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작과 비평> 구독자가 되었더니 그 출판사에서 나오는 책을 40% 할인하여 살 수 있는 특전을 주었다. 그리하여 2012년에는 창비출판사에서 발행한 책을 많이 샀다. 11월에는 창비에서 새로 번역하여 발간한 세계문학전집을 샀고, 12월에는 황석영 문학 50년을 기념하여 발간한 500권 한정판 <황석영 문학 전집>을 샀다.
맨 먼저 <바리데기>를 읽었다. 책마다 표지 다음 면에 “맑은 날, 폭풍우의 날도 다 지나간다. 황석영”이라는 자필 문장과 서명을 인쇄해 놓았다. 그 글이 마음에 와 닿았다. 50대 중반을 맞이하는 나의 인생을 되돌아보았다. 어느 인생치고 험난한 여정 아닌 인생이 있으랴마는 나의 인생도 험난하고 힘든 고비 고비를 많이 넘어 여기까지 왔다.
바리데기의 인생이 그렇듯이, 황석영, 그의 인생 역시 파란만장한 세월이었던 것으로 알고 있다. 그는 인생 자체가 한국의 근현대사와 맞물린 글쟁이였다고 MBC 뉴스데스크에서 들었다. 그는 만주에서 태어났으며 일찌감치 문재가 있어 고등학생 때 상을 받았다. 그는 많은 글을 쓰고 온갖 문학상을 휩쓸었으나 1989년 방북으로 인하여 정부에서 종북인이라는 딱지를 붙여주었다. 그로 인하여 망명을 하고, 오랜 수감 생활을 하였다.
그는 말하길, 글을 쓴다는 것은 힘들고 어렵다고 했다. 글이란 정직한 육체노동이라고도 했다. 글은 어떻게 쓰는가라는 질문에 ‘글이란 왼쪽에서 오른쪽으로 쓴다. 글이란 궁뎅이로 쓴다’라고 대답했다. 공감이 가는 말이었다. 한 줄 한 줄 글을 이어간다는 것이 얼마나 힘든 일인지 모른다. 그리하여 나는 소설가들을 매우 존경한다. 웬만한 인내심을 갖지 않고는 한 권의 책을 완성하기는 쉽지 않다. 더군다나 대하소설을 쓴다는 것은 초극의 인내, 절제, 노력이 필요하리라.
글쟁이는 고독하다. 글쟁이는 글을 쓸 때 가장 정직한 삶을 사는 것이다. 글쟁이가 다른 일에 끼어들면 사람들의 쓰디 쓴 말을 많이 듣게 된다. 한때 그는 예능 프로그램에도 출연하고 정치권에 쓴 소리도 하면서 자기를 세상에 많이 드러내 세인들의 손가락질을 받기도 했다. 혹시 그가 정치를 하고자 함이 아닌가 하는 의혹을 사기도 했다. 그러나 다시 그는 글쟁이로 돌아와 왕성하게 글을 쓰고 있다. 반갑고 고마운 일이다. 그는 ‘디지털 세상에도 아날로그 이야기의 힘을 믿는다’라고 말했다. 나 또한 그 말에 동감이다. 여러 가지 눈을 즐겁게 하는 것들이 현란하게 등장한다 해도 나의 눈을 가장 즐겁게 해주는 것은 역시 글이다. 그래서 나는 글을 읽고 글을 쓸 때 신바람이 난다.
2012년 12월 30일에는 ‘신바람 웃음 박사’ 황수관 교수가 죽었다. 급성패혈증으로 치료받다가 죽었다고 한다. 향년 67세, 그가 늘 외치던 ‘웃고 살면 무병장수’라는 말과는 좀 어긋난 수명인 것 같다. 인생이란 얼마나 오래 살았느냐가 중요한 것은 아니다. 어떤 이는 굵고 짧게 살기를 바라고, 어떤 이는 가늘어도 길게 살기를 바란다. 어찌 되었든 인간의 호흡은 하나님이 주관하시므로 인간이 좌지우지할 수 없다. 그러나 그의 이른 죽음에 아쉬운 여운이 남는다. 2012년 국회의원 총선에 출마했다가 낙선했으며, 대선 때에는 새누리당 지원 활동을 했다고 한다. 아마 과로했던가 보다.
요즘 오래 전에 방영되었던 드라마 <상도>를 다운받아 보았다. 최인호의 소설 <상도>는 다섯 번 읽었다. 소설을 너무 감명 깊게 읽어서인지 드라마는 그다지 재미가 없었다. 그러나 남편이 원해서 함께 보았다.
드라마를 보면서 몇 가지 사실을 재삼 깨달았다. 첫째, 책의 내용과는 좀 다르지만 드라마에서는 의주 만상의 도방인 홍득주로부터 상인 초년병 시절에 임상옥은 장사란 무엇인가에 대해서 몸으로 체득한다. ‘장사란 돈을 벌기 위함이 아니라 사람을 벌기 위함이다’를 드라마 연출가는 반복하여 보여준다. 둘째, 인간에게는 삼욕이 있다. 명예욕, 지위욕, 재물욕이다. 임상옥은 홍경래의 거사동참을 권유받았을 때 세발 달린 솥을 앞에 놓고 그에게 도전한다.
‘사람은 목숨이나 명예, 지위, 재물에 초연할 수 있을 때 자연스럽게 자기 자신의 뜻있는 삶을 누릴 수 있다’라고 말하며 자기의 생명을 내려놓음으로써 생명을 얻는다. 셋째, 만상의 대방이 된 임상옥은 굶주린 백성들을 구휼하고 나라의 어려움을 해결하는데 앞장섬으로써 왕에게까지 알려지고 왕의 신임을 얻는다. 그는 중인이지만 왕의 특명으로 양반들만이 할 수 있는 벼슬을 받는다. 현감을 거쳐 군수, 그리고 부사자리를 제수 받는다. 그때 임상옥은 자기의 물러날 때를 알고 왕에게 사직서를 제출하고 자기의 자리인 상인의 자리로 돌아온다. 사람이 물러날 때를 안다는 것은 얼마나 중요한지……
2012년 한해는 다사다난했다. 그러나 봄의 가뭄도, 여름의 태풍도, 가을의 홍수도 다 지나갔다. 겨울의 폭설도, 추위도 다 지나가리라. 12월 30일, 2012년의 마지막 주일이 되었다. 금요일부터 온 눈이 쌓여 길은 미끄러웠고, 동네마다 노인들이 주를 이루어 살고 있으므로 누구 하나 나서서 눈을 치우지 않아 마을 광장과 길은 눈이 두껍게 쌓여 있어 차를 운행하기가 쉽지 않았다. 차바퀴가 휙휙 제멋대로 돌았다.
올 겨울엔 눈이 많다더니 정말 거의 주일마다 눈이 와서 길이 미끄러웠다. 어디나 마찬가지로 어렵겠지만 시골교회에서는 겨울의 주일날 아침에 쌓인 눈이 가장 거침돌이 된다. 연세가 많은 성도들이 눈길에 교회에 나오는 것은 큰 모험이다. 뼈가 약해져서 조금만 부딪치거나 넘어져도 부러지기 십상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시골교회 노인 성도들은 순박하여 주일성수라는 의무감이 강하다. 주일은 반드시 본 교회에서 예배를 드려야 마음이 흡족한 그런 마음 말이다. 95세 된 성도는 다리에 힘이 없어 비척거리는 걸음걸이로 어떻게 왔는지 늦게 예배당에 도착했다. 교회 봉고차가 순회할 때에는 태우고 오지 않아서 오늘은 눈이 많이 와서 못 오시나 보다, 생각하고 있었다. 예배 끝날 때 보니 언제 오셨는지 자기 자리에 앉아계셨다. 어쨌든, 눈길에도 거의 모든 성도들이 예배에 참석하여 2012년 한해도 무사히 잘 보내게 되었다.
2012년에는 4월에 19대 국회의원 총선이 있었고, 12월에는 18대 대통령을 뽑는 대선이 있었다. 두 번의 큰 선거로 인하여 나라가 어수선할 줄 알았으나 정치적으로는 대체로 큰 사건 사고 없이 잘 지나갔다. 우리 지역에서는 2012년도에 정권이 새롭게 바뀌기를 기대했다. 총선에서는 우리 지역민이 지지하는 민주당 국회의원들이 대거 당선되어 민주당이 국회의 실세를 잡고, 대선에서는 민주당 대통령 후보가 당선되어 정국이 새로워지기를 바랐다.
그러나 어찌된 일인지 과반수이상이 새누리당을 지지했고, 박근혜를 대통령으로 뽑았다. 어찌하랴, 이는 사람의 힘으로 능으로 되는 일이 아님을 인정할 수밖에 없다. 하나님께서 이를 허용하신 것은 그만한 뜻이 있어서이리라. 잠언에 이르기를 “사람이 마음으로 자기의 길을 계획할지라도 그의 걸음을 인도하시는 이는 여호와시니라(잠 16:9)”라고 했다. 우리 지역에서는 틀림없이 문재인이 18대 대통령으로 당선되리라 확신했었다. 지금은 이해할 수 없을지라도 지나고 나면 알게 되겠지.
다윗의 생애를 보면 더욱 잘 이해할 수 있는 말이 바로 이 말이다. ‘이것 또한 지나가리라.’ 다윗은 파란만장한 삶을 살았다. 그의 불우한 어린 시절, 막내로 태어나 형들의 틈바구니에서 인정받지 못하고 집안의 허드렛일이 맡겨졌다. 골리앗과의 쟁투에서 하나님의 도우심으로 승리하여 사울왕에게 발탁되지만 그의 인기로 인하여 사울에게 쫓기며 젊은 시절을 보냈다. 이스라엘왕이 되어 성군으로 정치를 잘했으나 각기 다른 아내에게서 태어난 아들들 간의 피비린내 나는 투쟁으로 그의 가문은 수치스러운 가문이 되었고, 그는 아들에게 쫓겨 맨발로 도망가는 신세까지 온갖 고생과 역경 속에 그의 인생을 보냈다. 그의 삶에는 고난, 영광, 승리, 오욕, 수치로 점철되어 있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의 70 평생은 지나갔다.
우리의 인생 또한 이렇게 지나가고 있다. 지나가는 시간 속에서 때가 악하니 세월을 아껴 시간을 허비하지 말고 시간을 잘 활용하며 살아야겠다고 다짐해본다. 2012년 한 해를 보내면서 정초에 마음먹었던 일들이 많이 허투루 지나갔음을 결산하면서 후회와 아쉬움의 한숨을 쉰다. 인생도 마찬가지이다. 우리의 인생, 70년, 80년, 90년은 금방 지나간다. 하나님 앞에 서게 될 때 “착하고 충성된 종아, 잘 하였도다”라는 칭찬을 받을 수 있도록 정신 바짝 차리고 살아야겠다고 다시 한 번 결단한다.
양애옥 (정읍시 옹동면 비봉리 산성교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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