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퇴고 3]
동박새 낮춰야 산다
덕암 이성칠
깊어가는 늦가을 철모를 소나기 퍼붓고 울창한 느티나무 단풍철 늦잠 자느라 녹음이 짙다 엇비슷한 친구들 지저귀는 화음에 기어이 숲으로 포르르 날아들었다 붉은 벽돌 들창문 틈새로 궁금증 발동했다
아뿔싸 칸막이엔 둥근 하얀 게 놓여 있고 가운데 맑은 물이 있다 밖에는 기다랗게 넓은 홈이 파인 2개가 세워져 있다 쇠 손잡이 밑에 네모난 하얀 게 엉거주춤 놓여 있다 다시 나가려 해도 창문뿐이고 출입문인지 크게 입 벌리고 있다 덜컥 겁이 났다 사방이 하얗다 날씬한 연둣빛 예쁜 몸매 자랑할 친구도 그 무엇도 없이 나 홀로 외톨이 신세다 누군가 들으라고 목청껏 울어 젖혔다 문득 가르쳐 준 대로 절대 낮게 날지 말라는 당부가 떠올랐다
아무런 소리도 들리지 않는 공간에서 다시 돌아갈 곳은 보이지 않는다 나의 예쁜 노래는 부를 수도 없거니와 끝내 울음보 터뜨리고 말았다 얼마나 울었을까 그때 갑자기 열린 곳으로 큰 눈알의 까만 것이 사람 냄새를 확 풍기며 들어 왔다
빗자루와 쓰레받기를 들고 잡을 듯 휘휘 젖으며 조용한 목소리지만 무서웠다 날기에 비좁은 공간에서 잡히면 기절해 죽을 것 같다 엄마와 친구를 부르며 울부짖었다 잠시 후 나가더니 물을 담은 작은 그릇과 단내나는 모이 같은 것을 문짝 위에 올려두고 나갔다.
목이 타서 몇 모금 마시고 조용히 몸을 움츠렸다 한참 뒤에는 또다시 그것을 창문 틈에 내려놓았으나 나를 잡기 위한 속임수로 여기며 절대로 내려앉지 않았다 한참 뒤 이번엔 갑자기 우산을 활짝 펴들고 휘휘 젓는데 나는 살기 위해 문짝 끝으로만 이리저리 날아다니며 피했다
할 수 없이 결사적으로 입 벌린 큰 문 쪽으로 처음 나갔다 연이어 복도와 연결된 넓은 창에 부딪히며 좁은 틈새로 떨어졌다 그 순간 활짝 열리는 창틈으로 빠져나와 느티나무에 앉았다 드디어 살았다
문득 누군가 한 말이 떠올랐다 우리 세상을 다스리는 사람들과는 항상 멀리 떨어져 있어야만 행복하단다 그런데 곰곰 생각해 보니 결코 나쁘게 대하진 않은 것 같았어 무슨 말인지 모르나 물도 주고 다정함이 묻어난 것은 분명해 혼낼 것 같은 느낌은 아니었어 다만 높이만 날았으면 살아나오지 못했을 거야 그렇지만 사람 세상엔 절대 들어가면 안 되겠어
[퇴고 2]
인간이 어찌 동박새를 알아
덕암 이성칠
파고라 옆에 느티나무가 울창하다 깊어가는 가을에 웬 철모르는 소나기 쏟아진다 단풍철 늦잠 자느라 녹음 또한 짙다 기어이 날아들었더니 여기저기 친구들 지저귀는 화음에 포르륵 붉은 벽돌 건물 밀창문 틈새로 호기심이 발동했다 아뿔싸 이게 아니구나 화장실이다 그런데 냄새가 없는 걸 보니 이용하는 사람이 별로 없는가 보다 그런데 사방이 하얀 벽이다 나의 날씬한 연둣빛 몸매를 자랑할 누구도 보이질 않네 일럴 땐 엄마가 가르쳐 준대로 절대 낮게 날지 말라는 주의를 떠올렸다. 문득 겁이 났다. 주위엔 아무런 소리도 들리지 않고 인기척도 없는 공간에서 다시 돌아갈 곳이 보이지 않았다. 나의 예쁜 목소리는 부를 수가 없거니와 끝내 울음보를 터뜨리고 말았다 얼마나 울었을까
그때 갑자기 열린 문으로 들어온 안경을 낀 키가 큰 사람 시꺼먼 옷을 입고 니코틴 냄새가 확 풍기며 덜컥 겁이 났다. 너무나 좁은 공간에서 사람의 주먹만큼도 되지 않는 내가 잡히면 기절해 죽을 것 같다 엄마를 부르고 친구를 부르며 더 큰 목소리로 울부짖었다 나중에는 나가더니 물을 담은 작은 통과 단내나는 먹이 같은 것을 문짝 위에 올려두고 나갔다 얼마나 목이 탔던지 물만 몇 모금 마시고 조용히 몸을 움츠렸다 한참 뒤에 그것을 창문 틈에 내려 놓았으나 나를 잡기 위한 속임수로 여기고 절대로 내려가지 않았다 한참 뒤에 갑자기 우산을 들고 와 날 잡으려는 듯 휘휘 젖는데 나는 살기 위해 문짝 끝으로 이리 날고 저리 날며 위험에서 피했다 그리고 결사적으로 화장실 큰 문으로 해서 복도로 연결된 큰 창문에 부딪히며 좁은 틈새에 떨어지며 정신을 잃는 순간 결사적으로 열린 창문 틈으로 날아 느티나무로 날았다
뭇 생명들은 함께 살아가면서 소중한 뭔가를 들려 준다 작은 연두빛 동박새 한 마리가 연구실 화장실에 잘못 들어와 다급하게 우는데, 하 이놈 아무리 나오라고 해도 도무지 겁을 먹고 문짝 끝으로만 날아다니네요. 물을 얹어 주고 한참 뒤 열린 창문 틈에 과자부스러기와 물을 내려두었더니 도무지 내려올 줄 모르고 애간장만 태웠어요 시간 맞춰 나도 점심을 먹으러 가야 해서 급한 김에 우산으로 휘휘 저으며 한참을 씨름했더니 결국 복도로 날아 나와 큰 창에 부딪히며 문틈에 내려앉는 순간 창문을 열어젖혔더니 포르륵 날아 아파트단지 큰 느티나무로 해방이 되었네요
십일 월의 첫날부터 서너 시간을 애태운 끝에 방생이 되고 나니 정말 흐뭇하고 행복한 기분입니다 그런데 날아간 동박새는 얼마나 애간장을 태웠으며 생사를 넘나드는 힘든 줄다리기를 했을까 생각하니 갑자기 이런 생각이 드네요 우리가 우주를 날아가고 미확인 비행물체가 날아들지만 우리와 수만 년 함께 살아온 친근한 작은 새와도 대화가 안 되는데 어찌 인간을 만물의 영장이라 했을까 다행이 해코지도 않고 아름다운 맬로디로 우리 인간들의 삶을 아름답게 가꾸어 주는데 그저 감사할 뿐이지요
(20231101)