증언(證言) - [23] 이봉운(李鳳雲) - 축복 6. 서울에서의 생활 1 1958년 5월 1일, 상경한 나는 유 협회장으로부터 교회 경리를 인수받았다. 이때까지 유 협회장이 경리 일체를 맡아 보다가 내게 경리와 생활을 맡기었는데 그때는 문서와 잔고도 없는 인수였다.
2 당시 교회에는 합숙자가 많아 시장에 단골 쌀집을 정했다. 외상거래를 아니할 수 없었고 때로는 쌀을 주지 아니하여 창피하고 분한 때가 한두 번이 아니었다. 1962년까지 재직하면서 성혼식과 36가정, 72가정 축복을 비롯한 전 생활의 출납을 담당했다.
3 성혼식의 공로자 10명을 표창할 때는 그중 1인으로 백환짜리 동화 1매를 받기도 했다. 또한 매년 지방 전도 때는 연령에 해당될 때마다 모두 참가했고 시내 회관 활동에도 모두 참여하여 경리 일체를 맡아 보았다. 4 내 가정은 서울에 올라온 후에도 생활이 곤란하여 제분소에서 밀기울을 사다 먹기도 했으니, 제주서 톨을 먹기보다 힘들었다. 번듯이 공부시킨 아이도 없었으니 무경은 대학 납입금을 지구장들의 오토바이 장만 때 헌금하고 교회 일을 보게 했으며, 현경은 대학 갈 수 있는 때인데도 우리는 공부해선 아니 되는 집안이라 하며 본부로 보내 인진님을 모시게 하였다.
5 60년에는 주경이 낙생면에 교회를 세우고 문경이 경기도 벽제교회를 창립했다. 그리고 수경, 무경이가 교회 일에 전력하게 되니 나는 집으로 돌아오게 되었다. 6 이제 36가정에 수경, 72가정에 문경, 430가정에 무경, 777가정에 현경, 1800가정에 장손 원찬이 축복을 받았고, 나와 주경은 기성 축복을 받았다.
7 또한 장손이 일남 일녀를 낳아 축복 증손을 보았으니 이야말로 삼대 축복이다. 선생님께서 “통일교회는 이 영감네 위해서 생겼나 보다” 하신 말씀처럼 고생도 많이 했지만 복도 많이 받았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