빈부의 차이와 치부의 동기-해동화식전
부자는 남이 재물을 가져다주어서 부유해진 것이 아니고, 빈자는 남이 재물을 빼앗아서 가난해진 것이 아니다.
재주가 많은 사람은 시기를 잘 포착하여 넉넉해지고, 재주가 모자란 사람은 시기를 놓쳐서 넉넉해지지 못한다.
부자가 한창 재물을 취할 때는 몰인정하여 눈곱만큼도 남에게 재물을 나누어주지 않는다.
그러다가 부를 쌓은 다음에는 비로소 착한 사람으로 바뀌어 비루하고 좀스럽던 예전 태도를 매미가 껍질을 벗듯이 훌쩍 벗어던진다.
남의 아쉬운 소리를 선뜻 들어주고, 곤경에 처한 이들을 서둘러 구제하여 고매한 선비나 의로운 협객처럼 선행을 베푼다.
이전에는 부자를 향해 침을 뱉고 욕을 퍼부으며 원망하고 헐뜯던 사람들도 나중에는 그의 의로움을 한없이 흠모하고 은덕에 감복하여 부자를 대신하여 목숨까지 내놓으려 한다.
그렇게 확바뀐 이유는 어디에 있을까?
작은 은혜를 베풀어서는 죽을 지경에서 헤매는 사람을 구하지 못하고, 작은 일에 얽매이면 방해를 받아 큰뜻을 이루지 못하기 때문이다.
현명하기는 해도 가난한 자가 있어 아무리 그럴듯한 말을 해도 사람들은 옳은 말이라 여기지 않고 떼로 몰려들어 비웃는다.
반면에 어리석기는 해도 부유한 자가 있어 아무 의미 없는 말을 늘어놔도 사람들은 그릇된 말이라 여기지 않고 번갈아가면서 칭송한다.
부유하면 인색하더라도 이웃을 보살필 수 있지만 가난하면 어질더라도 가까운 가족조차 지키지 못한다.
이것은 경우에 따라 현명한 자가 어리석은 자보다 아래라는 말이며, 어진 자가 인색한 자보다 못하다는 말이다.
재물을 가진 뒤에야 예절을 갖추기 마련이다.
가진 재물이 아무것도 없거늘 무슨 수로 예절을 차리겠는가?
굶주림에 지친 나머지 얼굴을 소매로 가리고 신발을 동여매고 현기증이 나서 비실비실 돌아다니는 사람이
있었다.
집 밖으로 나가면 더불어 대화를 나눌 사람이 없었고, 집에 들어오면 집안사람 모두가 그를 밀쳐냈다.
부모도 그를 자식이라 감싸지 않았고, 형제도 그를 형제로 여기지 않았다.
아내도 남편이라 존대하지 않았고, 형수도 시동생이라 공경하지 않았다.
친족들이 모인 자리에서는 그를 구석에 처박아 두었고, 친구들은 술자리에서 그와 더불어 수작하기를
창피해하였다.
이 어찌 가난 탓이 아니겠는가?
그러니 부유함을 누리고 재물을 모을 수만 있다면, 손이 불에 타고 발이 물에 빠질망정 이익을 추구하는 것이
가난하지만 어진 것보다는 그래도 낫지 않겠는가?
* 세상에서 가장 불효자는 가장 가난한 사람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