다. 야스쿠니 신사의 경내에도 5만 명이 대피해 왔다. 이런 상황에서 이들 대피소까지 불이 번지는 바람에 한 곳에서 4만여 명이 한꺼번에 희생된 사례도 있다. 전체적으로 22만 채(주거용 18만 4000채 포함)의 건물이 화재로 소실됐으며 도쿄 면적의 약 43%에 해당하는 지역이 화재를 당했다. 재산피해는 총 15억엔으로 추산됐지만 1923년 당시 일본 국내총생산(GDP) 약 45억엔의 3분의 1을 차지했다.
https://news.yahoo.co.jp/articles/b5a60eaaecc2b597d2e286c7360ffb63d3a326df
「朝鮮人虐殺」起こった関東大震災…1905年の警告無視して被害が拡大(1)(中央日報
100年前の1923年9月1日に発生した関東大震災。マグニチュード(M)7.9のこの強震で当時東京一帯で10万人を超える人命被害が発生し、このうち9割は火災によって命を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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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朝鮮人虐殺」起こった関東大震災…1905年の警告無視して被害が拡大(1) 9/22(金) 14:27配信 6 コメント6件 中央日報日本語版 関東大震災火災当時、被害を受けた消防車。現在の消防車に比べてポンプ能力も小さくホースも短い。[資料:Bulletin of the Seismological Society of America] 100年前の1923年9月1日に発生した関東大震災。マグニチュード(M)7.9のこの強震で当時東京一帯で10万人を超える人命被害が発生し、このうち9割は火災によって命を落とした。 地震被害は朝鮮人虐殺にも続いたが、当時の深刻な火災被害は強風のためだったという研究結果が提示された。特に、1905年に地震と火災被害に対して警告があったにもかかわらずこれを無視したせいで被害が拡大したということだ。 最近、米国地震学会は関東大震災100年を迎えて特集号の会報を発刊した。2011年東日本大震災と関東大震災を比較した論文、関東大震災時の火災被害を詳しく扱った論文などが含まれた。 ◇2011年東日本大震災よりも揺れがひどかった 関東大震災は1万5000人余りが死亡して2000人余りが行方不明になった2011年東日本大震災よりもはるかに大きな被害が出た。 東京大学と京都大学の研究チームは関東大震災当時の地震をシミュレーションしたが、地震の規模自体は東日本大震災のほうが9.0ではるかに大きかったが、東京地域だけに限ってみると関東大地震の時の東京のほうがはるかに激しく揺れたと指摘した。 相模湾に位置した震源が東京に近かったためだ。 特に、三地点を選んで比較すると、関東大震災が10等級で区分する日本気象庁の地震強度規模基準では0.8~1ほどより大きく、地震応答スペクトルでは最大5倍まで大きかった。 応答スペクトルは地震が発生した時に構造物がどの程度で反応するかを現わす数値で、構造物に対する地震の潜在的影響を評価する際に必須の情報だ。 東京地域の場合、過去に海と湿地を埋め立てた地域を中心に液状化現象まで現れて2011年よりも1923年の地震被害のほうが大きくなるよりほかなかった。 液状化は水を含んだ砂のように土壌の中の粒子が地震の衝撃で突然液体のようにどろどろになり、これに伴って地盤が沈んで建物が傾斜あるいは倒壊する現象だ。 ◇地震と強風、水不足が火災を拡大させた カリフォルニア大学バークレー校と京都大学の研究チームは地震後の火災拡散に対する論文を発表した。 研究チームは「関東地震が発生した時間が午前11時58分で、昼食準備のために炭火・火鉢など火を最も多く使用する時間で、この火が木造建物がひしめく東京都内一円の火災につながった」と指摘した。 最初の1時間で都内では約100件の火災が発生した。東京消防局のポンプ自動車は31台しかなかった。 地震発生当時から翌日午前3時まで秒速約10メートル前後の強い風が吹き続け、可燃性木造住宅が密集していたために火災の72%は初期段階で消火できずに近所の建物に燃え広がった。 加えて振動と液状化で上水道管が破裂して水道水の供給が切れて消火のための水も不足した。 火が燃え広がると人々は公園など空間が開けた場所に避難したが、公園面積が都市面積の2.2%しかないほど場所が不足していた。面積0.66平方キロメートルの東京上野公園だけで約50万人が避難した。靖国神社の境内にも5万人が逃げてきた。 このような状況で、こうした避難場所にまで火が燃え広がったせいで1カ所で約4万人が一度に犠牲になった事例もある。全体的に22万軒(住居用18万4000軒含む)の建物が火災で焼失し、東京の面積の約43%に該当する地域が火災に遭った。 財産被害は合計15億円と推算されたが、1923年当時日本国内総生産(GDP)約45億円の3分の1を占めた。