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령회 연간 사목계획에 의거하여, 올해는 충북 괴산의 연풍성지와 경북 봉화의 우곡성지의 순례를 계획하여 지난 10월 월례회에서 희망자를 신청 받았는데, 나이 많으신 어르신들이므로 성지순례 진행에 어려움이 없도록 관광버스 1대에 탑승할 수 있는 43명으로 제한하여 신청 순으로 접수를 하였습니다. 그리고 성지순례를 하는 동안의 먹거리와 개인에게 돌릴 간식거리 봉지도 넉넉하게 준비하여야 하는데, 우리 위령회의 살림꾼 임관숙 카타리나 총무는 싸게 구입하려고 구입품의 종류와 량에 따라서 코스트코와 이마트와 칠성시장 등에서 구입하고, 봉지를 쌀 때는 저와 정부찬 베드로 형제가 도왔습니다. 그리고 연풍성당 사무실과 연락하여 11시의 순례미사 참례 계획과 구내 식당에서 먹을 중식도 예약하고, 간단한 아침과 귀가길의 국수는 매년 거래하는 진미식당에 예약하고, 돼지머리 수육 1관반은 모미식당에 예약하였지요. 또한 오후 3시경에 방문할 우곡성당 사무실에 전화를 하였는데 신부님이 직접 전화를 받으셔서 ‘오시면 언제라도 간단한 설명을 하겠다“고 응답을 주셨습니다. 이런 준비 절차를 거쳐 당일에 출발 하려니 3명이 사정으로 불참하여 39명이 성지순례를 떠나는데 관광버스를 돌려 나오는데 시간이 걸려 7시20분경에 출발할 수 있었습니다. (차후에는 관광버스가 긴 경우에는 후진으로 순교자묘역 앞으로 들어올 필요가 있겠음) 차내에서 먼저 오늘의 순례여행 동안에 기본적으로 지켜야 할 사항으로 1. 개인 행동은 하지 않습니다. 2. 마음을 열고 적극적인 자세로 임합니다. 3. 안내자의 말을 잘 듣고 실천합니다. 4. 우리 위령회원들은 지금 놀러가는 것이 아니라, 성지순례를 하는 것이므로 함께 하는 시간 동안, 만나는 이들 안에 하느님께서 함께 계심을 인식하며 서로 존중해야 합니다.---하고 안내를 한 후 차가 고속도로로 들어 서면서 회장이 회원들과 함께 시작기도를 바쳤습니다 *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아멘 항상 저희를 지켜주시고 이끌어 주시는 주님! 오늘 저희 복자본당 위령회 가족들이 한 마음으로 성지순례를 떠나고자 합니다. 출발시간부터 돌아오는 시간까지 우리의 모든 마음과 시간을 주님께 봉헌하오니 주님의 축복이 저희 위령회에 가득하게 하시고 모든 것을 주관하여 주소서 오늘 성지에서의 미사와 기도와 순례 중에 저희의 마음을 활짝 열게 하시어 신앙 선조의 믿음을 본 받게 하시고 그들의 순교위에 오늘의 우리가 있음을 깨닫게 하소서 또한 위령회가 더욱 사랑하고 일치하여 주님 보시기에 더 좋은 모습으로 거듭나게 해 주소서. 좋으신 주님! 이 좋은 하루를 주신 주님께 감사드리며 주님 안에서 기쁘고 즐겁고 평화로울 수 있도록 저희를 지켜주시고 보호하여 주소서. 이 모든 말씀 우리 주 그리스도를 통하여 비나이다. 아멘 그리고는 오늘 성지순례의 목적지인 연풍 성지와 우곡성지에 대하여 유인물에 의거하여 이 기호 도밍고 부회장께서 낭독하였는데
<연풍과 황석두 루까> 연풍의 산간 지역은 박해가 계속되던 시절에, 신앙을 지키려는 선조들이 문경 새재와 이화령을 넘어 경상도로 피신하는 길목이 되었습니다. 그들은 연풍에 도착해서 한숨을 돌렸고, 박해자들의 눈을 피해 고개를 넘는 순간에도 틈틈이 기도를 바치곤 했습니다. 최양업(토마스) 신부님과 프랑스 선교사 칼래(강 니콜라오) 신부님도 연풍을 거쳐 경상도와 충청도를 넘나들면서 교우촌을 순방했습니다. 그럴 때면 신부님들은 연풍 골짜기에 숨어살던 교우들을 방문하여 비밀리에 성사를 주었습니다. 이내 연풍은 경상도와 충청도의 신앙을 잇는 교차로가 되었고, 신앙 선조들의 보금자리가 되었습니다. 그리고 1866년의 병인박해 때는 수많은 교우들이 이곳에서 체포되어 순교의 영광을 얻었습니다 황석두 루까((1813~1866) 성인은 천주교 신앙을 받아들이자, 부친께서 천주학을 버리든지 작두날에 목을 맡기든지 하라고 강요하자 결코 진리를 버릴 수는 없습니다라고 하면서 작두날에 목을 디밀었습니다. 이후 성인은 아내와 동정 부부로 살면서 일생을 교회에 헌신했습니다 일찍이 성인의 이러한 열심을 알아챈 프랑스 선교사들은 그를 회장으로 임명하여 곁에 두었습니다. 이후 성인은 선교사들에게 한글과 한문을 가르치는 선생이 되었고, 선교사들의 교우촌 순방에 함께 했으며, 다블뤼 주교님을 도와 한글 교리서들을 편찬했습니다. 페롱(권 스타니슬라오) 신부님의 말씀대로 성인은 조선교구에서 가장 훌륭한 회장이었습니다. 언제나 신망애 삼덕과 기도 안에서 살았던 성인은 주교님이 체포되었다는 소식을 듣자마자 포졸들이 있는 곳으로 가서 자수했습니다. 그리고 끝까지 순교의 용덕을 보여주면서 즐거운 낯빛으로 휘광이의 칼날을 받아 순교했습니다.
<우곡성지와 수덕자 농은 홍유한> 한국에 천주교회가 세워지기 전에 ‘칠극(七克)’에 의한 천주교 수계생활을 28년간 행했던 한국 최초의 수덕자(修德者) 농은 홍유한(洪儒漢1725~1785)의 묘가 있는 곳이다. 조선 정조 때의 인물 홍유한은 16세부터 실학자 성호 이익(李瀷 1681~1763)의 문하에서 학문을 닦았다. 1750년경부터 이익 당시에는 기도책도 없고 축일표(祝日表)도 없었으나 7일마다 축일(주일)이 온다는 것을 알고 있어 경건하게 축일을 지켰고, 금육일을 알지 못했으므로 언제나 좋은 음식을 먹지 않았다 한다. 홍유한 후손 중에는 7명의 순교자가 있다. 1993년 10월 홍유한의 묘가 발견되었고, 1994년 3월 성지개발을 위해 안동교구 봉화성당에 성지개발위원회가 발족되었으며, 1995년 묘 주변 임야를 매입한 후 묘지와 주변을 정비하여 성지로 조성하였다. 1998년 11월 사제관과 피정의 집, 2000년 10월 수련원이 건립되었으며 동상과 야외제대, 십자가의 길14처 등이 조성되어 있다. "칠극"은 스페인 출신 예수회 회원 판토하(1571~1618) 신부가 쓴 교리서로서 601년~1610년 사이에 북경에서 간행되었다. 한국 최초 수덕자 농은 홍유한선생은 세례를 받지 못했지만 선종할 때까지 이 책을 하느님을 섬기고 이웃을 사랑하는 도구로 삼았다. 이책은 일곱가지 죄의 뿌리인 '칠죄종'을 이겨내고 느님 나라로 향할 수 있도록 이끌어주는 교과서이니, 곧 '하늘에 닿아 있는 계' (창세 28.12)라고 할 수 있다. 이에 농은 홍유한 선생의 수덕생활을 기억하고 본받기 위해, 우곡성지의 이 성당을 칠극성당이라 이름한다. 홍유한 선생 가게 가운데 그 분의 뜻을 이어 피를 흘리며 신앙을 증거한순교자들은 13명이나 된다. 이에 지금의 후손들은 선교 순교자들을 헌양하고자 하나 각지에 흩어져 있는 선교 순교자들의 유적을 찾을 길 없어고심하던 중, 선조인 홍유한 선생의 묘소가 있는 이곳에 13위 순교자를 함께 모실 것을 안동교구에 청하였고 교구는 이들의 신앙적 열성을 받아들여 후손과 함께 교구 설정 40주년이 되는 2009년 5월 29일 13위 순교선조들이 순교한 각 순교 터의 흙을 담아 숙교자 묘원을 조성하고, 비를 세워 현양하게 되었다.(준비해간 기도문의 글씨가 작아서 읽는 분이나 보시는 분 모두가 불편하였으니 차후에는 글씨를 조금 키울 필요가 있겠음) 이어서 모두가 함께 위령성월기도를 하고 ○ 깊은 구렁 속에서 주님께 부르짖사오니 주님, 제 소리를 들어주소서. ● 제가 비는 소리를 귀여겨들으소서. ○ 주님께서 죄악을 헤아리신다면 주님, 감당할 자 누구리이까. ● 오히려 용서하심이 주님께 있사와 더 더욱 당신을 섬기라 하시나이다. ○ 제 영혼이 주님을 기다리오며 당신의 말씀을 기다리나이다. ● 파수꾼이 새벽을 기다리기보다 제 영혼이 주님을 더 기다리나이다. ○ 파수꾼이 새벽을 기다리기보다 이스라엘이 주님을 더 기다리나이다. ● 주님께는 자비가 있사옵고 풍요로운 구속이 있음이오니 ○ 당신께서는 그 모든 죄악에서 이스라엘을 구속하시리이다. ╋ 기도합시다. 사람을 창조하시고 믿는 이들을 구원하시는 하느님, 저희의 간절한 기도를 들으시어 주님을 섬기던 사람들의 죄를 용서하시고 그들이 바라던 영원한 행복을 얻게 하소서. 우리 주 그리스도를 통하여 비나이다. ◎ 아멘. ╋ 주님, 그들에게 영원한 안식을 주소서. ◎ 영원한 빛을 그들에게 비추소서. ╋ 세상을 떠난 모든 이가 하느님의 자비로 평화의 안식을 얻게 하소서. ◎ 아멘 .(성가는 211번 주여 나의 몸과 맘) ---11월 1일부터 8일까지 열심한 마음으로 묘지를 방문하고, 세상을 떠난 이들을 위하여 기도하는 교우들은 연옥에 있는 이들에게 양도할 수 있는 전대사를 받을 수 있다.는 안내를 하고 7시40분 쯤에 칠곡 휴계소에 도착하여, 카타리나 총무와 베로니카 부회장과 여회원 몇분이 함께 봉사하여 배식하는 가운데 간단한 아침 식사를 맛있게 먹을 수 있었습니다.그리고 식사한 장소를 정리하고 화장실에 다녀와서는 출발하였는데, 방해숙 베로니카 부회장과 회장이 번갈아 주송을 하며 묵주기도 “고통의 신비”와 “영광의 신비”를 바쳤습니다. 9시30분에 연풍성지에 도착하여 사무실에 가서, 먼저 복자성당 위령회에서 회원을 위한 단체 생미사예물을 봉헌하고, 일부 회원은 개인적으로도 생미사예물을 봉헌하기도 하였습니다. 그리고는 성지를 둘러 보았는데
연풍의 지리적 입지와 황석두 루카 성인의 소개하는 안내문을 보고
황석두 루카 성인의 묘소에서
주모경을 바치고
11시에 시작된 순례미사에 참례하였는데 신부님께서 강론 중에 “여러분께서 가장 무섭고 피하고 싶은 것이 무엇이냐”고 물으시자 신자들이 ‘치매’라고 답하자 “그렇습니다, 치매에 걸리면 자식도 몰라볼뿐더러 자기도 모르는 상태가 되어 버립니다. 그러나 하느님을 잊어버리는 것은 영적인 치매‘라고 할 수 있는데 이것을 더 무섭게 하셔야 할 것입니다”라는 말씀이 가슴에 와 닫았습니다,
강론 후에 연풍성지에 대해서는 보다 더 알기 쉽게 동영상으로 보여 주셨는데 알기 쉽게 꾸며져 있어서 노인들도 이해하기가 쉬웠습니다. 그리고 미사 후에는, 미리 예약하고 송금하였던 식권을 받아 성지식당에서 중식을 먹었는데, 순례자들은 우리 본당 신자 외에도 100여명이 온것 같았습니다
식사 후에는 연풍순교성지성당 앞에서 회원들이 모여 단체 사진을 찍고는 우곡성지로 향하는데, 관광버스 기사가 "날도 싸늘하고, 성지식당에서는 반주도 못했으니 가는 길에 장소값을 내지 않는 공간에 한 20분 시간을 드릴까요?" 하는 바람에, 문경의 어느 해산물가게 옆 공간에서 가져간 돼지고기 수육 등 안주를 내어 놓고 준비해간 와인으로 중식 때 못다한 반주를 하며 친교를 나누었습니다. 그리고는 우곡성지에 도착할 동안, 막간을 이용하여 우곡성지 방문 후에 부를 가요방 노래를 미리 예약을 받아 놓았는데, 성질 급한 신자 몇분은 부르기도 하는 가운데, 경북 봉화군의 우곡성지에 다다렀습니다.
어제 전화를 통하여 오늘 방문하겠다는 연락을 하였으므로,도착하기조금 전에 도착한다는 전화를 드렸더니 황영화신부님은 직접 주차장까지 나오셔서 우리를 맞이해 주셨습니다.
"한국 최초의 수덕자 농은 홍유한 선생의 선생의 수덕생활을 기억하고 본받기 위해 우곡성지의 이 성당을 "칠곡성지"라 이름한다" 는 안동교구 교구장의 글이 새겨져 있는 비석과
마찬가지로 안동교구장님이 인준하신 "칠극의 기도"가 새겨진 비석을 보며 성당에서 들어와서 황영화신부님의 농은 홍유한 선생에 대한 설명으로 "한국 천주교 첫 영세자 이승훈 베드로는 중국 북경에서 1784년에 세례를 받았는데, 홍유한 선생은 실학자 이익 문하에서 천주실의와 칠극 등 서학을 배우면서 "칠극"의 교리에서 유교에서 발견할 수 없었던 오묘함이 있음을 알게 되어, 그것을 몸소 실천하려고 1757년에 고향으로 내려갔다. 그러므로 한국의 최초의 영세를 받은이보다 30년 가까이 앞서서 수덕생활을 시작했다는 내용을 말씀해 주셨습니다. 설명후, 신부님께서는 웃으시면서 "연풍 성지보다는 발전이 적은 우곡성지에 먼저 와서 미사예물도 바치고 봉헌을 해 주셨으면 좋았을 텐데요!" 하시기에, 회장이 "미사는 못하더라도 발전기금은 쪼끔 갖고 왔습니다"라고 하는데, 보태어 내라고 장임순 할머니등 많은 신자들이 즉석에서 발전기금을 보태어 주셨습니다. 그리고 신부님은 "150만원만 있으면 사무원 1명을 쓸 수 있을 것 같아서 월 1만원씩 후원계좌를 받고 있으니 참고해 달라는 말씀이 있었고, 후원계좌를 신립하는 신자분도 있었습니다
성당을 나서면서, 신부님께서 강복을 주셨고
성당을 나서면서는 황영화신부님과 함께 단체사진을 찍고, 신부님께서는 갈 때도 주차장까지 오시어 버스가 떠날 때 까지 배웅을 해 주셨습니다. 그리고 저에게 마지막 인사를 하며 "위령회원들이 참 화목하고 정들이 넘친다"고 하셨는데, 그새 신부님께서도 정이 드신거나 아닌지? 궁금하던군요.
그런데 두군데 성지를 다니려니 시간의 여유가 없어 "칠극의 길"도 가보지 못하고, 농은 홍유한 선생의 유적비가 있는 고택지에도 가보지 못하는 등 여러 곳을 못 가보았습니다. 다음에 기회가 있으면 하루 계획으로 이곳 저곳을 찾아볼 필요가 있다고들 했습니다.
돌아오는 차안에서는 "우리 성당도 성지인데,우곡성지의 살림이 너무 열악하니 우리 위령회의 명의로 후원계좌 3계좌를 넣도록 하자"고 하니, 모두가 찬성을 하여 그렇게 하기로 하였습니다. 이후로는 친교의 시간으로 차 안의 가요방도 가동하고, 남은 술도 권하며 즐거운 시간을 보내었는데, 우리 복자성당의 위령회원들은 노래들을 어찌나 잘 부르던지요! 그렇게 1시간 가까이 가다가, 동명휴게소의 한적한 곳에서 준비해간 국수를 먹었는데 제법 어두웠는데도 코로 들어가지는 않더군요(역시나 아침에 봉사하신 자매님들이 배식을 하셨는데 저희는 덕분에 잘 먹었습니다. 50인분을 주문하여기에 저는 두 그릇을~!)
대구에 가까왔으므로 순례의 마무리를 하며, 수고하신 운전기사님께 박수를 보내고, 역시 수고하신 카타리나 총무님을 비롯한 임원님께도 박수를 보낸후,
마침기도 *성부와 성령의 이름으로 아멘 항상 저희를 사랑으로 지켜주시고 이끌어 주시는 주님! 오늘 주님의 축복 속에 하루를 허락해 주심에 감사드리나이다. 성지에서의 하루를 통하여 저희 마음 을 열게 하시고 믿음을 더욱 견고하게 하여 주셨으며 같은 신앙 안에서 살고 있는 우리 위령회를 하나되게 이끌어 주셨나이다. 이제 우리는 성지순례를 통하여 주신 은혜를 깊이 간직하오며 항상 기도하고 이웃을 위해 봉사하는 참된 신앙인이 되고자 결심하오니 이 작은 믿음을 크게 이끌어 주소서. 오늘 함께 해주신 주님께 감사와 찬미와 영광 드리오며 이 모든 말씀 우리 주 그리스도를 통하여 비나이다. 아멘
마침성가--- 61 주 예수와 바꿀 수는 없네
P.S 이 자리를 빌어 성지순례를 준비하시는라 수고하신 임원님들과 순례 동안 수고하신 봉사자들과 순례 동안 한분도 빠짐없이 개인 행동이 없이 따라준 회원님들 모두에게 다시한번 감사를 드립니다. 그리고 이번 성지 순례에 찬조해 주신 청운신협 김상수요셉 이사장님, 정부찬 베드로님, 김경하 루까님,이선영 베로니까님, 장임순 요안나님, 장점순 루시아님, 양입모 요한님께 감사를 드립니다. 또한 이른 시간에 떡을 보내주신 자모회장님께도 감사를 드립니다.
위령회 연풍 성지순례 비용.hw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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